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 다니는 비석
김 한 성
그의 일생을 묻고 있다. 유가족의 슬픔도 함께 묻는다. 문득 찾아올 나의 날을 생각해 본다. 영원히 살 것같이 뛰어오르던 인생의 계단에서 잠시 쉬면서 지난날을 되돌아본다. 이 계단에도 층계참은 있는 모양이다.
하관 예배 설교 말씀이 마음에 스며든다.
"우리는 아무도 죽음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죽음을 경험한 사람은 모두 입을 다물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족 여러분, 여러분은 걸어 다니는 비석입니다. 고인의 영광을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도록 움직이는 비석의 역할을 잘 해 주기 바랍니다."
고인을 생각하니 문득 양쪽 발바닥에 가벼운 아픔이 느껴진다. 신혼 시절로 세월을 거슬러 올라 본다. 낯선 가문에 사위가 되어 갔으니 모든 것이 서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중에 큰 걱정거리는 동상례(東床禮)로 행해지는 신랑 다루기였다. 무리하게 신랑 다루기를 하여 다치기도 하고, 심한 경우 목숨을 잃기까지 한다는 특집 방송을 보았다. 결혼을 앞둔 나에게는 남의 일일 수 없었다. 방송뿐 아니라 먼저 결혼한 친구들의 체험담을 떠 올리는 것만으로도 걱정은 샘물처럼 솟아올랐다.
해가 지고 운명의 순간이 찾아왔다. 준비물만 슬쩍 봐도 이건 장난이 아니었다. 마른 북어․방망이․포승줄․샅바․장작개비․대나무 몽둥이․빗자루 등 사극에서 죄인을 고문하기 위한 도구처럼 보였다. 문제는 지금까지 이 집안의 딸을 훔쳐 가는 남자들을 그냥 보낸 적이 없다는 가장 연장자인 듯한 말라깽이 대표였다. 자신을 이 집안 먼 친척뻘로 나에게는 손위 처남이 된다고 소개했다. 날카로운 인상이 나를 저절로 주눅 들게 만들었다.
딸을 훔쳤다는 죄목으로 손발을 묶은 후 북어로 발바닥을 내리쳤다. “네 죄를 알렸다!” ‘죄는 무슨 죄, 노총각이 노처녀 구해 준 것밖에 없는데……’ 억울하기 짝이 없었으나 상황이 상황인지라 따질 수도 없었다. 네 죄를 어찌하겠느냐고 다그쳤다. 하는 수 없이 도구들을 돈으로 사면 안 되겠느냐고 흥정을 했다. 값만 적당하면 팔겠다면서 종이와 연필을 내밀었다.
대표인 처남이 북어를 들었다. 나는 북어 100500원이라고 썼다. 고개를 갸웃하면서 적은 금액이 아니므로 쉽게 통과되었다. 그리고 방망이 50001000원, 포승줄 100001000원, 샅바 1000010000원, 장작개비 500010000원, 대나무 100005000원, 빗자루 100010001000원 이렇게 값을 후하게 적어 나갔다. 파는 쪽에서는 신이 났고 장모님은 걱정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흥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신랑 다루기에 쓰일 도구가 될 만한 것은 모두 산 셈이다. 셈을 치를 차례다. 몇 가지 약속이 오고 갔다. 그리고 꼭 지키기로 다짐까지 했다. 서로 증인도 세웠다.
계산이 시작되었다. 먼저 북어 값 100500원은 단돈 600원으로 해결했다. 100원짜리 동전을 앞에 놓고. 500원 짜리 동전을 뒤에 놓으니 100500원이 되었다. 사기다, 엉터리다 하면서 야단이었지만 처남은 말없이 넘어갔다. 방망이는 6,000원, 포승줄은 11,000원에 샀다.
이렇게 십여 만 원으로 신랑 다루기에 쓰일 물건을 모두 사 버렸다. 주위의 몇 사람들이 엉터리라면서 야단이었지만 약속은 지키기 위해 있는 것이라면서 처남은 오히려 그들을 나무랐다. 우리는 차린 상을 마주하고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다정한 얼굴로 밤이 깊어 가는 줄도 모르고 정담을 나누었다. 그 후 만날 때마다 재미있게 그 날의 이야기를 하며 반겨 주었다.
처남을 생각하니 갖가지 추억들이 물밀 듯 밀려와서 내 가슴을 적시고 있다. 그리고 아쉬움 한 조각이 구름처럼 내 마음에 일어난다. 그때 꾀를 부리지 말고 신랑 다루기를 마음껏 즐겼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아득한 길로 떠나가는 처남의 모습이 너무나 아쉽다. 다시는 몸을 부대끼며 정을 나눌 수 없는 안타까운 순간이 이렇게 빨리 올 줄 누가 알았으랴.
어린 시절 집 가까이에 있는 면사무소는 우리들의 놀이터였다. 옛날 고을 원(員)이 살았다는 그곳에는 넓은 마당이 있었고, 뒤쪽에는 비석이 늘어서 있었다. 비석에는 고을 원이 선정을 베풀었다는 내용이 가득 적혀 있었다. 우리는 심심해서 돌을 던져 비석 맞추기 놀이를 하다가 쫓겨날 때가 잦았다. 비석의 내용이 대부분 엉터리라는 것을 어른들의 이야기를 통해 들었기 때문이다.
참으로 선정을 베푼 원은 비석을 세우지 못하도록 했다고 한다. 백성들은 폭정을 일삼는 원의 포악함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비석을 세웠다. 어떤 원은 자기 비석을 더 멋있게 만들기 위해 직접 진두지휘까지 했는데 그가 떠나고 나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비석을 향해 수없이 돌팔매질을 했다. 심할 경우에는 한밤중에 오물 세례를 퍼붓는 일까지 벌어졌다.
돌은 단단하다. 사람들은 세월의 강물에 지워지지 않게 하려고 비석 세우기를 좋아한다. 비석을 볼 때마다 어린 시절, 면사무소 마당에 서 있던 곰보 비석이 떠오른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진실이 담겨 있으며, 얼마나 많은 거짓이 새겨져 있을까 하고 저울질해 본다.
문득 서산대사의 말이 귓전을 때린다.
‘이름 석 자 남기려고 딱딱한 비석을 파지 말라. 네거리에 오가는 사람들 입이 그대로 비석이다. 평생 남을 향해 눈살 찌푸릴 일 하지 않으면, 세상에 나를 향해 이를 가는 사람 없다.’
우리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비석을 새기고 있다. 그 비석이 걸어 다니면서 나를 말하고 있다
첫댓글 삶의 자세를 돌아보게 만드는 秀作입니다. 화소가 적절하고 내용도 참신하며 제목도 좋습니다. 공감이 갑니다. 이 작품의 모티브는 '설교 말씀'입니다. '사람 만나 이야기 나누기', '책(신문) 읽기', '방송청취'등 모든 것이 글감이 되겠지요. 그래도 여전히 쓸 게 없으니 제 속을 채우지 못한 탓인 듯합니다.
그렇군요. 우리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비석을 새기고 있군요.
사후에 성인이든 악인이든 그 사람에 대한 추억을 하게되죠.
어제 아침 대문을 나서는데 앞집 슈퍼에 '喪中'이라고 붙어 있었습니다.
이웃이 된지 30여년,
부인을 먼저 보내고 이제 자신도 고인이 되어 종이 쪽지 한장으로 하직인사를 하는 이웃에게
애도와 함께 가슴이 멍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