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고성중(中) 삼산 분교
익명의 후원자가 성금 야간 공부방 마련교사는 박봉 쪼개 장학금
전교생 29명인 학교가 전국 로봇대회 대거 입상
전교생은 고작 29명. 대부분 가정이 고기 잡고, 벼농사하고, 공사판 일로 생계를 이어간다. 가계당 연 수입은 1500만원도 안 된다. 부모 대신 할머니 할아버지와 사는 학생이 70%. 경남 고성군 미룡리 산골학교인 고성중학교 삼산 분교 얘기다. 하지만 이 학교에서 2007년 전국 청소년 글짓기대회(국민연금관리공단 주최) 대상이 나왔고, 최근 2년 연속 도내 로봇경진대회 입상자가 쏟아졌다면 입이 떡 벌어진다. 그뿐만 아니다. 작년엔 고성군의 고교 수석 입학생도 배출했다.
산골학교 삼산분교의 기적을 만든 힘은 무엇일까. 대단하지 않았다. 학교를 바꿔보려는 교사와 주민과 독지가 등 평범한 우리 이웃들의 간절함이 그 원동력이었다.
공부할 여건이 안 되는 학생들을 위해 이 학교 교사들은 저녁밥을 해 먹이고 야간 공부방에서 공부시키고, 자신들의 차로 집까지 데려다 줬다. 박봉을 쪼개 '교사장학금'도 만들었다. 학생들 저녁밥 비용을 대주겠다며 가장 먼저 50만원을 보낸 이는 서울에 사는 장애아 어머니와 캐나다 교포였다. 후원자들은 교사들이 운영하는 블로그를 본 뒤 익명(匿名) 조건으로 송금했다. "남는 게 없다"고 투덜대면서도 야간 공부방 바닥공사를 해준 건설업자는 10만원의 장학금과 라면 5박스를 두고 갔다. 여기에 스스로 공부하며 경쟁력을 갖추기 시작한 학생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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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사가 해주는 저녁을 먹고 야간 공부방에 참여한 경남 고성중학교 삼산 분교 학생들. 김계현 교사는“공교육 붕괴라지만 교사가 바뀌면 학생과 학부모는 금세 교실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고성=김용우 기자 yw-kim@chosun.com
◆평범한 이웃들이 함께했다
2006년 4월 부임한 이병우(51) 분교장과 김계현(54) 교사는 아이들이 방과 후 타는 버스가 오후 6시30분이나 돼야 온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동료 교사들의 동의를 받아 당장 방과 후 수업을 3시간 더 해주기로 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귀가 후였다. 대부분 결손 가정이거나 부모가 있어도 밤에 고기잡이를 나가 아이들은 공부는커녕 저녁밥도 못 챙겨 먹고 있었다.
학교에 야간 공부방을 마련했다. 매일 밤 학교에 남을 교사는 수학과 김정기(51) 교사와 김계현 교사가 자원했다. 문제는 저녁밥 비용이었다. 점심과 달리 저녁은 정부 지원이 안 된다. 김계현 교사가 개인 블로그를 통해 후원자를 수소문했다.
제일 먼저 50만원을 보내준 사람은 서울에 사는 '수퍼맘'이었다. 장애아를 키운다는 그는 "난 사교육비 안 들어가니, 그 돈을 보내는 것"이라고 했다. 이 돈이면 30명이 한 달은 먹겠다 싶었다. 작년 4월 16일, 그렇게 삼산 분교의 야간 공부방은 시작했다. 텃밭을 일궈 배추를 심고 채소를 심어 부식 비용을 아꼈다. 밥 짓는 번거로움은 학교 앞 교회의 부목사 부인이 1년간 묵묵히 대신했다.
◆교사들의 박봉 쪼개 장학금 만들다
2006년 3월 말 삼산분교 교사 9명이 회의를 했다.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게 동기부여를 할 방법이 없을까. 한 교사가 제의했다. "한 달에 1만원씩 내서 장학금을 만들 수 있지 않나요." 모두 동의했다. 전근 간 전임 교장은 지금도 일년에 50만원을 보내준다.
이렇게 모은 돈으로 일년에 4번, 중간·기말고사가 끝나면 3명씩 뽑아 5만~10만원씩 장학금을 준다. 첫 시험만 성적순으로 장학금을 주고, 나머지 세 번은 가장 성적이 많이 오른 학생에게 준다. 이병우 분교장은 "큰돈은 아니지만 학생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선생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고 말했다.
◆앞에서 끌고 뒤에서 미는 아이들
이 산골학교에서 최근 2년간 경상남도와 전국 단위의 로봇대회에서 4개의 상을 휩쓸었다. 학생들이 로봇을 조립하고 명령어를 입력해 제한된 시간에 가장 빠르게 장애물을 통과해 목적지에 도달하는 대회이다. 올해 초 졸업한 김종훈(16) 학생과 3학년 김수한(15) 학생이 그 주인공. 대도시처럼 과학교사가 스파르타로 가르치기는커녕 담당 교사 없이 이뤄낸 성과다. 학교에서의 지원은 16만원짜리 로봇이 전부다. 어머니가 과학교사였던 종훈이가 로봇공부를 시작한 뒤 후배들을 가르쳤다. 종훈이가 졸업하고 이젠 수한이가 2학년 태현(14)이, 1학년 강건(13)이를 가르친다. 이렇게 공부해도 입상이 가능할까. 김계현 교사는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하는 아이들의 잠재력은 우리가 상상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 학교에는 올 들어 고성군 3개 중학교 꼴찌들이 모두 찾아왔다. 부진아도 가족처럼 제대로 길러낸다는 입소문 때문이었다. 수학과 김정기 교사가 매주 금요일 오전 8시부터 이들과 구구단을 외우며 씨름한다. 덕분에 6월 말 두명이 기초학력평가 미달에서 탈출했다. 3학년 강권우군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학교"라고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