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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연재소설 (148) 손건의 담판
한편...
창정 싸움에서 크게 이긴 조조는 더이상 원소를 쫒지 않았다. 그것은 주요 병참이 관도 일대에 있었기 때문에 원소군의 잔당을 추격하다 보면, 병참지원이 멀어져 싸움을 계속하기에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고 또, 연일 지속되는 싸움으로 자신의 병졸들이 모두 지쳐있는 것도 고려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정을 살피기 위한 첩자만은 부지런히 원소군의 뒤를 쫒게 하였다.
얼마후, 첩자들이 돌아와 보고한다.
"원소는 병으로 누워 있고, 원상과 심배(審配)가 기주성을 굳게 지키고 있으며, 원담과 고간은 각기 자기 영토인 유주와 병주로 돌아갔습니다."
수하의 장수들은 그 말을 듣고, 이 기회에 기주까지 쳐들어가 원소를 아예 없애 버리자고 주장하였다.
그러자 조조가 반대한다.
"지금은 곡식이 무르익어 가는 계절이니, 이때 우리가 싸움으로 인해서 백성들의 곡식에 해를 입히면 그 원성을 어찌 감당하랴 ? 게다가 기주에는 심배와 같은 명장(名將)이 있으니, 비록 원소가 병중이라고는 하나, 결코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 우리 군사들도 오랜 싸움에 무척 피곤해 하고 있으니, 당분간은 싸움을 멈추고 군사들을 쉬게 하면서 추수가 끝날 때 쯤 다시 도모하도록 하자."
하고, 말하며, 허도로 돌아가지 아니하고 관도 진영에 눌러앉았다.
한편...
고성에서 유, 관, 장 삼형제와 조운, 손건, 미방 등 주축 장수와 형제들을 만난 유비는 세작(細作: 간첩)으로부터 얻은 그간의 경과를 손건으로 부터 보고를 받는다.
"조조가 허유의 계책으로 오소의 군량을 불태우고, 원소의 관도 군영을 함락해 칠십만 대군이 대패 하였으며, 원소는 겨우 목숨을 건져 일만이 채 안되는 군사를 거두어 기주로 퇴각하였다고 합니다."
유비가 그 말을 듣고 크게 놀라며 반문한다.
"칠십만 대군이 일만 밖에 안 남았다구 ? 원, 세상에 ! 어찌 싸웠길래 ?"
유비는 크게 낙담하며 자리에 주저 앉았다. 그러자 함께 있던 관우, 장비, 조운도 자리에 좌정하였다.
유비의 믿을 수 없다는 말이 이어진다.
"한때 전국 최고의 제후였던 원소가 순식간에 떨거지가 되었다구 ? ..."
관우가 침착한 어조로 말한다.
"조조의 뛰어난 용병술에 원소가 당한 것을 보니, 조만간 기주성도 그에게 함락될 듯 싶군요."
"조조는 역적이면서도 영웅인데다가 병법 또한 출중하니, 같은 세상에 살아가는 것이 행운인지 불행인지...도통 가늠이 안되는군."
유비가 경탄 반 저주 반의 대답을 하였다. 그러자 조운이 입을 연다.
"우리 군사는 채 삼천이 안되어, 조조군과는 숫적 열세로 그가 공격해 온다면 버틸 수가 없으니 속히 여길 떠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
유비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음... 형주의 유표에게 투항해 조조에 맞서려고 했는데, 이젠 원소의 칠십만 대군도 거의 다 잃었다고 하니, 유표가 조조에게 맞서려고 할지 모르겠네."
관우가 염려 반 기대 반으로 대꾸한다.
"유표의 군사는 삼십만이 있다고 알려진 바, 특히 그의 수군은 천하무적일진데, 조조를 겁내하겠습니까 ?"
유비가 그 말에 대답한다.
"유표는 나이도 많고, 평소의 그의 성격으로 볼 때는 , 그것이 비록 역적을 멸하는 전쟁이라도 벌이기 보다는 형주 9군을 안정되게 유지하고 싶어할 걸세. 그의 담력이 조금만 더 컸어도 조조가 지금처럼 방자하게 굴진 않았을 걸..."
조운이 그 말을 듣고 반문한다.
"유표가 조조와 결전을 벌일 담력이 없다면 어디로 가실 작정인지요 ?"
"유표가 담력은 없어도 현명하고 바른 군주이며, 황실의 후예이니... 지금 우리 형편에선 잠시 유표에게 도움을 받아 훗날을 도모해야할 성 싶네..그러니 누가 먼저 나서서 유표의 의중을 가늠해 보아야할 것인데... 우리을 받아줄런지 말일세..."
유비는 지난 번 조조와의 서주성 전투이후, 급격히 몰락한 세력 때문에 자신감을 잃었는지, 말 끝마다 결정을 설왕설래 하였다. 그러자 좌중의 인물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기만 할 뿐,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자 좌중의 침묵을 깨고 손건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입을 연다.
"주공, 소인이 형주로 가겠소."
유비가 그 말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 손건을 마주보고 허락한다.
"그러세 ! 어려운 일 인데, 나서준다니 다행일세."
"네, 주공 !"
손건은 즉시 형주로 출발하였다. 그리하여 유표를 알현하였다.
"손건이 저희 주공의 명으로 유공을 뵈옵니다."
그 자리에는 유표의 장공자 유기(劉琦)와 후실 부인의 동생이자 대장 채모(蔡瑁)가 있었다.
손건은 양 손을 모아 올려 보이고, 바닥에 넙죽 엎드리며 절하였다.
"일어나시오."
유표가 정중한 인사에 흡족한 얼굴로 말하였다.
"네 유공 !"
"유비가 아직 살아있다니 몹시 기쁘오. 이 넓은 중원에서 조조를 벗어날 영웅은 몇 안될 거요."
"옳은 말씀입니다. 저희 주공은 조조를 벗어났고 그와 계속하여 겨루고자 하지요."
손건은 역적 조조를 경멸하며 자신의 주공, 유비를 추켜세우는 어조로 말하였다. 그러자 이를 딱히 여긴 유표가,
"유비가 숱한 전쟁에서 연이어 패한지라, 조조의 적수가 못될 터인데..."
하고, 유비를 기특하게 여기면서도 그의 실력을 평가절하 하는 소리를 하였다. 그러자 손건은,
"숱하게 패했다기보다 패한 적도 있습지요."
하고, 애둘러 말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저희 주공께서는 살아있는 한 역적을 없애겠다고 맹세한 바 있지요. 유공 역시 황실의 후손이시고 고조의 피가 흐를테니, 저희 주공에 대한 동질감이 있으시겠지요.."
"음... 유비의 투쟁 정신은 정말 존경스럽네, 헌데 자네를 내게 보낸 이유는 ? 병사와 군량을 원하는가, 아니면 땅을 원하던가 ?"
손건이 정중한 어조로 입을 연다.
"바라는 것은 전혀 없으시고, 유공을 돕고자 하십니다. 아시다시피, 유황숙은 천하의 영웅이십니다. 비록 수하에는 군사가 적고 장수도 몇 명 안 되오나 항상 정의와 사직을 염려하시고 조정에 대한 충정은 철저하십니다. 지금은 조조에게 패하여 몸둘 곳이 없으셔서, 일시나마 강동(江東)의 손씨(孫氏)에게 의탁할까 하시기에 본인이 유공께 말씀드려 보려고 찾아온 길입니다."
유표는 그 말을 듣고 의문을 갖고 되묻는다.
" 나를 도와 ? 어떻게 말이오 ?"
"유공 ! 지금 황실은 안정되지 않은 상태이며, 조조는 승상 자리에 만족하지 않고 조만간 황제 자리까지 넘볼 것입니다. 원소군의 주력은 이미 세력이 꺽였으니, 야심가 조조의 다음 목표는 형주가 아니겠습니까 ? 그러니 이곳 형주로 불화살이 날아 올 날이 멀지않았다고 봅니다. 저희 주공은 병사는 적으나 관우, 장비, 조운 등 당대의 영웅호걸을 거느렸으니, 유공을 돕게 된다면 조조를 멸하고 황실을 되찾을 수가 있을 겁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유표가,
"유비와 나는 황실의 후손이니, 이런 난세엔 서로 도와 헤쳐나가야겠지, 유비에게 전하게..."
하고, 말했을 때에 대장 채모가 유표의 말을 끊고 나선다.
"주공 !..."
유표가 말을 멈추고 채모를 바라 보니 채모는 손건 쪽으로 눈동자를 힐끗 굴린다.
유표는 채모의 눈짓의 의미를 금방 알아차렸다. 손건도 채모가 유표의 말을 중간에서 끊고 나서는 것을 보고, 채모가 자신의 의견과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음을 간파하였다.
순간의 어색한 분위기는 유표의 말로 누그러졌다. 유표는 손건에게,
"아 ! 이러세, 물러가 좀 쉬게나. 잠시 후 주안상을 마련하겠네."
하고, 말하였다. 손건도 유표의 말을 쫒아, 예를 표하며 대답하였다.
"예, 물러가옵니다."
손건은 유표 앞에서 물러나 밖으로 향했다. 손건이 물러가자, 유표는 채모에게 말하였다.
"말해보게."
"주공 ! 유비는 액운이옵니다. 그는 처음에는 여포와 의기투합을 하다가 조조에게 몸을 의탁했습니다. 그러다가 근자에는 원소에게 갔다가 다시 그를 배반했으니, 그로서 그 인물의 됨됨이를 알아볼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 이제 그를 우리 형주에 불러들인다면 조조가 반드시 우리에게 원한을 품고 군사를 일으켜 오지 않을까 염려되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나 ?"
"조조의 세력엔 대적할 자가 없으며, 또 유비에게는 원한이 깊으니, 보내온 사자의 목을 쳐 조조에게 보내서 화친의 뜻을 전하신다면, 조조는 기뻐하면서 형주를 공격하려 하지는 않겠지요."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유표는 지금까지 아무런 의견도 없이 지켜만 보고 있던 큰아들 유기에게 묻는다.
"네 생각은 어떠냐 ?"
유기가 두 손을 모아 보이며 대답한다.
"아버님 ! 채장군의 말대로 하면 나라를 망치고 곧 형주도 잃게 됩니다."
하고, 단적으로 결론지어 말하였다. 그러자 채모가 깜짝 놀라며 반론한다.
"말씀이 지나치시오."
유기가 채모를 한번 쳐다보곤, 계속 아뢴다.
"아버님과 유비는 한 황실의 혈통이십니다. 유비가 우리에게 투항하여 아버님과 함께 조조를 대적한다면 형주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허나 채장군 말대로 유비의 사자를 죽이고 그의 목을 조조에게 보낸다면 사람들이 뭐라 할 것이며, 그때부터 아버님께선 세상에 어찌 나설 수 있겠습니까 ?"
채모가 뒤이어 반론한다.
"유비가 투항했던 여포도 죽고 원소는 일어서기 어려울 정도로 패배했소. 그걸 교훈으로 삼아야지요. 주공 ! 숙고해 주세요."
하고, 아뢰자, 유기가 재 반론한다.
"말씀이 과하시오. 여포는 지략이 없었고, 원소는 우유부단했던 관계로 모두 조조에게 패하였지, 유비가 자초한 일은 아니잖소 ! 게다가 아버님은 여포도 원소도 아니오. 유비에게 이용당하기는 커녕, 오히려 이용할 수 있지요."
유기는 단호한 어조로 냉철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였다. 그러자 채모가,
"주공 !"
하고, 자신의 의견을 받아들여 달라는 어조로 유표을 불렀다. 그것은 유기도 마찬가지로,
"아버님 !"
하고, 부르자, 두 사람의 의견이 확연히 갈리는 것을 유표가 손을 들어 말린다.
"됐네 ! 됐어 ! 손건을 들라하라."
유표는 결심이 선 어조로 명하였다.
"손건은 듭시오 !"
손건이 단하에서 머뭇거리다가 계단을 올라 유표앞으로 다가가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굽혀 절하였다.
그러자 유표가 묻는다.
"손건, 보게 ! 여기 차잎을 담던 상자가 있네. 누군가는 자네 목을 베어 여기에 넣어서 조조에게 바쳐서 화친의 뜻을 전하여 형주를 지키라 하네. 자네 생각은 어떤가 ?"
그러자 손건은 <허허허> 하고 웃으면서,
"유공 ! 소인의 목을 베기 전에 의사를 묻다니 과연 성군이시오 ! 고맙습니다."
하고, 대답하며 다시 허리를 굽혀 절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유표는 내심 감탄하며,
"모두 골고루 들어봐야지, 의견을 묻는 건 수치가 아닐세."
하고, 대답하였다. 손건이 태평한 어조로 대답한다.
"소인의 목으로 형주가 태평해진다면, 값어치가 있으니 꼭 베어가라 하겠습니다. 허나, 조조가 어떤 자입니까. 그깟 선물에 눈이나 꿈쩍할 것 같습니까 ? 소인이 조조라면 이 목을 보고 크게 웃을 겁니다. <형주는 손도 안댔는데, 지레 겁을 먹은 유경승이 놀라서 목을 보냈어 ! 그러니 공격이라도 한다면, 유경승은 단박에 항복하겠지 ! >하면서, 조조가 내년에 형주를 칠 계획이라면 소인의 목을 보는 순간 당장 공격을 앞당길 것입니다. 그러니 나의 목으로는 형주도 못 지키고 화만 부르게 될 겁니다. 그렇게 유공은 내 목 하나로 조조를 제외한 강적을 하나 더 만드시겠습니까? "
"그렇다면, 나머지 강적은 또 누군가 ?"
유표는 놀라며 물었다. 그러자 손건은 유비가 있는 쪽을 향하여 두 손을 모아 보이며,
"어찌 모르십니까. 저희 주공 유비입니다. 유비는 당신이 보낸 사자를 죽여 대중 앞에서 모욕을 준다면 그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 "
유표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리고 입을 연다.
"떠돌이 신세인 유비에게 자네같은 의인이 있다니..."
하고, 감탄하자 손건은 고개를 흔들며,
"저희 주공께는 의인이 많습니다. 관우, 장비, 조운 외에도 주창, 미방, 관평 등등..오십 명은 훌쩍 넘어야 미천한 제 차례입죠."
이렇게 말한 손건이 다시 머리를 숙이며 예를 표해 보였다. 유표가 결심이 선 어조로 말한다.
"속히 형주로 오시라 유항숙께 전하게. 내 성대하게 맞이할 것이네."
유표의 이 말이 끝나자 채모는 얼굴이 일그러졌고, 유기는 미소를 지었다. 손건은 즉시 한쪽 무릎을 꿇으며 , 두 손을 모아 올려 유표의 명을 경건히 접수하였다.
"명을 받들겠나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