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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둘레길과후백제*甄萱大王의南固山城과 東固山城 (王城:翼城)기행 ♣
南固山城 億景臺 에서 바라본 僧巖山(중바위산,306m)과 麒麟峰(271m)전경
기린봉(麒麟峰,271m)에서 바라본 아중 저수지와 전면의 묵방산
僧巖山(306)에 있는 左右 날개형태(翼城)東固山城(翼城 甄萱大王,宮)터
지난 1991년 9월 24일에 원광대마백(圓光大馬百)문화연구소 발굴조사팀이 전주시(全州市) 대성동(大聖洞) 산25 동고산성(東固山城)내에서 후백제(後百濟) 견훤대왕(甄萱大王)의 완산에 나라를 세운 것을(完山立都)를 뒷받침해 주는 궁전터가 발견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동고산성(東固山城)은 승암산(僧岩山)의 절벽에 의지하여 서북쪽으로 수구(水口저수지 물구멍)를 뚫었고 기암절벽을 따라 남북으로는 날개모양의 익성(翼城)을 설치한 독특한 형식이라고 하였다.
북쭉 날개의 북익성(北翼城)은 길이 112m, 남쪽 날개의 남익성(南翼城) 길이는 123m에 이른다고 한다. 성(城)안 중앙에는 우물도 있다.
동고산성(東固山城) 명칭은남고산성(南固山城)에 대해 상대적으로 부른 이름이라하였다.
全州,관광객이 전주전체와전주천(全州川)의 맑은물과한옥마을 보려면 승암산(僧岩山)기슭이 최적지라 하였다.
1980년 처음으로 이 산성을 조사할 때 전주성명연화문와당(全州城銘蓮花文瓦當) 기와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는 후백제의 견훤(甄萱)이 완산주(完山州-全州)에 입성하여 후백제를 세운 같은 시기라고 한다.
전주가 후백제의 왕도라는 것은 여러 문헌에 보이지만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史)등 견훤왕(甄萱王)의 전주입도(全州立都)에 관한 사서(史書)의 기록은 있었지만 왕궁성(王宮城)의 위치를 확인할 수 없어 이를 확실히 증명할 수 없었는데 이번 궁전터 발굴로 역사적 사실을 입증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1688년(숙종 14)에 성황사를 이곳으로 옮기면서 쓴 〈성황사중창기〉에 잘 기록되어 있다.
이 성황사는 지금도 성 안에 남아 있다. 1980년의 조사 때 건물터에서 전주성(全州城)이라 새겨진 연꽃무늬 와당(瓦當추녀 끝에 덮는 기와 한 쪽이 등글게 된 것)이 발견됨으로써 그 연대와 성격이 후백제의 왕궁터라는 기록과 부합됨이 밝혀졌다.
원광대(圓光大) 마한백제(馬韓百濟)문화연구소(소장 金三龍박사)에 따르면 전주 동고산성(東固山城)인 후백제(後百濟) 시조인 견훤왕(甄萱王)이 축조한 궁전터는 국내 최대 규모로서 길이는 전면이 84m,측면 폭이 14m의 방대한 규모라 하였다.
이같은 후백제(後百濟) 궁전터는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발굴된 궁전지 가운데 가장 큰 규모로 알려진 평양(平壤)의 고구려(高句麗) 안학궁(安鶴宮)의 전면 11칸 48m의 규모와 남한(南韓)에서 가장 큰 서울 이성산성(二聖山城) C지구 제1호 건물지 전면 17칸 36.2m를 훨씬 능가하는 규모다.
동고산성(東固山城)이 있는 승암산(僧岩山)에는 자만동(滋滿洞지금의 교동校洞)이 있다.
승암산(僧岩山)에는 〈진주처럼 떠오르는 아름다운 달을 본다〉는 기린토월(麒麟吐月)인 기린봉(麒麟峰)이 있는데 이 높고 낮은 산봉우리를 가리켜 오목대(梧木臺), 이목대(梨木臺), 발산(鉢山)이라고 하며 이들이 둘러싼 골짜기를 자만동(滋滿洞)이라고 했다.
자만동(滋滿洞) 이름은 녹엽성음자만지(綠葉成陰子滿枝)의 중국 당(唐)나라 두목(杜牧)의 시(詩)에서 따다 붙인 마을터 이름이라 했다.
두목(杜牧)이 중국 절강성(浙江城) 호주(湖州)를 여행시 한 노파가 열 살 정도의 여자아이를 데리고 있었는데 여자 아이의 얼굴이 너무 예뻐서 10년후에 그 여자아이를 아내로 맞이 하겠다고 약속하면서 10년이 지나도 자신이 찾아오지 않으면 시집을 보내도 좋다고 하였다.
그 후 두목은 자사(刺史지방장관)의 높은 벼슬을 하여 호주(湖州)에 도착하였는데 그 처녀는 이미 혼인을 하여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되어 있었다.
두목이 그녀를 찾아간 것은 14년이 지난 후였기 때문이다.
두목은 이미 늦어버린 그녀와의 인연을 한탄하여 시 한 수를 지었다.
自是尋春去較遲(자시심춘거교지)-봄은 가고 이제야 늦게 찾았으니
不須추篩怨芳時(不須추사원방시)-꽃을 보지 못함을 원망할 수도 없다
狂風落盡深紅色(광풍낙진심홍색)-거센 바람이 짙붉은 꽃을 다 떨구고
綠葉成陰子滿枝(녹엽성음자만지)-푸른 잎그늘 만들어 열매만 가득하다
여기서 〈꽃은 처녀이고 열매는 두 아이를 뜻한다〉
이 골짜기는 전주(全州) 이(李)씨 발상지(發祥地)라 해서 발이산(發李山)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발산이라고 부르는 것은 승암산과 발이산을 넘어서는 형세가 마치 늙은 스님이 나오는 마을인 노승출동(老僧出洞) 같다고 하여 발산(鉢山)이라 전한다.
이 곳 자만동은 이태조(李太祖)의 5대조 목조(穆祖) 이안사(李安社)의 이야기가 전하는데 그가 유년기 때 동산인 바릿대 산에서 마을 아이들과 날마다 어울려 진법(陳法) 놀이를 하며 놀았다고 하는데 그 진법놀이를 한 마루턱에 수 백년 자란 아름드리 괴목이 있었고 후대에 와서 괴목을 장군수(將軍樹)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승암산(僧岩山) 기슭 발산(鉢山)의 깎아지른 절벽에 전주 8경(景)의 하나인 한벽당(寒碧堂) 누각이 있다.
조선의 개국공신이며 집현전 직제학(直提學)을 지낸 조선 초기의 문신 최담(崔霮)이 그의 별장으로 지은 것이다.
한벽당(寒碧堂)아래는 전북 임실군 관촌면 슬치리(瑟峙里)에서 시작하여 만마(萬馬),색장(色長) 등 크고 작은 많은 골짜기의 물과 합류하면서 전주시가지를 관통하여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전주천과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삼천천(남천)의 옥류(玉流)가 합쳐서 흐르고 있다.
옛 문인들은 이 흐르는 물이 벽옥한류(壁玉寒流) 같다고 읊었으며, 한벽청연(寒碧晴煙)이라 하여 전주 8경의 하나로 꼽았다.
한벽당(寒碧堂)의 편액 글씨는 호남의 명필 강암 송성용(剛菴 宋成鏞)선생이 썼다.
한벽당 옆에는 한벽당과 어울리게 세워진 요월대(邀月臺)가 살짝 보이는데
요월대(邀月臺)는 달을 맞이하는 높은 누각이라는 뜻이다.
이 편액의 글씨는 석전 황욱(石田 黃旭) 선생이 썼다.
전주천의 깎아지른 절벽위의 한벽당(寒碧堂) 풍치에 많은 시인, 묵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여 그들이 읊었던 시가 많이 전해 오고 있다.
그중 고려시대의 문신 주열(朱悅)은 차마 한벽당을 그대로 떠날 수 없어 아래와 같이 노래한다.
한벽루(寒碧樓)
水光澄澄鏡非鏡(수광징징경비경)-물빛 맑아 거울이 거울 아니고
山氣靄靄煙非煙(산기애애연비연)-산기운 자욱하여 연기가 연기 아니다
寒碧桐凝作一縣(한벽동응작일현)-한벽루 오동나무에 서린 한 고을
淸風萬古無人傳(청풍만고무인전)-만고의 청풍을 전하는 이 하나 없네!
주열(朱悅)
벽옥한류(壁玉寒流)는 바위벽에 부딪치는 옥 같은 물보라가 시리도록 차갑다는 뜻이고 한벽청연(寒碧晴煙)은 한벽당 아래로 흐르는 물속에 피어나는 물안개와 무지개 같다는 뜻이다.
이 두글은 한벽(寒碧)과 청연(晴煙) 대구(對句)로 사용한 글로 볼 수 있다.
처음에는 한벽당(寒碧堂)을 최담의 호인 월당(月塘)을 따서 월당루(月塘樓)라고 불렀다는데언제부터 한벽당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한다.
전주시 교동에는 호남의 명필이며 현재 전주시장인 송하진씨의 아버지인 강암 송성용의 집인 아석재(我石齋)가 있다. 이 아석재 앞으로 전주천이 흐르는데 정면에 길다란 모양의 청연루(晴煙樓)가 있다.
이 누각의 현판도 강암 송성용(剛菴 宋成鏞)선생이 썼다.
오늘의 산행 지도 *적색 스캐너 라인*
※산행코스:전주 평화동, 완산여고-학소암-학산(鶴山,330m)-보광재(280m)-흑석산(387m)-남고산성-
북장대(北將臺) -억경대-좁은목-승암사-치명자산(천주교 순교성지)-승암산(僧巖山:중바위산,306m)-
동고산성(翼城王城地)-기린봉(麒麟峰,271m)-마당재-아중리-전주한옥마을-풍남문(湖南第一城,豊南門)
※산행거리:13.4km ※ 산행시간:6시간
오늘의 산행출발지 완산여고 앞에서 본 학산 제1봉과 평화동 아파트 단지(아래)
학산(鶴山,330m)가는길에 학소암 전경
학산 가는길에 본 모악지맥(母岳山,783.4m)과 김제의 구성산
평화동 아파트와 중인들녁넘어 전주둘레산 둘레강 모습
학산에서 바라본남고산성,기린봉넘어 전북 알프스, 종남산과서방산. 서래봉 능선
학산에서 바라본 호남정맥 만덕산과 전주지맥 고덕산(高德山,603.2m)
학산의 생태 복원지 모습
학산의 보광재(280m)*완주 상하보와 전주 싸전시장(남부시장)*을 넘나들던 재(峙)
흑석산(387m봉)에있는 전주지맥 고덕산과 견훤대왕 남고산성가는 이정표
南固山城(견훤대왕성터)가는길의 엄지바위 쉼터~
남고산성 북장대(北將臺)가는 길의 이정표
전주韓屋마을 녹색 둘레길 이정표
남고산성 둘레길의 성터*현재 복원중*
남고산성 둘레길 의 나무계단과 성터 복원 모습
전주 한옥마을지그재그 길에 올라 뒤돌아본 전주지맥 고덕산(603.2m)과 흑석산(387m)봉
견훤대왕 남고산성 길~
남고산성에 겨울 北風 寒雪을 견디고 핀 쑥부쟁이꽃
甄萱大王 南固山城의 北將臺
남고산성의 둘레도(圖)
남고산성 억경대(億景臺)가는 성터길~
천년 전주 마실길 남고산성 억경대 모습
억경대서의 확트인 시내전역 조망
억경대에서 가야할 견훤대왕 성터 둘레길 전면의 승암산과 동고 산성, 기린봉 능선
남고산성에서 동고산성가는 암릉에서 본 조선건국의 얼이 서린 한벽루와 오목대
확트인 전주시내조망과 전주를 가로 지르는 전주천(全州川)모습
전주옛 천년 둘레길(全州,千年 古路)과 동고산성(東固山城) *제2편*
좁은목 가는 길에 있는 견훤대왕과 남고산성 설명문
전주의관문(關門)이자 요새였던 좁은목*이정란 장군의 의병 활동.분투하신곳임*
남고산성에서 좁은목으로 내려오는 둘레길 탐방로~
전주천과 좁은목의 오목대
좁은목과 전주천(全州川)
좁은목에서 전면의 승암사(僧巖寺) 와 천주교성지, 승암산(僧巖山:중바위산,306m)전경
승암사 모습
천주교 성지(치명자산)*천주교박해로 순교한 동정부부등신도를 聖地화해서 부른이름*
승암산(僧巖山)을 성지화한 치명자(致命者)산
치명자산의 순교자 묘지*순교자묘지는돌맹이 박해로 중바위 돌무덤사이에있음*
승암산가는길 치명자산에서본 한벽루와 오목대,전주시내~
치명자산 순교자 묘지옆에 핀 동백꽃
천주교 성지와 철모르고(철부지) 핀 노랑개나리꽃
순교자 묘지와 예수의 두형(頭形)모습
황금색의 예수 頭形* 치명자산에는고난의 이형상 을 신성시합니다*
승암산 오르는 암릉에서 뒤돌아 바라본 좁은목 전주천과 억경대 능선
승암산의 암릉 등산로
승암산 암릉길에서 바라본 마제봉(502m ,402m봉)
승암산 가는길에 바라본 전주지맥 고덕산(603.2m)과 영동.고덕(신리)
황금색바위 승암산암릉 등산로~
승암산(僧巖山 :중바위산,306m)에서 바라본 조망
승암산암릉거쳐 가야할 동고 산성(甄萱大王 翼城) 능선
승암산에서 동고산성 견훤대왕 익성궁터가는길에본 기린봉(271m)전경
전주 둘레길 麒麟吐月(기린봉,271m) 수놓는 湖南第一城 豊南門과 全州韓屋村*제3편*
승암산지나 기린봉(271m)과 마재봉(502m)갈림길 松林의 쉼터
승암산지나 기린봉 가는길에본 전면의 호남정맥 만덕산 능선과 좌측 전주지맥 고덕산
동고산성 견훤대왕(翼城王宮)궁터가는길"삶에게 길을 묻다"
견훤대왕 동고산성 (翼城 王宮) 터 모습
동고산성 지나 기린봉 가는길에 바라본 묵방산(530m)모습
전주 기린봉(271m)*麒麟吐月으로 유명한 기린봉 모습*
기린봉에서 전주시내와 모악산 석양을 뒷배경 삼아~
기린봉에서 바라본 夕陽의 母岳山 풍경
기린봉에서 바라본 아중저수지와 묵방산(530m)전경
기린봉에서 지나온 동고산성터와 승암산 넘어 저멀리전주지맥 고덕산
"자연은 살아있다" 기린봉의 짓바귀새의 모습
기린봉 짓바귀새의 나무를쪼아 벌래를 잡는 풍경
기린봉에서 마당재가는길의 팔각정 전망 쉼터~
기린공원 쉼터~
千年古都 全州 東門 삼거리와 노거수 느티나무~
전주 전통한옥마을(韓屋村)
전주한옥마을 의 녹두장군 전봉준의 동학혁명 전시관
전주 한옥마을 거리와 대로(大路)넘어 麒麟吐月의불켜진 麒麟峰모습
전통 한옥마을(韓屋村)모습
전통한옥마을 거리의 전동 성당 모습
☞전동성당은로마네스크풍으로 사적 제288호로 지정된곳이며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이 순교한곳으로 유명하며,현건물
모습으로는 1908년착공 1931년 완공한곳으로전주 천주교도의 자랑과 사랑을 받는곳으로 전통과 유서깊은 성당이다*
오늘의 둘레끝 韓屋村, 湖南第一城 豊南門과夜景
☞호남제일문 풍남문은 보물 제308호로 지정되었고 조선초기 도 관찰사 최유경이 설립한곳으로 1734년 조선중엽 明見樓記에 기록됨
첫댓글 내고장 전주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곳을 소개하여 주셨네요. ^^*
가까이에 숨은 명소가 있는데도 굳이 멀리 갈려구 하는 이유는...? ㅎ
예전엔 전주천에 흐르는 한벽루 근처에 오모가리 매운탕을 하는 곳이 많아서 가끔씩 찾곤했었는데...
지금은 물고기들이 다 어디로 숨어버렸는지 안타까움 심정입니다.
추워진 느낌의 휴일 아침에 행복한 느낌으로 다녀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