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감리교회 주일가정예배
2021년 8월 8일
신앙고백 ‥‥‥‥‥‥‥‥‥‥ 사도신경 / 다같이
찬 송 ‥‥‥‥‥‥‥‥‥‥ 95장(나의 기쁨 나의 소망) / 다같이
공동기도 ‥‥‥‥‥‥‥‥‥‥ 다같이
주님!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창세 전에 저희들을 계획하시고, 권능으로 다스리시며,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시니 이 시간 저희들이 진심을 다해 주 예수님을 예배합니다. 주님! 저희들의 실상은 거짓되고 악하며, 마음과 말과 행동으로 생명을 죽이기까지 합니다. 저희들의 죄악을 낱낱이 고백하오니 십자가 보혈의 피로 용서하여 주옵소서. 정결케 된 저희들의 영혼에 성령과 말씀을 채워주시사,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가득히 품고 누구에게나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소서.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인하여 장기간 대혼란을 겪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계속 확산 속에 있어서 오늘도 비대면예배로 드리고 있습니다. 주여! 저희들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정치는 불신으로, 경제는 엉망으로, 사람과의 관계는 멀어지고만 있으니 이를 어쩌면 좋겠습니까? 주여! 능력으로 역사하여 주옵소서. 크신 능력으로 저희들을 구원하여 주옵소서. 주님, 저희 동문교회가 내부리모델링을 하고 있습니다. 온 성도들이 한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사오니 이 모든 일들이 사람의 일이 아닌 하나님의 일이 될 줄 믿습니다. 모든 과정을 인도하여 주시옵고, 아름다운 성전으로 지어지게 하옵소서. 날씨가 너무 덥습니다. 수고하는 모든 이들에게 은혜를 더하사 안전사고 없이 아름답게 지어지게 하옵소서. 코로나 기간에 모든 성도님들을 지켜 주시옵고, 하루 속히 해결되어 대면예배로 들어갈 있도록 인도하옵소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성경봉독 ‥‥‥‥‥‥‥‥‥‥ 누가복음 18:31–19:10 / 다같이 교독
설 교 ‥‥‥‥‥‥‥‥‥‥ <영안이 열리어 주님을 보게 하소서> / 인도자
할렐루야! 사랑하고 축복하고 존경합니다. 계속 코로나로 인하여 비대면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하루속히 이 전염병이 떠나가며, 성도들의 가정에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함께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모습을 그린 성화 중에 예수님이 아주 크게 웃으시는 모습을 그린 것을 보신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어느 교회는 교회 벽에 대문짝만하게 그려놓기도 하고, 어느 교회는 교패에도 이 그림을 넣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이 그림 예수님 맞나요?” 이렇게 물어보면 다들 대답을 못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예수님이 ‘웃으셨다’ 이런 구절을 찾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대신 예수님이 ‘우셨다’는 구절은 두 번 찾아볼 수 있습니다.
①요한복음 11: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 이 구절은 기네스북에 오른 성경의 가장 짧은 구절이기도 합니다.
②누가복음 19:41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①번은 사랑하시는 제자 나사로가 죽었을 때 흘리신 눈물이고, ②번은 예루살렘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무너질 것을 예언하시면서 모든 염려와 걱정을 눈물로 표현하셨던 것입니다. 눈물은 진정성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생명사랑에 진심을 가지셨고 생명이 죽어나가는 모습에 격하게 애통하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웃지 않으셨을까? 아무리 보아도 성경에서 예수님이 웃으셨다는 구절은 없지만 늘 웃으시는 모습이 아니었을까?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어느 영성연구자의 글입니다. “예수님의 영성은 축제 생활의 영성으로서 주님의 얼굴 모습은 호탕하게 웃으시는 모습이셨으리라 짐작된다. 예수님의 영성은 ‘복음의 삶’이 영성이며, 현재 지금 여기에서 천국의 삶을 사는 능력임을 보여주셨다.”
성경으로 돌아가서 먼저 성부 하나님이 웃으셨을 것 같은 장면을 뽑아 보겠습니다.
창조 때
창세기 1:31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날이니라
택한 백성을 보고 사랑하시면서
신명기 10:15 여호와께서 오직 네 열조를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사 그 후손 너희를 만민 중에서 택하셨음이 오늘날과 같으니라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왔을 때
에스겔 33:11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그러고 보니 성자 예수님도 크게 웃으시는 장면을 유추해 볼 수 있겠습니다.
누가복음 15: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누가복음 10:17-21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모든 구절을 종합해볼 때, 성삼위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실 때가 언제냐면, 자녀 된 우리가 구원 받고 악한 세력과 싸워 이기는 자 열매 맺는 자가 될 때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늘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앙망하지만 하나님은 땅에 관심이 많으십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내려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길 원하시며, 나아가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고 주님을 모시어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을 가장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누가복음 19장의 삭개오의 집에서 예수님은 아마도 한바탕 크게 웃으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예수께서 껄껄 웃으시는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유대 동족들에게 멸시천대 받던 삭개오가 구원받았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기쁘셨던지 “오늘 네 집에서 하룻밤을 묵겠다”고 하셨습니다.
19장 5절, 9-10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이 하나님의 기쁨이 될 때는 소유의 많고 적음과 관계없이 항상 행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듯이, 하나님을 떠나서 추구하는 모든 것은 결국은 헛되고 허무한 인생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남보다 훨씬 키가 작아서 평생 놀림을 받았던 삭개오가 선택한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돈이나 벌자”였습니다. 남의 것을 악착같이 착취하여 재산을 쌓았습니다. 세리장이라는 자리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그 팀에서는 우두머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항상 죄스럽고, 남의 손가락질 받는 직업으로 말미암아 받는 상처는 돈으로도 어쩔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들이 떠난 자리는 무엇이라도 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삭개오에게 극적인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이 자기 동네에 들어오신다는 것입니다. 인생에 대한 회의와 상처로 얼룩진 삭개오에게 구원의 기회가 찾아온 것입니다.
1.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려고 나무에 올랐습니다.(19:4)
삭개오는 원래 키가 작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기회가 왔지만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이 적었습니다. 체면 때문에, 남들의 눈 때문에 교회에 못 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세리장은 아무나 합니까? 아무도 삭개오의 나이는 4-50대 이상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앞에서는 어린아이가 되어야 합니다. 아이가 아빠 품에 안기듯이, 엄마에게 젖 달라고 보채듯이 체면이고 뭐고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주님을 만나려면 지붕도 뚫을 심정이 있어야 합니다. 삭개오는 구원이 갈급하여 체면불구하고 돌무화과나무에라도 오른 것입니다.
2. 예수님을 보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무엇이 보였을까요? 삭개오가 돌무화과 나무에 오르니 눈이 열려 예수님이 보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영적 삶으로 들어가려면 눈이 열려야 합니다. 이것을 영안(靈眼)이라고 말합니다. 18장 31-33절에 예수께서는 3차 수난예고를 하십니다. 이미 9장에서 두 번 수난을 예고하시고 세 번째 십자가에서 수난받고 죽으실 것을 말씀하셨으나 이 말씀을 깨닫는 제자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35절 이후에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신 것입니다. 제자들보고 “눈이 열리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말씀을 깨달으려면 무엇보다 삭개오처럼 눈이 열려서 예수님의 본체가 보여야 합니다. 바울이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러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사도행전 22:11 나는 그 빛의 광채로 말미암아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갔노라
이때 주님은 바울의 눈을 보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메섹으로 가서 아나니아의 안수를 받고는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6: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바울의 영안이 열린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영안이 열려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아야 하고, 듣지 못하는 것을 들어야 합니다. 이 깊은 영의 세계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세계를 보는 영안이 열리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3. 삭개오 보고 내려오라고 하십니다.(19:4-5)
영안이 열리지 않았다면 가끔씩 하늘을 보십시오. 이런 연습이 필요합니다. 5절에 예수께서 삭개오를 쳐다보았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영안이 열리길 소원하며 간절히 기도하는 당신을 이미 주님은 다 보고 계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려 할 때, 주님은 다 아시고 주님의 본체를 보여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마음을 알게 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삭개오 보고 내려오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존재의 깊은 심연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두리번두리번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라오디게아교회는 문을 걸어 잠가 예수님을 모시지 않고 인간적으로 교회를 운영해 나갔다고 합니다. 그때에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서 서서 문을 두드린다. 누구든지 내 음성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마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삭개오가 마음의 문을 여니까 주님이 그 안에 들어왔고 이제 삭개오는 예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안목이 열리고 이제 역동적인 구원이 일어난 것입니다. 할렐루야!
4. 예수께서 크게 웃으시다(19:9-10)
18장 25절에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했습니다. 오늘 삭개오는 이 바늘귀를 통과한 것입니다. 주님이 얼마나 기뻤을까요? 우리도 영안이 열리어 주님의 영광을 보며, 주님의 기쁨이 되길 원합니다.
히브리서 2:9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눈이 열리어 십자가에 죽으시고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님을 보기 원합니다. 예수님을 보기만 해도, 주님의 말씀을 듣기만 해도, 삭개오처럼 주님을 내 집(마음)에 모실 수밖에 없으며 변화를 받아 바늘귀를 통과할 줄 믿습니다.
코로나로 말미암아 모두가 고통받는 애통의 시대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흑암의 시대입니다. 이럴수록 우리의 영안이 열리어 주 예수님을 보기 원합니다. 영적인 눈이 뜨여 살아계신 예수님이 보여지기 원합니다. 주님은 우리와 같이 애통하고 계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를 보호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한삼서 1:2) 영의 눈이 뜨여 삭개오가 바늘귀를 통과하듯, 우리의 영안이 열리어 영적 질서를 잡아간다면 이 어둠의 시대가 속히 통과되리라 믿습니다.✞
헌금찬송 ‥‥‥‥‥‥‥‥‥‥ 515장(눈을 들어 하늘 보라) / 다같이
헌금기도 ‥‥‥‥‥‥‥‥‥‥ 이연희 권사
주 기 도 ‥‥‥‥‥‥‥‥‥‥ 다같이 - 내 사랑의 교회 동문감리교회(2021년 8월 8일 주일가정예배) -
유튜브 생중계 – 동문감리교회 / 헌금계좌 농협 351-1012-0622-63(동문교회) 문의:재무부장(010-8221-7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