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전화벨이 울립니다.
아이들을 재우다 말고, 잠에 취한채... 비몽사몽간에 전화를 받습니다. 이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지... 급하거나 안좋은 일이면 어쩌지... 불안한 생각이 살짝~ 스칩니다.
김선생님...
휴대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그 목소리는 같은 학교에 근무하고 계신 오선생님이셨습니다. 무슨 일이지... 이렇게 늦은 시간에 왜 전화를 하신걸까... 순간적으로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언뜻 정신을 차려보니... 수화기속에서 들려오는 오선생님의 목소리는 평상시와 달랐습니다....
선생님은 흐느끼고 계셨습니다...울고 계셨습니다.
오선생님... 왜그러세요?
평소 마음이 너무나 따뜻하고 아름다운 오선생님이시기에... 저도 덩달아 그런 천사같은 오선생님께서 울고 계시다는 그 이유하나만으로 눈물이 납니다.
김선생님...
고릴라, 너구리, 그리고 독사를 부탁해요! 저는 도저히 고릴라와 너구리, 독사를 감당할 수가 없어요. 그냥, 메기...하나만 감당할께요. 메기 하나 감당하기도 벅차요. 메기에게 너무 많은 사랑과 힘을 쏟아서, 다른 아이들에게 베풀 힘이 없네요. 고릴라와 너구리, 독사가 교회가기로 약속했는데, 제가 할 수 없으니, 김선생님께 부탁드려요. 오늘도 고릴라가 교회오기로 해서 약속장소에서 기다렸는데, 2시간동안 기다려도 안왔어요. 지난번에도 그랬고... 이젠 못할것 같아요. 메기에게만 집중할께요... 김선생님께서 아이들을 꼭 책임져주세요!!! 부탁이예요!!!
말을 마치자 마다 오선생님께서는 황급히 전화를 끊어버립니다.
고릴라, 너구리, 독사, 그리고 메기는 저와 오선생님이 함께 근무하고 있는 학교의 남학생들 별명입니다. 아실분은 아실테지만, 남학생들 사이에서는 실명은 거의 무용지물입니다. 선생님들도 머슴애들에게 편하게 별명을 부르고, 아이들도 그걸 좋아합니다. 때로는 이 녀석들의 실명이 뭔지 기억이 안 날 때가 있어 학부형들께 실수할때도 있어요. 예를 들어, 오리 어머니 오셨네요~헉~ㅋㅋㅋ
하지만, 고릴라, 너구리, 독사, 메기의 별명을 가진 녀석들은 그 nickname에서도 느껴지듯이 <절대로> 평범한 아이들이 아닙니다. 절대루... 절대루... 휴우^.~
고릴라로 말할라치면 고등학교 3년동안 수업시간, 자습시간동안 한번도 공부를 한 적이 없는 녀석입니다. 슬리퍼를 질질~끌고 등교하지를 않나, 선생님들께 대들지를 않나... 경고와 징계를 수도 없이 받았지만, 절대로 자신의 신념^^을 버리지 않고 3년간 꿋꿋이 학교에 나 정말 이해불가입니다. 너구리, 독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전교꼴찌, 도망, 학교폭력, 절도... 에구... 나쁜건 나쁜건 정말 골라서하는 녀석들입니다. 물론, 이 녀석들다~ 음주,흡연은 기본이구요. 암튼 이 녀석들은 이해할라치면 절대로 이해가 안되고, 사랑할라치면 조금은 사랑할수있는 녀석들이지요~
하지만, 이 녀석들중에 단연 압권이, <메기>입니다. 메에기~ 메기는 셀수없는 무단가출, 등교거부, 그리고, 아버지도 없고, 아주 가끔 한번씩 들르는 다른데 시집간 엄마...이기에, 그냥 혼자사는 아이입니다. 삶의 목적도 없고, 하루하루 끼니도 거른채 영양실조로 몸이 여위었지만, 눈에는 살기가 느껴지는 정말... 무서운 아이...입니다. 고릴라, 너구리, 독사는 농담도 잘하고, 친구들하고도 잘 어울리지만, 말한마디 없이 빈책상만 하루종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메기는 무언가 섬뜩함이 으껴지는... 그 아무도, 선생님조차도 말한마디 부치기가 사뭇 조심스러운 아이입니다.
그런데... 이런 메기를 눈여겨보고 있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는데만 관심이 있고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한 이 세상에서... 전혀 매력없는, 전혀 자기에게 유익이 될게 없어보이는... 그런 메기에게 관심을 가진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
매일 매일 오선생님은 메기가 학교에 왔는지 안왔는지 살핍니다. 메기가 안 온날은 집에 전화를 하거나, 밤새 게임에 미쳐 해가 중천에 떠도 잠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메기를 찾으러 퇴근후에 메기네 집에 물어물어 갑니다. 초인종을 여러번 눌러 메기를 깨운후, 폭탄맞은 머리를 한 메기를 데리고 근처 식당에 가서 함께 밥을 먹습니다. 메기의 밀린 급식비와 보충수업비를 행정실에 가서 몰래 내어줍니다. 영양실조에 걸려 비실비실한 메기를 데리고 종합병원에 가서 건강검진을 한 후 메기가 간이 안좋다는 것을 알고 약과 간영양제를 챙겨 메기손에 쥐어줍니다. 주일날에도 메기는 한달에 한번 정도, 그것도 예배가 거의 끝날 무렵에 얼굴을 잠시 비춥니다. 그런 메기를 반가이 맞이하고는 다시 점심을 먹으러 갑니다. 전교꼴찌인 메기에게 컴퓨터자격증이라도 있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하고 전혀 의지가 없는 메기를 데리고 사진관에 가서 증명사진찍고 억지로 원서를 쓰게 합니다. 메기가 수험장에 들어가는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도의 숨을 쉽니다.
그리고...
메기는...
언제나처럼...
고맙습니다...라는 말한마디 없습니다.
그런 오선생님에게 주변 사람들은 칭찬과 격려보다는 비난과 의심의 눈초리를 자꾸 보냅니다. 한학생에게 지나치게 관심을 보인다... 너무 학생위주로만 해줘서 아이의 버릇을 잘못들였다... 하다못해 남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메기가 오선생님의 숨겨놓은 아이가 아니냐, 오선생님이 메기에게 뭔가 잘못을 저지른것이 아니냐는등의 가시돋힌 말을 서슴없이 합니다.
얼마전, 모처럼 오선생님과 함께 하였습니다. 평소 말씀이 별로 없으신 조용한 성품인 오선생님께서... 그날따라... 평소에 비해 많은 말씀을 하십니다.
제가 사람섬기는게 참 서투르고 힘들어요. 메기한명 돌보고 섬기는데 온통 신경을 쓰다보니, 다른 아이들에게는 전혀 관심을 가질 수가 없어요. 메기 한명 데리고 다니는 것도 정말 너무 힘들어요. 사람들에게 오해도 많이 받구요. 하지만, 전 메기가 좋아요. 그냥 좋아요. 잘안웃는 무표정의 메기가 어쩌다 한번 미소를 씨익~ 보이면 너무 이뻐요.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메기가 그냥 좋아요. 메기 말하는것 한번도 안들어보셨죠? 메기가 제법 말도 조리있게 잘한답니다...
그런데...지난 1년간, 메기에게 관심을 쏟느라, 제가 많이 늙은것 같아요... 호호호~
선생님께서는 한참을 웃으시다가, 사뭇 비장한 모습으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김선생님~ 제가 문제가 많지요? 저의 전도방법이 잘못된 거지요? 저에게 좀 가르쳐주실래요? 저의 잘못된 점이 뭔지 꼭 가르쳐주세요...
선생님께서는, 메기와 많은 시간을 보내다보니, 메기 주위에 비숫한 류^^의 아이들이 많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그 아이들이 고릴라, 너구리, 독사... 라고... 그 아이들도 교회에 같이 가기로 했다고... 기도부탁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며칠이 흘러, 어느날 밤 저에게 전화를 하셨습니다.
...
...
...
선생님과의 전화를 끊고 난후... 한동안 깊고 그윽한 여운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물이 찢어지도록 영혼을 많이 건져올려야 한다는 머릿수 중심의 전도의 개념... OO전도왕, **전도왕... 수백명의 결신자 그후 정착자가 거의 없는 교회의 전도축제... 교회에 정착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교회를 전전해 다니는 진정한 안식에 들지못한 영혼들...
But... 떠나가는 둘째아들의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며 다시 탕자로 돌아오는 그 아들을 맨발로 뛰어나가 맞이하는 한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마음... 절망에 빠진 바울을 격려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사역을 뒤로하고 바울 한명을 찾으러 간 바나바의 마음... 아흔아홉마리의 양을 놔두고 잃어버린 양한마리를 찾는 목자의 심정... 중풍과 치매를 앓고 있는 남편을 돌보느라 20여년간 외부출입을 거의 해보신적이 없으신 우리 교회 신권사님... 그리고... 고마워할줄 모르는 메기에게 시간과 기도와 물질을 집중하는 오선생님...
그리고...아주아주 오래전에 날 선택하시고 아주아주 오랫동안 당신의 품으로 돌아오길 기다리셨으며, 셀수없이 자행되어진 배반과 방황을 끝까지 기다려주신 나의 하나님...
그날밤...
성령님께서는 저에게 다음과 같은 감동을 주셨습니다.
감히...
함부로...
오선생님의 섬김과 사랑, 헌신, 눈물을 평하지 말라고... 입도 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치 그분을 보호하시는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의 영혼에 대한 그 지극한 사랑...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극한 형벌을 받으시고 돌아가시기까지 한 영혼을 사랑하신 아버지의 그 깊은 사랑... 그 영혼에 대한 사랑의 무게에 눌려 고개를 숙입니다.
오늘도, 목사로서, 교사로서, 리더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그 권위를 내려놓고 도리어 낮은 자리로 내려가,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한 영혼을 섬기고 <양육>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이 글이 위로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살전 2:7)
첫댓글 영혼을 사랑할 줄 알며 그 사랑에 목메이도록 기도하고 계시는 오 선생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섬김의 마음이 얼마나 힘든지 주님 한분 바라보고 모든 것을 묻어두며 오로지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만 하기를 원합니다.. 이 아침에 귀한 말씀 감사해요^^^ 진정 주님의 가르침에 순종하며 살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