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여행 後談 1
一泊 二日의 가을 여행은
기대반 설레임 반으로 내마음을 채우고 떠나는 여행이었다.
知天命의 나이에 부담없이 가을을 느끼기기 위해
어릴적 소꼽친구들과 만남을 위해서
일주일전 운동을 하다가 다친 장단지 근육의 통증을 잊은 채 중년의 가을과 순수한 情感을 느끼러
가볍게 떠난 여행이었다.
떠날때 다리 걱정을 하며 이왕 가는 거 재미 있게 놀다 오라며 와인 한병을 내주며 다리 걱정을 해주는 아내의 고마움을 가슴에 묻고( 하기야 나의 아내는 친구들과 설악산 단풍을 보고 와서 너무 좋았다며 다녀오라는 허락을 받고) 수원역을 향해 떠나는 중년의 마음은 한결 가벼운 마음이었다.
이번의 이런 소꼽친구들과 소풍여행은 36여년만의 있는 일이고
일생에 언제 또 만난 날이 있으랴는 생각에 나는 정말 추억 만들러 떠난 짧은 외출로서
너무 즐거운 마음의 여행으로 만들어 나갔다.
저녁 8시 헌식이를 수원역에 만나 우정의 악수와 포옹을 하면서 조우를 하고
나를 기다리며 저녁을 안 먹고 기다린다는 헌식이의말에 가슴이 뭉클 해지며 다시한번 뜨거운 우리의 우정을 느끼며 한편으로는 미안한 감을 느끼고(집에서 아내가 해주는 밥을 나는 이미 먹고 왔기에) 식당을 향해 헌식이 집앞 근처 식당으로 찾아갔다.( 헌식 아내도 마침 친구들과 설악산 단풍놀이를 가서 집에 없었음)
헌식이와 나는 8살에 연서 학교에서 만나 내생에 둘도 없는 친구로서 서로 떨어져 있어도 늘 곁에 있는 사이로서 중학교때 나는 조치원서, 헌식이는 청주에서 중학을 다니면서 연락을 하다가 고교 시험 을 준비하며 나는 대전고, 청주고, 양자 택일에서 대전고 실력은 자신을 못하고 청주고는 자신을 하는 단계에서 청주고를 합격하고 그곳에서 헌식이를 만나서 2학년때 같이 하숙을 하며 같은 방을 쓰면서 공부를 한 사이로서 서로가 서로를 너무 편하게 아는 죽마고우요 관포지교와 같은 사이이다.
그런 친구와 조우하며 저녁을 1인분만 주문하여 맛있게 먹으며 우리의 사는 얘기를 이어갔다.
헌식이는 소주를 한병 시키고, 나는 다친 다리때문에 술 마시면 끊어진 근육속에서 염증이 생기면 오래가고 좋지 않다는 한의사의 강력한 권유로 독한 소주를 마시지 않고 맥주를 시키어 한잔 들고 건배를 외치며 그동안 서로의 바쁜 삶으로 격조했던 우리의 만남을 즐기어 나갔다.
" 야 ! 우리가 40여년 살면서 너하고 나는 싸워 본적이 없지"
" 야 임마 내가 많이 참는 편이 잖아"
" 그려 니가 착하 잖아"
" 야! 나는 착하냐 ?"
" 착하다는 기준이 뭔데?
" 선하면서, 받아드리고, 참고, 남에게 폐를 안끼치는 거지"
"그럼 착하지 근데 너는 성질이 있어서...."
" 야! 남자 자식이 불같은 성질도 없으면 되냐? "
" 야 ! 나는 직원들에게도 혼낼대는 무섭게 혼내고 데리고 나가 술사주고 이해를 식히는 스타일이다"
" 그려 너의 추진력과 카리스마는 너의 멋이야"
" 하기야 이번 교육에서도 강사가 나를 보고는 예리하고 카리스마가 있는 것 같다고 하더라"
...........................................................
.............................................................
한잔을 비우고 얘기는 서로의 성격을 갖고 A형,O 형,,,,,혈액형을 얘기하며
진지하게 이어져 갔다.
그러던중 " 어차피 내일 아침에 인천 갈거 그리고 내가 술을 못하니 인천에 가서 찬용이네 노래방에 가서 범식이를 불러내어 그곳에서 회포의 정을 나누며 잔을 기울여 보자"
" 야 그래 그거 좋은 생각이다"
그래서 고야한테 그곳으로 가서 한잔 하겠다고 전화를 했다. ( 그때 고야는 내일 준비를 하느라 E-마트에서 시장을 보고 있는 중이었음)
그렇게 해서 헌식이 집에서 챙길 것은 챙기고 범식이에 전화해서 그곳으로 오라 해놓고 바로 떠나 어진 냇가의 동네 동춘동이라는 낯설지 않은 동네를 찾아 갔다.
도착하여 술을 시키고 앉아 있으니 시장을 보고 돌아온 고야가 반갑게 맞아 주며 자리를 함께하고
이어 범식이가 늦게 당도하니 이 밤은 익어가는 중이었다.
나의 의지도 목욕탕에서 옷 벗듯이 하나씩 하나씩 벗기어 지며
속살을 보일 듯이 벗겨져 나가는 모습을 느끼며. 내가 평소 즐기는 스카치 블루우 는 목을 타고 녹아 나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속살을 들어 내지 않으려고 속깊은 곳의 숨겨준 의지력을 동원하며 억지로 참아 나가는 데 바늘 가는데 실이 없으면 안되듯이 소주에 오징어 땅콩이 있듯이 고야는 중년의 아저씨들이 모처럼의 외출에 외박을 화려하게 해주기 위해 자기 후배들을 호출해 우리의 날개를 달아준다.( 처음 고야가 마음에 드는 행동 이었음(?))
이제 마지막 남은 속옷도 벗고 욕탕으로 들어가기 위해 나는 하나씩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아무 탈없는 헌식이와 범식이는 좋아서 이미 탕안에 들어가 몸을 술로 녹이고 있은지 오래 되어 분위기는 점점 농후한 중년의 밤으로 무르 익고 있었다.
그런데서 여인을 옆에 두면 나는 으레히 묻는 것이 성을 묻고, 고향을 묻고 하면서 이야기를 이어가는 스타일이라 그날도 곁에 있는 고야의 후배( 안면이 조금 있는 것 갖기도 한 여인)에 물어나갔다.
이게 왠일인가? 청주에서 6년을 산 충북 산 아릿다운 여인이 청주여중, 청주여고를 나온 우리의 후배라니 임자를 만난 것이었다.( 우리는 사회에 나와 청주여고 출신 여인들은 무조건 후배로 친다- 청주고, 청주여고는 그래도 충북에서는 명문고 라서 그런지 몰라도)
고향을 물으니시골이라면서 알려주지를 않는 다. 그러면서 이름을 물으니 고야언니 문학회 후배라면서 문학회에서는 김재?( 끝자는 잊어 먹음) 내가 너무 캐면 연결의 고리가 이어져 푸라이버시가 밝혀 질까바 숙쓰러워 하는 여인이 그래도 자존심이 있어 보였다.
그당시 시골서 청주여중, 청주여고 들어갈 실력이면 공부좀 한 여학생이다.
서면 촌닭 출신인 고야가 공부좀 했는지 모르겠지만 이 학생에 비하면 우족 지혈(牛足之血) 정도밖에 안 될 것이다.( 고야가 이글을 읽고 나서 나에 앙심의 한숨을 내품어도 엄연한 사실인데 할 수 없음)
여기서 내가 아는 고야 얘기를 한마디 하면 머리가 좋아 출중한 여학생이나 그머리 교과서적 공부에 쓰지 않고 중학교때 부터 남자와 연애하는 데 소질을 발휘해서 그런지 실전에 약한 것 같다.
예나 지금이나 그버릇은 남 주지 않으니 뭇 남성들이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고야 열받겠는 데? 이 글이 삼천포로 빠져서 )
...............................................................................
첫댓글 2편 빨리 나와라.안나오면 쳐들어 간다.
인신공격에 취미와 소질이 다분하신 벽전의 2편이 몹시 기다려지네.그리고 취향도 다양하셔. 무수리도 아닌 광대애호가? 그리고 또 중학교때부터 연애한 이야기는 조중 학생회장이 하도 따라다녀서 몇번 만나주고 차버린 그 얘기같은데 같은학교 대장한테 혹시 열등감을? 소풍 잘 다녀와서 슬슬 시비를 거는 속내가....
有口無言 有心 無言
거 한문에 토좀 다쇼.내가 워낙 무식해서 읽을 수가 없소이다.장로님한테 한번 더 혼나야 정신을 차릴래나.
나가 혼나는 것이 취향인줄 몰랐지요? 고야 G랄 하지, 장로님 엄숙히 한마디 하지, 또 누구 코 웃음 치지.......다 받아 드리며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