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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식의
'클래식은 영화를 타고'
< 맨해탄 - Manhattan >
“그는 뉴욕의 거리를 사랑하고 있다. 무엇보다
뉴욕은 현대 문화의 황폐함에 대한 은유인 곳이다..."
우디 앨런(이삭 데이비스 역)의 제법 장황스런
1인칭 내레이션으로 그 막을 열어가는 영화
< 맨해탄 > 은, 먼저 뉴욕의 거대한 빌딩 숲과
사람들의 일상적 풍경을 하나하나 비춰냅니다.
마천루의 야경과 뒷골목의 주차장, 건설 현장과
노동자들, 시위하는 군중, 학교 수업이 끝나고
왁자하게 몰려나오는 아이들, 거리를 지나가는
예쁜 여자들, 연애를 즐기며 키스하는 청춘 남녀들,
그리고 브로드웨이의 명멸하는 입간판, ‘즐겨요
코카콜라!’ 광고판, 링컨 센터, 롱샷으로 잡은 뉴욕
양키즈의 야간 스타디움과 밤 전철의 풍광들이
화면 위로 바쁘게 흘러가면서,
이삭은 자신이 쓰고 있는 드라마 대본을 약간
시니컬한 목소리로 읽어나가죠.
“제1장, 그는 뉴욕시를 흠모한다” 는 대사와 함께
뉴욕에 대해 이런저런 묘사를 늘어놓다가... "아니,
다시 해야겠군", "이건 너무 감상적이야", 또 "이게
낫군" 하면서 여러 차례 말 바꾸기를 시도합니다.
뉴욕의 매력을 줄줄 늘어놓는가 싶다가도 “마약,
시끄러운 음악과 TV, 범죄와 쓰레기로 가득찬
도시” 같은 단어들을 토해내기도 하지요.
< 맨해탄 > 은 이렇게 묘한 뉘앙스의 대사로 뉴욕을
툭툭 건드리면서 시작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도입부 시퀀스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흐르는
음악이 있죠.
바로, 주빈 메타 지휘의 뉴욕 필하모니가 연주하는
조지 거쉰인의 '랩소디 인 블루' 로, 이삭은 뉴욕에
대해 “조지 거쉬인의 음악이 고동치는 도시” 로
정의합니다.
이삭의 직업은 TV 방송 코미디 작가로,
낭만적이고 수다스러우면서도 어딘지 소심해
보이는 이혼남의 캐릭터이죠.
거대하고 휘황한 메가시티에서 뭔가 애정 결핍
같은 것을 지니고 살아가는... 두터운 뿔테 안경을
쓴, 약간 위선적인 지식인으로 비치기도 합니다.
이혼한 이유가 아주 웃기죠. 결혼 생활을 하다가
아내 질(메릴 스트립 분)이 성 정체성을 찾았다면서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간 겁니다.
이토록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블랙 코미디 같은
상황은 더 악화되어서 질은 이삭과의 악몽같았던
결혼 생활을 책으로 내려고까지 하죠.
그렇다고 이삭이 마냥 우울하게 지내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는 17세 소녀 트레이시(마리엘 헤밍웨이 분)와
사귀며 나름 행복하게 지내고 있지요.
불륜은 아니지만 자신보다 27살이나 적은...
너무 어린 나이의 여자와 사귀는 모습은 이삭의혼돈스런 정신 세계를 대변합니다.
자신에게는 오리려 행운이라면서 이혼 생활을
즐기는 식이죠.
오프닝 시퀀스에서 뉴욕을 예찬하는 이삭의
내레이션을 끝낸 앨런은, 이어 '엘레인(Elaines)'
간판의 레스토랑을 조명합니다.
그곳엔 예일과 에밀리 부부, 그리고 연인 관계인
이삭과 트레이시, 두 커플이 토론을 벌이고 있지요.
어른들의 현학적인 예술관을 진지한 표정으로
경청하는 트레이시...
먼저 예일이 시작합니다. "예술의 기본은 인간의
주어진 상황들을 표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래야만 자신이 몰랐던 그런 감정들을 느낄 수 있는
거야."
이삭은 말하죠. "재능은 운이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용기야."
에밀리는 트레이시를 향해 "이 말싸움을 20년째
하는 중이란다" 라며 웃습니다.
이삭은 아랑곳 않고 촌철살인의 '썰' 을 신랄하게
풀어대죠.
"만약 우리 네 사람이 같이 다리 위를 걸어가는데
물 속에 사람이 빠져서 죽어가고 있다면 그 차가운
물 속으로 그 사람을 살리기 위해 뛰어들 용기있는
사람이 우리 중에 있을까? 중요한 질문이야. 난 물론
수영을 못하니깐 제외되지만..."
암에 걸릴까봐 연기를 들여 마시지는 않으면서도
"멋져 보이는데 어떻게 담배를 피우지 않을 수
있겠냐" 라고 촐삭대는 이삭입니다.
예일은 맞장구치죠. "맞아, '근사한 당신의 모습' 이란
광고 문구지?"
이삭은 먼저 일어나는 트레이시를 보며
예일 부부에게 얘기합니다.
"난 내 또래의 아빠를 둔 아이와 사귀고 있는
거라고. 낼 시험이 있어 그만 가봐야 한다는 학생과
말이야. 내 인생에 처음있는 마법 같은 일이지."
예일은 레스토랑에서 나와 아내를 멀찌감치
떨어뜨리곤 이삭에게 말 못할 고민을 은밀히
털어놓죠.
"요즘 표현하기 힘든 성격의 소유자로, '메리' 라는
멋지고 아름다운 여자 작가를 만나고 있어.
늘 머릿 속을 떠나지 않는..."
그렇게, 이삭의 친구인 예일(마이클 머피 분)은
메리(다이안 키튼 분)와 사귀고 있습니다.
문제는 예일이 유부남으로, 그녀와 바람을 피고
있다는 것이죠.
이삭은 트레이시와 같이 전시관에서 카스텔리
사진 작품을 관람하다 예일과 함께 온 메리와
처음 마주치게 됩니다만... 주관이 강하고, 달라도
너무 다른 둘은 첫 만남부터 티격태격하죠.
전시 작품이 환상적이고 멋있었다는 이삭을 향해
메리는 다이앤 아버스 작품을 흉내만 낸 것처럼
보여 별로였다고 깎아내립니다.
"부정적인 가능성이 있었고요. 아래층의
다른 것들은 전부 쓰레기였죠."
한데 메리가 빼놀 수 없다는 모차르트에 빗대며,
고호랑 잉마르 베르히만을 언급하는 이삭의
깐죽거림에 제대로 열받은 그녀는 결국
폭발합니다.
"잉마르는 현대 영화의 유일한 천재 감독이에요.
어쩜 완전 반대네요. 멋진 TV 프로 작가이면서
사고방식은 완전 북유럽풍이니, 너무 차갑지
않나요?
진정한 사춘기와 염세주의 ... 침묵으로
일관하잖아요. 한 개인의 정신과 성적인 의존도를
웅장한 철학이란 이름으로 너무 엄숙하게
표현하는 게 보이지 않아요?
점입가경으로... 메리는 이러고 싶지 않았다며,
자신은 필라델피아 출신이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식으로 그만 논쟁을 마무리하려 듭니다.
"그건 무슨 말이에요? 나 원..." 흥분한 이삭은
게거품을 물며 트레이시에게 외치죠.
"정말 '또라이' 지 않나? 완전 정서불안이지.
최악이라고! 말장난만 하고 말야.
어떻게 감히 피츠제랄드와 하인릭 같은 위대한
사람들을 평가하겠다는 생각이 나온 거지?
똑똑한 체, 아는 체 하는 게 너무 싫어. '고호' 발음하는
거 봤지? 주제에 잉마르 베리히만 이야기라니,
렌즈가 빠지도록 쳐줬을거야.
그녀가 예일 애인이라니 불가사의한 일이야. 멋진
아내를 두고도 그런 정서불안의 여자를 만나다니..."
베로니카 헤이와 리타 헤이워즈를 혼동하는,
또 애니메이션 < 톰과 제리 > 속 '제리' 처럼 말하는
트레이시...
너무 긴장해서 그런 거 아니겠냐며 메리를 나름
이해해주는 그녀에게 이삭은 삶의 충고랍시고
한마디 던집니다.
"날 네 인생의 도피처로 삼으면 안돼. 난 보수적이라
유부남과 사귀는 건 반대야. 비둘기나 천주교
신자처럼 한 사람과만 살아야 한다고 봐."
트레이시는 "사람들은 한사람만 사랑하긴 힘든가
봐요. 어쩜 우린 다양한 길이의 인간관계를 갖도록
뜻해졌는지도 모르죠. 아저씨 생각은 고리타분한
거에요." 라며 자못 어른스럽게 응답하죠.
이토록 기묘한 커플인 두 사람은 논쟁을
이어갑니다...
" '고리티분' 을 함부로 말하지 마. 넌 겨우 17살이야!
넌 마약과 TV 세대지만 난 2차대전 세대라고.
난 참호 속에도 있어봤어."
"2차대전 때 8살이었잖아요."
허풍을 떨다 들통난 이삭은 바로 꼬리 내리며,
"맞아. 참호 속에 없었어. 중간에 들어가 있었지.
아주 힘든 상황이었어." 라며 횡설수설 주절댑니다.
어쨌든 든든한 직장도 있겠다, 그다지 두려움도
불편함도 없었던 이삭은 그놈의 성질머리 때문에
직장을 박차고 나오게 되죠.
이삭은 방송사에서 가짜 웃음 소리와 허구의 박수
소리를 주조종실에서 넣는 모습에 진절머리를
칩니다.
이건 조작이요, 거짓이라면서 평생 쓰레기 같은
프로그램이나 만들라고 저주를 퍼붓고 일을
때려친 이삭...
저녁 모임에서 "왜 직업을 그만 뒀냐" 는,
주변사람들의걱정섞인 질문에 그는 능숙하게(?)
둘러댑니다.
"한 30초 정도 영웅이었지만 이젠 졸지에 실업자가
됐에요. 엄청난 실수를 한 거죠."
스스로를 망친 충동적인 거였지만... 덕분에(?)
시간이 많이 남아 평소에 원하던 책 출판을
준비하며 지내던 그는 앙숙 메리와 우연찮게
수 차례 부딪히게 됩니다.
처음에는 성향도 성격도 다른 듯해서
데면데면 했던 메리와 대화를 해보니, 이 여자
위트도 있고 지적인 모습이 트레이시에서 느끼지
못하는 공감대가 많음을 깨닫게 되죠.
그렇게 두 사람은 점점 친해지게 됩니다. 그리고
서로의 아픔과 고민도 알게되죠.
언필칭(言必稱) '필라델피아 출신' 이라며...
자존심 강한 메리는 유부남인 예일과 사귀는 것을
힘들어합니다.
좋아하지만 결혼할 수 없는 자신의 현실이
버겁기만 하죠.
메리는 결혼생활을 깨는 것, 깊은 관계를 갖는 것
모두 원치 않는다면서도 막상 예일이 곁에 없을 땐
늘 그의 생각만 합니다.
그녀는 예일에게 "내가 왜 이래야 하는지 정말
모르겠어. 난 예쁘고 똑똑해서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는데... 결혼 안 한 남자를 만나야
할까 봐" 라고 푸념하죠.
만나는 횟수가 잦아지던 이삭과 메리는
센트럴 파크에서 데이트를 하다가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우와 맞닥뜨린 끝에 천문관에 들어가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합니다.
전혀 영문을 모르는 예일의 아내 에밀리(앤 베른
분)가 이삭의 새 여자친구 메리를 보고 싶다는
성화에...
못말리는 두 커플은 클래식 음악당에서 '모차르트
교향곡 40번' 을 함께 감상하는, 해괴하고도 어색한
만남을 갖죠.
공연 관람 후 이들은 수다를 떨다... 한 서점에서
이삭의 전처 질이 출간한 자서전 < 결혼, 이혼,
그리고 자신 본위 - Marriage, Divorce, and
Selfhood > 를 발견합니다.
"더 깊고 능숙한 여자와의 섹스는 허무한 경험과,
남편과의 이상한 몸짓뿐인 섹스에서 날 깨어나게
해줬다. 그는 분노를 부여받았고, 유대계
자유주의자란 망상을 가진 남성우월주의자에
혼자 잘난 염세주의자이며 절망적인
허무주의자이다.
그는 인생에 불만은 있었지만 해결책은 없었다.
예술가가 되고 싶어 했지만 필요한 희생엔 주저했다.
가장 개인적인 순간엔 죽음에 대한 공포를 말했고,
자신의 비참함만 더했으며 거의 자기 도취증
수준이었다."
사실 얄밉게도 맞는 얘기입니다만.... 죽이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난다며 따지러 온 이삭에게, 질은
"전남편은 영화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 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는 식의 나름 좋은 얘기도
썼다고 대꾸하지요.
그녀는 한 술 더 떠 "이 책을 영화로 만드는데 판권을
팔까 생각 중이야" 라고 경고합니다.
아뭏든 메리는 예일과의 연인 관계를 정리하고,
이삭 또한 하모니카를 선물한 트레이시에게
쓸데없이 정열을 소모한다며 그만 만나는 게
좋을 거 같다고 통보하죠.
"넌 나한테 너무 의존하는 거 같아. 네가 21살이
될 때 쯤엔 남자를 12명도 더 만날 거다. 이보다
훨씬 더 정열적인 사랑일 거야. 이젠 네 인생을
펼쳐야지, 넓은 세상을 봐야 해."
"날 위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은 아저씨가
원하는 거잖아요."
"너무 앞서가지마. 난 42살이고 머리도 빠지고
있어. 이젠 귀도 안들리기 시작해. 이런 사람을
원하니?"
"나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다는 게
안 믿어져요. 불쾌하고요. "
"내가 왜 죄책감을 가져야 하니? 늘 네 또래 애들을
만나라고 했잖아? 날 그냥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면
다 좋은 거잖아? 네가 성적으로 가장 왕성할
36살이 되면 난 61살이라고!"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진심으로 이삭을 좋아했던
트레이시는 크게 상심하며 눈물을 뚝뚝 흘리죠.
그런 모습에 어쩔 줄을 모르지만 자신의 새로운
사랑이 더 중요한 이삭은 메리와 행복한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던 어느날, 메리가 이삭에게 청천병력의
고백을 하죠. 아직도 예일을 잊지 못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메리와 사귀기 위해서 트레이시를 정리했는데...
"아이를 함께 가질 유일한 남자로 이삭을
생각했다" 는, 바로 그 메리가 다시 예일에게
돌아가겠다고 나선 게죠.
그런 모습에 이삭은 분통이 치밀어 오르지만
그 울화를 표현할 방법을 잘 모르고, 또 그게 본인
스타일도 아닙니다.
그는 맥아리 없는... 병약해 보이는 지성인인
뉴요커의 표본처럼 당혹해 하다, 그 원수같은 친구
예일에게 한걸음에 달려가 어쩜 그럴 수가 있냐며
외치죠.
"개인적인 고결성을 갖는게 중요해! 죽은 후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좋았던 사람으로 기억되는..."
이삭은 실연의 질곡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하릴없이 책 원고를 녹음합니다.
"인생을 가치있게 만드는 것들이 있지. 나 같은
경우엔 투덜이 마르크스가 그 한 사람이고, 위대한
야구 선수 윌리 메이스, 주피터 교향곡의 2악장,
또 루이 암스트롱의 포테이토헤드 블루스 녹음이
있고...
물론 플로베르트작의 '애정의 교육' 이란
스웨덴 영화, 말론 브란도와 프랭크 시내트라,
화가 세잔의 놀라운 명화 '사과와 배',
삼우 중국식당의 게 요리가 있고, "
그러다 "트레이시의 얼굴이 있다..." 대목에서
글 녹음을 무연히 멈춘 이삭은 벌떡 일어나서
예전에 트레이시가 선물했던 하모니카를 꺼내보죠.
그는 집을 뛰쳐나와 2시간 넘게 줄창 달려간 끝에
막 공항으로 가려고 하는 트레이시 앞에 섭니다.
이삭은 궁색하게도 메리와 관계가 깨졌다고
털어놓으며, 상처가 컸다는 트레이시에게
큰 실수였고, 또 그때 내 시각이 그랬었다며
제발 영국으로 가지 말라고 애원하죠.
트레이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영국으로 가는 것이
우리 모두를 위하는 길이라고 해놓고 이제는
가지 말라고 왔다 갔다 하니 황당하기만 합니다.
그래도 트레이시는 이삭을 사랑하기에,
'6개월' 만 기다리라고 하죠.
이삭은 6개월이라는 소리에 난감해 합니다.
그에겐 아주 긴 시간인 게죠.
이삭은 그저 "내가 좋아하는 네 모습이 변치
않길 바래" 라며 매달릴 뿐입니다.
트레이시는 반년도 못 기다려주냐고 타박하죠.
그러곤 자신도 18세가 됐다며 어엿한 성년답게
충고(?)합니다.
"모든 사람이 다 변하는 건 아니에요. 사랑한다면
6개월은 긴 시간이 아니에요. 사람에게 믿음을 좀
가져봐요."
콘크리트 블럭을 쌓아 올린듯한 허드슨강 건너편의
마천루를 보면서 54번가의 다리 밑에서 맨하탄을
관조하는 듯한 표정으로...
이삭은 이 어른 같은 소녀의 "믿음을 가져보라" 는
말에 희미하게 웃습니다.
어느덧 엔딩 크레딧... 드라마 < 맨해탄 > 은
조지 거쉬윈의 '랩소디 인 블루' 와 함께 그 막을
내리죠.
1. 영화 < 맨해탄 > 트레일러
https://youtu.be/yt3cGMqtqyA
< 맨해탄 > 의 오프닝 신은 '주차장'(Parking) ,
'맨해탄'(Manhattan)으로 표시된 빌딩 네온사인이
명멸하는 가운데,
조지 거쉬인의 몽환적인 '랩소디 인 블루' 에 실리는
이삭의 내레이션과 함께 합니다.
"챕터 1... 그는 뉴욕시를 흠모한다. 모든 것을
지각없이 숭배하고. 아니, 그러니깐... 생각없이
로맨틱하다 믿고... (이게 훨씬 낫군)
그에게 계절에 상관없이 뉴욕은 변함이 없는,
조지 거쉬인의 음악이 고동치는 그런 도시이다
(아니, 다시 해야겠군).
챕터 1... 그는 맨해탄에 대해 모든 것에 그렇듯이
지나치게 낭만적이다. 사람들과 교통의 분주함 속에서
성장했다.
그에게 뉴욕은 아름다운 여인과 모든 것을 알듯한
똑똑한 사람들과 같은 그런 의미이다(아니, 이건
너무 감상적이야. 조금 더 심오하게 다시 해야지).
챕터 1... 그는 뉴욕시를 흠모한다. 그에겐 뉴욕은
현대 문화 부패의 상징이다. 쉬운 길만을 찾는
개인들의 성실성 결핍은 그들의 도시에 대한
꿈을(아니, 이건 설교 같잖아. 책을 팔려는 티가
너무 나!)...
챕터 1... 그는 현대 문화 부패의 상징이지만
뉴욕을 흠모한다. 마약, 시끄러운 음악과 TV,
범죄와 쓰레기로 가득찬 도시에서 살아남기란
얼마나 힘들었겠는가(아니, 너무 성난 느낌이다).
챕터 1... 그는 뉴욕을 흠모하며 또한 강한 남자다.
그의 검은 뿔테 안경 뒤론 강인한 섹시함이 숨겨져
있다(맘에 드는군). 그는 뉴욕을 사랑하며 영원히
그럴 것이다."
2. 영화 < 맨해탄 > 오프닝 신
- feat. 조지 거쉬인 '랩소디 인 블루'
https://youtu.be/UYG2oJP4fC8
“영화란 건 멋진 장면 몇 개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하워드 혹스 감독의 이야기이죠.
그의 말을 곱씹으면서... 복고적인 화면에 담긴
뉴욕의 도회적 풍경이 인상적인 < 맨해탄 > 을
연상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럽습니다.
'지나치게 지성적인 뉴요커들의 지나치게 특별한
고통으로 이뤄진 사랑의 서사...' < 맨해탄 > 은,
뉴욕 지식인의 사회를 유머 있게 풍자해온
우디 앨런의 작품 중 가장 완성도 높은 평가를 받는
필름으로 자리하죠.
앨런은 특유의 섬세한 연출력으로 < 맨해탄 > 속
남녀 관계를 자전적 요소가 어우러진 로맨틱
코미디로 직조해냈습니다.
장중반, 동틀 무렵 이삭과 메리가 맨해탄 다리를
배경으로 앉아 있는 장면이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이유이죠.
무려 16시간을 메리와 꼬박 함께 보낸 이삭은
벤치에서 일어나며 말합니다.
"정말 멋진 도시야. 다른 사람 말은 신경 안 써.
여긴 정말 멋지지 않니?"
오래지 않아 메리에게 사랑을 느낀 이삭이 "이해하지
못하는 지식은 전혀 필요가 없잖아? 모든 진정한
가치는 잊어버릴 거라면 다른 통로를 통해 네 안에
담아야지." 라고 주장하자,
그녀는 반박합니다. "그건 동의 안 해. 합리적인
생각이 없다면 어떻겠어? 아마 네가 너무 지적인
것에만 집착하는 사람이라 생각하겠지."
이삭은 이에 화답하지요. "넌 너무 걱정이 많지만
멋진 여자야!"
우디 앨런의 영화를 논할 때 자주 거론되는
이름들이 있습니다.
찰리 채플린, 페데리코 펠리니, 잉마르 베리히만,
프랑소와 트뤼포 등이 그러하죠.
코미디언으로 출발했던 우디 앨런은 유럽 영화의
자양분을 자신의 영화로 끌어들였습니다.
니힐리스트 작가인 브레히트 식 연출기법을 영민하게
소화하고 희비극을 자유롭게 넘나듦으로써
영화세계를 넓힌 것이죠.
< 맨해탄 > 은 굳이 분류하자면 < 애니 홀 > 이후
우디 앨런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필독(必讀)의
드라마로 논할 수 있습니다.
< 애니 홀 > 에서 그랬듯, 우디 앨런은 뉴욕이라는
도시의 열렬한 예찬자가 되었죠.
영화계의 가장 뛰어난 촬영감독 중 한 사람으로
평가되는, < 대부 > 시리즈의 고든 윌리스가 촬영한
2.35 : 1의 와이드 스크린 속 풍경은 수려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중에서 도시의
조형미를 가장 빼어나게 담아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밤에 질주하는 자동차, 공원에서 산책하는 사람들,
마차를 타고 바라보는 도시의 야경,
그리고 실내에서 은은한 음악을 틀어놓은 채
춤추는 남녀의 실루엣에 이르기까지...
흑백 영화인 < 맨해탄 >은 세련되게 빛나고,
또 질서정연하며 이상화된 뉴욕의 모습을
매혹적으로 포착하고 있습니다.
우디 앨런은 이 영화가 '자신이 사랑하면서도
증오하는 도시에 대한 존경인 동시에 비판이
되기를 원했다' 고 밝혔지요.
그의 작품에서 늘 또 다른 주인공으로 자리하는
감각적인 영화음악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도시를 포용하듯 울려퍼지는 거쉬인의 음악은
< 맨해탄 > 을 '현대 도시에 관한 영화' 이자
'재즈 영화' 로 자리매김시켜주는 키워드가 되죠.
우디 앨런 감독은 < 맨해탄 > 을 통해 자신만의
변함없는 고민을 줄기차게 투영합니다.
여러 여성들과의 관계 속에서 혼란과 방황을
거듭하는 남성을 직접 연기하면서 말이죠.
영화 결말에서 우디 앨런이 연기한 이삭은
10대 소녀에게 오히려 충고를 듣는 경험을 하죠.
그렇게... < 맨해탄 > 은 < 애니 홀 > 에서처럼
여성은 드라마 속 우디 앨런에게서 벗어나고 사랑은
과거시제로 환원됩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인물들 관계가 좀 더 복잡해진
것 정도라고 할까요.
코미디와 로맨스의 융합, 대중문화에 대한 은근한
비꼬기의 시선 또한 여전합니다.
< 맨해탄 >은 프레임면에서도 흥미로운데 인물의
대화, 그리고 휴지기의 반복적인 구조는 영화의
감미로운 리듬감을 배가하는 장치로 작동하죠.
하여, 영화는 재즈음악가이기도 한 앨런이 자신이
좋아하는 조지 거쉬인의 음악과, 자신이 아끼는
뮤즈 격의 배우들과 함께 흔연스레 어우러진
‘뉴욕 예찬’ 의 작품으로 울려옵니다.
3. 조지 거쉬인 '랩소디 인 블루'
- 게리 그라프만 피아노
주빈 메타 지휘 뉴욕 필
https://youtu.be/kB2rzhfXGMI
- 레나드 번스타인 피아노와 지휘 뉴욕 필
https://youtu.be/cH2PH0auTUU
재즈를 예술음악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는 미국의 작곡가 조지 거쉬윈.
거쉬윈은 뉴욕의 대중음악에서 출발해 그것을
자신의 음악적 특성으로 만들며, 클래식, 재즈,
그리고 영화음악까지 모든 음악 분야에서 뛰어난
작곡 실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당시 '킹 오브 재즈' 라 불리며 재즈 빅 밴드인
'폴 화이트먼 밴드' 를 이끌던 폴 화이트먼은,
'스와니' 같이 유명한 곡을 지은 거쉬윈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보고 그에게 재즈와 클래식을 아우르는
심포닉 재즈 스타일의 곡을 의뢰했죠.
이에 거쉬윈은 먼저 두대의 피아노를 위한 곡으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오케스트레이션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그는, 화이트먼 밴드의 편곡자인 퍼디
그로페('그랜드 캐년 모음곡' 작곡가) 에게 편곡을
의뢰해 독주 피아노와 재즈밴드를 위한 음악으로
재탄생시켰죠.
물론 나중에 그로페의 오케스트레이션 실력은
'파리의 미국인' 으로 증명되었습니다.
1924년 2월 12일 뉴욕 아이올리언 홀에서
초연되었는데 당시 상황은 이렇게 전해지죠.
"당시 아이올리언 홀의 분위기는 말이 아니었다.
많은 작품들이 서로 비슷비슷하게 들렸고, 홀의
환풍기도 고장난 상태였다. 청중들은 점차 인내심을
잃어가고 있었다.
바로 그때 '랩소디 인 블루' 의 도입부인 글리산도(glissando)로 연주하는 클라리넷 선율이
들려왔다. 청중들의 눈은 갑자기 초롱초롱해졌다."
재즈 음악과 클래식 음악의 경계선(?) 상에
걸쳐 있는 이 곡의 공연은 '현대 음악에서의
실험(An Experiment in Modern Music)'이라는
프로그램의 일부였죠.
이때 콘서트를 관람한 유명인사 중에는 존 필립
수자,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 야샤 하이페츠 등이 있었고, 공연 이후
이 곡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습니다.
제목 ‘랩소디 인 블루’ 속 ‘블루’는 파란색, 또는
우울한의 의미가 아닌 '블루노트' 를 뜻하는 말이라고
하는데요. 블루노트는 3음, 5음, 7음을 반음씩 내리는
재즈의 독특한 음계를 뜻합니다.
타이틀 자체에서도 재즈 요소가 숨어있었던 셈으로,
'랩소디 인 블루' 의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는 도입부의
클라리넷 글리산도가 리허설 도중 만들어졌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기도 하죠.
문학수 음악평론가는 그의 저서 < 내 인생의
클래식 101> 을 통해 다음과 같이 설명해 줍니다.
"뒤로 갈수록 음악의 완성도가 점점 높아지는
것이야말로 ‘거쉬인의 힘’ 이라고 할 수 있죠.
미국의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이 남긴 언급들이
흥미롭습니다.
"거쉬인은 대중음악을 쓰다가 클래식을 작곡한
사람입니다. '랩소디 인 블루' 는 별개의 이야기를
쑤셔 넣은 다음, 밀가루 반죽으로 얼기설기
이어붙인 곡이죠.
하지만 차이콥스키 이래 거쉬인만큼 아름다운
선율을 쓴 사람은 달리 없다고 생각합니다. 선율에
있어서만큼은 슈베르트와도 어깨를 나란히 하지요.
거쉬인은 작곡을 거듭할수록 나아졌어요. 내가
거쉬인의 작품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 진실함에 있지 않나 싶어요.
훌륭해지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오직 선한
의도만을 가진 작품이니까요.' "
재즈 음악과 클래식 음악의 경계선(?) 상에
놓여있는 이 '랩소디 인 블루' 외에도 'Someone to
watch over me' 를 비롯한 조지 거쉬인의 재즈와
발라드 풍 노래 세곡은,
마이클 틸슨 토마스가 이끄는 버팔로 심포니
오케스트라에 의해 미려하게 바리아시옹되며
< 맨해튼 > 의 화면을 서정적인 몽환미의 빛깔로
장식해주고 있죠.
4. 'Someone to watch over me'
- 엘라 피츠제럴드 노래
https://youtu.be/gDhF-PsDuCw
5. 'He loves and she loves'
- 주빈 메타 지휘 뉴욕 필
https://youtu.be/4oIrEGiONeE
6. 'But not for me' - 뮤지컬 < Girl Crazy >
: 주빈 메타 지휘 뉴욕 필
https://youtu.be/SotKBZJN5y0
: 쳇 베이커 트럼펫
https://youtu.be/R_f_mMJAezM
: 주디 갤런드
https://youtu.be/X03uSwM07_A
주빈 메타의 뉴욕 필 또한 오케스트레이션으로
변주한 조지 거쉬인의 보석 같은 명곡들을
< 맨해탄 > 속 주요 장면 곳곳에 풀어내고
있습니다.
7. 'Love is sweeping the country'
- 'Land of the gay caballero'
: 주빈 메타 지휘 뉴욕 필
https://youtu.be/G046vrvk6x0
8. I've got a crush on you'
-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와 프랭크 시내트라
https://youtu.be/5DsgfuPa1gE
9. 'Strike up the band'
- 조지 거쉬인의 피아노(1929년 리허설 실황)
https://youtu.be/M3XwQqTAK3E
10. 'Embraceable you' - 사라 본 노래
https://youtu.be/bzq-LyibcUk
11. 'Oh lady, be good' - 벅 앤 버블스
https://youtu.be/H6Qky-CvePc
12. 'S Wonderful' - 앨범 'Love is here to stay'
: 토니 베넷 과 다이애나 크롤
https://youtu.be/F9y8fMzzbtk
13. 'Sweet and Lowdown'
https://youtu.be/tjuUVyZR8Q4
14. 모차르트 교향곡 40번 g단조 K.550
- 칼 뵘 지휘 빈 필하모니커
https://youtu.be/qX7J1HejyHU
- 李 忠 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