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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대, 7대, 8대 담양군의회 의원
제12대 전라남도의회 의원(현)
전라남도의회 윤리특별위원장(현)
농어촌기본소득운동 전남본부 상임대표(현)
대한민국서예대전 초대작가(현) 및 심사위원 역임
< 수상 소감 > 이규현
수필 문학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계시는 『에세이스트』 발행인과 편 집인, 심사위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저에게 신 인상 수상의 영광을 주심에 더욱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사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과의 대화이기도 하지만 세상과의 소통이 기에 글에 대한 책임이 막중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작가는 보다 깊은 시대적 고민과 더불어 세상에 희망을 줄 수 있는 가치들을 창조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인간은 허공에 흩어지는 말 이 아니라 땅에 남기는 발자국으로 스스로를 증명한다”라고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실천의 중요성을 느끼며 단순하게 언어의 유희에 매몰되지 않고 시대적 가치를 더 깊이 연구하고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야말로 진 정한 작가정신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길을 잃 지 않도록 빛을 발하는 북극성처럼 작가는 그 누군가에게 빛이 되고 희 망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다짐하면서 더불어 꿈꾸어 나갈 수 있도록 소 중한 상을 주신 『에세이스트』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에세이스트』가 앞으로 많은 신인 작가의 등용문으로 더욱 발전하시 길 기원하며 저 또한 그 바탕 위에서 열심히 배우며 꾸준히 활동하고 성 장하는 작가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신인상 작품
시대 가치의 변환을 꿈꾸며
한 해가 저물어간다. 한 해, 또 한 해를 보내며 늘 아쉬움이 많았다. 그 만큼 얻고자 했던 소망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마다 소망의 내용과 크기는 다르겠지만 매년 새해를 맞이하여 이루고자 하는 소망은 끊이지 않는다. 어떤 이는 그러한 본능적 욕망이 있 기에 인류의 역사가 발전해 온 것이라는 주장도 있으니, 인간의 욕망이 끝이 없다고 뭐라 할 일도 아니다. 하지만 최근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소망하는 것들의 중심에는 ‘부 자되세요!’라는 광고처럼 돈이 최고의 중심에 우뚝 서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새해 해맞이 행사를 비롯해 각종 행사에서도 ‘대박기 원!’, ‘돈벼락 맞게 해주세요!’ 등등의 소원이 단골 메뉴를 차지한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돈이야말로 최고의 가치이기 때문에 굳이 폄훼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오로지 돈만이 최고의 가치가 되는 세상은 국민 개개인을 극단적 이기주의와 능력주의의 함정으로 몰아넣을 위험성이 농후하다. 이제 우리가 꿈꾸는 소망의 가치가 조금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우리 사회에서 돈이 최고의 가치로 집착되고 있는 이유는 ‘고립적 생 존 불안’과 ‘존중 불안’ 때문이라고 한다. 먹고 사는 게 힘이 들다 보니 돈을 벌어야만 하고, 돈이 없으면 무시당하다 보니 돈을 벌어서 지위 상승을 해야만 한다는 강요된 현실이 우리를 돈의 노예로 만들고 있다. 돈에 대한 과도한 욕망은 철저하게 이기주의를 확산시킨다. 돈의 노예가 되도록 만드는 세상속에서 우리 모두 이웃과 공동체를 생각하기보다는 오로지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하여 분투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제아무리 사회 발전을 위한 개혁적인 정책이 나오더라도 나에게 돈이 되지 않는 일이면 결코 좋은 정책으로 인정하지 못한다. 이러한 상황은 집단이기주의로 발전하여 계층 간, 집단 간 분열과 갈등이 심화된다. 간호사를 위한 법을 만들면 의사들이 반대하고, 여성을 위한 정책을 만들면 남성들이 반대하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려 하는 데 정규직들이 반대하는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들을 우리는 숱하게 직면해 오고 있지 않는가.
능력이 있으니 더 많은 보상을 받는 게 당연하다는 능력주의의 최고 문제는 현실적으로 모두가 똑같은 능력자가 될 수 없는 기울어진 운동 장에 서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이 보편화 되어 있는 시대, 우리는 힘의 논리와 서열에 너무 익숙해 있는 것은 아닌지? 노력한 만큼의 보상은 당연하지만, 능력이 부족하다 해서 자괴감과 상대적 박탈감까지 느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인간의 존엄은 어떠한 이유로도 침해될 수 없다. 모두가 존엄한 존재 인데 돈과 지위로 차별받는 세상은 헌법정신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그럼에도 돈을 최고의 가치로 조장하여 정치적 무관심을 유발시키는 능력주의는 심각한 민주주의의 위기로까지 연결되는 우리 사회의 비극적인 오류이다.
사실 우리나라는 불공정은 못 참아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촛불로 정권을 바꾸는 쾌거를 이뤄냈음에도 불구하고 내면화된 민주주의 의식을 나타내는 지수에서는 대만과 일본에도 뒤지고 있다고 한다. 국회의원 총선거 때마다 국민을 위한 다양한 정책과 공약들이 남발 되고 있지만, 능력주의에 기반한 정책과 공약보다는 모든 국민이 더불 어, 함께 잘 살 수 있는 신념에 기반한 정책들이 제시되길 바란다. 그리고 국회의원 각자가 그러한 공약을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면 우리는 자랑스러운 선진국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모두가 서로 평등하고 존엄한 존재임을 느낄 수 있으려면 연대와 공동 체가 회복되어야 한다. 혼자가 아니라 이웃과 국가가 함께 하고 있음을 안다면 가난이나 장애가 그렇게 불행한 도태가 되진 않을 것이다. 돈이 최고가 아니라 우리 모든 개개인의 행복이 최우선인 가치가 되는 사회를 우리는 만들어갈 수 있을까.
심사평
중심의 목소리
조정은
이규현은 여러 신문에 문화 예술 정책에 관한 칼럼을 발표해왔다. 그는 개인의 일상보다는 사회적 연대와 변화에 더 관심을 기울이며 중요 시한다. 아마 전통 수필 형식을 고집하는 이라면 그의 에세이에 좋은 점 수를 안 줄지도 모르겠다.
나는 전통 수필 형식이라는 게 정확히 어디에 기원하는지 모르지만, 그게 20세기 초반부터 우르르 쏟아져 나온 서 정적이고 추상적인 에세이를 지시하는 거라면 굳이 그런 형식을 계승할 필요가 있을까 의문스럽다. 어쨌거나 우리 수필은 미시적 서사와 개인적 서정이 주류인 건 분명하고 따라서 거대담론에 대한 저항이 있는 것 도 사실이다. 하지만 연암은 이용후생(利用厚生:기구를 편리하게 쓰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넉넉하게 하여, 인간의 삶을 나아지게 함)을 학문적 사상의 중심에 세우고 그러한 생각을 깊고 널리 펼치는 하나의 방편 으로 산문을 썼다. 우리 문학사에 빛나는 산문이라면 『열하일기』는 빠 뜨릴 수가 없는데 연암은 여기에 당시 사회제도와 양반사회의 모순을 신랄히 비판하는 내용을 독창적이고 사실적인 문체로 담았다.
오늘날 이규현은 문화 예술 전반에 걸쳐 우리의 자세와 정치 행정적 문제점에 대하여 곡진하게 호소하며 전망을 제시한다. 문화 예술은 개 인의 창작활동이 기초 단위가 되겠지만, 동시에 정치적 행정적 문제이 고 나아가서 세계 속의 우리 문화의 지표, 경제의 지표로 작용하기도 한다. 따라서 시대적 가치는 나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이 다. 이규현은 우리의 시대 가치가 지나치게 돈을 중심으로 위계화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우려를 드러내고 있다. 적극 동의한다.
프랑스 68혁명 때, 프랑스 정부는 시위 진압에 실패하고 파업 중인 노 동자들을 매수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당시 총리였던 조르주 퐁피 두는 노동총동맹을 비롯한 주요 노동조합 지도자들과 같이 일주일에 걸쳐 협상안을 마련했다. 최저임금 35% 인상, 주당 노동시간 단축, 각종 수당 상향 조정, 노동조합의 권리 신장 등을 담은 파격적인 협상안이었 던 것인데 노동자들은 이를 단호히 거부하고 혁명을 실행하는 쪽을 택 했다. 그들은 경제적 지위 향상보다 집단주의에 명확히 반대하고, 개인 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며, 관료주의와 권위주의에 저항한 것 이었다. 대량생산체제로 전환되면서 노동의 분업화가 인간의 본능적 창 조성을 배제하면서 인간을 부품화했고 그들은 그러한 사회 현상에 분 노했던 것이다.
20세기 말부터 신자유주의 물결은 인간을 파편화하고 물질화함으로 써 인간소외가 급속히 진행되어왔다. 작가는 조심스럽게 문제제기를 한 다. ‘부자되세요!’, ‘대박기원!’, ‘돈벼락 맞게 해주세요!’ 같은 말을 덕담 이라고 하는 우리 사회 아직 안녕하신가. 철학자 김태형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현상을 “풍요중독사회”라고 진단한다. 그는 90년대까지 한국은 가난했어도 화목사회였는데, 갑자기 풍요해진 오늘날은 불화사회가 되 었다고 토로한다.
사실 우리나라는 불공정은 못 참아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촛불로 정권을 바꾸는 쾌거를 이뤄냈음에도 불구하고 내면화된 민주주의 의식을 나타내는 지수에서는 대만과 일본에도 뒤지고 있다고 한다. 이번 계엄 사태에서 일부 유튜버들이 하루 억대의 후원금이 날아든 다고 황홀한 비명을 쏟아냈다. 그들은 염치나 논리 따위 상관하지 않고 거의 광적으로 욕설을 퍼부으며 국회에 무장군인을 투입시켜 총대로 유리창을 깨며 본회의장으로 가기 위해 움직인 사실을 전 국민이 실시간 생중계로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결과를 만들어낸 원인이 어떻다는 둥 하면서 과격한 공격을 퍼붓고, 그럴 때마다 어디선가 후원금을 쏟아붓는다는 풍문이다. 돈의 지위가 막강한 것 같아 씁쓸하다.
반면 한 쪽에선 맑고 고운 젊은이들이 환한 응원봉을 들고 나와 율동과 가락으로 추운 거리를 데우며 국회에 무장군인을 투입시킨 대통령을 탄핵하라고 외친다. 4·19의 선두에 섰던 김지하는 일찍이 신명의 저항, 풍류적 혁명을 호소했고 우리는 지금 세계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절정의 풍류적 미학으로 거리에 선 젊은이들을 목도하고 있다. 이쪽엔 먼 이국이나 바빠서 못 나오는 어른들이 광장 근처의 카페나 페스트푸드점에 선결재를 하여 누구든 차를 마시고 샌드위치를 먹을 수 있게 한다는 소문이다. 이건 돈의 과시나 위력이 아니고 살핌이고 나눔이고 어울림이다. 신통하고 자랑스럽지 않은가. 하긴 한강의 노벨문학상도 잘못되었다고 외쳐대는 이들이 있으니, 자랑스럽다는 말에도 화를 낼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래도 세월이 많이 지났으니 말인데, 동학혁명과 3·1운동과 4·19와 5·18은 우리의 위대한 역사임에 틀림없지 않은가.
이규현의 이번 글은 그의 사상에 대한 맛보기에 불과하다. 그는 문화 예술 정책의 한가운데 현장을 뛰어왔다. 중심에서 고뇌해온 사람의 목 소리는 일반 시민이 막연하게 건너다보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을 것인 즉, 그의 등단은 본지에도 중요한 변화를 불러오리란 예감으로 기쁘다. 등단을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