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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국민학교를 다니던 시절은 막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어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던 무렵이었습니다 새마을 운동노래는 마을회관의 스피커를 통해서 국민들의 새벽잠을 깨우곤 했지요. '잘 살아보자'는 각오로 시작된 새마을운동은 이 땅에서 초가 지붕을 날아갈 듯한 스레트 지붕으로 바꾸어 놓았고, 비만 오면 발목까지 빠지는 진창길을 말끔하게 단장케 하였지요 이 운동으로 손수레, 리어카가 양산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유신체제가 막 시작되어 반공교육에 열을 올리던 시절이었습니다 유신투표 전에는 학교강당에 모여 "10월유신 지지하여 조국통이 앞당기자" 라는 유신헌법지지 노래를 강제적으로 배운 기억이 날겁니다 이무렵 어디고 반공통일이라는 글귀가 붙어 있었고 유신이후에는 승공통일로 바뀌어 있다가 육영수여사 서거이후 멸공통일로 바뀌었던걸로 기억합니다 이무렵 우리는 미술시간엔 반공포스터를 그리고 작문시간엔 반공표어나 반공에 관한글을 지어야했습니다 또 웅변대회의 주제는 거의가 반공이었던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군인들의 사기를 북돋우기위해 위문편지도 많이 썼습니다 거의가 답장을 받지 못했는데 고학년이 되고부터는 꾀를 내 누나가 이쁘다고 쓰면 간혹 답장을 받은 기억도 납니다 이무렵 반공영화도 많이 상영되었는데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하며 죽어간 이승복영화나 간첩을 때려잡던 오제도검사의 활약을 그린 반공심을 고취시키는 영화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오제도 검사가 멋있게보여 나도 커서 경찰관이나 검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던적이 있습니다 또 그때는 나라가 가난했던시절이라 절약도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그당시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수출이라는 이름으로 죄다 해외에 내다 팔았지요 아줌마들 긴 머리카락, 고철모으기, 폐비닐,헌책등 돈이되는거라면 무엇이든 학교에 가져와야 했던걸로 기억합니다 증산이라는 단어도 귀에 익은 단어입니다 그 증산을 위해 우리는 열심히 퇴비용풀을 베어 학교로 날랐습니다 모내기철이나 추수철에는 고사리손으로 노력동원도 많이 갔고요 그시절 선생님들은 준 공무원 노릇을 해야 했지요 지금의 풍요는 그시절 허리띠 졸라멘 덕택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그시절 우리들은 지금애들보다 훨씬 다양한 놀이를 즐겼습니다 우선 구슬치기가 있었는데 형형색색의 이쁜 빛깔이 들어간 구슬은 머스마들 재산목록 1호였지요 그래도 구슬중 제일은 쇠구슬이었지요 각종 베아링에서 빼낸 쇠구슬은 구슬치기를 하다보면 유리구슬들을 흠집을 내곤해서 최고로 쳤지요 다음이 딱지치기였지요 처음에는 헌책을 찢어 딱지를 만들어 가지고 놀다가 언제부터인가 별이 그려진 동그란 딱지로 바뀌었습니다 딱지에는 우리가 좋아하던 레슬링 선수얼굴이나 태권v로봇같은것이 대부분이었지요 딱지에 그려져있는 별의 수로 내기를 했지요 그 시절 돈도 귀했지만 어쩌다 용돈이라도 생기면 구슬과 딱지를 사고는 기뻐하곤 했지요 누가 그러더군요 신이 만든것중에서 제일 재미난것은 sex이고 인간이 만든것중에서 제일 재미난것은 도박이다라고요 남녀노소 누구나 고스톱이나 내기를 즐기는걸보면 이해도 되는 말입니다 우린 어렸을때부터 도박?을 즐기며 놀았던것입니다ㅋ
여자애들은 고무줄 놀이나 핀치기라는것을 즐겼습니다
꼬마야 꼬마야 뒤를 돌아라 꼬마야 꼬마야 땅을 짚어라 꼬마야 꼬마야 하늘을 보아라-그 뒤는 생각이 잘 안납니다
무찌르자 공산당 대한남아 가는길 저기로구나-나머지 두소절은 기억의 한계입니다 ㅋ
복되도다 그 이름 대한이라네 백두산 뻗어내려 반도삼천리 무궁화 이 강산에 역사반만년 대대로 이어사는 우리삼천만
어렴풋이 생각이 나지요? 여자애들 고무줄놀이하며 부르던 노래이지요 남자애들은 여자애들 고무줄놀이 하는걸 면도칼로 끊는 심술을 간혹 부렸는데 그 대표적인 친구가 김 영두입니다ㅋ 본인은 기억하지 못하고 있더군여 ㅋ
남녀가 다 즐길 수 있었던거는 가이셍이라는 놀이였습니다 '가이셍'이라는 놀이는 지금도 그 이름이 우리말인지 일본말인지 알 수 없습니다만 정말로 과격했습니다. 그 '가이셍'이 이 '가이셍'인지 아직도 확실치 않습니다. 여기서 죽는다고 하는 것도 아웃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지요?
그외에 자치기 못치기 등 놀이의종류가 수도없이 많았습니다 이 무렵 헝그리 스포츠로 복싱이 유행했습니다 아무리 가난해도 세계참피언이되면 국민적인 영웅이 되었으니까요 우리 친구 환이도 세계챔피언의 꿈을 키우며 열심히 복싱도장에 다니곤 했지요 차범근 선수가 뛰는 축구도 인기가 있었지만 김일선수가 나오는 프로레슬링의 인기는 가히 폭팔적이었습니다 반칙을 일삼는 외국선수들에게 실컷얻어맞을때는 안타까운 탄성을 지르르다가도 김일 선수의 시원한 박치기로 역전승을 일궈낼때는 국민모두의 힘든 설움도 함께 날려버렸지요 그당시 우리동네에는 전깃불도 들어오지 않아 고모네인 미광사진관까지 가서 보아야 했습니다 김일경기가 있는 날에는 TV를 마루끝에 놓고 마당에 멍석을 깔고 동네사람들 대부분이 모여 열띤 응원을 펼치곤 했지요 그 인기로 타이거마스크 같은 만화도 인기였습니다
만화애기하니 생각나는개 있군요 웅수와 나는 만화광이었습니다 만화를 보다 어두컴컴해서야 터벅터벅 신작로를 따라 걸어오곤 했습니다 걸어오면서 웅수한테 우리가 커서 대통령이 되면 어린이들한테 만화를 적극 읽히자고 했던말이 생각납니다 학습지도 만화로 만들면 좋을거라고요 근데 애들을 키우면서 보니 진짜로 학습지도 만화로 만들어져 나오더군요 좀 고학년이 되고부터는 아예 우리 둘이는 학교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책을 빌려주고 반환받는일을 맡아서 했는데 거기서는 마음껏 책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난 그때 만화 동화책 위인전 역사책을 가리지 않고 참 많이도 읽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린것이 지식에대한 갈증이 대단했나봅니다 그게 습관이 돼서 중학교 2학년때까지 한국단편문학전집, 세계문학전집, 세익스피어 전집, 연애소설등 마구잡이식으로 구할 수 있는 책이라는 책은 죄다 읽었습니다 D.H.Rorens의 문제작 차털리부인의사랑도 그 즈음 읽었으니 꽤 조숙한 편이었지요? 이래봬도 저도 한때는 문학소년이었답니다, ㅋ 글면 뭐합니까? 공부 공부때문에 그걸로 제 독서열기는 끝이났는걸요ㅋ 아뭏튼 그 시절은 지금애들 방과후에 학원으로 내몰리던것과는 비교할 수 없던 낭만이 있었습니다
이야기가 자칫 제 PR로 마무리가 돼 죄송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우리가 성장하던 사회적 배경과 우리 어렸을때 즐기던 놀이문화에 대해 애기 했습니다 반응을 봐가며 우리 국민학교 다니던 때를 더듬어 글을써 보려고 합니다 물론 친구들의 호응이 있어야겠지만요 ㅋ 재미 없더래도 응원 주실거지요? 친구님들 ! 눈에 띠던 특별한친구애기, 운동회애기, 선생님 애기, 소풍애기등 더듬어볼 추억거리가 너무도 많으네요
2008.10.2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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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응 그랬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