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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
누가복음 10:38-42
38. 예수의 일행이 여행하다가 어떤 마을에 들렀는데 마르타라는 여자가 자기 집에 예수를 모셔 들였다.
39. 그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었다.
40. 시중드는 일에 경황이 없던 마르타는 예수께 와서 "주님, 제 동생이 저에게만 일을 떠맡기는데 이것을 보시고도 가만두십니까? 마리아더러 저를 좀 거들어주라고 일러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41. 그러나 주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마르타, 마르타, 너는 많은 일에 다 마음을 쓰며 걱정하지만
42.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택했다. 그것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
오늘은 재집권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지 꼭 7개월째 되는 날입니다. 이 짧은 시간 동안 트럼프는 세계를 온통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놓았죠. 정말 끔찍한 재앙 그 자체였습니다. 트럼프는 아래 제시한 주요 대선 공약 11가지를 차곡 차곡 실행에 옮겼습니다. 한번 살펴볼까요?
1) 불법 이민자 추방
2)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3) 경제·세금·관세 관련 정책
4) 전기 자동차 인센티브 폐지
5) 팁에 대한 세금 폐지
6) 트랜스젠더 권리 지지 학교에 대한 지원 삭감
7) 1월 6일 의회 폭동범 일부 사면
8) 잭 스미스 특별검사 해임
9) 낙태 금지법 서명 거부
10) 기후 규제 완화
11) 오바마케어 ‘대체’
어떻습니까 지지할 만한 정책이라고 생각되시나요? 그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MAGA)’는 구호를 내걸었습니다. 이 구호의 핵심은 ▲미국 우선주의 ▲반 이민정책 ▲미국 제조업의 회복입니다. 트럼프는 취임하자마자 그가 내세운 정책을 실행합니다.
트럼프는 취임 당일 지난 대선에서 바이든 당선에 불복해 국회의사당에 난입해 폭동(2021. 1. 6)을 일으킨 피고인 전원을 사면하고 유죄 판결을 받은 14명을 감형 조치합니다. 또 취임 며칠 동안 여러 건의 행정명령을 발동하여,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에 불법체류자, 비자 초과 체류자, 그리고 특정 영주권자를 대상으로 한 단속 및 추방 절차를 강화하도록 지시했죠. 지금도 LA에서는 불법이민자 단속을 위해 출동한 군대와 시위대가 대치하고 있습니다.
전기 자동차 인센티브 폐지로 일론 머스크와의 관계도 나빠졌습니다. 게다가 머스크는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BBB법안)'으로 이름 붙여진 트럼프 행정부의 감세 법안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나섰죠. 감세 법안이 미국의 파산을 초래할 것이라며 신당 창당 필요성을 꺼내 들었습니다. 2025년 현재 미국의 연방 부채는 약 36조 2천억 달러로 우리나라 돈 5경 원이 넘습니다. 올해 이자 비용만도 9,520억 달러(1330조 원)입니다. 의회예산국(CBO)은 2035년까지 연방 부채가 59.2조 달러(8경 3천조 원)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상상이 안 가는 액수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BBB법안은 지난 7월 4일 발효되었고, 향후 10년간 3조7000억 달러(5100조 원)의 세수가 감소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 법안에는 부자 감세와 팁 면세, 불법 이주민 단속·추방을 위한 국경 장벽과 구금시설 건설, 미국 본토 방어를 위한 미사일 요격 체계 '골든돔' 개발 예산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 감세를 대체하기 위해 △저소득층 의료 서비스를 지원하는 메디케이트 축소 △저소득층 식음료 지원 혜택인 푸드스탬프 축소 △전기차·청정 에너지 세금 혜택 축소하였습니다.
트럼프의 형사사건 2개를 수사하던 스미스 특별검사는 트럼트가 취임하기 전인 1월 10일 자진 사임했습니다. 기후 규제 완화 공약은 파리기후협약에서의 재탈퇴와 대규모 원전 설립, 재생에너지 축소와 화석연료 확대로 이어졌습니다.
무엇보다도 트럼프의 악행은 세계를 상대로 한 관세 폭력과 불의한 전쟁에 대한 지원입니다. 전쟁과 관련해서는 여러 번 이야기하였기에 생략하고 관세 폭력에 대해서 잠깐 살펴보죠.
트럼프는 첫 임기 당시 중국과 무역 분쟁을 시작하고, 철강과 알루미늄에 고율 관세 부과하여 재미를 보았습니다. 폭탄을 맞은 국가가 보조금을 통해 기업들의 수출 단가를 낮춰주는 등 조치를 취했기 때문이었죠. 고율의 관세에도 미국 물가가 전체적으로는 크게 오르지 않아 부분적인 성공이라는 평가가 있었습니다. 이 시기 트럼프는 무역 정책의 정치적 쟁점화에 성공하고, 중국 책임론을 확산시킴으로 러스트벨트(Rust Belt)의 노동자 계층의 지지를 확보했죠.
2기 트럼프는 취임 첫날 “불공정하고 불균형한 무역” 관행을 조사하라고 내각에 지시하면서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 유입 등을 이유로 캐나다와 멕시코에 25%의 관세를 부과할 뜻을 밝혔습니다. 카오스의 서막이었던 것이죠. 이후 트럼프는 수십차례 말을 번복하며 세계를 상대로 관세 부과와 유예를 거듭했습니다. 중국에는 한때 145%라는 초고율 관세를 부과했다가 후퇴하기도 했습니다, 브라질에는 50%의 관세 폭탄을 안겼습니다. 브릭스(BRICS) 정상회의에서 룰라 대통령이 “우리는 황제를 원하지 않는다”며 트럼프를 직격했던 것에 대한 괘씸죄가 적용된 게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되는 대목입니다.
최근 트럼프는 각국에 ‘관세 서한’을 보내 일방적인 고율 관세를 통보했습니다. 그가 새로 내놓은 ‘데드라인’은 8월 1일입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에도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서한을 보냈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중국과 멕시코가 우선적인 타깃이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미국의 핵심 동맹국이라는 한국과 일본이 먼저 타깃이 된 것이죠. 이에 대해 트럼프는 무역에 관해서는 적보다 우방이 더 나쁘다는 말로 그 이유를 들었습니다.
일본은 트럼프 정권에 잘 보이려고 그동안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이시바 총리는 간결한 화법 훈련까지 받으며 트럼프 대통령의 비위를 맞추려 노력을 했다고 하죠. 게다가 금색 사무라이 투구를 선물하고, 미국산 LNG 수입을 확대하고, 심지어 수익성이 맞지 않는 알래스카 천연가스개발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카드까지 내밀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달랑 편지 한 장에 무너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앞으로의 협상을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고민이 많아지는 대목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미국에 유리하지만은 않다는 것입니다. 관세 폭탄은 결국 미국 기업과 소비자들에게 전가될 것이고 미국 경제를 위협하는 부메랑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미국에서는 트럼프 관세 폭탄의 여파로 증시폭락, 생산비용 증가, 인플레이션 등이 현실화 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일본, 브라질, 중국, 멕시코, 케나다, 유럽연합 등이 보복관세 등 맞대응을 천명하며 1기 때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 되고 있죠. 미국 내의 반발도 만만찮습니다. 기업과 노조뿐만 아니라 공화당 내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 이야기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예수의 일행이 복음 사역을 하다가 예루살렘 근처의 어떤 마을(베다니)에 들렀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사는 마르타라는 여자가 그 소식을 듣고 자기 집에 예수의 일행을 초대하였습니다. 손님 접대를 위해 마르타는 분주하게 움직여야 했습니다, 당시 여성들에게는 모든 집안일과 손님을 환대하는 사회적 책임이 지워져 있었기 때문이죠. 일손이 모자란 마르타에게는 그의 동생 마리아의 도움이 절실하였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이런 상황을 뒤로하고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장면은 당시 사회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1세기 팔레스타인에서, 여성이 남자 손님 앞에 나서서 말씀을 듣는 일은 금기였기 때문이죠. 여성은 ‘안 보이는 곳에서, 조용히, 봉사해야만 하는 존재’여야 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마르타가 예수께 와서 말합니다. "주님, 제 동생이 저에게만 일을 떠맡기는데 이것을 보시고도 가만두십니까? 마리아더러 저를 좀 거들어주라고 일러주십시오." 당시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요구였을 수 있습니다. 마르타의 요청은 마리아가 예수의 가르침을 받는 것에 대한 시비가 아니라 당시 여성의 본분을 상기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의 답변은 전혀 다른 것이었죠..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에 다 마음을 쓰며 걱정하지만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택했다. 그것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고 말이죠.
오늘 본문에 대한 우리나라 일반 교회의 전통적인 해석은 이렇습니다. 언니인 마르타는 세상일에 열중하다가 필요한 것을 놓쳐버린 인물로, 마리아를 영적인 일을 추구하는 모범적인 제자의 길을 따르는 인물로 말이죠. 예수님 역시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택했다. 그것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말로 마르타를 책망하였다는 것입니다.
이 본문에 대한 교회의 해석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도 했습니다.
고대 교부 시대의 알렉산드리아 학파(오리겐, 아우구스티누스)는 마르다가 활동적 삶(Active Life, vita activa)를 살았고 마리아는 관상적 삶(Contemplative Life, vita contemplativa)을 추구했다고 봅니다. 마르다의 섬김도 필요하지만 마리아가 택한 말씀을 듣는 것이 더 중요했다는 것이죠.
중세 가톨릭 전통(토마스 아퀴나스)에서는 활동과 관상이 모두 그리스도인들의 덕목이지만 하느님과의 관계는 관상을 통해 완성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마리아는 ‘영적 수행’, 마르다는 ‘세속 봉사’를 상징한다고 보고 수도원과 세속 사제직의 역할 분담을 정당화하였습니다.
✅ 종교개혁 이후(개신교 전통/루터 & 칼뱅)에는 마리아의 길을 말씀과 복음 중심으로, 마르다의 길을 인간적 노력과 행위 중심으로 비유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들은 구원의 본질은 말씀과 믿음에 있음을 강조하였지만 ‘마르다의 섬김’을 경시하는 이분법도 비판하였습니다. ,
그런데 현재의 페미니스트 신학은 마르다를 단순히 ‘덜 중요한 인물’로 보는 해석을 비판하면서 두 여성 모두 예수의 제자이며, 가부장제 안에서 역할 갈등을 보여주는 이야기로 해석합니다. 그동안 한국 교회에서 주장한 것처럼 세상일과 영적인 일로 분리하고, 두 여성 사이의 갈등과 대립 관계로 해석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죠. "마르다와 마리아는 당시에 편만해 있던 '차별의 담'을 넘어선 인물로 불평등 사회구조를 변혁하는 선구자였다는 것입니다. 즉 1세기의 남성 중심의 차별사회에 대한 거부와 평등 사회의 선언이 이 이야기의 핵심이란 것이죠. 남성과 여성을 분리하고, 유대 남성들이 접촉해서는 안 된다는 사람들, 곧 죄인들, 이방인들, 여성들과 한 공간에 머물며 교제하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사실 당시의 관습으로 본다면 마르타가 예수의 일행을 초청한 것부터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여자가 먼저 남성들을 집에 초대하고 한 공간에서 머물며 먹고 마시기를 같이한다는 것 자체가 파격이었던 거죠. 이러한 마르다의 행동은 당시 사회제도에 대한 도전이며, 금기를 깨뜨린 일이었습니다. 예수님 또한 여성의 초대에 응함으로써 여성과 남성의 공간 분리를 깨뜨리고 여성의 공간에 들어섭니다. 그러니 예수님과 마르다는 당시 유대인들이 그어놓은 차별의 경계를 허문 동반자라 할 수 있습니다.
마리아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 곁에 앉아 말씀을 듣는 것도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었습니다. 외부 남성들과 한 자리에 함께 있다는 것도 문제인데, 마리아가 말씀을 듣는 자리에 있다는 것은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가르침을 받고 토론하는 행위는 여성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남성만의 전유물이었기 때문이죠. 그러니 마리아의 행위 역시 여성의 사회 활동을 금지시키는 사회구조에 대한 도전이라 하겠습니다.
결국 마르다와 마리아의 행동은 분리와 차별을 넘어 소외와 억압당하는 이들과의 소통을 추구한 것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참 좋은 몫을 택했다’는 예수의 말씀은 둘 중 누가 우월한가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마르다는 섬김의 대표적인 인물로, 마리아는 말씀 배우기의 대표적인 인물로 각기 좋은 것을 택하였다는 격려로 볼수 있는 것이죠.
해방신학은 이 이야기를 사회구조 속에서 두 자매의 역할 갈등으로 해석합니다. 즉 마르다는 당시 사회구조 속에서 전통적인 역할에 순응하는 존재로, 마리아는 차별적 여성의 역할을 거부하고 해방의 길을 선택하는 존재로 봅니다. 마리아를 가부장제 질서 속에서 여성에게 요구된 봉사, 섬김의 역할을 거부하고, 남성 제자들만의 특권이었던 말씀 자리에 앉았다는 것이죠. 그리고 예수님은 마리아의 선택을 지지하면서 여성의 해방을 선언하였다는 겁니다. 그러니 마리아의 선택은 개인을 넘어 사회적 억압을 깨는 신앙적 행동이었으며, 억압받는 이들이 존중받는 평등 공동체로 나아가는 해방의 실천이란 것이죠.
민중신학은 가난한 자, 여성, 소외된 계층의 시선에서 가부장제 사회의 차별과 그 돌파를 보여주는 이야기로 읽습니다. 즉 생존의 고단함을 짊어진 민중으로서의 마르다는 고된 노동 현실속에서 말씀을 듣는 자리(존엄과 자유)를 빼앗긴 존재입니다. 그에 비해 마리아는 사회적 차별과 생존의 고통을 넘어서 해방을 추구하는 인물로 보는 거죠. 그리고 ‘그것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예수의 선언은 사회적 억압에서 해방되어 인간다운 삶을 누리라는 초대로 읽을 수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오늘 우리 현실 속에서 어떤 가르침을 주는 것일까요? 우리 사회에서 시급히 깨뜨려야 할 사회 구조적 장벽은 무엇인가요.
먼저 빈곤의 세습화를 강요하는 불평등한 경제 구조입니다. 가난은 대물림으로 고착되고 있습니다. 자산의 격차는 노력으로 극복하기 어렵죠. 저소득층이 학습, 치료, 안전한 주거에서 배제되는 현실에서 촘촘한 사회 안전망의 구축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기본소득(전국민 100만 원, 청년 200만 원), 기본주택(최소 100만 호 기본주택으로 배정), 기본금융(상한 1000만 원을 10~20년 3% 전후의 저금리 빌릴 수 있는 기본대출과 일반예금보다 높은 금리로 500~1000만 원을 납입할 수 있는 기본저축) 등이 시행되어야 하겠습니다.
두 번째는 차별과 혐오의 문화입니다. 성차별, 장애인과 이주민에 대한 혐오, 청년·노인·비정규직에 대한 무시가 우리 사회의 극우 세력 중심으로 만연해 있습니다. 보수 개신교를 근거지로 삼아 커져가는 차별과 혐오는 예수의 가르침과 정면 배치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법은 있으나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노동법 사각지대에 있는 특수고용직, 이주노동자, 플랫폼 노동자들, 사회복지애서 누락 된 장애·노인·아동·한부모 가정에 대한 정책이 강화되어야 합니다. 난민과 성 소수자 지원에 관한 법과 제도도 시급히 정비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종교와 언론, 정치가 변해야 합니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책임을 통감하고 실천에 나서야 하는 것이죠.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택했다. 그것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예수의 말씀을 잘 새겨야 할 것입니다. 이 말씀은 눈과 귀를 막고 있는 이 땅의 힘을 가진 자들에게 주시는 경고의 말씀인 것이죠,
오늘날 세계는 강자의 상징인 트럼프라는 극우 파시스트에 의해 엉망진창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도 47일 전까지 그런 꼴을 당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약자들을 보호하고 해방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우리가 내란을 극복하며 새로운 민주공화제의 역사을 써나가고 있는 것처럼 이 세계도 그러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한 ‘좋은 몫’은 사회적 기대를 거슬러서라도 하느님 나라에 참여하는 자유를 의미합니다. ‘그것을 빼앗을’ 권리는 그 어느 누구에게도 없는 것이죠. 우리는 마르타와 마리아 이야기를 통해 편견과 차별에 맞서 말씀과 섬김의 사역이 대등하게 실현된 사랑과 평화의 공동체를 향해 함께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꿈꾸며 진리와 그 실천에 힘쓰는 모든 이들에게 주님의 자유와 해방의 은총이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