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 2 거듭나는 덕성 이력철 기록
1학기 학교 수업을 다니면서 우리를 담당하고 계신 수학 선생님이 수업 중에 잠시 우리에게 주신 교훈 한마디가 있다. 정리해서 나타내자면, '사람의 성공은 그 사람의 인성에 달려있다' 그만큼 선생님은 다른 무엇보다 사람의 인성을 중요시 여기고 있고 우리에게 전달하려고 노력하신다. 이런 수업을 들으면서 다시 한 번 내 인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이 학교에 와서 얼마나 변한 걸까.
일단 무엇보다 인사성이 그나마 나아지지 않았을까. 평소에는 선생님들께만 인사를 드리던 나였다. 왜냐. 누가 봐도 어른이고 인사를 드리는 것이 당연했으니까. 그만큼 직속선배에게는 별로 인사도 드리지 않았고, 별 신경도 쓸 일이 없었다. 중학교 때는 선배와의 교류 자체가 거의 없다고 봤을 정도로 나는 아무런 사고나 활동도 하지 않았다고 봐도 나쁘지 않을듯 싶다. 하지만 지금 숭덕고등학교에 와서는 조금 다르다. 고등학교라는 것이 작은 사회이다 보니, 선배님들께 인사를 하지 않는 것은 거의 하극상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살기위해서라도(?) 선생님들께 인사, 선배님들께 인사, 심지어 동급생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또 남의 입장이 자주 되려고 하는 것 같다. 일명 역지사지. 뭐, 예를 들자면 이런 것다. 나는 중학교 시절 지는 걸 거의 분노하다시피 꺼려했다. 그 탓에 우리 형이나 친구들이 나와 내기를 꺼려하거나 대놓고 봐주는 그런 경우도 허다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형이나 친구들도 지는 건 싫을 것이다. 인간의 본성이랄까. 그런대도 다 참고 나를 위해서 그런 선의를 베푼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지금에야 든다. 그래서 지금은 패배도 약간의 이해를 가지려 한다. 또 우리 학교는 최고의 성적보다 최선의 노력을 좀 더 가치있게 여겨주기도 한다.
8. 내 인생의 멘토 찾기
고등학생에게는 두 가지의 진로계열로 나뉘는데, 흔히들 이과와 문과이다. 나는 어렸을 때에는 다소 여러 분야에 있어 구분없이 열심히 해온 터라 남들처럼 계열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 진로계열에 큰 관심이 생기면서 ‘커리어넷’, ‘홀랜드적성검사’ 등의 검사들을 통해서 나는 이과라는 결론을 내렸다. 당연히 나도 욕심이 많은지라 가히 이과들의 로망이라 할 수 있는 의사가 꿈이었다. 하지만 아는게 없어 막막했던 차에 학교를 다니다 보니 상담할 기회가 생겼다. 그 때 여러 선생님들이 하시는 말씀, ‘롤모델을 정하는 게 도움이 될 거야’ 그 말을 듣고 지금까지 의사나 치료에 관한 여러 훌륭한 인물들을 찾아다니면서 책도 읽다보니, 한 사람을 찾아냈다. 그 분은 본래 의사였지만, 심리학자로 널리 알려진 프로이트교수님이시다. 프로이트교수님은 ‘정신분석’이라는 이론을 확립하신 분으로 더욱 유명하지만, 나는 그 이론을 정리했다는 사실보다는 초기에 의사라는 직업에 충실하여 당대에 거의 완치가능성이 들쭉날쭉할 정도로 변수가 많았던 ‘히스테리’라는 증상에 크나큰 관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좀 더 본받을 점이라고 생각한다.
9. 역경극복사례
역경으로 말하자면 아마 모든 고등학생의 숙명이자 시련, 성적이 아닐까 한다. 이 성적이란 게 중학교부터 시작해서 숭덕고에 와서도 피해가질 않고, 아니 오히려 더 달려들고 있다. 나에게 있어 중학교 때까지 성적은 문제라고 할 정도 까지 걱정되는 정도는 아니었다. 하던 대로만 했는데도 점수가 나왔으니깐, 그런데 여기 와서 본 시험은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평소대로 해도, 심지어 열심히 해도 성적이 눈에 띌 정도로 오르기는커녕 아래로 내려가고 있기만 할뿐이었으니까. (심지어 다른 애들은 잘 보기까지 하지...) 유지하던 때. 정말 적응 안되고 갑자기 울컥할 때에는 그냥 떠나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고, 격려해주시는 부모님께 오히려 주객전도해서 화를 내지를 않나 생각해보면 뭐 이런 짓들을 했나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방학 때부터 억울해서라도 오기로 이겨보겠다 하는 마음으로 처음부터 다시 시도했다. 꿈 자체가 좀 상위권인 직업층인지라 노력도 해야 했고. 내 공부법 자체가 시간이 많이 걸리는 방법이기 때문에 평소에 열심히 하는 것 말고는 답이 없었다. 플랜을 잘 짜놓고, 학교에서 해주는대로, 또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대로 열심히 한다. 그것이 나를 구렁텅이에서 꺼내준 게 아닐까 한다.
10. 물음표달기 WHY?
내가 이번 방학 동안 되게 고민을 많이 했던 것 중 하나라면 바로 시간. 그 중 1분, 1초는 느끼기엔 너무 빠르고 더하면 재기에 너무 긴 시간이다. 평소 학기 중에 비해 거의 엄청난 시간을 여유로 가지다 보니 계획 실천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렇다보니 내가 나태해진 것이 아닌가 하고 언제 한 번은 내가 거의 버리다시피 보낸 시간을 계산하다보니 궁금점이 생겼다. 과연 이 시간동안 세계에서는 다른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그래서 과감히 시간을 투자해서 조사해 보았다. 뭐 찾아보면 금방 나오는 사소한 일이기도 하며 이미 상식적으로도 아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때 당시 상당히 궁금했던 듯싶다. 찾아보니 미국의 상황에 맞춘 조사결과가 있더라. 바로 1분 동안 미국에 일어나는 일. 일단 돈 이야기부터 해보자면 세계적으로 1분당 평균 15원 정도를 번다고 한다. 근데 나이키, 유명 스포츠 브랜드. 이 회사에서 1분 동안 버는 돈 36505$ 거의 한화 4000만원 가까이 되는 돈을 벌고 있다. 1분당 15원을 버는 전 세계 사람들의 능력으로 나이키라는 회사에 4000만원을 벌어다 주고 있다. 뭉치니 무서운 사람들의 능력. 또 과학적으로 우리 지구에서는 1분당 무려 320번의 번개가 관측되고 5번의 지진도 덩달아 관측된다고 한다. 그런데 오래된 자료인 것도 있고, 요즘 인간이 자초한 이상기후 때문에 이 결과는 그다지 정확할 것 같지는 않다. 심지어 다음 자료는 1분당 쓰여지는 석유자원 무려 55757배럴 정도가 쓰여진다고 한다. 미국에서 이정도니 전세계적으로는 얼마나 심할까. 지구가 죽는 소리가 들린다는 사람들이 이상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어쩌면 당연히 들렸어야 할 소리가 아닐까. 또, 미국에선 250명의 새로운 생명이 가족을 맞이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108명이 자신의 가족의 품을 떠나기도 한다.
이토록 내가 방학동안 허비한 시간동안 도대체 몇 명의 사람이 죽고 태어나고, 또 얼마나 수많은 돈이 오고갔으며, 지구가 죽어가는 지에 대해 좀 다시 생각해보았다. 시간은 인간을 지배할 수 있지 않을까.
11. 1학기 기억에 남는 학년, 학급활동
1학기 반년의 시간 동안 우리는 새로운 학교 숭덕고등학교에서 차근차근 적응해나가면서 새로운 경험을 쌓아나가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훗날 졸업할 때까지 그럴 것이고. 그 중 내게 있어 첫 경험이라고 할 수 있는 활동이 하나 있다. 바로 봉사활동. 봉사활동도 봉사활동이지만, 이렇게 친구들과 함께 여럿이서 하는 봉사는 처음이라서 더 기억에 남기도 하고 재미도 있었다. 우리가 간 곳은 광주공원이었는데, 출발할 당시에 버스가 안와서 시작이 불안불안했다. 하지만 그 버스에는 우리 반의 기숙사생들이 타고 있었다. 덕분에 심심하지 않게 광주공원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항상 교복 차림으로 보다가 사복 차림의 친구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그렇고 미래의 모습이 기대되던 것은 여담. 얼마 지나지 않아 봉사장소로 이동하였다. 들어가자마자 우리가 봉사활동을 하면서 가지게 되는 의미나, 앞으로 가져야할 자세 등의 좋은 말씀을 듣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굴복하지 않는 자세. 내게 특히 필요하단 자세임을 되새기며 봉사활동으로 투입. 내가 맡은 곳은 배식받은 식판을 우리 어르신들께 전달해드리는 것. 일종의 유통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까. 열심히 운반을 하는데. 중간에 3갈래로 나눠지는 곳에서 우리는 지시나 혹은 자기 판단에 의해서 형평성을 지키며 운반을 해야한다. 그 중, 갑자기 식당쪽에서 남자 2명을 뽑아가길래 징병(?)되어 간 곳은 얼음조각들과 가득했던 생선 여러박스들. 방금 막 도착해온 생선들을 나르는데에 징병되었다. 뭐 생선에 역겹거나 그러지는 않기 때문에 별 어려움은 없었지만 장갑에 배긴 냄새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결국 맨손으로 뜨거운 식판을 다시 나르기 시작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 생선이 아마 고등어였나, 다른 거였나 여기까진 무리인 듯싶다. 쨌든 이번 보람찬 일을 마치고 내가 느낀 것이 하나 있다면, 바로 내가 어떤 존재이고 싶어하는 것인가. 내 생각엔 그렇게 티나지 않으면서도 없어서는 안되는 그런 존재? 중간 유통이 없으면 여러모로 불편할 것이다. 사회에 나가서도 여러 분야에서 기여를 하는 것을 나의 자세로 삼고 싶다. 어쩌다 가게 된 나도 당황스런 우리 큰이모집 가게로 가서 국밥을 먹었던 기억. 그리고 여기에 창피한 기억까지 있다. 바로 시내에서 길을 잃은것. 아니 잃었다기 보다는 그냥 내가 떠돌아다녔다고 해야하나 금남로4가에서 어디사거리까지 걸어서 겨우 버스 찾아서 집에 갔던 기억. 정말 색다른 경험이 가득했던 그런 날이었다.
수정이 많이 필요하다면 ㅈ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