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34 제14차 문화답사: 茶山遺蹟-水鐘寺-두물머리
5.14(토) 09:30, 오랜만에 관광버스로 종합운동장역을 출발하여 八堂展望臺를 거쳐
茶山遺蹟地-雲吉山 水鐘寺-두물머리-洗美苑을 답사하였다.
팔당물환경전시관이라고도 하는 팔당전망대에서는 팔당호 건너 禮峰山, 雲吉山이 보이고
팔당댐과 茶山遺蹟地, 북한강과 남한강이, 바로 앞에는 소내섬과 족자도가 보이는 곳으로
廣州市 南終面 分院里에 자리잡고 있다.
慶安川의 하구에 위치한 분원리는 조선시대 司饔院(궁중의 음식을 맡아본 관청 *饔: 밥 옹)의
官營沙器製造場인 分院이 있었다고 分院里라고 한다.
전망대에서 다시 팔당댐을 지나 팔당대교를 건너 남양주시 鳥安面 陵內里에 있는
韓確先生神道碑(경기유형문화재 제127호)를 지나 다산유적지에 도착한다.
능내리에 있는 茶山遺蹟地는 茶山 丁若鏞의 생가인 與猶堂, 다산의 墓(경기도기념물 제7호)와
茶山文化館, 茶山記念館 등이 있으며 여유당과 묘소만 돌아보았다.
본래 여유당은 乙丑年大洪水(1925년)에 유실되어 유적지에 復元하였다.
가까운 禮峰山 조금 북쪽의 喆文峰(632m)은 茶山의 형제들이 올라와 학문[文]의 도를
밝혔다[喆]고 [喆文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茶山 丁若鏞이 7세 때 운길산에 대하여 지은 詩를 소개한다.
小山蔽大山(소산폐대산) /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렸으니 [*蔽: 가릴 폐]
遠近地不同(원근지부동) / 멀고 가까움이 다르기 때문이네
雲吉山(해발 610m)의 8부 능선에 자리잡은 水鐘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본사인
奉先寺의 末寺로 世祖 4년(1458) 세조가 五臺山(일부 자료는 金剛山∙1466년에 다녀 옴)을
다녀오던 중 두물머리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한밤중에 난데없는 종소리가 들려
조사하게 했더니 16羅漢이 있는 바위굴속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종소리처럼
들려 이곳에 절을 짓고 水鐘寺라고 했다고 한다(돌에 음각한 수종사 사적기에는 신라 때부터
있었던 절이라고 한다).
16나한이 있었고 1439년에 세운 太祖의 딸 貞懿翁主의 부도가 있었으니 원래 있었던 절터에
세조 때에 重創한 것으로 보고 있다.
수종사의 문화재로는 水鐘寺五層石塔(경기유형문화재 제55호), 水鐘寺浮屠(경기유형문화재
제157호)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水鐘寺浮屠內遺物(보물 제259호)이 있다.
水鐘寺 三鼎軒에서 내려다 보는 양수리 일대의 景觀은 참으로 아름다운데 특히 눈 쌓인
겨울의 경치는 비길 데가 없을 정도이며, 朝鮮前期의 학자 四佳亭 徐居正(1420~1488)이
‘동방의 사찰 중 전망이 제일’이라고 격찬했을 정도이다.
양평군 楊西面 兩水里, 즉 두물머리는 강원 태백시 金臺峰(1,418m) 기슭의 儉龍沼에서 발원한
南漢江과 금강산 부근에서 흘러내린 北漢江의 ‘두 물이 합쳐지는 곳’이라는 뜻이며 두물머리는
양수리에서도 주로 나루터를 가리킨다.
두물머리에 있는 洗美苑은 물과 아름다운 꽃이 어우러진 수변공원으로 ‘물을 보며 마음을 씻고,
꽃을 보며 마음을 아름답게 하자’는 뜻으로 洗美苑이라고 했는데 그 어원은 莊子의 ‘觀水洗心
觀花美心’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한다.
세미원은 112억 원(경기도 103억, 양평군 9억)을 투자하여 2004년1월~2010년 7월에 조성하였다.
공원은 크게 석창원과 洗美苑으로 구성되었는데 석창포 온실인 석창원에는 조상들이 자연환경을
지혜롭게 활용했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으며, 세미원에는 세계수련원∙수생식물의 환경정화능력의
실험과 교육장소 등이 있다.
이번에 답사하지는 못하였지만 두물머리 부근에는 漢陰李德馨先生墓 및 神道碑(경기기념물
제89호), 李浚慶先生墓(경기기념물 제96호), 鄭昌孫墓域石物(경기문화재자료 제85호),
翼元公金士衡墓域(경기문화재자료 제107호) 등의 문화재가 있다.
문화답사 사진(2-1); 茶山遺蹟地-水鐘寺
八堂展望臺
(01) 八堂展望臺
(02) 전망대에서 본 팔당호
사진 뒤 왼쪽은 禮賓山(뒤에 禮峰山능선이 보인다)-오른쪽은 雲吉山이다.
예빈산 아래 팔당댐이 보이고 가운데 육지의 오른쪽 끝이 다산유적지이며,
유적지 오른쪽의 작은 섬은 족자도, 족자도 왼쪽은 북한강, 오른쪽은 남한강이며
뒤로 양수리가 보인다. 사진의 왼쪽 아래는 慶安川의 河口로 이어진다.
*전망대의 유리에 썬팅을 해 색채가 푸르게 보인다.
茶山遺蹟地
(03) 다산유적지
(04) 擧重機
正祖 16년(1795) 茶山 丁若鏞이 만든 높이 4.4m, 너비 1.7m의 기구로
약 10톤의 무게를 들어 올릴 수 있으며 水原華城 축조에 사용하였다.
(05) 與猶堂의 外三門. <實學淵藪>라는 편액을 걸었다. [*藪; 큰 늪 수, 숲 수]
(06) 與猶堂
(07) 여유당 사랑채
(08) <與猶堂> 편액
1800년 茶山이 은퇴하여 고향에 살 때 지은 堂號로 ‘살얼음 건너듯이 조심하고
경계하며 살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09) 여유당 안채에서
(10) 여유당 대청마루
(11) 뒤쪽에서 본 여유당
(12) 여유당이 있었던 곳의 표지석.
1974년 茶山의 후손 丁一權 국회의장의 글씨를 刻字한 것.
(13) 丁若鏞先生墓 -경기기념물 제7호-
<文度公茶山丁若鏞 淑夫人豊山洪氏 之墓>라는 비석 2기가 있다.
묘는 생가 바로 뒤 언덕에 있는데 茶山이 “내가 죽으면 地師에게 묻지 말고
우리 집 뒷산에 묻어라”고 해서 자리잡았다고 한다.
(14) 祠堂인 文度祠. 茶山 丁若鏞의 諡號는 文度公이다.
(15) 다산 정약용 선생 상(像)
(16) 여유당과 뒤에 보이는 다산 묘
(17) 茶山文化館
(18) ‘꺼지지 않는 불’
茶山이 저술한 서책과 實學思想의 정신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雲吉山 水鐘寺
(19) 수종사 一柱門
(20) 수종사 彌勒佛
(21) 不二門
(22) 水鐘寺, 왼쪽 앞에서부터 選佛場-大雄寶殿-經學院, 오른쪽은 三鼎軒.
찻집 三鼎軒은 詩∙禪∙茶가 하나 되는 곳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釋迦誕辰日(5.10) 지난 지 나흘인데 燃燈은 그대로….
(23) 應眞殿
(24) 山神閣-藥師殿
(25) 水鐘寺 浮屠-小塔-五層石塔
(26) 水鐘寺浮屠 -경기유형문화재 제57호-
八角圓堂形 부도는 조선 前期의 형태로 貞懿翁主의 부도이다.
(27) 水鐘寺五層石塔 -경기유형문화재 제22호-
조선 前期의 석탑으로 水鐘寺多寶塔이라고도 한다.
(28) 수종사에서 내려다 본 두물머리,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쳐진다.
앞쪽 교량들이 있는 곳이 북한강, 뒤쪽에 물이 조금 뿌옇게 보이는 곳이 남한강이다.
(29) 水鐘寺 大雄寶殿
(30) 대웅보전에 봉안된 三尊佛
(31) 대웅보전의 三分閤門
(32) 수종사 經學院
(33) 수종사 解脫門
(34) 世祖 때 심었다는 은행나무 -보호수(경기 남양주-17)-
樹齡 500년, 樹高 35m
(35) 은행나무 줄기, 가슴높이 지름 2m
(36) 雲吉山 水鐘寺와 漢陰 李德馨
(37) 매발톱꽃, 수종사 입구에서
(38) 단풍나무, 수종사 입구에서
두물머리
(39) 점심 식사한 식당
(40) 成夏鉉 동창회장이 제공한 점심식사 시간
(41) 怪木, 식당 後園
(42) 食堂 後園
(43) 兩水大橋, 식당 후원에서 본 모습
- (2-2)에 계 속 -
첫댓글 위에 나오는 한자중 分院里 司饔院의 가운데한지는 보고 그리는데도 어려워 확대경으로 보아도 몰라서 네이버 한자사전에 비슷하게 그려서 찾아봤는데 그래도 받침이 이상해서보니 밥식자입디다 "饔자는 아침밥옹"이라고 해서 찾는라고 고생했네요아침밥 옹이라고 토를 달아주면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