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렇다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넣지 않았더냐?>
✠ 하느님의 어린양 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착함과 충실한 종
그때에 11 예수님께서는 비유 하나를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신 데다,
사람들이 하느님의 나라가 당장 나타나는 줄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2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어떤 귀족이 왕권을 받아 오려고 먼 고장으로 떠나게 되었다.
13 그래서 그는 종 열 사람을 불러 열 미나를 나누어 주며,
‘내가 올 때까지 벌이를 하여라.’ 하고 그들에게 일렀다.
14 그런데 그 나라 백성은 그를 미워하고 있었으므로 사절을 뒤따라 보내어,
‘저희는 이 사람이 저희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하고 말하게 하였다.
15 그러나 그는 왕권을 받고 돌아와,
자기가 돈을 준 종들이 벌이를 얼마나 하였는지 알아볼 생각으로
그들을 불러오라고 분부하였다.
16 첫째 종이 들어와서,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로 열 미나를 벌어들였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7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한 종아! 네가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한을 가져라.’
18 그다음에 둘째 종이 와서,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로 다섯 미나를 만들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9 주인은 그에게도 일렀다. ‘너도 다섯 고을을 다스려라.’
20 그런데 다른 종은 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수건에 싸서 보관해 두었습니다.
21 주인님께서 냉혹하신 분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시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시기에,
저는 주인님이 두려웠습니다.’
22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나는 네 입에서 나온 말로 너를 심판한다.
내가 냉혹한 사람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23 그렇다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넣지 않았더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되찾았을 것이다.’
24 그러고 나서 곁에 있는 이들에게 일렀다.
‘저자에게서 그 한 미나를 빼앗아 열 미나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25 ─ 그러자 그들이 주인에게 말하였다.
‘주인님, 저이는 열 미나나 가지고 있습니다.’ ─
26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27 그리고 내가 저희들의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은 그 원수들을
이리 끌어다가, 내 앞에서 처형하여라.’”
28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앞장서서 예루살렘으로 오르는 길을 걸어가셨다.
루카 19,11ㄴ-28
연중 제33주간 수요일
서울 중앙청 뒤에 효자동이라고 하는 동네가 있습니다. 이 동네를 효자동이라고 부르게 된 유래가 있습니다. 어떤 할아버지가 실수로 손자를 이불 밑에 깔아 죽였습니다. 할아버지는 자기 이부자리를 개어 놓는다는 것이 잠자고 있던 손자위에 쌓아 놓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아이는 그만 잠시 뒤 코가 막혀서 숨이 끊기고 말았습니다.
숨진 아이를 발견한 아이의 어머니는 기가 막혔습니다. 그러나 행여 늙으신 시아버지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충격을 받지 않을까 염려해서, 시아버지 몰래 아이를 안고 가만히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남편에게 그 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죽은 아이를 보고 “이런 불효자식이 있니? 하필이면 왜 거기서 자가지고 할아버지 마음을 아프시게 만들다니, 에이 못된 놈 같은 이라고!”
이렇게 화를 내면서 아이의 뺨을 후려 갈겼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뺨을 맞는 순간 아이가 눈을 번쩍 뜬 것입니다. 살아난 것입니다. 이런 사실이 입에 입을 통해서 이웃에게 알려졌고, 드디어는 임금님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임금님은 자식의 죽음보다도 아버지의 건강을 더 걱정한 이 아들의 효성을 가상히 여겨, 그에게 큰 상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사는 동네 이름을 ‘효자동’이라 붙여주면서 백성들로 하여금 그의 효성을 본받도록 하게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물질적 봉양보다 더 큰 효도는 부모의 마음을 편하고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효도는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낳아준 부모에 대한 당연한 도리입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를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하고 또 당신 죽음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려야 함은 너무나 당연한 도리일 것입니다. 그래서 미사를, 특별히 성체성사를 ‘에우카리스티아’, 즉 ‘감사’라는 단어로 지칭하고, 성찬례를 시작할 때 ‘감사송’을 바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예배는 하느님의 마음을 기쁘고 즐겁게 해 드리는 목적이 가장 크고 그렇게 감사할 줄 아는 당신 자녀들을 하느님께서는 더욱 사랑하시기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께서 구원해 주신 것에 대한 진정한 찬미와 감사를 드리고 있을까요? 오늘 독서에서 요한은 하늘에서 주님을 찬미하는 이들을 환시로 봅니다. 하늘에 있는 모든 이들은 밤낮 쉬지 않고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를 외칩니다. 우리도 지치지 않고 주님을 찬미해야합니다. 그리고 네 생물(사자, 황소, 사람, 독수리)은 자신들이 쓰고 있던 ‘금관’을 하느님의 어좌 앞에 던지며 엎드려 주님을 찬미합니다.
자신들이 쓰고 있던 금관을 던진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금은 귀한 금속으로 특별히 ‘왕’을 상징합니다. 게다가 금으로 된 왕관은 왕의 권위를 나타냅니다. 드러나 하느님 앞에서는 그 왕관을 던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는 자신을 버리는 순종의 표시입니다.
그렇습니다. 순종이 그 어떤 예배보다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 비유에서 성전에서 예배를 위해 봉사하는 사제와 레위인은 아픈 사람을 지나쳐 예배드리러 갔습니다. 그렇지만 사마리아 사람은 성전 예배에는 가지 않았지만 죽어가는 이웃을 치료해주었기에 하느님의 마음을 가장 기쁘게 해 드린 사람입니다. 예배는 바로 이웃사랑의 실천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닌 이기적인 마음으로 아무리 전례에 참석하더라도 하느님은 절대 그 예배에 기뻐하실 리가 없습니다.
마더 데레사가 길거리 쓰러진 이를 안고 음식을 주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이 광경을 지켜보며 데레사를 칭송했습니다. 그러나 데레사 수녀는 자신은 칭송받을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하며 자신이 하는 행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저는 지금 주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 또한 이웃을 그렇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이웃사랑의 계명에 순종하는 삶으로 찬미를 드릴 때 그분은 우리 예배를 즐겨 받으실 것입니다.(전삼용 신부님 「참된 예배」에서)
*********
조명연 신부님 글 드립니다~~~
「안일한 마음 몰아내기.」
어떤 할아버지가 감독하는 가운데, 한 젊은이가 높은 나무에 올라가서 나무 가지를 자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위험할 만큼 높이 올라가 있을 때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일을 다 끝내서 거의 내려왔을 때 “잘못 디디지 말고, 주의해서 내려오게.”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젊은이는 “위험한 높이에 있을 때에는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시다가, 그냥 뛰어내려도 아무런 상관이 없을 높이에 이르러서야 그런 말씀을 하세요?”라고 웃으며 물었지요. 그러자 이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지가 휘청거리고 눈앞에 아찔할 때는 누구나 스스로 조심하니까 말할 필요가 없지. 그런데 실수란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길 때 일어나기 마련이거든.”
이 이야기가 크게 와 닿습니다. 아마 운전하시는 분들은 이런 경험들을 한 두 번은 하셨지 않을까 싶네요. 초보 운전 때에는 사고가 잘 나지 않습니다. 운전이 미숙하기 때문에 그만큼 조심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주로 사고가 날 때는 언제라고 해요? 이제 운전이 익숙해지면서 여유가 생길 때입니다.
안일한 마음이 사고도 불러일으키는 법이지요. 신앙인들도 이렇게 안일한 마음을 품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바로 어느 정도의 신앙심을 갖추었다고 생각될 때입니다. 이때는 사랑보다는 판단하고 단죄하는데 더 익숙해지는 것 같습니다. 과연 이런 모습을 주님께서 좋아하실까요?
주님께서 좋아하실 모습은, 안일한 신앙인의 모습이 아니라 당신께 항상 충실한 모습. 사랑의 실천에 너그러운 우리의 모습입니다.
***<남에게 선행을 하는 것은 의무가 아니라 기쁨이다. 그것은 그렇게 하는 사람의 건강과 행복을 증진시킨다(조로 아스터).>
연중 제33주간 수요일
잘하였다, 착한 종아!
네가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한을 가져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루가 19,11-28)
『良い僕だ。よくやった。
お前はごく小さな事に忠実だったから、
十の町の支配権を授けよう。』
言っておくが、だれでも持っている人は、
更に与えられるが、持っていない人は、
持っているものまでも取り上げられる。
(ルカ19・11-28)
Well done, good servant!
You have been faithful in this very small matter;
take charge of ten cities.
‘I tell you,
to everyone who has, more will be given,
but from the one who has not,
even what he has will be taken away.’
(Lk 19:11-28)
年間第33水曜日
잘하였다, 착한 종아!
チャラヨッタ、チャカン ゾンア!
네가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ネガ アジュ チャグン イレ ソンシル ハヨッスニ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한을 가져라.
ヨル コウル タスリヌン コナヌル カジョラ。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루가 19,11-28)
『良い僕だ。よくやった。
요이 시모베다 요쿠 얏타
お前はごく小さな事に忠実だったから、
오마에와 고쿠 치이사나 코토니 추우지츠닷타카라
十の町の支配権を授けよう。』
주우노 마치노 시하이켄오 사즈케요오
言っておくが、だれでも持っている人は、
更に与えられるが、持っていない人は、
持っているものまでも取り上げられる。
(ルカ19・11-28)
Well done, good servant!
You have been faithful in this very small matter;
take charge of ten cities.
‘I tell you,
to everyone who has, more will be given,
but from the one who has not,
even what he has will be taken away.’
(Lk 19:11-28)
Wednesday of the Thirty-third Week in Ordinary Time
Lk 19:11-28
While people were listening to Jesus speak,
he proceeded to tell a parable because he was near Jerusalem
and they thought that the Kingdom of God
would appear there immediately.
So he said,
“A nobleman went off to a distant country
to obtain the kingship for himself and then to return.
He called ten of his servants and gave them ten gold coins
and told them, ‘Engage in trade with these until I return.’
His fellow citizens, however, despised him
and sent a delegation after him to announce,
‘We do not want this man to be our king.’
But when he returned after obtaining the kingship,
he had the servants called, to whom he had given the money,
to learn what they had gained by trading.
The first came forward and said,
‘Sir, your gold coin has earned ten additional ones.’
He replied, ‘Well done, good servant!
You have been faithful in this very small matter;
take charge of ten cities.’
Then the second came and reported,
‘Your gold coin, sir, has earned five more.’
And to this servant too he said,
‘You, take charge of five cities.’
Then the other servant came and said,
‘Sir, here is your gold coin;
I kept it stored away in a handkerchief,
for I was afraid of you, because you are a demanding man;
you take up what you did not lay down
and you harvest what you did not plant.’
He said to him,
‘With your own words I shall condemn you,
you wicked servant.
You knew I was a demanding man,
taking up what I did not lay down
and harvesting what I did not plant;
why did you not put my money in a bank?
Then on my return I would have collected it with interest.’
And to those standing by he said,
‘Take the gold coin from him
and give it to the servant who has ten.’
But they said to him,
‘Sir, he has ten gold coins.’
He replied, ‘I tell you,
to everyone who has, more will be given,
but from the one who has not,
even what he has will be taken away.
Now as for those enemies of mine who did not want me as their king,
bring them here and slay them before me.’”
After he had said this,
he proceeded on his journey up to Jerusalem.
2024-11-20「ではなぜ、わたしの金を銀行に預けなかったのか。」
+神をたたえよう。神は偉大、すべては神に造られた。
おはようございます。
今日は年間第33水曜日です。
慈しみ深い主・イエス・キリストと明けの星聖母マリア、聖母の配偶者聖ヨゼフ、諸聖人の大いなる祝福がありますように!
また、大天使とすべての天使、私たちの守護の天使が今日も皆さまを見守り平和でありますようお祈りします。
*********
ルカによる福音
<ではなぜ、わたしの金を銀行に預けなかったのか。>
ルカによる福音
そのとき、イエスは19・11一つのたとえを話された。エルサレムに近づいておられ、それに、人々が神の国はすぐにも現れるものと思っていたからである。12イエスは言われた。「ある立派な家柄の人が、王の位を受けて帰るために、遠い国へ旅立つことになった。13そこで彼は、十人の僕を呼んで十ムナの金を渡し、『わたしが帰って来るまで、これで商売をしなさい』と言った。14しかし、国民は彼を憎んでいたので、後から使者を送り、『我々はこの人を王にいただきたくない』と言わせた。15さて、彼は王の位を受けて帰って来ると、金を渡しておいた僕を呼んで来させ、どれだけ利益を上げたかを知ろうとした。16最初の者が進み出て、『御主人様、あなたの一ムナで十ムナもうけました』と言った。17主人は言った。『良い僕だ。よくやった。お前はごく小さな事に忠実だったから、十の町の支配権を授けよう。』18二番目の者が来て、『御主人様、あなたの一ムナで五ムナ稼ぎました』と言った。19主人は、『お前は五つの町を治めよ』と言った。20また、ほかの者が来て言った。『御主人様、これがあなたの一ムナです。布に包んでしまっておきました。21あなたは預けないものも取り立て、蒔かないものも刈り取られる厳しい方なので、恐ろしかったのです。』22主人は言った。『悪い僕だ。その言葉のゆえにお前を裁こう。わたしが預けなかったものも取り立て、蒔かなかったものも刈り取る厳しい人間だと知っていたのか。23ではなぜ、わたしの金を銀行に預けなかったのか。そうしておけば、帰って来たとき、利息付きでそれを受け取れたのに。』24そして、そばに立っていた人々に言った。『その一ムナをこの男から取り上げて、十ムナ持っている者に与えよ。』25僕たちが、『御主人様、あの人は既に十ムナ持っています』と言うと、26主人は言った。『言っておくが、だれでも持っている人は、更に与えられるが、持っていない人は、持っているものまでも取り上げられる。27ところで、わたしが王になるのを望まなかったあの敵どもを、ここに引き出して、わたしの目の前で打ち殺せ。』」
28イエスはこのように話してから、先に立って進み、エルサレムに上って行かれた。(ルカ19・11-28)
*********
チョン・サンヨン神父様の黙想文「真の礼拝」です。
昔からソウルの中央省のすぐ裏に「孝子町」と呼ばれる小さな村がありました。この村に「孝子」との名前がついた由来には、悲しい物語が隠されています。
ある日、年老いたおじいさんが孫の寝ている間に、うっかりその上に布団をかけてしまいました。すると、何とお孫さんは布団の下で窒息してしまったのです。おじいさんは自分の布団を整えようとしただけで、まさかそんな悲劇が起こるとは思いもしませんでした。
お孫さんの死を知ったお母さんは衝撃を受け、けれどもおじいさんがこの事実を知れば心を痛めることを心配して、ひっそりと外へ出て夫に全てを話しました。すると夫は息子の死を見て、「なんて不孝な子だ、どうしてそこで寝たのか、祖父を悲しませてしまうなんて!」と怒りながら子供の頬を強く殴りました。
彼がそうしていると、驚くことに息子は目をぱっちり開いて生き返ったのです。この噂は村中に広まり、ついには王様の耳にも届きました。王様は、子を失った悲しみよりも父親の健康を心配したこの息子の孝行を称賛し、大きなご褒美を与えました。そして、彼の住む村に「孝子町」と名付け、村人たちにも彼の孝行を手本にするように促しました。
物質的な世話よりも大切なのは、親の心を楽しく、嬉しくしてあげることだと言われていました。孝行とはしてもしなくても良いものではなく、育ててくれた親に対する当然の義務です。
私たちも、この世に存在させ、私たちを救ってくださった神様に感謝の礼拝を捧げるのが自然なことです。だからミサ、特に聖体礼拝を「感謝」という意味の「エウカリスティア」と呼ぶのです。礼拝は神様の心を喜ばせる最も大切な目的があり、神様は感謝する心を持つ私たちをさらに愛してくださいます。
しかし、私たちは本当に主の救いに感謝し、讃美しているのでしょうか?今日の第一朗読の使徒ヨハネは天で主を讃美している者たちの幻を見ました。天にいるすべての者たちは昼夜を問わず「聖なるかな、聖なるかな、聖なるかな」と叫んでいます。私たちも力を尽くして主を讃美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そして四つの生き物(獅子、若い雄牛、人間、鷲)は、自分たちの金の冠を神の玉座の前に投げ出し、ひざまずいて主を讃美します。
金の冠を投げることは、何を意味するのでしょうか?金は貴重な金属で、特に「王」を象徴します。また、金の冠は王の威厳を示しています。神の前に立つと、その王冠を捨てざるを得ないのです。これは自分を捨てる従順の印です。
そうです。従順こそが、神を喜ばせるもっとも重要なことです。善いサマリア人のたとえ話では、神殿で礼拝をしている祭司やレビ人が、病人を見捨てて礼拝に行きました。しかし、サマリア人は神殿の礼拝には行かなかったけれども、死にかけている隣人を助けたため、神様を最も喜ばせた人なのです。礼拝はまさに隣人愛の実践が前提でなければなりません。自己中心的な気持ちで礼拝に参加しても、神様はそのような礼拝を喜ばれることはありません。
マザーデレサは、道端で倒れている人を抱きしめ、食べ物を与えていました。人々はその光景を見てデレサを称賛しました。しかし、シスターデレサは、「私は何も褒められるべきではない」と言い、自分がしていることについてこう語ったそうです。
「私は今、主に礼拝しています。」
神への礼拝は、キリストが私たちを愛してくださったように、私たちも隣人を愛することです。そのように隣人愛の掟に従って生きることで、神様は私たちの礼拝を喜んで受け取ってくださるでしょう。
********
隣人愛の実践で真の礼拝をし、十ムナをお返しすることができますように聖霊、きてくださ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