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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부활체의 특성
고린도전서 15:50-54
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후에 이 땅에 40일 동안 계셨습니다.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행 1:3)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만나 그분의 모습을 눈으로 직접 보고 귀로 직접 들으면서 부활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제자들이 말하는 부활은 피상적이거나 영적이거나 철학적인 이해가 아니라 실제적이고 체험적이었습니다. 이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친히 만남으로 인하여 부활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에 제자들과 사도들은 복음에 있어서 부활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면서 어떤 사상이나 논리적 차원에서 부활을 다룬 것이 아니라 체험적인 차원에서 증거하는 자세로 부활을 다루기 시작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주의 부활을 목격한 제자들에게 당부하십니다.
[
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눅 24:46-48)
또한 베드로 사도가 선포합니다.
[
29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30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31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행 2:29-31).
베드로는 계속 말합니다.
[
14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도적 바라바를 의미함)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15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행 3:14-15)
[
30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31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3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행 5:30-32)
[
39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40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41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행 10:39-41)
바울 사도 역시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영광의 주를 직접 만났기 때문에 주의 부활을 증언합니다.
[
29 성경에 그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30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신지라
31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 날 보이셨으니 그들이 이제 백성 앞에서 그의 증인이라
](행 13:29-31)
[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고전 15:4-8; )
즉, 세상 역사와 성경은 예수님의 부활 사건에 대하여 사상이나 영적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사건으로, 체험적 사건으로, 그리고 역사적인 사건으로 부활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실제적, 체험적, 역사적인 사건이고 나아가 예수님께서 친히 부활의 몸으로 40일 동안 이 땅에서 다니셨기 때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던 제자들은 부활에 대해 조금도 의심하거나 부인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세계적인 변호사들이 성경 기록 및 역사 기록을 근거로 법적으로 부활 문제를 다룬 적이 있습니다.
매튜 아놀드라는 분은 법적으로 모든 증거를 검토한 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 속에서 가장 확실한 사건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또한 프래크 모리슨(Frank Morison), 길버트 웨스트(Gilbert West), 제이 앤더스(J. N. D. Anderson)은 예수님의 부활 사실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자명한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하였습니다.
특히 영국에서 1980년대에 가장 확실한 변호사로 유명하였던 에드워드 클락크(Edward Clark) 경은 “나는 변호사로서 첫번째 부활절에 대한 증거를 모으며 수년 동안 연구하였다. 결론적으로 예수의 부활에 대한 증거는 법적으로 볼 때 완전하며, 수십년 동안 최고 법정에서 오직 객관적 증거에 의하여 법적 선언을 내려왔던 나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증거에 대하여는 아무 할말이 없다. 나는 변호사로서 역사적인 자료 및 모든 증거들을 볼 때, 예수님의 제자들과 사도들의 부활에 대한 증언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예수는 실제로 부활하셨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곧, 부활은 예수님의 부활 사건에 대한 법적 증거의 싸움인 것입니다. 참으로 역사적으로 실제 발생한 사건이냐 아니냐의 싸움인 것입니다. 놀랍게도 예수님의 부활은 실제 역사 속에 있었던 가장 확실한 사건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정말로 만일 부활이 실제로 발생하지 않았다면 저와 여러분은 물론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거짓말쟁이들이 될 것입니다. 정신 착란 환자들이 될 것입니다. 특히 주님께서 부활하여 보내셨다고 하는 성령의 역사도 거짓이며, 우리 안에 새 생명과 성령이 계시다는 말도 거짓말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대속하였다는 가르침도 거짓이고 그렇다면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라 거짓의 책이 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다시 살아나실 것을 친히 여러 번 선포하셨기 때문에 만일 예수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주님은 거짓말쟁이가 됩니다. 만일 예수님이 거짓말쟁이라면 그는 가짜 메시야입니다. 그러면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담당하셨다는 것도 거짓말이며 그렇다면 우리의 죄가 그리스도 인하여 용서함을 받았다는 것도 거짓이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궁극적으로 죄사함을 받지 못한 것이니 여전히 죄 가운데 있는 것이요, 따라서 우리도 죄로 인하여 지옥에 떨어질 것입니다.
바울 역시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다 속아서 가장 불쌍한 자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
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15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고전 15:13-19)
사랑하는 여러분!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께 모든 것을 겁니다. 심지어 순교로 자신의 생명을 바칩니다. 또한 세상에서는 오직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말할 수 없는 손해와 고통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부활이 없다면 속아서 인생을 낭비한 셈이니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은 기독교가 무너지느냐 서는냐 하는 문제요, 내가 구원 받았느냐 안 받았느냐를 결정하는 문제입니다. 또한 나의 죄가 용서함을 받았느냐, 아니면 그냥 죄 가운데 있느냐가 결정 나는 엄청나게 중요한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확인한 것처럼 기독교는 가장 객관적이고 역사적인 그리스도의 부활에 서 있기에 우리의 믿음은 100% 안전합니다.
그러면 부활체란 어떤 몸입니까? 성도의 부활체를 알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예수님의 부활체를 연구해 보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20절에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부활은 모든 부활의 첫 열매라는 말씀입니다. 첫 열매란 히브리 사람들이 곡식을 추수할 때 하나님께 첫 열매를 드리는 개념입니다. 이때 첫 열매는 모든 다른 추수 열매의 대표입니다. 즉, 다른 모든 똑같은 것들 중에 처음 것이 첫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앞으로 부활하게 될 우리의 부활의 첫째 증거라는 뜻이요, 이 말은 그분의 부활체는 우리가 입게 될 부활체와 똑 같은 종류의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에 사도 요한은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참 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3:2-3).
또한 첫 열매라는 단어를 통하여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 이전에는 그 누구도 절대로 부활의 영광된 몸을 입은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제일 처음으로 부활체를 입으셨고, 그리고 예수님 재림 시에 주의 백성들이 똑 같은 종류의 부활체를 입게 될 것을 알려 주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5장 50절을 보면,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고 말합니다.
바울은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육신으로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얻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여호와의 증인 같은 경우는 이 지상에서 지금 우리의 혈과 육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것이라고 가르치는데 이는 성경과 위배된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결단코 부활 없이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재림시에 주께서 우리에게 유업으로 주실 하나님의 나라는 물리적이지만 영원한 나라이기에 우리의 물리적인 몸이 영원해야만 그 나라에서 영원히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죽음이라는 저주 아래에 있는 이 몸뚱어리로는 그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체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주 안에서 이미 죽은 자들이 부활체를 먼저 입게 될 것이고 예수님 재림 시에 이 땅에 살아 있는 자들은 ‘휴거’하게 되면서 그들의 몸이 변화하여 부활체가 될 것입니다.
[
14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살전 4:14-17)
[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고전 15:51-53)
마지막 나팔 때, 곧 천사의 호령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좇아 강림하실 때,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던 사람들은 그냥 그대로 공중으로 끌려 올려 질 것입니다. 이를 신학적인 용어로 휴거라고 합니다.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주의 백성들이 홀연히 다 변화할 것입니다. “순식간에”라는 말은 시간적으로 계산할 수 없는 찰나의 순간을 말합니다. 곧, 주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몸이 눈깜짝할 사이에 다 신령하고 아름다운 영광의 새로운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부활의 몸을 입은 후로는 영원토록 죽음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새로운 육체의 몸은 다시는 죽지 않는 불멸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망이 완전히 소멸되고 죄의 저주는 완전히 제거된 채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영원한 승리만이 남게 됩니다.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전 15:53-54).
고린도전서 15장 42-44절은 예수님의 부활체, 또는 우리가 입게 될 부활체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
42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고전 15:42-44)
성도의 부활체는 육신의 몸에 대비하여 신령한 몸이라고 말합니다.이 부활체는 썩지 않으며 영광스러우며 강하고 신령합니다.
마찬가지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가지셨던 몸은 썩지 아니하는 몸이요, 영광스럽고 강하고 신령한 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경우는 그의 원래 몸이 부활체로 변화하셨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신 것은 나사로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차원이 아니었습니다.
나사로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은 변화된 몸, 곧 부활체로 살아난 것이 아니라, 원래 육신의 몸이 죽었다가 또다시 육신의 몸으로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이때 주께서는 나사로를 다시 살리심으로 단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하여 상징하고 미리 예견하였을 뿐입니다. 즉, 나사로가 입은 몸은 원래의 육신의 몸이지 영원히 불멸하는 부활체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죽었습니다.
반면 부활하신 주님께서 입으신 그 몸은 참으로 영광의 몸으로서 영원히 죽지 않는 불멸의 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이 부활체를 입고 영원히 살아계십니다.
이러한 부활의 몸으로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셔서 모든 잠자는 자, 곧 주 안에 죽은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 재림시에 우리가 입을 부활의 몸도 다시는 죽지 않는 영광스럽고 불멸하는 몸이 될 것입니다.
주의 제자들은 이러한 부활체를 입은 예수님을 40일 동안이나 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부활에 대하여 자신의 눈으로 직접보고 만졌습니다. 또한 부활하신 예수님과 친히 대화를 나누고 식사를 하였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생생한 체험으로 부활체를 미리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님의 부활체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입으셨던 몸과 연속성이 있고, 또한 동시에 불연속성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기존의 몸이 변화함으로 인하여 기존의 몸에 대한 연속성이 있고, 그러나 변화하였기 때문에 불연속성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체의 연속성을 보면, 예수님의 목소리가 같습니다.
요한복음 20장 15절 이하를 보면,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무덤 앞에서 너무나 슬퍼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자신 앞에 부활하여 나타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동산지기인 줄 알고 예수님의 시체를 어디에다 두었냐고 묻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이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마리아야”라고 부르십니다. 이때 막달라 마리아는 자신을 부르시는 그 음성을 알아 듣고, 주님인 줄 알게 됩니다. 즉, 막달라 마리아가 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음성은 자신이 항상 들어왔던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과 같았던 것입니다.
둘째는 요한복음 20장 17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여기서 “붙들다”는 헬라어 “합토”는 “달라 붙다”, “다시는 놓지 않으려고 매달리다”는 뜻인데 지금 막달라 마리아가 자신 앞에 계신 예수님이 너무나 좋아서 예수님께 달라 붙어서는 놓지 않고 있는 장면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붙잡고 메어 달리는 것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있어서 현실이며 실제입니다. 환상이 아닙니다. 착각이 아닙니다. 무슨 영을 본 것이 아닙니다. 마리아에게 부활의 예수님을 만난 것은 과거의 예수님을 보는 것처럼 아주 생생한 사실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유령이라면 이런 일이 불가능하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몸을 막달라 마리아가 붙잡고 있는 모습에서 그녀에게는 주의 부활의 몸이 주의 과거의 몸과 별다르게 느끼지 않았음이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이렇게 친근하게 달라 붙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의 몸은 부활 이전의 몸과 같은 몸이었던 것입니다. 즉, 물리적인 면에서 지금 이 몸과 부활체는 분명한 연속성이 있습니다.
또한 마태복음 28장을 보면 다른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에 왔다가 천사를 만나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향해 기쁨과 두려움으로 달려가다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이때 예수께서 말을 건네십니다.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였더라”(마 28:9)
여기서 여자들이 예수님의 발을 “붙잡다”고 할 때 원어는 “크라테오”입니다. 이 뜻은 “꽉 껴안다”라는 뜻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영이라면 껴안을 수 없습니다. 이때 이 여인들이 껴안은 것은 예수님의 실제 발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발을 붙잡고 예수님을 경배하였습니다. 즉, 주의 부활의 몸은 부활 이전의 몸이었던 것입니다.
누가복음 24장 13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인하여 너무나 상심한 두 제자가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 중 한 제자의 이름은 글로바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다가오셔서 곁에서 동행하십니다.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으나 전혀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또한 자신들과 다른 어떤 존재와 걷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들에게는 친근한 어떤 사람이 자신들과 함께 걷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함께 식사를 하며 예수님께서 떡을 떼시고 축사하실 때 이들은 예수님을 알아 보게 됩니다. 떡을 떼시며 축사하시는 그 모습! 바로 그 모습은 자신들이 경험하였던 이전 예수님의 모습과 정확히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오천명을 먹이실 때, 또는 사천명을 먹이실 때 떡을 떼시고 축사하시는 모습과 정확히 같았던 것을 기억하면서 예수님을 알아 본 것입니다. 이는 부활 이전의 예수님의 모습과 부활 이후의 모습이 대단히 유사했다는 증거입니다.
요한복음 20장 20절에서는 예수님께서 도마 및 제자들에게 못 박히셨던 손과 옆구리의 창 자국을 보이시면서 부활을 믿으라고 하십니다. 여기서도 예수님의 몸에 창 자국이 있다는 사실은 예수님의 과거의 몸과 부활체의 몸의 연속성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24장 39절에서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십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고 하십니다. 곧, 예수님의 부활체는 구운 생선과 빵을 드실 수 있는 살과 뼈가 있는 몸으로서 부활 이전의 몸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요한복음 21장 10절 이하를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바다에서 제자들을 만나십니다. 시몬, 도마, 요한, 야고보 등, 일곱 제자들이 실망한 채로 밤새도록 물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밤새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합니다.
새벽녘이 되니 뭍에 계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물으십니다.
“거기 물고기 잡은 것이 있느냐”
“하나도 잡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 그물을 배 오른편에다 던져라.”
이때 제자들이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집니다. 그리고 그물을 거두니 고기를 많이 잡습니다. 큰 물고기만 153 마리였습니다.
이때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처음에 부르셨을 때와 똑 같은 사건이 발생한 것을 보고 뭍에 계신 분이 예수님인 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급하게 달여와 주님과 함께 조반을 먹게 됩니다. 뭍에 나오니 숯불이 있고 물고기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조반을 친히 준비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요술을 부리지 않으셨습니다. 친히 부활하신 몸으로 숯불을 지피시고 그 위에 물고기를 얹으셔서 물고기를 구운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예수님께서는 생선을 드십니다.
아무튼, 주께서는 제자들에게 부활의 실상을 깨닫게 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의 모양이나, 또 생활 활동이나, 목소리까지, 부활이라는 것은 환상이 아니고, 또 무슨 스크린에 비치는 그림 같은 것이 아니고, 생생한 현실이라는 것을 증거하시고, 또한 부활하신 자신의 몸을 만지게 하시고 보게 하시면서 부활이 무엇인지 가르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분명히 예수님의 부활의 몸과 부활 이전 몸 사이에는 너무나 뚜렷한 연속성이 있습니다. 이 연속성 때문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이전에 예수님으로 인식하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체를 보면서 이상하게 여기거나 겁을 먹거나 사람이 아닌 어떤 우주인처럼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여전히 그들은 부활의 예수님을 알아보는 순간부터 과거의 예수님처럼 이야기를 나누었고 과거처럼 음식을 함께 먹었으며 과거처럼 예수님과 함께 일도 하고 시간을 나누었습니다. 즉, 물리적인 몸을 지닌 사람이라는 점에서 부활체를 입기 전의 예수님이나 부활 이후의 예수님은 전혀 다른 점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주님 재림 시에 부활체를 입게 될 때 이 땅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만나면서 음식도 먹고 대화도 나누고 과거 이 땅에서 가졌던 관계를 계속 유지할 것입니다. 서로 알아 볼 것이며 부둥켜 안기도 하고 지금과 똑 같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눌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있었던 모든 기억들이 지워지지 않고 그대로 있을 것입니다. 이를 어떻게 압니까? 바로 모든 부활의 첫열매인 예수님의 부활을 연구하여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한편,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부활체는 지금 우리의 몸과 불연속성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24장 31절을 보면, 엠마오로 내려가는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보는 순간 예수님께서는 순식간에 사라지십니다. 그리고 순식간에 이동하셔서 이미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계십니다. 이러한 현상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이러한 특징은 바로 부활체의 불연속성이라는 점입니다.
또한 제자들이 두려워하여 문을 꽉꽉 잠그고 숨어서 모여 있는 그 장소에
벽과 문을 통과하여 어느새 제자들 사이에 서서 “평강이 있으라”며 인사하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들은 바로 예수님의 부활의 몸은 우리의 현재 몸과는 분명히 불연속성을 있음을 의도적으로 증거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마가복음 16장 19절을 보면 부활하신 주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는 승천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오르십니다.
특히 사도행전 1장은 주의 승천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행 1:9-11)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체는 지금 이 땅과 하늘의 법칙을 초월함이 확실합니다. 만유인력의 법칙이 예수님의 부활체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분명 예수님의 부활체는 이 땅의 몸이면서도 이 땅에 속하지 않은 몸입니다. 중력의 법칙이나 생물학의 법칙이 예수님의 몸에는 적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의 부활체는 생생한 현실이며 뼈와 살이 있으며,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이 몸과 분명히 같은 몸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5 절을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개정 개역은 이해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제가 원어에서 쉽게 번역해 보았습니다.
“이 땅에 속한 이 몸이 무너질 때, 곧, 우리가 죽어서 이 몸을 떠날 때 – 우리는 하늘에 우리의 집이 있음을 압니다. 그리고 우리는 때가 되면 그 하늘의 집에서 사람으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영원한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몸은 지치고 피곤하지만, 그날 우리가 입게 될 몸은 마치 새 옷처럼 하늘의 새로운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몸이 없는 상태로 영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새로운 하늘의 몸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죽어가는 이 몸은 신음하며 한숨 가운데 있으나, 그때는 새로운 몸을 입고 다시는 죽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때는 영원한 생명에 의하여 이 죽어가는 몸이 삼킨바 된 것처럼 되는 것입니다.”(고후 5:1-5).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썩지 아니할 신비한 영광으로 가득찬 강하고 신령한 몸을 입고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사실 이 부활체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할 때부터 계획하신 완성된 사람의 몸입니다. 완성된 사람의 모습은 바로 거듭난 영혼이 죄가 없는 가운데 영원한 부활의 몸을 입고 생생하게 현실적으로 지금처럼 사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10 절은 예수님의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세계와 피조물의 보이는 세계가 통일되어 연합되는 현상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때에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원한 아버지와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는 영원한 그의 백성이 되어, 주께서 친히 준비하신 영원하신 기업인 새하늘과 새땅에서 생생한 현실 가운데, 우리는 부활의 몸을 입고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최종의 영생인 것입니다.
이 부활을 눈으로 목격하고 체험한 제자들은 성령의 강림하심과 함께 교회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은 부활을 직접 보고 소망하였기 때문에, 더 이상 죽음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죽음마저도 기뻐하면서 복음을 증거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알고 있는 것은 우리는 주님 오실 때 부활체를 입게 될 것이며, 그리고 그 부활체를 입고 영원히 썩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나라, 새하늘과 새땅을 유업으로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기 전까지는 믿음이 약하고 유치한 제자들이었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거듭 거듭 만나면서, 부활의 실체와 그 진상을 체험하여 알게 되면서 그들은 복음을 정확하게 알게 되었고 그들의 믿음은 더욱 강하여졌던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이 승천하실 때까지 생생한 현실로 부활하신 주님과 대화도 나누고, 식사도 같이 하고, 또 성경을 가르쳐 주심을 배우면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조금도 의심할 수 없었고, 그들은 또한 승천하시는 그 거룩한 광경을 눈으로 다 목도하면서 부활의 몸의 영광스러움과 그 강함과 그 엄청난 복을 더욱 절실히 느꼈던 것입니다.
“아, 저 부활체의 몸을 가지고 그냥 하늘로 올라가시는구나. 주 안에 있는 자는 누구나 주님의 재림 때 저런 영광의 몸을 입고 그리고 저렇게 승천하시듯이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이구나.
주와 함께 영원히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있게 되는 것이구나.”
그들은 다시는 부활을 의심할 수 없게 되었으며 동시에 부활을 소망하며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체를 목격한 제자들마다 그들은 부활을 증거하며 새하늘과 새땅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를 유업으로 받으려면 죄사함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십자가의 속죄를 외쳤습니다.
누구든지 영원하고 찬란한 부활을 입고 영원한 새하늘과 새땅을 기업으로 받으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을 믿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왕과 구세주로 영접하라고 외쳤습니다.
또한 동시에 쉬지 않고 부활의 소망을 갖고 부활을 전하며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부활의 역사성과 실제성, 그리고 그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기억하시면서,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부활을 믿기 바랍니다. 현실처럼 부활을 소망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시고 준비하시는 부활의 몸과 또한 새하늘과 새땅을 유업으로 얻기 위해 그리스도와 믿음으로 늘 연합하기를 바랍니다.
[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고전 15:57-58)
이 세상은 잠깐입니다. 쏜 살입니다. 덧없습니다. 허무합니다. 그리고 곧 죽음이 기다립니다. 그러나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요 오는 세상, 곧 영원한 천국과 부활의 영광이 기다리는 줄 믿고 오늘도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흔들림이 없는 믿음을 가지고, 더욱 주를 위하셔 사시는 주의 백성들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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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료 감사합니다.
좋은 설교 감사합니다.
좋은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