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례행사로 서울 누나와 함께 성주 큰누나 집에 갔다.
오랜만에 부모님과 큰 형님의 유해가 모셔진 문중의 추모당에 가보았다.
주위에는 잡초가 무성하고 추모당 제단에는 조화가 놓여있어 덜 외로워 보인다.
소주 한잔을 올리고 잠시 인사말을 올리면서 옛날을 회상해 본다.
차를 돌려서 고향마을로 달려간다.
마을 앞 저수지에 서면 동네와 병풍같은 뒷산이 한눈에 다 들어온다.
저 뒷산은 해발 250미터로 좌측부터 딱박골, 덕석방울, 큰골, 불미골, 뒷골, 니리박골로 불려지며,
어릴 적에 형들이 이끄는대로 한 골짜기로 가서 소를 먹였다.
그 때는 산에 나무가 하나도 없어서 동네에서도 우리 소가 어디 있는지 다 알아볼 정도였다.
동네는 모두 25세대 정도인데 사진으로는 좌우로만 길게 보인다.
저수지 뒷쪽의 길다란 밭이 우리집 과수원이었고, 해마다 5월이면 사과꽃이 아주 아름다웠다.
지금은 외지인들이 모두 집을 지어서 완전 상전벽해가 되어부렀다.
성주군 월항면 지방동 566번지 우리집이다....가 아니고 우리집이었다.
(팔리고도 주인의 손바뀜이 있었다고....)
사랑채만 그대로 살아있고 그 우측에는 곳간과 디딜방앗간, 소 마굿간이 있었는데
화단으로 바뀌었네.
대문 바깥에서 본 그림이다.
시멘트 기둥위에 국경일에 국기를 꽂았는데 내 담당이라 지금도 아파트에는 내가 게양한다.
바깥 마당에서는 콩타작 보리타작 벼타작을 했고, 담장 곁에는 돼지우리가 있었다.
담 밖에서 바라본 안채 풍경이다.
채소가 심어진 곳에 두꺼운 흙으로 지은 몸채가 있었는데,
부엌, 큰방, 마루, 작은방 순서로 4칸 집이었다.
장독대 앞에는 아주 시원하고 맛있는 우물이 있었는데 지금은 덮어서 전기모터를 설치한 것 같다.
가마솥을 걸어서 쇠죽을 끓였던 곳도 개조를 해서 없어졌네.
옆집에 사는 상호 형님이 마침 계셔서 한참동안이나 동네 사정에 대해
궁금한 이야기들을 들었다.
아는 형님들이 많이 돌아가셨고, 외지인들이 많이 들어와서 완전 별세계가 되어버렸다고....
학교 뒷산의 내 밭 황토밭이 있다.
300여평 되는데 돌멩이 하나 없이 완전 황토라서 내가 황토흙집을 지어 살고 싶은
욕망이 아직도 살아 있는 곳이다.
이 텃밭을 가꾸는 이도 몇번이나 손바뀜을 해서 윗동네 아무개가 한다고 한다.
직사각형 형태로 길보다 1미터 가량 높아서 아주 전망도 좋다.
우리의 모교 지방국민학교는 지금 월항초등학교 지방 분교로 퇴락하였다.
학교는 드넓고 쾌적하지만 학생이 없으니 우짜겠노.
누나집 아파트에서 내다본 바깥 풍경이다.
뒷쪽은 성주여중고가 지척에 있고, 여기서 보이는 아래쪽은 그 유명한 성밖숲이다.
수백년 묵은 왕버들이 풍성한 그늘을 만들어 주고 참외 축제 등 행사가 여기서 열린다.
윗쪽은 참외농사용 비닐 하우스인데 성주 전역이 같은 풍경이다.
올해는 기상이변으로 꿀벌 개체수도 많이 줄었고, 있는 꿀벌도 수정 활동을 잘 안해서
참외농사가 흉작이고 가격도 많이 비싸다.
집에 와서 고종사촌 형님들과 점심을 같이 한 후에 한개 민속마을로 향하였다.
첫댓글 부잣집 도련님이셨녀요^^
부자?는 아니었죠.
보리밥 무시밥을 마이 묵었응게 말이쥬.
칡뿌리도 캐묵꼬 늘 입은 궁금했던 기억이...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