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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8일 목요일 <정의와 공의의 개념, 말씀의 적용의 함정>
[김용호] [오전 2:31] 굿모닝입니다~^^ 주님 안에서 멋진 목요일을!!
[김용호] [오전 6:29] 어제 집사님의 질문으로 나왔던 정의와 심판에 대해 좀 더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서구 신학이 구약의 하나님을 정의와 심판의 하나님으로, 신약의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으로 해석합니다. 여기에는 일견 타당한 점이 있습니다. 구약은 율법을 제시하시고 그 준행 여부에 따라 복과 저주를 내리는 하나님으로 묘사되어 있는 반면 신약은 죄인에 대한 용서와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으로 묘사되어 있는 측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 반대되는 측면도 있다는 것을 저들은 애써 외면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속죄제사 제도는 죄인의 죄를 무한정 탕감해줌으로써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와 은혜를 포함하고 있고, 반면에 예수님은 구약에는 없는 영원한 불의 심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구약의 하나님보다 신약의 하나님이 더욱 두려워 할 수밖에 없는 하나님이 됩니다. 이렇게 볼 때 구약의 하나님은 정의의 하나님이고 신약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비교는 그 자체가 오류인 것입니다. 구약과 신약의 하나님은 공히 엄위하게 정의를 따지시는 하나님이심과 동시에 인간에 대해 자비와 인내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구약과 신약의 하나님의 경륜이 다른 점은 오히려 다음과 같습니다.
구약의 하나님은 정의로운 율법을 사람들에게 제시하시고 속죄 제사를 통해 악한 인간들에게 끝없이 율법을 준행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이시고, 신약의 하나님은 더욱 강화된 율법을 제시하심과 동시에 예수님의 십자가 제사를 통해 그 율법을 준행할 수 있는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정의로운 율법은 계속 유지되고 있고, 끝없이 기회를 주시는 은혜도 유지되고 있다는 점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다만 다른 점은 인간에게 주시는 기회의 종류가 다른 것이지요. 개과천선의 기회냐 재창조의 기회냐가 다른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심판, 즉 미쉬파트(크리노)의 성격이 드러나게 됩니다. 현세에서는 심판이 변화(구약은 개과천선, 신약은 재창조)를 재촉하는 채찍질의 의미를 가진 구원을 독려하는 긍정적 심판이 되고(교화를 위해 교도소에 보내는 심판의 의미) 종말 이후의 최후심판 자리에서는 심판이 결과에 대한 처벌의 의미를 가진 부정적 심판이 됩니다(처벌을 위해 감옥에 보내는 심판의 의미).
그러나 우리는 최후심판의 자리에서도 다시금 생명수를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과 신약의 심판은 전체적으로는 교화와 교정을 위한 자비로운 긍정적 심판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보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정의를 이루시는 방법이라는 것이지요. 즉 미쉬파트(크리노, 심판, 신원)는 쩨다카를 이루는 하나님의 방법이라고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탈락하여 영원한 처벌에 이르게 되는 자는 끝까지 하나님을 부인하고 은혜의 약속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가 되겠지요. 계시록 마지막 장에서 이 두 그룹을 다음과 같이 구분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계 22: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계 22:15)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
그런데 최후 심판의 자리에서 과연 고집을 부릴 수 있는 자가 있을까요?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계 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그렇다면 이 땅에서는 실컷 재미를 보고 살다가 최후 심판의 자리에서 생명수를 받는 것이 더 유리하지 않겠는가? 라고들 생각하는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이 바로 금욕주의의 유혹에 휘둘린 서구 기독교의 오류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예입니다. 이 땅에서는 새로운 피조물로 재창조되어 하나님의 나라에서 서로 예수님처럼 사랑하며 사는 것이 약속된 지복의 삶이지 제멋대로 재미를 보며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 아닌 것이지요. 현세에서도 행복하고 내세에서도 행복하게 사는 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정의, 즉 쩨다카이며 그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심판, 즉 미쉬파트인 것입니다.
(아~~ 금욕주의의 폐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모든 기독교인들을 위선자로 만들고 죄책감에 시달리게 만드는 무서운 원흉입니다.)
성령의 역사로 의로운 율법에서 해방되어 서로 사랑하며 살게 됨으로써 의로운 율법을 완성하게 된다는 알쏭달쏭한 사도 바울의 진술이야말로 금욕주의에서 해방된 의인의 증언이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미쉬파트에 의해 쩨다카가 이루어진 증인의 증언인 것이지요.
[정진호] [오전 8:44] (요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자기 사람을 사랑하신 예수님을 세상 사람들은 뭐라고 평가할까요? 이기적인 예수님?
[김용호] [오전 8:46] 원망과 저주를 퍼붓게 되지요.
[정진호] [오전 8:48] 기독교인은 이 말씀을 좋아할 수 있지만 그 사랑의 방식이 인간들이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우리 옛사람을 십자가에서 죽이시고 부활케 하시는 방법이라는 것을 처음부터 알았다면 과연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겠는지 궁금하네요.
[김용호] [오전 8:50] 아마 몇 명 안 남았겠지요.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랬었고 사도 바울과 함께 했던 자들도 대개 떠났던 것처럼요. 한 가지 예외라면 예루살렘 교회인데 흥왕했다고 나오지요. 물론 로마의 침공으로 모두 흩어지긴 했지만요.
[정진호] [오전 8:52] 첫 번째 믿음에서 머물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할일이 그 다음 단계로 성장하라고 하는 건데 그 일을 위해 우리가 먼저 그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하겠습니다. 즉 예수님은 인간을 어떻게 사랑하시는지를 우리가 먼저 경험하고 있는 거지요. 그 결과는 우리가 이 땅에서 복을 누리는 결과로 나오게 되겠지요.
[김용호] [오전 8:52] 그 점이 우리가 받은 은혜의 핵심이고 우리의 사명의 핵심이지요.
[정진호] [오전 8:58] 기쁨과 감격으로 사명감당하며 산다는 사실이 좋아서 미환팔발의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김용호] [오전 8:58] 헉~ 미환팔발이 뭔가요? 무슨 심오한 뜻이?
[정진호] [오전 8:59] 심오하지요. 좋아서 미치고 환장하고 팔짝뛰고 발작하는 삶. 그래야, 그 정도는 돼야 약속이지요.
[김용호] [오전 9:03]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내 증인이 되리라”라고 하신 말씀은 엄청난 말씀인 것이지요.
[정진호] [오전 9:07] 그 삶이 얼마나 좋으면 사도들이 목숨까지도 그렇게 버리겠어요? 이 정도 돼야 약속이 아니겠어요? 순교가 쉬운 게 아닌데 돌 맞아 죽고 십자가에서 거꾸로 매달아 죽고 머리가 잘려 죽고 등등 죽음도 막지 못했던 그들이 받았던 그 약속의 실체를 향해서 우리가 지금 가고 있는 중입니다.
[김용호] [오전 9:09] 아멘~!!
[정진호] [오전 9:10] 그러나 비장하지 않고 쿨하게^^
[김용호] [오전 9:10] 즐겁고 기쁜 발걸음이지요.
[정진호] [오전 9:12] 그래서 오늘도 화이팅이지요!!!
[예레미야] [오전 9:15] 미환팔발의 기쁨을 소망합니다~ 이 사자성어 저작권 등록해야하시는 것 아닌가요? ㅎㅎ 화이팅입니다~
[정진호] [오전 9:37] 미환팔발은 내 기억에 창구가 옛날에 처음 사용했던 걸로 기억해요. 그래서 저작권은 창구형제에게 있어요.^^
[최해준] [오전 11:19] 미환팔발 ㅋㅋ 기대합니다.
[연동흠] [오후 2:59] 굿모닝 씨오엠에서 내일 면접 보러 오라고 좀 전에 문자왔습니다! 채용되면 세마고나 배제고로 발령 날 것 같습니다!
[최해준] [오후 3:00] 굿 뉴스군요. 화이팅~!!!
[연동흠] [오후 3:00] 감사합니다!
[최해준] [오후 3:01] 배제고면 서울 아닌가요?
[임지웅] [오후 3:01] 오~ 제가 배제고 출신인데!!
[정진호] [오후 3:01] 어? 나도 배제고 출신이야.
[임지웅] [오후 3:01] 헉! 선배님.
[최해준] [오후 3:01] ㅎㅎㅎ
[정진호] [오후 3:01] 이런 인연이?
[임지웅] [오후 3:01] 앞으로 더 엎드려야겠네요. 더 반갑습니다.
[정진호] [오후 3:02] 여기서 사랑스런 후배를 만나다니 감동이네. ㅎㅎㅎ
[임지웅] [오후 3:02] 섭리인 듯합니다.
[정진호] [오후 3:04] 이런 우연은 필연이라고 불러야 하는 거 아닌가?
[연동흠] [오후 4:07] 요즘 감사한건 엄숙 자매에게 용기내서 전도사님의 팔복 팜플렛을 전달하고 같이 읽고 충격 받는 엄숙 자매와 밤새 토론 하는 것입니다.
[정진호] [오후 4:09] 충격 받는다는 건 좋은 일이지.
[연동흠] [오후 4:10] 엄숙 자매가 우리 교회에 오길 꺼려했던 이유도 듣고!
[김용호] [오후 4:10] 이유가 뭔가요?
[연동흠] [오후 4:11] 작은 교회, 목사님이 없는 교회.
[김용호] [오후 4:11] ^^ 교회론의 문제지요.
[정진호] [오후 4:11] 작은 것이 아름답다^^
[임지웅] [오후 4:17] 작은 교회라는 말을 듣고 갑자기 든 생각인데요...한국교회나 서구교회가 대형교회를 성공적인 목회 또는 성장의 롤 모델로 삼는 것이 목회자 개인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더 심화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교회가 커짐에 따라 개척의 공을 자신에게 돌리고 자기가 높아지려는 그런 욕구도 있겠지만, 정치적으로 보면 현대 민주정이 갖는 한계가 간접민주주의이고 그로 인한 폐단이 있듯이, 교회도 더 키워야 성도들이 교회의 운영이나 방향에 관심을 끄게 될 확률이 높을 테니까요. 그리스에서 그나마 직접민주주의가 가능했던 것은 도시국가 체제였기 때문이듯, 교회가 작으면 성도들이 이래저래 참견할 텐데... 작금의 목회자들이 성장지상주의에 빠진 것도 어찌 보면 중우목회를 하려는 계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중우목회는 방금 지어낸 말입니다. ㅎㅎ
[연동흠] [오후 4:18] 맞습니다.
[김용호] [오후 4:19] 교회가 무엇인지에 대한 조직신학 교회론의 문제가 가장 근원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지. 로마가 국가 교회를 세우면서 교회를 종교기관으로 만든 것이 문제의 출발이거든.
[임지웅] [오후 4:19] 네. 전도사님. 제 생각은 현실을 극히 단순하게 끊어서 생각해 본 것이에요. 현상의 원인은 물론 더 복잡다단한 문제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요. 예전에는 제 인간적인 생각으로 여러 일들을 해왔는데 - 물론 지금도 부족하지만- 전도사님께서 말씀하신 프로 제자에 대해 생각해보니 제게 주어지는 기회들을 소중히 생각하며 올바른 뜻을 좇을 수 있다면 자신 있게 감당하고자 합니다. 물론 여러분들께서 도와주실 테구요. 그게 직업뿐만 아니라 신앙의 프로가 되고자 소망하는 자세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언제든 변호사인 제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기쁨으로 그물을 메고 달려가겠습니다!
[김용호] [오후 4:27] 프로 제자로서 변호사라는 직업을 극히 효율적으로 그리고 전략적으로 사용하는 지웅 형제가 될 거야.^^
[임지웅] [오후 4:28] 네. 제가 잔머리가 쫌... 그래서 여태껏 주판알 튕기며 하나님과 교제.ㅋㅋ 이제 이것도 알아서 써주시겠죠. ㅋ
[김용호] [오후 4:34] 굵은 머리든 잔 머리든 왜, 무엇을 위해 굴리느냐가 문제지. 효율성의 극대화는 우리가 세상 사람들보다 더 철저히 추구해야 하거든. 그러나 효율성의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또 하나의 핵심이긴 하지만 말이야. 최선을 다 하되 결과에는 순종~!!
모든 결과는 다음 스텝을 위한 수단이기 때문에 우리가 결과에 초점을 맞추면 수렁에 빠지게 돼.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한 것이어도 마찬가지야. 실패는 인간의 눈에 실패일 뿐, 하나님의 시각으로는 실패도 다음 스텝을 위한 귀한 도구가 되지. 성공이냐 실패냐는 모두 똑 같은 도구들일 뿐이고 하나님이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시는가, 그리고 나도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가가 핵심이지.
[임지웅] [오후 4:40] 네 전도사님...이제 조금이나마 그 꺼풀이 벗겨진다는 생각이 듭니다...과연 정말 그러할지는...ㅎㅎ
[김용호] [오후 4:53] 성경 공부에서 "적용(application)"을 순서에 많이들 넣곤 하는데 여기에 큰 함정이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내 삶에 적용시키는 것은 아전인수의 오류를 필연적으로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성경을 내 삶에 적용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성경에 적용시켜야 합니다.
내 상황에 맞는 성경 구절을 찾는 것도 대단히 위험합니다. 자기를 위해 성경 구절을 동원하려는 오류를 절대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지요. 모든 성경구절들은 우리를 참된 회개로 인도하기 때문에 어느 성경구절을 보든지 나를 쳐서 복종시키는 말씀으로 다가오는 것이 정상입니다. 대표적인 예를 몇 가지 들어보겠습니다. 예전의 신앙생활을 떠올리시면서 미소를 지으시길~~
“역시 하나님은 내 편이야~”
“역시 하나님은 내 마음을 가장 잘 알아주셔~”
“맞아! 이 말씀대로 하면 되는 것을 그걸 몰랐네~”
기도원에서 사역을 하던 시절에 설교를 하다보면 예배가 끝나고 찾아와 이런 말씀을 하는 분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오늘 설교 말씀은 정말 나에게 꼭 필요한 말씀이었어요~”
“나를 위해 하시는 설교였어요~”
[정진호] [오후 5:03] 아 참 쑥스럽게....
[김용호] [오후 5:04] 설교를 듣고 회개를 하게 된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면 저도 하나님께 감사하지요. 그러나 대개는 자기 탐욕을 채우는, 또는 자기를 합리화하는 방향에서 그런 체험!!! 들을 하시더라구요^^
“앗!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셔! 이런 설교를 듣게 하시다니~” 하면서 감격하면 참 뭐라 해야 할 지 대략 난감~^^
거기다가 “김 전도사님은 하나님이 귀하게 쓰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라고까지 하면 참...... 쥐어박을 수도 없고^^
[정진호] [오후 5:07] 다들 그러고 살아요. ㅎㅎㅎ 과거에 우리도 그러고 살았구요. ㅋㅋㅋ
[김용호] [오후 5:07] ㅎㅎㅎ 새삼 옛날 생각이 나시지요? 웃자고 드린 말씀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멀리 떠나왔는지도 다시 한 번 느끼구요.^^
[정진호] [오후 5:11] 세 가지 믿음에서 첫 번째 믿음은 반드시 제거되어야 진짜 성경에서의 믿음이 시작돼요. 과거의 우리 신앙이 첫 번째 믿음이었다는 것을 보게 된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몰라요.
[김용호] [오후 5:11] 진정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기적이지요. 왜냐 하면 우리의 본능을 거스르는 일이 일어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믿음은 인간의 종교 본능이거든요. 절대자를 찾아 의지하고자 하는 질긴 본능이지요.
[정진호] [오후 5:13] 내가 그 본능이 얼마나 컸으면 내 발로 교회를 찾아갔겠어요. ㅎㅎㅎ
[김용호] [오후 5:13] 정답~!! 그 본능을 교묘하게 활용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정진호] [오후 5:14] 와이프가 그 본능이 없던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왜 믿음이 안 생기는지 답답해했던 내가 참 답답하지요. ㅋㅋㅋ
[김용호] [오후 5:14] ㅎㅎㅎ 빵 터졌습니다.^^
[정진호] [오후 5:15] 전도사님은 웃기지도 않은 내용을 내가 무안할까봐 웃어주시는 거 아니에요? ㅎㅎㅎ
[김용호] [오후 5:15] 진짜 터졌어요.^^
[정진호] [오후 5:16] ㅋㅋㅋ
[김용호] [오후 5:16] 아직도 웃고 있어요.^^ 아이고 배야~~~^^
[정진호] [오후 5:16] 어쩌면 서구 기독교에서 다른 사람이 믿음이 적다고 안타까워하는 사람들도 전부 이런 경우 일 거에요.
[김용호] [오후 5:17] 그렇다고 보아야지요. ㅋㅋㅋ 아~ 웃음이 멋질 않네~ ㅋㅋ
[정진호] [오후 5:17] 우리 눈으로 보면 "왜 저 사람은 송아지 우상을 섬기는 신앙이 없을까?" 하고 안타까워하는 거지요.
[김용호] [오후 5:17] 또 정답~^^ "잔머리를 조금만 굴리면 하나님이라는 신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데~~" 하면서 안타까워하는 거지요. 부처와 무당 등등을 선택하지 않고 하나님을 선택한 자신을 대견스러워 하기도 하구요.^^
[정진호] [오후 5:20] 확률이 훨씬 더 높아 보이거든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불교 다니는 사람은 기독교인처럼 모든 문제를 가지고 부처 앞에 나가 기도하지 않아요. 근데 기독교인은 모든 문제를 하나님 앞에 내 놓거든요. 그러니까 응답 횟수가 당연히 많을 수밖에요.
[김용호] [오후 5:22] 절에서는 간증을 안 하니 간접체험도 별로 없지요. 간증~~~ 저도 많이 속아봐서 잘 압니다.^^
[정진호] [오후 5:22] 그리고 응답 받지 않은 건 빨리 잊어버리고 응답 받은 것만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니까 그걸 듣는 사람은 진짜로 신통한 걸로 생각하기 쉽지요.
[김용호] [오후 5:23] 그렇습니다. 자기에게 스스로 속임을 당하지요.
[정진호] [오후 5:23] 그러나 신앙생활 5년 지나 10년 지나 15년 지나면 다들 알아요. 그렇게 신통하지 않다는 걸요. ㅎㅎㅎ
[김용호] [오후 5:24] 그런 자들에게 부흥사들이 이렇게 외치지요. “처음 사랑을 회복하시오!!!”
[정진호] [오후 5:24] ㅎㅎㅎ 빵 터졌습니다. ㅋㅋㅋ
[연동흠] [오후 5:25] 잘 되면 내 탓 주님 탓! 안 되면 남 탓 주님 탓! 이번 퇴직 사건을 겪으면서 엄숙 자매와 둘이서 전도사님이 쓰신 팔복을 함께 보기 시작한 이유입니다.
[정진호] [오후 5:57] 전도사님 칼럼 중에 “흥부와 놀부” 있어. 그거 프린트해서 줘봐. 아무래도 기초부터 차근차근 나가야할 듯. 그 과정에 동흠 형제의 태도가 굉장히 중요해. 잘못하면 다 꽝 되는 수가 있어. 나도 꽝 될까봐 지금까지 와이프를 못 데리고 오는 거지. 동흠 형제가 부부 지체 1호가 되서 그 노하우를 전수시켜줘.
[연동흠] [오후 6:04] 예. 제 작은 바램입니다. “나를 퇴직시킨 회사 대표와 과장을 불쌍하게 보라.” 엄숙 자매에게 준 제1과제입니다.
[정진호] [오후 6:08] 얼마나 불안하고 공포스러우면 다른 사람을 자르면서 그 자리를 지키려고 하겠나? 그게 세상 사람들의 실존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그런 삶에서의 해방이다. 근데 불쌍하게 볼 수는 없어. 다만 그 사람들을 통해서 인간의 삶의 모습을 보게 되었으면 하는 거지.
[연동흠] [오후 6:14] 예. 엄숙 자매는 제가 쉽게 모든 걸 알려주어서 그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하네요!
[정진호] [오후 6:22] 동흠 형제가 이야기하면 다 받아주는 게 다행이네. 빨리 동흠 형제도 신앙에 더 진도 나가서 엄숙자매 잘 리드해줘야지. 남편이 리드해줘야지 누가 하겠어.
[연동흠] [오후 6:24] 팔복이 우선과제라고 보았습니다! 둘 사이에 같이 넘어야할 에베레스트가!
[정진호] [오후 6:25] 같이 넘으면 훨씬 수월하겠지.
[정진호] [오후 6:29] 오늘 내가 후배를 만난 기쁨을 이렇게 표현하고 싶네요. "대박" (당짓기 아닙니다. ㅋㅋ)
[임지웅] [오후 6:29] ㅋㅋㅋ저도 대박입니다. 선배님.
[정진호] [오후 6:29] ㅋㅋ
[김용호] [오후 6:45] 두 분만 대박을 외치면 좀 이상하니까 나도 대박~!!!
[정진호] [오후 6:48] ㅎㅎㅎ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