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기대수명
최 봉호
2021년에 태어난 아이들은 평균 83.6세를 산다는 통계가 발표되었다. 이 수치는 확률이기 때문에 애들 중 절반은 평균 기대수명보다 일찍 죽고, 절반은 더 오래 산다는 얘기이다. 인간이 누리는 오복 중 ‘명대로 살다가 죽는’ 고종명(考終命) 확률이 50%임을 말해 준다. 살면서 불의의 사고를 당하고, 질병에 걸려 일찍 죽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나는 어느 정도 평균치에 근접해 있어 다행이다.
여자는 남자보다 여섯 살 더 오래 산다. 하여튼 남자, 여자 모두 수명이 옛날보다 참 많이 길어졌다. 지난 1970년에는 평균 기대수명이 62세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84세나 되니, 지금 사람들은 그 때 사람들보다 무려 20여년이나 더 사는 셈이다. 예전에는 환갑이 되면 오래 산 것을 기려 잔치를 크게 치렀다. 아버지도 1990년에 환갑잔치를 호텔에서 크게 치렀던 것이 생각난다. 코미디언이 사회를 봤는데 진행을 재미있게 했다. 사회자의 호명에 따라 친인척들이 음악밴드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등 떠들썩하게 행사를 치렀다. 그 후로도 나는 외삼촌 등 친척 환갑잔치가 벌어지면 열심히 좆아 다녔다.
그러나 요즘에 환갑잔치를 하는 사람을 거의 볼 수 없다. 대개 환갑을 기념하기 위해 슬며시 여행을 다녀오는 것 같다. 나도 환갑을 맞이했을 때, 아내와 함께 베트남에 일주일 다녀 온 것이 전부였다. 환갑이 되어서도 나이 먹었다는 생각은 갖지 않았다. 나는 젊음이 영원히 유지 되는 줄 알았다. 시간의 흐름이 나하고는 관련이 없다고 보고 시간의 흐름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지난 수년의 시간을 ‘더욱 알차게 보냈어야 했었는데’ 하는 일종의 후회감이 든다. 그러나 이미 흘러간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가 중요하다.
지금 내 나이 또래는 살날이 대충 평균적으로 20여년 남았다. 평균수명 80여세 중 3/4은 이미 지나갔고, 1/4이 남았다. 내가 염세주의자라면 3/4이 지나갔다고 슬퍼할 것이고, 낙천주의자라면 아직도 1/4이나 남았구나하고 좋아할 것이다. 보건·의료 기술이 더 발달되면 우리의 수명은 더 길어질 수 있겠다. 요즘 백세 시대가 될 것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러나 실제 백세까지 사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지금 육십 세가 되는 사람 남자 백 명 중에는 오직 한 사람만이, 여자 백 명 중에는 네 명 정도가 백세를 누릴 수 있다. 1%의 확률이 내게 오리라고 기대하면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백세까지 산다고 해도 골골대면서 산다면 축복이라 할 수 있을까.
동물들의 평균 수명은 어떻게 될까. 반려동물로 선호되는 개와 고양이의 평균 수명은 12년이다. 그래서 나는 이러한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다. 정든 후 내 품에서 나보다 빨리 떠나는 게 싫기 때문이다. 수명이 가장 간 생물은 대양 백합조개이다. 400년 산다고 한다. 반면에 하루살이 곤충은 하루가 평균 수명이다. 여름철의 하루살이와 바다에서 움직임이 거의 없이 400년간 생존한다는 백합조개 간의 차이는 뭘까.
현대 철학자 중 한명인 ‘질 들뢰즈’(1925~1995)가 썼다는 <차이와 반복>이라는 책이 생각난다. 들뢰즈는 ‘우주는 고정되어 단순히 매일을 반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늘 변화 중에 있다’고 했다. 그는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만족하는 것들을 부정하고, 보다 치열하게 살 것을 권유했다. 그래서 나는 들뢰즈가 말한 것처럼 반복되는 일상에서 차이를 만들어 내려고 노력한다. 매일 매일의 일상을 지루하다 생각하지 말고 차이를 생성해 낼 수 있는 신비로운 시·공간으로 보는 게 좋겠다.
물론, 반복되는 일상에서 차이를 찾아내어 긍정하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시간의 지남에 따라 단순하게 조금만 변화하는 것은 차이라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가 시간의 지남에 따라 단순히 몸만 커지는 것은 차이라 보기 어렵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나는 반복되는 일상에서 들뢰즈의 말처럼 차이를 발견하려고 노력해왔다. 지금까지 그러한 차이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든 게 아니겠는가.
이제 나는 얼마 안 있어 고종명(考終命)인 평균수명에 도달한다. 평균수명을 채우지 못해 죽는 사람이 50%나 되는 바, 84세까지 사는 것도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까지 살아온 것 이상으로 지금부터 평균수명에 도달할 때 까지 남아 있는 시간이 더욱 의미 있는 시간이 되도록 해야 하겠다. 84세가 될 때까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무료하게 지내기보다는 매일매일 나를 차이화하도록 여러 가지를 시도해야 한다. 버켓 목록을 만들어야 하겠다. 그 중 상위 목록에 있는 몇 개를 추려 너무 늦기 전에 실천해야 하겠다.
첫댓글 올려주신 수필 잘 읽었습니다.
직접 방문해 주시고 글까지 올리셨군요. 감사합니다.
전적으로 공감하면서도 우리들의 생명이 길어지는 현상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노후가 아름다워져 수명 연장이 축복이 되길 빕니다.
잎으로 자주 방문해주셔요.,
최봉호님께서 올려주신 수필<평군 수명> 잘 읽었습니다.
공감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올려주십시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