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문해자로 풀어보는 천자문[72] 진초경패 조위곤횡(晉楚更覇 趙魏困橫) <진·초는 패권을 다투고, 조·위는 연횡에 시달리다>
1. 들어가는 말
《천자문(千字文)》의 일흔두 번째 구절인 「진초경패 조위곤횡(晉楚更覇 趙魏困橫)」은 춘추전국시대 강대국들이 패권을 다투던 격동의 역사와, 그 속에서 외교 전략에 휘말린 제후국들의 현실을 보여 주는 구절입니다. 앞 구절인 「준예밀물 다사식녕(俊乂密勿 多士寔寧)」이 뛰어난 인재들의 헌신으로 이루어지는 이상적인 치국(治國)을 노래하였다면, 이번 구절은 국가 간 힘의 균형과 외교 전략이 국운을 좌우했던 현실 정치의 세계를 조명합니다.
진초경패(晉楚更覇)는 춘추시대 북방의 진(晉)나라와 남방의 초(楚)나라가 중원의 주도권을 놓고 번갈아 패자(霸者)의 자리에 올랐음을 뜻합니다. 조위곤횡(趙魏困橫)은 전국시대에 이르러 진(晉)나라에서 갈라져 나온 조(趙)나라와 위(魏)나라가 진(秦)나라의 연횡(連橫) 외교에 시달리며 국가적 어려움을 겪게 된 상황을 가리킵니다.
이 구절은 국가의 흥망이 군사력뿐 아니라 외교 전략과 국제 정세에 의해 크게 좌우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천자문》은 패권은 끊임없이 바뀌고(更覇), 외교적 균형을 잃은 나라는 강대국의 전략 속에서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역사적 교훈을 이 여덟 글자에 담아 전하고 있습니다.
2. 들어 있는 말
가. 어구의 핵심 의미와 철학적 배경 「진초경패 조위곤횡(晉楚更覇 趙魏困橫)」은 춘추전국시대의 국제 질서가 어떻게 변화하였는지를 압축한 구절입니다. 춘추시대에는 진(晉)나라와 초(楚)나라가 번갈아 패권을 다투며 천하의 균형을 이루었고, 전국시대에는 진(秦)나라가 연횡책(連橫策)을 펼치면서 조(趙)나라와 위(魏)나라를 비롯한 제후국들이 큰 압박을 받았습니다. 《천자문》은 이 여덟 글자를 통해 패권의 변화와 외교 전략이 국가의 흥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간결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 진초(晉楚): 춘추시대를 양분했던 북방의 진(晉)나라와 남방의 초(楚)나라를 가리킵니다. 두 나라는 중원의 주도권을 놓고 오랫동안 경쟁하며 패권을 다투었습니다. • 경패(更覇): 경(更)은 '번갈아', '교대로'라는 뜻이며, 패(覇)는 제후들의 맹주인 패자(霸者)를 말합니다. 어느 한 나라도 영원히 패권을 독점하지 못하고 시대의 형세에 따라 주도권이 끊임없이 바뀌었음을 나타냅니다. • 조위(趙魏): 진(晉)나라가 삼가분진(三家分晉)으로 나뉘면서 성립한 조(趙)나라와 위(魏)나라를 가리킵니다. 두 나라는 진(秦)나라의 동진(東進)을 막는 전략적 요충지에 자리하여 전국시대의 중요한 세력으로 활동하였습니다. • 곤횡(困橫): 곤(困)은 어려움과 곤궁에 처함을, 횡(橫)은 진(秦)나라 장의(張儀)가 추진한 연횡책(連橫策)을 뜻합니다. 합종책(合縱策)이 무너진 뒤 조나라와 위나라를 비롯한 제후국들이 연횡 외교 속에서 압박을 받고 점차 어려움에 처한 상황을 나타냅니다.
결국 이 구절은 강대국의 패권 경쟁과 외교 전략 속에서 중소 제후국들이 겪어야 했던 현실의 어려움을 보여 줍니다. 《천자문》은 국가의 흥망이 군사력뿐 아니라 외교적 판단과 시대의 흐름에 달려 있음을 일깨우며, 변화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올바른 전략과 국력을 갖추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나. 《설문해자(說文解字)》를 통한 문자학적 고증
「진초경패 조위곤횡(晉楚更覇 趙魏困橫)」의 여덟 글자는 패권의 교체와 강대국의 경쟁, 그리고 외교 전략 속에서 흔들리는 국가의 운명을 문자의 본뜻 속에 담고 있습니다. • 晉(나아갈 진/진나라 진): 「晉,進也。日出萬物進。从日,从臸。」 허신은 진(晉)을 "나아감"이라 풀이하며, 해가 떠오르면 만물이 앞으로 나아간다고 설명하였습니다. 해 일(日)과 이를 지(臸, 到也)가 결합한 회의자입니다. 단옥재는 《주역》 「진괘」의 "명출지상(明出地上)"을 인용하여, 해가 솟아 만물이 앞으로 나아가는 형상에서 '전진하고 발전함'의 뜻이 생겼다고 설명하였습니다. 본문에서는 춘추시대 강국인 진(晉)나라를 뜻합니다. • 楚(초나라 초/가시나무 초): 「楚,叢木也。从林,疋聲。」 허신은 초(楚)를 "무성하게 우거진 나무숲"이라 풀이하였습니다. 수풀 림(林)이 뜻을 나타내고 소(疋)가 소리를 나타내는 형성자입니다. 단옥재는 楚와 荊이 같은 나무를 가리키는 다른 이름이며, 고대에는 초나라를 '楚', '荊', 또는 '荊楚'라 함께 불렀다고 설명하였습니다. 본문에서는 남방의 강국으로 진(晉)나라와 패권을 다투었던 초(楚)나라를 뜻합니다. • 更(다시/번갈 경): 「更,改也。从攴,丙聲。」 허신은 경(更)을 "고치는 것"이라 풀이하였습니다. 칠 복(攴)이 뜻을 나타내고 병(丙)이 소리를 나타내는 형성자입니다. 단옥재는 更이 '고치다'와 '잇다(繼)'의 뜻을 함께 지니므로, 앞뒤가 이어져 차례로 교체되는 의미로도 쓰인다고 설명하였습니다. 본문에서는 진나라와 초나라가 번갈아 패권을 차지한 모습을 나타냅니다. • 覇(패자 패): 「霸,月始生魄然也。从月,䨣聲。」 허신은 패(霸)를 "초승달에 달빛이 처음 나타나는 모습"이라 풀이하였습니다. 달 월(月)이 뜻을 나타내고 박(䨣)이 소리를 나타내는 형성자입니다. 단옥재는 후대에 이 뜻은 魄이 대신하고, 覇는 伯의 가차자로 쓰여 '제후의 맹주'를 뜻하게 되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본문에서는 천하의 패자, 곧 제후들의 맹주를 가리킵니다. • 趙(달릴 조/조나라 조): 「趙,趨也。从走,肖聲。」 허신은 조(趙)를 "빠르게 달려가는 것(趨)"이라 풀이하였습니다. 달릴 주(走)가 뜻을 나타내고 초(肖)가 소리를 나타내는 형성자입니다. 단옥재는 신속하게 나아가는 뜻을 지닌 글자로 설명하였습니다. 본문에서는 전국칠웅 가운데 하나인 조(趙)나라를 가리킵니다. • 魏(위나라 위): 「魏,高也。从嵬,委聲。」 허신은 위(魏)를 "높은 것"이라 풀이하였습니다. 외(嵬)가 뜻을 나타내고 위(委)가 소리를 나타내는 형성자입니다. 단옥재는 높고 웅대한 모습을 뜻하는 글자이며, 후대에 巍에서 산(山)을 생략한 魏가 나라 이름으로 쓰였다고 설명하였습니다. 본문에서는 전국시대의 위(魏)나라를 뜻합니다. • 困(곤할 곤): 「困,故廬也。从木在囗中。」 허신은 곤(困)을 "오래된 집"이라 풀이하였습니다. 에울 위(囗) 안에 나무(木)가 있는 모습을 본뜬 회의자입니다. 단옥재는 본래 제자리에 머물러 지나치지 않는다는 뜻에서, 나중에는 궁핍하고 어려운 처지, 곤경을 뜻하게 되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본문에서는 연횡책으로 인해 조나라와 위나라가 처한 국가적 곤경을 가리킵니다. • 橫(가로 횡/연횡 횡): 「橫,闌木也。从木,黃聲。」 허신은 횡(橫)을 "문을 가로막는 나무"라 풀이하였습니다. 나무 목(木)이 뜻을 나타내고 황(黃)이 소리를 나타내는 형성자입니다. 단옥재는 문을 가로막는 나무에서 뜻이 확대되어 '가로지르다', '가로막다'의 의미가 생겼다고 설명하였으며, 고대에는 衡과도 서로 통용되었다고 밝혔습니다. 본문에서는 진나라의 연횡책(連橫策)을 뜻합니다..
《설문해자》의 자형을 종합해 보면, 晉·楚는 번갈아 패권을 다투던 두 강국을, 更·覇는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바뀌는 패권의 흐름을 보여 줍니다. 趙·魏는 전국시대의 중요한 제후국을, 困·橫은 연횡책 속에서 외교적 압박과 군사적 위기를 겪은 현실을 상징합니다. 《설문해자》는 이처럼 패권 경쟁과 외교 전략이 국가의 운명에 미치는 영향을 글자의 본뜻을 통해 함축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3. 맺는 말
「진초경패 조위곤횡(晉楚更覇 趙魏困橫)」을 읽으면, 세상의 힘이란 과연 얼마나 오래갈 수 있는 것일까 생각하게 됩니다. 한때 천하를 호령하던 나라도 세월이 흐르면 그 자리를 내어 주고, 강한 나라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심하던 나라의 운명 또한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달라졌습니다.
진(晉)과 초(楚)가 번갈아 패권을 차지했다는 ‘경패(更覇)’라는 두 글자에는 영원한 강자가 없다는 역사의 모습이 담겨 있는 듯합니다. 어제의 강자가 오늘의 약자가 되기도 하고, 한때 유리했던 외교 전략이 새로운 형세에서는 오히려 어려움이 되기도 합니다. 세상은 머물러 있지 않고, 권력도 끊임없이 움직입니다.
우리의 삶도 어쩌면 이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잘되고 있다고 언제까지나 그러리라 장담할 수 없고, 지금 어렵다고 해서 그 어려움이 영원히 계속되는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변화하는 형세를 살피면서 그때그때 자신의 자리를 바로 세우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晉楚更覇 趙魏困橫」의 의미를 되새기며, 강함을 믿기보다 변화를 읽는 지혜가 더 오래가는 힘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역사의 패권은 끊임없이 바뀌었지만, 그 변화를 읽고 대비해야 한다는 교훈이 오늘까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종(終)>
2026년 9월 16일 두서(杜西) 류시언(柳時彦)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