<친절한 복희씨> 중 (문학과 지성사, 2007)
<그리움을 위하여>, 박완서
박완서(1931-2011)는 경기도 개풍에서 태어나 1950년 서울대 문리대 국문과 재학 중 한국전쟁 발발로 학업을 중단했다. 1970년 불혹의 나이에 <나목(裸木)>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엄마의 말뚝>,<한 말씀만 하소서>,<너무도 쓸쓸한 당신>,<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등이 있다.
<친절한 복희씨>는 박완서 소설집이다. 대부분 짧은 9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대부분 인생의 황혼에 접어든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다. 목차를 살펴 보면 <그리움을 위하여> ([현대문학], 2001년 2월) 제1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 <그 남자네 집> ([문학과사회], 2002년 여름호), <마흔아홉 살> ([문학동네], 2003년 봄호), <후남아, 밥 먹어라>([창작과비평], 2003년 여름호), <거저나 마찬가지> ([문학과사회], 2005년 봄호), <촛불 밝힌 식탁> ([촛불 밝힌 식탁], 동아일보사, 2005), <대범한 밥상> ([현대문학], 2006년 1월호), <친절한 복희씨> ([창작과비평] , 2006년 봄호) 문인 100인 선정 ‘2006 가장 좋은 소설’, <그래도 해피 엔드> ([문학관] 통권32호, 한국현대문학관, 2006)이다.
먼저, <그리움을 위하여>는 어렸을 때 함께 자란 사촌언니와 동생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두 정거장 거리 옥탑방에 사는 동생은 사촌언니 집안일을 도와주며 지내고 있는데, 이 둘은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언니를 분석하면 이런 단어들로 나열된다. 독선적이다. 우월감 있다. 이기적이다. 현실적인 사람이다. 계산적이다. 합리적이다. 상전의식을 가지고 있다. 반면, 사촌동생은 현실적응을 잘하는 인물이다. 밝은 성격이다. 명랑하고 자기주장도 있다. 열정적으로 산다로 인물들을 말할 수 있겠다. 두 인물에서 드러난 단어표현들만 봐도 상반된 성격이다. 이런 동생을 언니는 못 마땅하게 생각한다.
어느 날, 사촌동생 얼굴을 본 언니는 혈색이 좋지 않아 물었더니 옥탑방 더위때문이라고 한다. 옥탑방은 밤에도 화덕 속 같다는 것이었다. 옥탑방에 살아본 사람은 알 것이다. 한 낮 동안 뜨거운 시멘트는 새벽 3시나 되어야 서서히 식는다. 잠을 자기 힘든 상황이다. 사촌동생은 “환장하게 더워서 러닝셔츠를 물에 담갔다가 대강 짜서 입고 자면 그게 마르는 동안은 좀 견딜 만해서 잠을 청해”라고 말한다. 이 말을 듣는 언니는 충격을 받지만 같이 지내자고 말은 선뜻 하지 못한다. 개개인에게는 사생활이 있는데 언니의 입장도 충분히 공감된다. 동생이 불쌍한 건 불쌍한 건데 같이 지내는 것이다. 그러나 언니가 너무하다는 생각도 든다. 말복까지만 넘기면 더위는 식는다. 잠깐 동안 와서 지내라고 말하지 않는 언니가 동생을 파출부로 대했다는 것이 드러난다. 언니는 나름대로 베푼다고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동생을 생각한 건 아니다. 자기것을 준다는 것은 손해를 보면서도 준다는 것이다. 언니는 자기것을 딱 챙기고 넘치는 선에서만 줬다. 그것을 베푼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런데 우리는 베풀었다고 착각한다. 먹고 배불러서 주는 것과 내 배가 고프지만 참아가면 내 끼를 주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나는 그때 으레 동생이 그 끔찍한 옥탑방을 면한 줄 알았다. 그러나 말이 방 세 개지, 하나는 창고로 쓰기도 작고, 중학교 갈 날이 머지않은 손자들 두 놈은 한 놈만 들어서도 집안이 꽉 찰 만큼 숙성했다. 동생은 거기 같이 들어가 살 생각은 꿈에도 안 해본 것 같았지만 젖은 옷을 입고 잔다는 소리를 듣고부터는 여름 동안만이라도 와 있으라는 소리를 안 하는 아들 내외가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p20)
너무 더워 하소연을 했더니 사량도에 사는 친구가 섬으로 내려오란다. 사촌동생은 사량도로 내려가더니 그 곳에서 상처한지 1년도 안 된 영감님(어부)을 만나 연애를 하고 같이 산다며 언니에게 통보한다. 이 말을 들은 언니는 제정신이냐며 결혼을 반대하고 나선다. 반대하는 언니는 너무 이기적일까? 언니는 급기야 사촌동생 형제들에게 전화를 해서 언니 결혼을 말리라고 한다. 언니가 반대할 입장은 아니다. 결혼에 대한 행복의 기준이 다르다는 걸 언니도 인정해야 한다. 당장 일손이 부족한 자신이 불편해서일까? 여실히 보이는 상전의식이다.
“더 들을 것도 없었다. 삼십여 년을 해로한 제 영감 차례를 내팽개치고 어느 개뼉다귀인지 모를 늙은 뱃사람의 죽은 마누라 차례를 지내러 가겠다는 게 어디 제정신인가. 너 환장을 했구나. 나는 차갑게 내뱉고 먼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p29)
“영감님이 엉엉 우는 거야. 나는 남자가 그렇게 눈물을 철철 흘리며 우는 거 처음 봤다우. 그러면서 죽은 마누라가 도와줬다나. 내 손목을 붙들고 마누라한테 도와달라고 이 사람마저 잃으면 못 산다고 빌었대.”(p37)
동생이 언니를 찾아 와 하룻밤 자면서 있던 일을 이야기 한다. 동생 이야기를 들으며 언니의 감정선은 변화가 온다. 언니가 진정으로 동생을 이해하게 되는 부분이다. 자기가 혼자 상상했던 부분이 잘못이라는 걸 느끼며 진정한 행복에 대해 생각해본다. 자신의 생각했던 사고가 허물어지는 과정에서 동생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동생을 그리워하게 된다. 그리움은 사랑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메말랐던 언니의 감정도 조금씩 열리는 지점이다. 인간이라면 동생처럼 살아야 행복하다는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언니는 상전의식을 포기한 대신 자매애를 찾았다며 이야기는 끝난다.
“나는 동생에게 항상 베푸는 입장이라는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건 상전의식이지 동기간의 우애는 아인다. 상전의식이란 충복을 갈망하게 돼 있다. 예전부터 상전들의 심보란, 종에게 아무리 최고의 인간 대접을 한다고 해도 일단 자신의 거룩한 혈통이 위태로워졌을 때면 종이 기꺼이 제 새끼하고 바꿔치기 해주길 바라는 잔인무도한 것이 아니던가.(p39)”
<서평-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