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월요일은 모처럼 러시아 거장들의 피아노 곡에 흠뻑 빠졌던 날이었습니다.
쇼스타코비치와 라흐마니노프, 프로코피에프, 그리고 처음 접하는 카바렙스키까지
화려하면서도 힘차고 섬세하면서도 거친 선율,
벌건 불길이 솟는 쇳물에다가 차디 찬 북극해의 얼음물을 들이 붓는 듯한
극한의 선율,
매서운 시베리아의 폭풍이 몰아치다가 지중해를 넘어 흑해에서 불어오는 봄바람같은
감미로움이 녹아있는 선율이었습니다.
지구상에서 두개의 대륙에 걸쳐 있는 유일한 나라, 영화 닥터지바고에서 펼쳐졌던
끝없는 자작나무 숲의 나라,
그렇지만 그 역사를 살펴보면 한없이 슬프고 가혹했던 나라,
음악과 미술, 문학에 녹아있는 러시아의 색깔은 이런 역사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400년이 넘는 가혹했던 몽골제국의 식민지배, 숨쉬기조차 어려웠던 절대 왕정과 농노제,
그러나 얼음을 뚫고 올라오는 복수초같은 민중들의 힘과 그 힘을 뒷받침하던
인텔리겐차들의 열정,
러시아의 음악에는 이 모든 극적이고 상반된 요소들이 녹아 있습니다.
식민의 눈물과 혁명의 환희가, 가늘고 질긴 민초들의 생명력과 무자비한 챠르 통치의
굵은 쇠사슬이 씨줄과 날줄로 꼬여 있습니다.
차이코프스키나 드보르작, 라흐마니노프의 선율을 들을 때마다 드는 그 깊이 모를 아득함,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느낌도 그런 것이고, 갑자기 피가 끓어오르면서 주먹을 불끈 쥐게 되는
격한 선율, 그리고 웅대한 시베리아 초원을 방황하는 듯한 유장한 가락.....
그제는 모처럼 클래식 선율의 변방에 불과하다는 주류로부터의 비아냥을 받는
러시아 음악의 진수를 맛본 날이었습니다.
피아니스트 이형민님의 현란한 손놀림따라 피아노 건반은 출렁거렸고, 작열하듯
터져 나오는 소리는 가곡예술마을 작은 홀을 가득 메웠습니다.
숨돌림 틈없이 몰아치는 광활한 대륙의 폭풍을 맞는 듯, 나는 온 몸이 시원했습니다.
푸석푸석하던 피부 세포 하나하나, 느슨해졌던 신경줄 하나하나가 살아나는 듯 했습니다.
뒷좌석에서도 연신 탄성이 흘러나왔습니다.
혼신의 힘을 쏟은 피아니스트는 온 몸이 땀에 흠뻑 젖었고, 객석은 최상의 선율에
온 영혼이 흠뻑 젖었습니다.
그런데 음악을 들으면서 내내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고전음악과 같은 완벽한 조성이나 잘 짜여진 주제의 배열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도무지 규칙성이나 조화를 찾기 어려운 이 선율들,
어떤 때는 우리의 사물놀이처럼 마구 이 건반 저 건반을 두드려 패는 듯한 무질서하고
불규칙한 선율, 무조음에 가까운 파격,
볼기짝에 인두지짐을 당한 말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음표들,
도대체 이런 곡을 연주자들은 어떻게 외워서 연주하는 것일까요?
그것도 길게는 30분이 넘는 소나타를!
엄청난 집중력과 암기력, 파워를 요구하는 저 연주를 한 인간은 어떻게 해내는 것일까요?
한번에 적게는 한 손가락, 많게는 열 손가락을 다 구사해야 하는 피아니스트는
한 시간 반에 가까운 연주회 동안에 얼마나 많은 손놀림을 해야 하는 걸까요?
세곡의 연주가 끝나고 잠시 쉬는 시간에 나는 가곡마을 실장님으로부터 얘기를 들었습니다.
연주자의 팔 근육이 굳는 현상이 일어나 어렵게 연주를 이어가고 있다고,
나는 이렇게 객석에 편안히 앉아 선율의 세계에 빠져들고, 한가한 상상의 좌판을 깔아보기도 하고,
때로는 졸음에 겨워 까박 잠들기도 하는 이 시간에 연주자는 근육의 경직과 욱신거림을
참아가면서 피아노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던 것이지요.
미안하고 또 감격했습니다.
그렇겠지요.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차고 뇌리를 전깃불로 지지는 듯한 저 전율할 음표를 모두 외워
재현한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인내와 고통을 요구하는 것일까요?
어둑했던 밤이 환한 대낮으로 바뀔 때까지, 동쪽 창문에 드리웠던 푸른 햇살이
서편의 붉은 노을이 될 때까지,
어제 내린 눈이 개나리 꽃이 되고, 다시 무성한 초록이 되었다가
불타는 낙엽으로 떨어질 때까지 연습에 또 연습,
연주자들은 얼마나 많은 나날을 저 검은 건반에 바쳤을가요?
아니, 연주자들은 얼마나 자주 저 검은 건반으로 부터 달아나고 싶었을까요?
나치의 광기를 예리하게 파헤쳤던 유대인 학자 한나 아렌트의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진정으로 예술을 즐기는 자들은 관객들이다"
온 국민에게 기쁨을 안겨준 스포츠의 마스코트 김연아도, 불멸의 화가 고흐도,
귀가 들리지 않아 자살을 꾀하기도 했던 베토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모든 쾌락과 안온을 포기하고, 때로는 목숨과 맞바꾼 위대한 작품들을 대하면서
우리는 그저 신의 경지에 오른 작품에 감탄할 뿐,
그 내면에 자리한 고통과 눈물을 잘 모르고 있지요.
때로는 그들의 작품을 보면서 그들은 타고난 천재라느니, 평범한 사람에게는 없는
영감이 있기 때문이라느니 짐짓 그들을 우러르는 척 하면서, 이들의 위대함을 깍아내리기
일쑵니다.
타고난 천재여서 위대한 작품을 만든 것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은 항복하고야 하는
세상의 쾌락과 명예와 안온함을 거꾸로 항복시키고, 오직 자신의 길을 억척스럽게 걸어간
그 위대함을 말이지요.
" 위대한 예술가의 참다운 운명은 '일의 운명'이다.
그의 생애에는 일이 주도권을 잡고서 운명의 발걸음을 이끄는 한 시기가 다가온다.
불행과 회의가 오랫동안 그를 괴롭힐 수도 있다.
또한 운명의 타격에 예술가는 굴복할 수도 있다.
암중모색의 준비에 그는 몇 년이라도 쓸데없이 세월을 흘려 보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작품에의 의지는 한번 참다운 불 아궁이를 발견한 이상 꺼지지 않는다.
그때 '작품의 운명'이 시작되는 것이다.
말 글대로 일직선의 삶이 되게 한다.
발전해 나가는 일 속에서 모든 것이 목표를 향해 전진한다.
날마다 인내와 열광의 불가사의한 피륙이 일의 나날 속에서 빈틈없이 짜이며,
그것이 한 예술가를 거장으로 이끌어 간다. "
미학자 가스통 바슐라르가 ' 꿈꿀 권리 '에서 한 말입니다.
천재는 머리가 탁월하거나 미적 능력이 탁월한 사람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날마다 인내와 열정, 그리고 노동을 예술을 위해 바치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한번 '작품의 운명'이 시작되면 한 눈 팔지 않고 일직선의 삶을 살아가는 무서운 존재라는
말입니다.
욱신거리는 팔로 감동적인 선율을 선물한 피아니스트 이형민님의 연주를 들으면서 나는
분명 행복했습니다. 세상에서 얻은 온갖 근심과 머리를 떠나지 않는 걱정이 모두 사라지는
쾌감을 맛보았습니다.
그 감동, 그 환희의 뒤안길에는 예술이라는 거룩한 제단에 제 영혼과 몸을 바친 작곡가,
그리고 피나는 연습과 수도사같은 절제와 경건함으로 건반을 두드리는 연주자가 있다는 사실도
함께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니체의 말을 떠올렸습니다.
" 예술가는 사슬에 매여 춤추는 자이다! "
- 여의도에서 goforest -
첫댓글 이렇게 좋은 공연에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부럽습니다
그리고 차암~~ 아름답습니다
가슴을 울리는 글을 쓰시는 선생님도
그토록 뜨겁고 아름다운 연주를 하시는 연주자도...
피아노 독주회는 가끔 공연 취소나 연기가 되는 경우가 있는데
거의 대부분이 팔이나 손목이 아파서지요
오늘은 3월달에 예약된 피아니스트 한분이
연습 과정에서 팔에 심하게 무리가 와서
본공연도 취소 해야하는 안타깝고 마음아픈 문자를 받고 난 뒤
선생님 글을 읽으니 눈물이 납니다
공연을 취소해서 죄송하다고..
열심히 치료해서 하반기에라도 뵜으면 좋겠다고...
많은 시간을 암보를하며 연습을 하고선
연주 며칠 앞두고 팔을 쓸수가 없어서 공연을 취소해야 하니
그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