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뇌변병 1급과 언어장애로 태어났다. 그래서 중복장애로 태어났기 때문에 엄마가 나를 데리고 외출을 하여 사람들과 어울려서 수다를 할 때 정말 부러웠다. 나는 말을 할 수는 없어서 사람들과 어울려도 이야기를 하지 못해 정말 속상하다. 그리고 아빠는 2009년 가을학기부터 목포시 용해동에 있는 목포대학교 평생교육원 ‘현공풍수’과정을 야학으로 배우러 다녔다. 아빠가 공부를 하러 다니는 모습을 본 나는 아빠에게 나도 2013년 가을학기부터 목포대학교 평생교육원 ‘일상의 글쓰기’과정을 공부하고 싶다고 하여 등록을 하였다. 그리고 이훈 교수님이 나에게 오지 말라고 하지 않고 흔쾌히 받아주었다. 그래서 엄마가 나를 데리고 무안군 삼향읍 남악에 있는 목포대학교 평생교육원 ‘일상의 글쓰기’과정을 배우러 다녔다. 엄마가 원우 삼촌들과 이모들의 과제를 읽을 때 이해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엄마는 내동생인 기홍이 서울특별시 성북구 종암동에 있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를 2006년에 정시로 입학한 것에 행복해 하였다.
내가 ‘일상의 글쓰기’과정을 다닌다고 말을 할 때 엄마는 조금 불만이었다. 왜냐면 내가 수준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엄마가 나에게 2014년 1월 24일 저녁에 독감에 걸려 목포시 상동 원형서로에 있는 목포기독병원에 입원치료를 받고 27일 퇴원하겠다고 말을 하였다. 그런데 엄마가 이틀 밤을 지내고 아빠의 핸드폰으로 대변을 보다가 두통이 심하게 왔다고 하였다. 그래서 신경외과 전판석 의사가 엄마 시티(CT)를 촬영했다. 부모님에게 결과를 말하였는데 뇌동맥 혈관이 약간 부풀어 있어서 터지면 사망 할 수 있다고 말을 하였다. 그래서 아빠가 엄마를 서울특별시 일원동에 있는 삼성서울병원에 데려갔다. 뇌졸중센터 홍승철 의사가 정밀 검사를 해보니 뇌동맥혈관이 좁쌀처럼 생겨 뇌동맥류라고 하였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된다고 당부도 하였다. 그래서 2014년 봄 학기부터 아빠가 나를 데리고 목포대학교 평생교육원 ‘일상의 글쓰기’과정을 배우러 다녔다.
그러나 나는 책이 집에 많이 있어도 독서를 하지 않아서 원우 삼촌들과 이모들이 제출한 숙제를 읽을 때 아직도 이해가 부족하다.
그런데 2013년 가을학기부터 작년 가을학기까지 7학기 ‘일상의 글쓰기’과정을 배우러 다닌 보람은 작년 11월 15일 23시에 엄마가 좌측 뇌출혈을 입은 내용을 글로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라고 아빠가 엄마와 나를 정성스럽게 보살펴 주는 모습을 본 학교문구사 주인인 최경란 권사님이 아빠가 안타까워 통닭(치킨)을 먹이라고 시켜주었다. 최경란 권사님이 통닭(치킨)을 사 주워서 부담스러웠지만 권사님에게 우리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기도 해 주시라고 글로 표현하였다. 그리고 지인도 우리에게 음식을 챙겨주었다. 그래서 나는 지인에게 음식을 챙겨주어서 맛있게 먹었다고 글로 표현하였다.
작년 11월 16일 아빠가 경북 구미에 사는 이모에게 전화를 해서 엄마가 좌측 뇌동맥 출혈을 하였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위급하여 목포시 영산길로에 있는 한국병원에서 신경외과 서보라 과장님에게 시술을 받았지만 의식이 없다고 말을 하였다. 그래서 19일 주말에 이모 그리고 외삼촌과 숙모가 함께 우리 집에 왔다. 집이 좁아서 살림을 어떻게 하고 살았냐고 말을 하였다. 그리고 이모가 엄마 건강을 챙긴다고 한 말을 들었을 때 내가 화가 났다. 아빠와 내가 엄마를 정성스럽게 보살펴 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과거에 나도 스트레스를 받아서 8월에 신경정신과 정대기 과장에게 1997년 6월 17일 저녁에 보모가 엄마에게 나를 데려가라고 말을 하였다. 그리고 보모에게 버림 받은 나는 겨우살이처럼 지내다가 2002년 10월 27일 새벽에 부모님이 할아버지의 고희잔치 준비를 하러 가고 서울이모부가 거실에 나와 바둑 텔레비전을 보면서 외할머니에게 나를 시설에 맡기면 부모님이 편안하게 살 수 있다고 한 말을 들었을 때 그 때 심정이 기가 막혀 글로 표현하였다. 그래서 정대기 과장님이 아빠와 나에게 이 사건은 잊을 수 없다고 말을 하였다. 그리고 나는 목포시 옥암에 있는 하당우리한의원 신재성 원장님에게 2012년 연말에 원장님이 나에게 구들장 쑥 뜸을 주어서 고맙고 엄마에게 혈액순환을 도울 수 있도록 침을 놓고 건강을 보살펴 주고 보약도 무료로 지어주니 감사한 마음을 글로 표현하였다. 그래서 나는 성공할 수 없지만 글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매우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