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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yond reason
몸, 마음, spiritual healing으로 누구나 가능하다!!
37세 뇌의 죽음을 경험한 뇌과학자가 직접 쓴 책
찌르는 듯한 두통으로 시작된 그날 아침
하버드대 연구원이었던 그는 자신에게 중증 뇌출혈이 왔음을 깨닫는다.
두려움과 동시에 그의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은
'뇌졸중을 체험한 뇌과학자라니 와! 멋진데! 였다.
자신의 왼쪽 뇌가 무너지는 과정을 하나씩 지켜본 그는 인간에게 뇌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몸소 알게 된다.
대수술 끝에 다시 태어난 그는 8년간의 회복 시간을 거치며
걷기, 말하기, 읽고 쓰기 등 한단계씩 뇌의 기능을 되찾는다.
뇌가 가진 치유의 힘과 신비로운 뇌의 능력을 체험하는 그는
우리가 뇌를 어떻게 대하고 다스리는가에 따라
관점, 인간관계, 나아가 우리 삶까지 바꿀 수 있음을 생생히 기록한다.
그가 본 뇌의 진짜 모습을 담은 이 이야기는
TED무대에 올라 역대 최고 인기를 끈 강연이 되었고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도 소개되어 수백만 명에게 감동을 선물한다.
뇌를 잃어서 뇌에 대해 더 깊이 탐구하게 된 운 좋은 뇌과학자 '질 볼트 테일러'
그의 놀라운 체험을 만나보자
서문
마음에서 마음으로, 뇌에서 뇌로
모든 뇌는 저마다 사연이 있다. 그리고 이 책은 나의 뇌가 겪은 사연을 담고 있다. 10년전 나는 하버드대 의과대학에서 인간의 뇌에 대한 연구와 강의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96년 12월 10일 나 자신이 선천적 혈관기형이 터져 뇌출혈이 발생했다. 4시간 동안 나는 호기심 많은 뇌신경해부학자의 시선으로 나의 뇌가 정보처리 능력을 잃어버리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내 삶의 모든 기억이 사라졌다. 몸을 작게 움츠린 나는 정신이 죽음에 굴복하는 것을 느꼈다. 그 당시에는 내가 이렇게 회복해서 사람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으리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 책은 내 존재가 침묵속에서 마음의 깊은 평화를 얻기까지의 여정을 시간순으로 기록한 것이다. 여기에는 뇌과학자로서 내가 받은 교육과 개인적 경험, 그리고 그로부터 얻은 통찰이 녹아있다.
.. 여기서 나는 인지능력이 단계적으로 무너져 가는 과정을 과학자의 눈으로 추적했다. 출혈이 심해지면서 내 인지능력이 어떻게 그 기능을 상실해갔는지 생물학적 근거를 들어 설명해보았다. ..그날 아침 나는 내가 우주와 하나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이후로 나는 인간이 어떻게 신비한 혹은 초자연적인 경험을 하는지를 뇌의 해부학적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게되었다.
하나. 뇌졸중 이전의 나의 모습
18개월 오빠는 뇌장애로 조현병 판정을 받음.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88년 한창 공부를 하고 있을때 오빠는 공식적으로 조현병 진단을 받음.
오바는 우주를 통틀어 생물학적으로 나와 가장 가까운 존재였다. 나는 내 꿈을 현실과 연결시켜 한단계씩 이뤄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오빠의 뇌는 대체 나와 어떻게 다르기에 꿈을 현실과 연결시키지 못하고 그냥 망상으로 그치고 마는 것일까?
. 뇌신경해부학을 전공하고 있던 1996년 12월 10일 아침에 나는 뇌출혈이 왔다. 4시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나의 뇌가 정보처리 능력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았다. 감각기관이 느껴야할 어떤 자극도 느껴지지 않았다. 뇌속에서 일어난 출혈때문에 나는 걷지도 말하지도 읽지도 쓰지도 기억하지도 못하는 장애인이 되어버렸다.
둘. 뇌졸중이 찾아온 아침
1996년 12월 10일 아침 7시 나는 CD플레이어가 작동을 시작하려고 탁탁거리는 익숙한 소리에 눈을 떴다.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후 다시 꿈나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내가 '세타빌 thetaville'이라고 부르는 이 마법의 나라는 꿈과 삭막한 현실 사이의 어딘가에 있는 말랑말랑한 의식이 머무는 초현실적 공간이다. 이 곳에서 내 영혼은 현실의 굴레를 벗어나 아름답고 자유롭게 둥둥 떠다닌다.
5분뒤 다시 탁탁거리는 CD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왼쪽 안구 뒤를 누군가가 날카로운 것으로 찌르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왼쪽 눈부위에서 느리고 규칙적인 맥박이 뛰는게 느껴졌다. 고통은 심해져 화끈거릴 정도였다. 눈을 찌르는 햇살을 피하려고 침실 창문의 블라인드를 내렸다. 움직이면 피가 제대로 돌아 고통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러닝머신에 올라가 노래를 들으며 뛰기 시작했다. 곧바로 몸이 분리되는 것 같은 희한한 감각이 정신없이 밀어닥쳤다. 의식은 명료했지만 몸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다. 저절로 손과 팔이 앞뒤로 흔들리고 몸통과 엇갈리는 것을 보고 있자니 내 몸이 정상적인 인식기능을 잃어버린 듯 했다.
내가 나의 행동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적극적인 참여자가 아니라 그저 지켜보는 관찰자가 된 듯했다. 나는 경이로운 마음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몸통이 음악과 완벽한 보조를 이루며 위아래로 움직이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도 두통은 계속되었다. 멈출수도 도망칠수도 없는 몽롱한 의식안에 갇힌 기분이었다. 러닝머신에서 내려와 욕실로 향하는데 움직임이 부자연스럽다는 것을 알아챘다. 동작 하나를 취하는 데도 몹시 힘들었고 경련이 일어난 것처럼 실룩거렸다. 균형감각을 잃은 탓에 똑바로 서있는 것도 힘들었다. .. 내몸이 얼마나 위험한 상태인지 아직 모르는 채로 욕실 벽에 몸을 기대고 균형을 잡았다. 수도꼭지를 틀자 물이 쏟아졌고 그 물소리에 깜짝 놀랐다. 물소리가 예기치 않게 크게 들려 정신이 바짝들었고 한편으로 혼란스러웠다. 근육사이의 협응과 평형능력, 청각이 뇌간의 뇌교를 통해 처리된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제야 처음으로 내가 생명에 위협이 되는 심각한 신경학적 기능부전을 겪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뇌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이성적으로 설명해보려고 애썼다. .. 내 언어적 사고는 앞뒤가 맞지 않았고 침묵에 의해 수시로 뚝뚝 끊겼다. 좌뇌의 재잘거림이 무너지기 시작하자 낯선 고립감이 밀려왔다.
'왜 이러지?
예전에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었나?
이런 기분이 든적이 있었나?
마치 편두통같아. 뇌속에서 대체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거야?'
집중하려고 애쓸수록 생각들이 휙휙 지나가 버렸다. 내게 필요한 대답과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 대신 서서히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내 삶과 나를 단단히 묶어놓었던 끊임없는 뇌의 재잘거림이 잦아들자 그 자리에 평온한 행복감이 밀려와 나를 포근하게 감싸 안았다.
두려움을 담당하는 편도체가 이런 낯선 상황에 놀라 나를 공포상태로 몰아가지 않는 것은 정말 다행이었다. 좌뇌의 언어중추가 침묵하고 삶의 기억들이 저편으로 멀어지면서 편안한 감정이 찾아왔다.
고차원적인 인지능력과 일상과 관련된 세세한 부분들이 기억에서 사라지자
내 의식은 모든 것을 다 아는 전지의 수준으로 도약한 것 같았다.
마치 우주와 하나가 된 듯했다.
욕실몸에 기대고 섰는데 내 몸이 어디서 시작하고 끝나는지 경계를 명확히 분간할 수 없었다. 몸의 구성성분이 고형의 덩어리가 아니라 액체인 듯했다. 더이상 나를 독자적인 대상으로 지각할 수 없었다. 손가락들이 마음대로 섬세하게 조종할수도 없었다. 몸뚱이가 천근만근 무거웠고 기력이 약해졌다. 샤워기의 물방울들이 몸으로 쏟아지자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손을 얼굴 앞으로 끌어올려 손가락을 움직여 보았다. 당혹스러우면서도 흥미로웠다.
'우아! 나란 존재는 얼마나 신비하고 놀라운지 몰라. 참으로 독특한 생명체야.
나는 살아있어. 앏은 막으로 된 주머니 속에 들어앉아 바다를 달리는 것 같잖아. 나는 생각하는 마음자체이고 이 몸은 내가 살아가는 수단이지. 나는 마음을 나눠갖고 있는 수십조개의 세포들이야. 이렇게 생명을 누리고 살아가고 있어. 정말 놀랍지. 세포들로 이루어진 생명체. 아니지 오묘한 재주도 있고 생각하는 능력을 가진 분자들로 이루어진 생명체라고 해야지!
몸의 상태가 이렇게 변하자 내 삶을 규정하고 지휘하기 위해 뇌가 항상 챙기던 외부세계의 수 많은 일들이 더는 신경쓰이지 않았다. 바깥세상과의 관계를 계속 일깨워주던 뇌의 재잘거림도 잠잠해졌다. 작은 목소리들이 사라지자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꿈도 날아가 버렸다. 나는 혼자였다. 순간순간 고동치는 심장박동의 리듬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한때 중요해 보였던 세상사가 이제는 보잘것 없게 느껴졌다. 그 보잘것없는 세상의 일에 나를 얽어매던 재잘거림이 멈추고 침묵이 찾아왔다. 이제 신경의 초점을 내부로 돌린 나는 신체기능을 하기 위해 수십억개의 똑똑한 세포들이 힘을 합쳐서 열심히 일하며 내는 규칙적인 고동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피가 뇌 사이로 흘러들자 내 의식이 서서히 속도를 줄여 거대하고 멋진 세상을 품안에 끌어 안으며 차분하고 만족스러운 상태가 되었다. 내 물리적 존재를 이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작은 세포들이 매 순간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있는지 느껴졌다. 그 사실 자체에 매료되었을 뿐만 아니라 겸허한 마음이 찾아왔다.
살아서 움직이는 조직들로 복잡하게 구성된 내 몸과 처음으로 일체감을 느꼈다. 내가 지성적 능력을 지닌 수많은 세포들로 가득찬 존재임을 깨닫게 되자 어찌나 자랑스럽던지! 사라지지 않는 혹독한 머리 통증은 힘겨웠지만 나는 정상적인 지각을 넘어 새로운 경험을 안겨주는 이 기회를 놓치기 싫었다. 의식이 평온한 상태로 빠져들자 마치 하늘나라에 온것만 같았다.
가슴을 때리는 물방울 세례를 맞으며 욕조에 서 있자니 어느 순간 따끔거리는 통증이 가슴을 지나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깜짝놀란 나는 내가 커다란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의식을 현실로 되돌려 내 몸 상태가 얼마나 비정상적인지 점검했다. 대체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야 했다. 자가진단을 한 요량으로 과학적 지식들이 저장된 머릿속을 적극적으로 뒤지기 시작했다.
'내 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뇌 속의 어딘가 잘못된 거야?'
정상적인 인지의 흐름이 뚝뚝 끊겨 사실상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가까스로 몸이 무너져 내리지 않게 버틸 수는 있었다. 욕조에서 나오자 뇌가 취한 듯 얼얼했다. 몸이 불안정했고 무거워서 동작이 한없이 느려졌다.
내가 지금 뭘 하려는 거지?
아 옷을 입어아 해. 출근해야지
옷을 고르느라 애를 썼고 8시 15분에야 출근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방안을 서성거리며 생각했다.
좋아 이제 일하러 가야지. 그런데 어떻게 출근하지? 내가 운전할 줄 알았었나?
연구소까지 가는 길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을때 갑자기 오른쪽 팔이 마비되어 옆으로 쓰러지며 균형을 잃었다. 그 순간 알았다.
맙소사! 뇌졸중이야! 내가 뇌졸중에 걸렸어!
그리고 다음순간 이런 생각이 스쳤다.
멋진데! 일시적으로 황홀한 마비상태에 빠졌다. 내가 이렇게 복잡한 뇌의 작용을 예기치 않게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은 실은 다 생리적 이유를 알고 있어서였다는 생각이 들자 묘하게 우쭐한 기분이 되었다. 나는 계속 생각했다.
자신의 뇌기능을 연구하고
그것이 무너져 내리는 과정을 들여다보는 기회를 가진 뇌신경 해부학자가 얼마나 될까?
나는 인간의 뇌가 현실을 인지하는 과정을 이해하는데 평생을 바쳤다. 그리고 이제 이렇게 놀라운 통찰을 안겨주는 뇌졸중을 겪고 있다는 것이었다. 오른쪽 팔이 마비된 순간 팔다리에 있는 생명력이 빠져나갔다. 팔이 맥없이 떨어지며 몸통을 쳤다. 평생 그렇게 기묘한 기분은 처음이었다. 마치 내 팔이 털썩 잘려나가는 것같다고나 할까?
... 쉬고 싶었다.. 내존재의 깊은 곳에서 천둥처럼 우렁찬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지금 누워서 쉬면 영원히 일어날 수 없어!
이런 불길한 생각에 놀란 나는 지금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헤아려보았다. 당장 도움을 청해야 했다.
셋. 응급전화를 걸기까지
도움을 청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집중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제멋대로 머릿속을 들락날락하는 생각을 붙잡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안타깝게도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필요한 생각들을 계속 붙들고 있기가 어렵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 나는 순간과 순간 사이의 인지적 연결고리를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뇌가 전하는 유일한 메시지에 반복적으로 매달렸다.
내가 뭘하려는 거지?
도움을 청하자. 계획을 세우고 도움을 청하는 거야.
내가 지금 뭘하고 있지?
도움을 청하기 위한 계획을 세워야해. 그래 나는 지금 도움이 필요해
..정보는 여전히 거기에 있는데 도저히 불러올 수가 없었다. 내가 다시 언어적 사고를 하거나 내 삶의 기억들을 떠올릴 수 있을까? 내게서 이에 해당하는 부분이 영영 사라진 게 아닌가 싶었다. 슬픈 일이었다. 언어와 순차적 처리능력이 사라지자 내가 이제까지 살았던 삶과 단절된 기분이 들었다. .. 출혈이 좌뇌의 정상적인 기능을 방해하자 정보를 분류하고 세부문제에 집착하는 나의 지각도 자유로워졌다. 좌뇌를 지배하는 신경섬유들의 기능이 멈추면서 더이상 우뇌를 억제하지 않았고 내 의식은 세타빌 상태와 놀랄정도로 흡사한 상태에 빠져들었다. 아마도 불교도들이라면 열반에 들었다고 말할 것이다.
좌뇌의 분석적 판단능력이 상실된 상태에서 평온과 안락, 축복과 행복, 충만의 감정이 나를 휘감았다. 그러면서 내 안의 무언가는 도움을 청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내가 뭘하고 있는거지?
여기서 뭐하는 거야?
도움을 청하자
도와달라고 해야겠어
한순간 또렷하게 생각했다가 다음 순간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내가 알고 있는 삶과의 연결 끈이 끊어지자 불안했지만 한편으로는 인지능력이 체계적으로 무너져 내리는 광경을 지켜보는 것은 상당해 매혹적이었다. 좌뇌의 논리가 멈추었기 때문에 시간이 정지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순차적으로 관계를 살피고 세상을 탐험하게 해주던 뇌의 활동이 사라지자 나는 고립된 순간에서 고립된 순간을 떠돌고 있었다. A와 B는 더이상 관계가 없었고 하나와 둘은 서로 무관한 존재였다. 두 사이를 연결하려면 지성의 작용이 필요했는데 나는 더이상 이를 수행하지 못했다. 아주 간단한 계산조차 불가능했다.
..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지를 생각하는 데만 45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 전화번호를 돌리는데만도 한참이 걸렸다. 직장동료 스티브 빈센트와 전화로 연결되었다.
'맙소사. 그이 목소리가 마치 골든리트리버가 짖는 것처럼 들리잖아!'
좌뇌가 더이상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질이야 도와줘! 라고 말하려고 노력했지만 나의 목소리는 으르렁대는 신음소리에 가까웠다.
내가 제대로 말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마음속으로는 내가 또박또박 들을 수 있었지만 목구멍에서 나오는 소리가 뇌속의 단어와 들어맞지 않았다.
좌뇌는 스티브가 말한 단어의 의미를 해석하지 못했지만 우뇌는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 톤을 듣고 그가 나를 도와주려 한다고 판단했다. 그제아 나는 편안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했어. 그나 나를 도와주러 오는 것을 기다리는 수밖에!!
넷. 깊은 침묵안에서
성공적으로 도움을 청한 나는 6개월전에 한번 만난 주치의 의사를 떠올렸다. 명함을 찾았다. 하지만 명함을 보는 순간 당혹감이 밀려왔다. 마음속으로는 내가 찾는 이미지를 분명히 떠올릴 수 있었는데 눈으로 보자 앞에 놓인 명함의 정보를 도무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나의 뇌는 더이상 글씨와 글씨를, 상징과 상징을, 심지어는 배경과 배경도 서로 구분하지 못했다.
어렵게 전화통화는 되었지만 의사소통은 불가능했다.
나는내가 더이상 정상적인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이해했다. 좌뇌의 분별기능을 잃었다. 충동을 억제하는 이성이 사라지자 나 자신을 개별적인 존재로 보는 입장에서도 벗어났다. .. 내 의식은 오른쪽 뇌의 신성하고 평화로운 희열쪽으로 나아갔다.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다. 내마음에 평화를 달라고 동요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거룩하신 분이여!
제발 제 인생을 이렇게 닫아버리지 말아주세요'
동료 스티브는 나를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병원에 도착했을때 나는 의식은 있었지만 정신착란상태였다.
다섯. 병원에 도착하다
.. 질 볼트 테일러는 이날 아침 죽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누구일까? 내 좌뇌가 파괴되었다면 오른쪽 나는 누구지?
'나는 질 볼트 테일러야. 신경해부학자이고 이 주소에 살며 연락처는 이렇게 되지'하고 말하는 언어중추가 침묵하자 더이상 내가 그녀야할 이유가 없어졌다. 참으로 기이한 인식의 변화였다.
좌뇌는 자신을 남들과 구별되는 존재로 인식하도록 길들여졌다. 이런 제약에서 풀려나자 나의 우뇌는 영원한 우주의 흐름에 몸을 맡기며 즐거워했다. 나는 더이상 고립된 외톨이가 아니었다. 내 영혼은 우주만큼이나 거대했고 드넓은 바다에서 흥겹게 장난치며 놓았다.
.. 여러분은 내가 어떻게 당시 일어난 일들을 지금까지 기억하는지 궁금해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비록 정신적 장애를 입었지만 의식은 잃지 않았다. 우리의 의식은 수많은 프로그램들이 동시에 작동하며 만들어진다. 각각의 프로그램은 3차원 세상에 있는 여러 대상을 지각하는 우리의 능력에 새로운 관점을 더해준다. 나는 자아중추가 손상된 상태였지만 우뇌와 몸을 구성하는 세포들의 의식은 살아있다. .. 좌뇌의 의식과 예전의 성격이 퇴조하면서 우뇌의 캐릭터가 새로운 통찰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
.. 외부세계와 소통하려는 노력이 실패하면서 상처입은 몸의 고통이 지옥같았다면 영원한 희열로 날아오르는 의식은 마치 천국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내안의 깊은 곳 어딘가에 내가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흥분하며 환호성을 지르는 존재가 있었다!!
여섯. 신경치료실에서
위급한 상황을 넘긴 나는 신경 집중치료실로 옮겨졌다. .. 계속해서 쿡쿡 쑤시는 머리와 오른팔의 느낌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자각도 할 수 없었다. 내게 사람들은 에너지가 집중적으로 몰려있는 덩어리 같았다. 나와의 소통방법을 알지 못하는 외부세계가 나를 몰아붙이는 것 같았다. 나는 말하지도 못하고 알아듣지도 못하고 삶의 방관자처럼 그냥 있었다. .. 우뇌가 나를 지배하면서 타인의 감정에 더 많이 공감하게 되었다. .. 나는 에너지의 역학관계가 내게 미치는 영향을 주의깊게 살폈다. 내게 에너지를 안겨주는 사람이 있고 내게서 에너지를 뺏어가는 사람이 있었다. 한 간호사는 내게 필요한 것들에 대해 세심하게 마음을 써주었다.
.. 첫날 내 상태는 점차 나아졌다. 전부는 아니지만 몇몇 부위에서 빠른 차도를 보였다. 이후 회복까지는 몇년이 걸렸지만 일부 뇌부위는 말짱해서 현재 순간을 구성하는 수 많은 자료들을 해석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뇌졸중 전후의 가장 큰 변화는 머리속에서 인상적인 치묵이 자리잡게 되었다는 점이다. 외부세계와의 소통이 막혀버렸다. 순차적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언어도 막혀버렸다. 대신 그림으로 사고하는 능력이 생겼다. 또한 순간순간 들어오는 정보를 수집하고 그 경험에 대해서 시간을 들여 곰곰히 생각하게 되었다.
예들들어 의사가 내게 물었다. 미국 대통령이 누구죠?
입수되는 정보를 처리하기 위해 핵심단어들의 소리를 고르고 그것이 어떻게 소리가 났는지 잊어버리지 않도록 뇌속에서 계속 반복했다. 이어 그 단어의 소리와 맞는 의미를 확인하기 위한 탐구 과정에 몰입했다.
대통령이 뭐지? 그게 무슨 뜻이지?
대통령이라는 개념을 그림으로 파악한 뒤에 미국이라는 소리로 넘어갔다.
미국이 뭘까? 대체 무슨 뜻일까?
미국에 해당하는 파일도 그림이었다. 이어 대통령과 미국이라는 두 이미지를 합쳐야했다. . 결국 나의 뇌는 미국과 대통령에서 빌 클린턴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포기했다.
.. 초기 회복기간 동안 나 자신을 관찰하고 경험하는 일은 참으로 매혹적이었다. . 뇌를 잃는 다는 것, 더 정확히 말하면 왼쪽 뇌를 잃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예전에는 미처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일곱. 긍정에너지를 지닌 사람들, 부정에너지를 지닌 사람들
이틑날 아침 내병력을 확인하러 들어온 의대생이 잠을깨웠다.....그때 얻은 최고의 교훈은 나를 돌보는 사람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내게 달려있다는 사실이다. 마음을 여느냐 마느냐하는 과정은 내 소관이었다. 나와 교감을 나누고 부드럽고 적절하게 나를 만져주고 눈을 마주보며 차분하게 말을 건네면서 에너지를 주는 사람에게는 마음을 열었다.
.. 솔직히 예전보다 더 좋아진 점도 있었다. 회복이라는 미명하에 내가 새롭게 얻은 통찰을 망가뜨리고 싶지 않았다. 내 영혼이 우주와 하나이며 주위의 모든 것과 함께 흘러가는 것이 황홀했다. 에너지의 역동성과 보디랭귀지에 주목할 수 있어서 좋았다. 무엇보다 존재의 중심으로 흘러드는 깊은 내적 평화의 감각이 마음에 들었다.
여덟. 어머니가 오다
어머니가 왔다. 그녀는 내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침대옆으로 왔다. 우아하고 차분한 태도로 방안의 사람들과 인사를 한 다음 침대위로 올라와 내 옆에 앉았다. 그러고는 포근하게 나를 안아주었다.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검사결과 선천적 혈관기형때문에 뇌출혈이 일어났다. 나는 예전부터 약을 먹어도 듣지 않는 편두통이 있었다. 의사들은 그것이 편두통이 아니라 수년동안 출혈이 조금씩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 넷째날 옆에서 도와주면 일어서서 복도를 조금 걷는 것이 가능해졌다.
다섯째날 나는 수술을 견디는 체력을 키우기 위해 집으로 돌아갔다. 물리치료사가 계단 오르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아홉. 수술을 준비하며
2주후 수술을 대비하며 나는 하나씩 회복해나갔다. 다시 유아기로 돌아가서 사실상 모든 것을 처음부터 배웠다. 걷는 법, 말하는 법, 읽는 법, 퍼즐을 맞추는 법을 배웠다. 신체의 회복과정은 정상적인 발달단계와 비슷했다. 각각의 단계를 익혀 자연스럽게 다음단계로 넘어가는 식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다음 목표가 무엇인지 내게 명쾌하게 설명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이해시켰다. 나의 세세한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뇌졸중 환자 중에는 더이상 회복되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 그들을 이루고 있는 작은 성취에 주목하지 않는 것이 진짜 문제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명확하게 볼줄 알아야 다음에 무엇을 할지 판단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절망이 회복을 가로막는다.
어머니는 무슨일이들 척척 해냈다. 시간과 에너지를 전혀 낭비하지 않았다. 나는 깨어있을때면 무엇이든 배웠고 어머니는 내 손에 뭔가를 들려주거나 운동을 시켰다. 그러다가 졸음이 오면 충분히 쉬게했다. 어머니와 함께 삶의 가능성을 탐구하고 파일을 복구하는 일은 무척 즐거웠다. 그녀는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 단답식질문을 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 나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에는 정신을 놓치기 일쑤였다.
어머니는 내 뇌가 기능하고 있느지를 확인하고 싶을때는 주관식 질문을 했다.
예를들어 점심으로 야채 스프를 먹을까? 라고 물으면 나는 야채 수프가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뇌속의 정보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나면 '그게 싫으면 구운 치즈 샌드위치도 있는데'라며 다른 선택지를 제시했다. 그렇게 해서 이미지가 떠오르고 이해가 되면 이번에는 '참치 샐러드는 어때'라고 질문했다. 참치, 참치를 반복했지만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참치가 뭐냐고 물었다. 그러면 어머니는 바다에서 나는 생선 참치말이야. 참치 샐러드에 해당하는 파일을 찾지 못하자 점심으로 그것을 먹었다. 옛 파일을 찾지 못하면 새파일을 만들자. 이것이 우리의 전략이었다.
친구 스티브가 어린 딸이 읽는 책과 장난감을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퍼즐맞추기..
집에 돌아온지 일주일이 지나가 집안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설거지는 최고의 치료법이었다. 싱크대 앞에서 중심을 잡고 깨지기 쉬운 접시와 위험한 칼을 만지는 일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나는 접시를 깨끗이 씨는 일을 해냈다. 하지만 다 씻은 접시들을 작은 선반에 말끔히 정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 방법을 알아내는데 1년이 걸렸다.
편지들
'질 박사. 당신은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피닉스에서 당신이 기조연설을 맡았을때 만난적이 있어요. 건강한 몸으로 우리에게 돌아와요. 우리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의 연구는 우리에게 아주 중요하답니다'
뇌줄중에 걸리기 전에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려주는 감동적인 사연들이 매일 도착했다. ...
읽기를 배우는데는 시간이 많이 걸렸고 옆에서 연속적으로 동기부여를 해야 했다. 먼저 꼬불꼬불한 그림마다 각기 이름과 연관된 소리가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했다.
열. 개두수술 하는 날
열하나. 회복을 위해 필요한 것들
.. 우뇌가 선물하는 행복의 나라에 머물러 있으니 기쁘고 즐거웠다. 분석적인 좌뇌를 끌어들이는 것은 고통스러웠다. 뭔가를 시도하는 것은 나의 의식적인 결정이었다. 그때 곁에서 유능하게 세심하게 나를 돌봐주는 사람들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들이 없었다면 나는 굳이 애써 노력하지 않았을 것이다.
좌뇌의 판단력이 없는 상황에서 내가 발견한 평화로운 희열의 천국을 두고 굳이 혼란스러운 회복과정을 선택하기는 힘들었다. 그럴때면 내가 왜 예정상태로 돌아가야 하지"라는 질문을 넘어 '내가 왜 이런 침묵의 장소로 오게 된거지?'라고 자문했다. 뇌졸중이 내게 안겨준 통찰은 요약하면 이런 것이다.
'평화는 생각하기 나름이야.
평화를 이루려면 지배적인 왼쪽 뇌의 목소리를 잠재우기만 하면 돼!'
뇌는 놀랄만큼 역동적인 기관으로 끊임없이 변한다. 나의 뇌는 새로운 자극에 흥분했고 적절한수면으로 균형을 맞춰주면 기적이라 할만한 치유력을 보여주었다. 의사들이 종종 이런 말을 한다.
'뇌졸중이 일어나고 6개월 안에
능력을 되찾지 못하면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내 경우에는 뇌졸중 이후로 8년동안 뇌의 학습 및 기능이 꾸준히 향상되었다. 8년이 지났을대 몸과 마음이 완전히 회복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뇌졸중을 겪은 후 여러 해 동안 뇌의 수면욕구를 무시할때마다 감가계에 극심한 고통이 찾아왔다. 그러면 정신적, 육체적 탈진이 이어졌다. .. 나의 경우 회복과정에서 수면의 치유력이 정말 중요했다. 실제로 나는 무엇보다 수면, 수면의 효과를 열렬히 옹호한다. 더군다나 학습하고 인지적 과제를 수행하는 기간에는 충분히 수면이 보장되어야 한다.
.. 작업치료나 물리치료는 제대로 받지 않았지만 수술 이후 4개월 동안 언어치료를 꾸준히 받았다. 말하기가 읽기보다 한층 수월했다. 어머니가 이미 내게 알파벳 문자와 발음을 가르쳐주었지만 문자를 연결해서 단어를 만들고 의미와 연관짓는 일은 아직 뇌가 감당하지 못했다. 처음 언어치료를 할때 단어를 소리내어 읽을 줄만 알았지 의미를 결부시키지는 못했다. 꾸준한 연습끝에 마침내 한번에 단어하나를 읽고 의미를 떠올리고 이어 다음 단어로 넘어갈 수 있었다. .. 어휘를 되찾는 일은 뇌속의 잃어버린 파일을 복구한다는 뜻이었으므로 무척 흥미로웠다.
성공적인 회복을 위해서 할 수 없는 일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했다. 우리는 매일 내가 거둔 성취를 축하하며 내가 얼마나 잘 해내고 있는가에 대화의 초점을 맞추었다. .. 수술을 받고 몇주가 지난 후 좌뇌의 언어중추가 다시 움직이면서 내게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 .. 주중에는 연구하는 과학자로 일했고 주말이면 노래하는 과학자로 여행을 다녔으며 집안일과 사생활도 혼자서 다 알아서 했다. .
.. 내가 회복에 성공한 것은 전적으로 모든 과제를 더 작고 단순한 과정들로 나눌 줄 아는 능력 덕분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좀더 복잡한 단계로 올라가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단번에 알아챘다. .. 나는 순차적으로 사고할 수 없었으므로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배우려면 차라리 주위 사람들이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 편했다. 정보조각들이 나의 뇌에서 서로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가령 포크 사용법을 몰라서 여러차례 다른 사람의 시범을 보아야 했다. 나를 돌보는 사람은 인내심을 갖고 나를 가르쳐야했다. 내 몸과 뇌가 지금 내가 배우고 있는 것을 이해할때까지 반복적으로 보여주어야 했다. .. 사람들이 나를 가르칠때 목소리를 높이면 나는 마음을 닫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강아지가 고함소리에 놀라듯 그 사람을 두려워하고 그의 에너지에 기가 꺾여 그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다. 극도로 신경이 곤두서 있거나 화가 난 사람들의 방문은 내 회복에 역효과를 냈다.
뇌졸중을 통해 내가 배운 최고의 교훈이라면 감정을 몸으로 느끼는 방법을 배운 것이다.
열둘. 일상의로의 복귀
회복에 얼마나 걸렸어요?라는 질문을 가장 자주 듣는다. 그러면 나는 '뭘 회복하는데요?'라고 대답한다. 우리가 회복의 개념을 옛 프로그램에 다시 접근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나는 아직 완전히 회복된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나는 어떤 감정 프로그램을 되찾고 싶고 어떤 감정프로그램(조바심, 비난, 불친절)에 발언권을 부여하고 싶은지 무척 까다롭게 골랐다. 뇌졸중은 내가 세상에서 누구이고 어떤 존재로 살아가고 싶은지 선택할 수 있게 해준 놀라운 선물이었다.
뇌졸중을 겪기 전에는 내가 뇌의 산물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느끼고 무엇을 생각하는지에 대해 결정권이 없는 줄로 알았다. 그러나 뇌출혈 이후 나는 새로운 눈을 떴다. 내게 선택의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뇌 수술을 받고 몸을 회복시킨다는 것은 마음을 재건하고 신체의 자각능력을 되찾는 것에 비하면 쉬운 일이었다. 3개월 후 운전을 배웠다. 4개월 후 나는 혼자서 독립했다. ..집에서 컴퓨터러 자원센터의 업무를 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며칠에 한두시간 정도 일하는게 한계었다. 그러다가 일주일에 하루, 이틀로 늘어났고 ...
난감하게도 수술 뒤에 의사가 뇌발작 예방을 위해 간질약 다일랜틴 복용을 권했다. 뇌의 측두부위에 외과수술을 받은 경우에는 이 약을 처방받는 것이 관례였다. 이 약을 먹으면 피곤하고 무기력한 기분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불만은 약을 복용하면 나 자신이 되는 기분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2년동안 복용했다.
1년차에는 일주일에 5회씩 매일 5킬로미터를 양손에 아령들 들고 걸었다. 침술과 마사지를 병행했다.
2년차에는 뇌졸중이 일어난 아침을 내가 기억하는 한 최선을 다해 재구성하며 보냈다. 게슈탈트 심리치료사가 나를 도와 그날 아침 내 우뇌가 겪었던 경험을 선명하게 했다. .. 책을 출판했고... 마침내 내 마음이 방대한 양의 정보를 다시 학습할 수 있게 되자 이제 학문과 관련된 일에 복귀했다.
뇌졸중을 겪기 전에 프리셸 카드놀이를 좋아했는데 이후 이 게임에 다시 집중하기 까지 3년이 걸렸다.
지금은 닌텐도 두뇌훈련 게임과 말랑말랑 두뇌교실로 연습하고 있다. 뇌졸중 환자 뿐만 아니라 마흔이 넘은 사람들도 이런 두뇌 훈련도구를 활용하면 좋다.
5년차가 끝날 무렵에는 발을 놓을 착지지점을 보지 않고서도 해변의 울퉁불퉁한 바위위를 뛰어다닐 정도가 되었다. 항상 땅에서 눈을 떼지 않아야 했던 나는 놀라운 성과였다. 6년차의 최고 성과는 한번에 계단 두개를 오를 수 있었다.
몸의 기능을 회복하는데는 상상력(이미지 트레이닝)을 이용하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특정 과제를 수행하는 이미지를 집중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실제로 빠른 회복에 도움이 되었다. 뇌졸중 이후로 계단을 깡총깡총 뛰어오르 내리는 상상을 매일했다.
7년차에는 밤수면 시간을 11시간에서 9시반까지 줄였다. 이때까지 나는 밤에 충분한 수면을 취하는 것 말고 낮잠도 즐겨잤다.
8년차에 마침내 내 몸에 대한 자각이 유동체에서 고체로 돌아왔다. 정기적으로 수상스키를 타기 시작했는데 내 몸을 강하게 압박한 것이 결과적으로 몸과 뇌의 연결을 굳건히 다지는데 도움이 되었다.
이제 나는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산다. 하버드 뇌조직 자원센터의 노래하는 과학자로서 지금도 여행을 다닌다. .. 다른 뇌졸중 환자를 돕기 위해 가상 현실 시스템을 만드는 작업도 진행중이다.
이른 아침에는 호수에서 수상스키를 즐기고 저녁에는 열심히 동네를 산책한다. 창의력을 키우기 위해서 작업실에서 스테인드 글라스로 놀라은 물건들(주로 뇌)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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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1996년이 1966년으로 기록되었네요
감사합니다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