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08년 2월29일부로 36년간 몸담았던 교직에서 물러났다. 1971년 3월, 힘들고 어려운 시대에 교육에 대한 일념으로 시작한 교직의 길, 나는 한 번도 뒤돌아보거나 후회를 하지 않고 오직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앞만 보고 달려왔으나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하던 80년대에는 상대적 박탈감과 회사원이나 금융계사람들의 내려다보는 시선을 받기도 했지만 그런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교육을 통해서 나라 발전에 이바지를 한다는 자긍심을 가지고 미래의 인재를 키운다는 마음으로 앞만 보고 달려오다 보니 어느덧 세월이 흐르고 때가 되어 현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퇴직을 한 후에는 주변의 여러 선배 동료들이 퇴직을 하면 당분간은 갑자기 일이 없어진 것에 대한 허전함과 무료함으로 힘들 것이라는 염려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문제들은 하나의 기우에 불과하여 편하고 좋기만 했다.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며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마음 편하고 여유로워서 무엇보다 좋았다. 그러나 비록 자유롭기는 하지만 내 스스로가 흩으려지지 않으려고 한 주간의 일정과 한 달의 계획을 미리 세워 달력에 기록을 해놓고 생활하며 하루의 일과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아침6시경에 일어나서 저녁 10시에는 잠자리에 드는 것을 실천하고 있다.
일기를 쓰면서 매일같이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잘 한 것은 한층 더 노력하고, 못한 것은 시정하고 보충하며 다음에 조금 더 잘 할 수 있도록 마음을 쓰는 것이 생활화 되었다.
퇴직을 한 후부터 시작한 산행은 한 주에 두 번씩 어김없이 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에는 퇴직한 동료들과 같이 산행을 하는데, 그 날은 아침에 집에서 나오면 오전에 산행을 하고 산에서 놀다가 해거름에 내려와서 당구도 치고 노래방도 다니며 저녁까지 먹고 들어가는 것이다. 전국의 이름난 산을 찾아다니며, 10년간 서울의 북한산이나 관악산을 비롯한 한라산과 지리산, 태백산 등 그 동안의 산행 기록이 600회 정도가 된다. 그리고 ‘인도행‘ ’ 우리 땅 걷기‘ 등 몇 곳의 걷기 동아리에 참여하는 것도 정말 즐거운 기회였다.
그리고 꿈 많던 10대 고교시절, 무전여행으로 시작한 여행은 내가 가장 좋아하고 즐기며 내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영역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퇴직하기 전어도 방학만 하면 가족과 같이 떠나던 여행은 퇴직 후에도 아내와 단 둘이 며칠씩 여행을 통해서 어려웠던 신혼시절과 박봉시절에 살아온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좋은 시간을 갖기도 하고, 결혼 초에는 사소한 일로 다투며 감정 소모를 하던 것이, 모난 돌이 오랜 풍화작용으로 몽돌이 되듯이 우리 부부도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주고 아끼며 사는 법을 알게 되었다.
특히 인문학여행을 하면서 전국의 역사적인 장소나 묘소와 생가, 등 숨은 곳을 찾아다니면서 한 가지 크게 깨달은 것이 지금까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안방에서 책으로만 공부를 한 짧은 지식으로 학생들을 가르친 것을 아쉬워하면서 나를 많이 돌아보게 되었고,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참뜻을 몸소 체험하기도 하였다.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요, 여행은 움직이면서 하는 독서라는 새로운 의미를 깨닫게 되었고, 인문학이 대세인 사회분위기에 한 걸음 앞서 간다는 자부심도 가지고 참여한 것이 어느덧 10년차를 맞게 되었고, 여행 중에 알게 된 다양한 분야의 훌륭한 분들과 친분도 쌓으면서 보다 넓고 새로운 제2의 인생을 만들어 가고 있다.
한가한 시간에는 바둑이나 독서를 하고, 시와 기행문 등 글쓰기를 좋아하여 학창시절부터 틈틈이 습작을 한 작품 중에 몇 편을 골라 공모를 하여 2017년 6월29일, 사단법인 국제문예라는 문학단체에서 추천하는 문학 시부문 신인상을 받으면서 늦깎이 시인으로 등단도 하였고 KBS 황금연못이라는 실버토크쇼에 5년차 출연을 하면서 많은 도전과 응전을 배우는 중이다.
요즘에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스러운 손주를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지낸다. 어린이 집에서 오후에 손주를 데리고 오는 일과 언제나 옆에 붙어서 살피며 같이 놀아주는 일, 그리고 저녁 때 밥을 먹이는 것이 내 담당이라고 할 수 있다. 옛말에 콩밭 맬래? 애 볼래? 하고 물으면 콩밭을 맨다는 말이 있다고 하는데, 나에게 누가 물으면 서슴없이 애를 보겠다고 말하고 싶다. 때로는 거짓말쟁이가 되기도 하고, 어릿광대가 되어 늘 웃을 일이 생기고, 손주를 보고 있노라면 꿀물이 떨어지듯이 사랑이 뚝뚝 떨어지며 행복지수가 팍팍 올라가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육아일기를 쓰면서 손주의 재롱과 하루하루 커가는 모습을 보는 것처럼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다.
손주를 보기 시작하면서 크게 달라진 것 중의 하나가 아침에 일어나면 온 집안을 쓸고 닦으면서 청소를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손주를 생각하면서 구석구석 청소를 하다보면 온 몸에는 땀이 배고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청소를 한 다음에 샤워를 하고 먹는 밥은 꿀맛이다. 식사 후에 안식구와 같이 마시는 달콤한 커피 한 잔은 특별한 향미가 느껴진다. 청소를 하면서, 집안일은 표도 안 나면서 할 일이 많은 것을 알게 되어 마늘을 까거나 파를 다듬고 고구마 줄기 껍질을 벗기기와 김치를 담그려고 손질하고 쓰레기를 버리는 일과 마트에 가는 것 등 사소한 집안일은 꼭 안식구를 거들어 같이 하게 되었다.
나는 19년 전에 뇌졸중을 경험한 적이 있어서 건강 문제에는 신경을 쓰며 규칙적인 운동으로 관리를 하고 있다. 내 손으로 차를 몰고 대학병원 응급실로 달려가서 조기 치료를 한 덕분에 별 후유증 없이 살게 되었고, 시간을 다투는 병이라 대처가 조금만 늦었어도 어떻게 되었을는지는 아무도 모르며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여 내 자신에게 참 잘 했다며 칭찬을 하기도 한다.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잘 한 것 다섯 가지가 있는데 100% 연금을 한 것이 그 중 하나다. 매달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나오는 사학연금은 온 가족이 마음 놓고 편하게 먹고 살 수 있는 자산이요, 인생이모작의 삶도 연금이 있기에 가능하며 언제나 그 고마움을 잊을 수가 없다.
앞으로 얼마나 오래 사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사는 날까지 건강하게 살다가 가고 싶은 것이 모두의 소망이요. 나도 그렇게 하고 싶다.
인생일모작인 36년의 교직생활은 그런대로 성공적으로 보냈다고 할 수 있다. 남은 날이 얼마일지 모르지만 인생이모작도 성공적으로 만들어 가고자 하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실패한 자는 파도에 밀리지만 성공한 사람은 파도를 탄다는 말처럼 남은 인생은 파도를 타는 삶을 살고 싶다.
사학연금지 수기 공모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