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는 마음으로 만나는 모시와 소곡주의 고향, 충남 서천군/전성훈
깔끔하게 입속으로 살살 넘어갈 때 그윽한 향기를 느끼는 소곡주, 술꾼들에게 앉은뱅이 술로 소문난 한산 소곡주의 고향이자 우리나라 모시의 원조인 한산 모시의 고향이 서천군이다. 충청남도 서천군은 너무나 생소한 곳이다. 젊은 시절부터 제법 우리나라 이곳저곳을 가보았지만 서천(舒川)은 초행이다. 서천과의 첫 만남에서 어떤 느낌을 얻을 수 있을까?
서천으로 떠나기 전날, 하루 종일 제대로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세찬 바람이 불었다. 때문에 한껏 뽐내며 만개한 봄의 전령 벚꽃이 그야말로 추풍낙엽처럼 떨어져서 마음이 짠하였다. 지난 한 주간은 떠나버린 겨울이 되돌아온 게 아닌가 착각할 정도로 종잡을 수 없는 날씨였다. 서천행 관광버스는 서울 시내를 벗어날 때까지 출근 시간과 맞물려 제대로 달리지 못해 시간이 많이 걸렸다.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하늘은 황사로 희뿌연 모습을 띠고 있었다. 요즈음은 미세먼지와 황사가 번갈아가며 찾아와서 봄 같지 않은 봄날이 이어지고 있다. 차창 밖으로 간혹 흐드러지게 핀 개나리와 벚꽃들이 강풍 속에서도 살아남은 모습이 보였다.
관광버스가 서천군 서면으로 들어섰고 첫 번째 방문지는 마량리(마량은 말머리 모양의 생김새라는 뜻) 동백꽃동산이었다. 동백꽃동산 가는 길가의 주항저수지에서 한가로이 낚싯줄을 던지고 세월을 낚는 강태공의 여유작작한 모습이 보였다. 서천 갯벌은 도요새의 중간 휴식지로 알려져 있다. 시베리아에서 날아온 철새들이 최종 목적지인 뉴질랜드까지 단숨에 날아갈 수 없어 고갈된 체력을 재충전하기 위해 서천 갯벌에서 보통 70-80일 정도 머문다. 그런 까닭에 서천과 군산의 경계선인 금강하구둑은 ‘가창오리’떼의 멋진 군무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서양 미인의 상징인 그리스의 아프로디테 여신이나 로마의 베누스 여신 그리고 동양의 첫째가는 절세미인이라고 불리는 양귀비도 도저히 얼굴을 내밀 수 없을 정도의 아름다움과 풍요로움과 따사로움을 주는 남녘의 여왕이라 할 동백꽃, 그토록 붉디붉은 화사한 모습으로 동네의 골목길과 깊은 산사의 숲속 길을 꽃의 향기로 푹 젖게 하는 겨울의 여인이자 봄의 처녀인 ‘동백꽃’. 동백꽃은 ‘그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멋진 꽃말을 가지고 있다. 서천 동백꽃 동산에는 계절에 맞지 않게 동백꽃이 만개하여 그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동백꽃은 겨울에 피어 이른 봄까지 절정을 이룬다. 지난 겨울이 너무 추워서 동백꽃 개화시기가 늦어지는 바람에 늦은 봄까지 우아한 동백꽃의 향연을 바라볼 수 있는 행운이 찾아온 것이다. 동백꽃의 화수분 역할은 작고 귀여운 ‘동박새’가 해준다. 동백꽃동산 깎아지른 벼랑 밑으로 이름 모를 섬 하나가 외롭게 솟아있다. 매년 해넘이와 해돋이 구경을 하려고 많이 사람들이 찾는 서해안 일몰/일출의 명소중 하나가 서천 동백꽃 동산 주변이라고 현지 문화해설사가 웃으면 말해준다. 동백꽃동산에 한 채의 ‘마량당집’이 있다. 바다로 고기를 잡으러 나간 남편과 아들의 무사귀환을 염원하며 빌고 빌었을 수많은 어머니와 젊은 아낙네의 마음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듯하다. 동백꽃동산 부근에 새로 짓고 있는 서천 화력발전소, 커다란 굴뚝은 무엇인가 이질적이고 위화감을 주는 듯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후 발전소가 완공되면 동백꽃 동산 주변을 본래 모습으로 환원하여 조성할 예정이라고 현지 문화해설사가 귀띔한다.
동백꽃 향기에 취한 채 맛본 서천 홍원항 주꾸미 탕은 출출한 뱃속을 휘저으며 정신을 잃게 할 만큼 좋았다. 한창 배고픔을 느낄 때 맛보는 주꾸미의 맛은 도저히 뭐라고 말로 옮길 수 없었다. 식사 도중에 어떤 사람이 주꾸미가 국산일까 중국산일까 하며 이야기를 꺼냈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주꾸미 몸통 어디에도 중국산 또는 국산이라는 표시가 없었다. 서해에서 주꾸미를 잡은 어부가 어느 나라 사람이냐에 따라 국산 또는 중국산이라고 부르는 게 아닐까? 서천으로 떠난 인문학기행, 서천과의 첫 만남은 젊은 시절 첫 사랑의 연인을 만나듯 가슴 떨리는 느낌은 아니다. 세상을 어느 정도 살아온 나이 탓인지 새롭고 흥미로운 것보다는 자연과 어울리는 인간의 모습을 보면서 잔잔한 미소를 짓는다. 인문학 기행은 자연과 인간의 공존 속에서 공통부분, 교집합을 찾아 그 길을 가는 ‘길 위의 길’이라는 느낌이 진하게 든다. (2018년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