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國師가 因武后가 問師甲子하야 師가 對曰不記니라 后曰何不記耶아 師云 生死之身이 其若循還이라 還無起盡이어니 焉用記爲리오 況此心은 流注호대 中間無間이니 見漚起滅者는 乃妄想耳라 從初識으로 至動相滅時가 亦只如此어니 何年月而可記乎아 於是에 武后가 稽首信受하니라
혜안 국사에게 무후가 나이를 물었다.
혜안 국사가 대답하였다.
“기억하지 못합니다.”
“어찌하여 기억하지 못합니까?”
“태어나고 죽는 이 육신은 늘 순환하는 것이라 또한 일어나고 다함이 없거니 어찌 기억하리요. 하물며 이 마음은 흘러가되 그 중간에 끊어짐이 없다. 거품이 일어나고 소멸하는 것을 보는 것은 망상일 뿐이다. 처음 의식으로부터 움직이는 모습이 소멸할 때까지 또한 다만 이와 같거니 어찌 해와 달을 기억할 수 있겠는가?”
이에 무후가 머리를 숙여 예배하고 믿고 받아 지니더라.
해설 ; 측천무후가 어느 날 혜안 국사에게 나이를 물었다. 사람이 삶을 영위하는 세상에서는 나이가 상당히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사람 관계에서는 나이를 자주 거론한다. 그러나 불교적 관점에서는 나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거의 무시하고 산다. 그런데 나이를 물으니 혜안 국사는 나이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 육신의 나고 죽음이란 영원히 순환하는 것이다. 언제 태어나고 언제 죽고 하는 일은 불교적 영원한 생명관에서 볼 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 마음이라는 것도 또한 끝없이 흘러 흘러가는 것이라 어디를 잘라서 시작이다 끝이다 라고 할 수 없기 때문에 나이를 계산한다는 것은 역시 의미가 없는 일이다.
예컨대 금생의 금년에 나이가 10살이라면 전생에 산 80을 더하면 90살이며, 2생전의 80살을 더하면 170살이 된다. 또한 3생전의 80을 더하면 250살이 된다.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면 그 누구도 나이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불교에서는 나이를 생각하지 말고 지혜를 닦는 일에 정진하고 또 정진하라고 가르친다. 측천무후가 이 말을 듣고 이해하여 받아들이게 되었다.
<상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