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일 : 2024년 3월 16일
첫번째 순례지
연풍순교성지 [성지]
천주교 연풍순교성지는
조선 정조 15년(1791) 신해교난 이후 연풍 땅에 은거하여
신앙을 지켜가던 교인 추순옥, 이윤일, 김병숙, 김말당, 김마루 등이
순조 1년(1801) 신유교난 때 처형당한 자리로,
1974년부터 천주교회에서 성역화한 곳이다.
성지 내에는 연풍향청 건물과
야외중앙제대(순교터)에 높이 8.5m의 십자가상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한국천주교 103 성인의 한 사람인 루까 황석두의 입상과 묘가 있다.
순조 13년(1813) 연풍현 병방골에서 태어난 황석두 성인은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후 일생을 종교에 헌신하다
병인박해 때 다블뤼주교, 오메트르신부, 위앵신부, 장주기 회장과 함께
충청도 갈매못에서 군문효수형으로 순교 하였다.
#연풍성지 #연풍초등학교 #연풍현감 김홍도
대성당
연풍은 성 황석두 루카의 고향이며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발자취가 서려 있는 교우촌입니다. 박해를 피해 연풍으로 몰린 교우들은 새재라는 천혜의 도주로를 이용해 관문 성벽 밑의 수구문을 통해 문경 땅을 넘나들며 모진 박해를 피했습니다. 연풍과 새재가 기억하는 첫 인물은 12년간 새재를 넘나들며 이 지역에 신앙을 전한 최양업 신부입니다. 새재 아랫마을인 문경시 진안리의 어느 주막에서 선종한 최양업 신부는 새재의 연봉인 배론 신학당 뒷산에 안장되었습니다.
두 번째로 황석두 성인은 부유한 양반집 자손으로 젊은 나이에 과거 길에 나섰다가 ‘천국의 과거 시험에 급제’하고 돌아와 가족들의 모진 반대를 극복하고 가족들을 모두 입교시켰습니다. 학식과 신앙이 깊었던 연유로 다블뤼 주교를 도와 성경 번역과 사전 편찬에 종사하다가 1866년 병인박해 때 다블뤼 주교, 위앵과 오메트르 신부, 장주기 회장 등과 함께 보령 갈매못에서 순교했습니다.
연풍 성지가 현재의 모습을 갖춘 것은 1963년 공소로 쓸 옛 향청 건물을 매입하면서부터입니다. 3백년이나 된 이 건물을 매입할 때만 해도 순교 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매입 후 논과 집 터를 정리하던 중 형구돌이 발견되었습니다. 또 1968년 시복식 후 황석두 성인의 고향이 연풍임이 드러나자 성지 개발이 가시화되어 1979년 순교 현양비를 세우고 문중 산에 묻힌 성인의 유해를 1982년 연풍 성지로 천묘했습니다. 이어서 다섯 성인상과 반석, 대형 십자가와 경당, 향청 건물 복원 및 야외제대와 성모상 등을 마련해서 순례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2014년 9월에는 성 황석두 루카 탄생 200주년 기념성당 봉헌식을 가졌습니다.
야외중앙제대(순교터)
십자가의 길
순례센타
형구틀3
형구틀2
황석두 루까 성인 묘
향청(옛 공소)
다섯 성인상
원 반석은 절두산 성지로 옮겨져 있습니다.
연풍초등학교내 풍락헌
성지 근처 동네 있는 추천맛집,
11시 미사 마치고 맛있게 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