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수행이야기]〈76〉야금야금 탐욕 키우다 죽음이 다가오는지도 몰라
마음이 평온하면 여유 있고 항상 만족
욕심 없어야 수행의 참 맛 알 수 있어
강의할 때나 혹 법문하면서 탐진치 3독을 언급할 때는 속으로 뜨끔할 때가 있다. 경전이나 어록을 읽다가 탐욕 내용을 만나면, 법경(法鏡)에 비추어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는 천하를 정복할 당시, 아테네에 이르렀다. 모든 사람이 정복자 알렉산더에게 무릎을 꿇었으나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알렉산더를 찾아오지 않았다. 알렉산더가 직접 그를 찾아가니, 철학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둘 사이에 한동안 침묵이 흘렀고, 디오게네스가 물었다.
“폐하께서는 지금 무엇을 가장 바라십니까?”
“그리스를 정복하길 바라네.”
“그리스를 정복하고 난 다음에는 또 무엇을 원하십니까?”
“아마도 소아시아 지역을 정복하길 바라겠지.”
“그 다음은 또 무엇을 원하십니까?”
“아마도 온 세상을 정복하길 바라겠지.”
“그러면 그 다음은 또 무엇을?”
“그렇게 하고 나면, 아마 그때쯤이면 쉬면서 인생을 즐기겠지.”
“이상하군요. 왜 지금 당장은 쉬지 못합니까? 인생은 짧고 세상은 넓습니다. 당신은 곧 이 말을 실감하게 될 겁니다.”
철학자의 이 말을 가슴깊이 실감한다. 대학 학부부터 시작해 현 강사 생활까지 강산이 2번 변하는 동안 한곳에 안주해 있다 보니, 주변 사람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 하고 있다. 어느 교수님은 정교수가 되기 이전, 교수가 되려고 안쓰러울 정도로 고군분투하셨다. 20년이 흐른 지금, 그 교수님은 더 이상 학자의 모습이 아니다. 수년전부터 학자의 길이 아닌 보직의 길을 끊임없이 걷고 있고, 교단에 서 있기 보다는 외부로 다니면서 새로운 명예직을 계속 추구하고 있다. 이 분처럼 우리나라는 전반적으로 교수직과 정치를 함께 하려는 이들이 많아 학생들의 지탄을 받고 있는 현실이다.
중생들은 알렉산더처럼 야금야금 탐욕의 과일을 키워가다가 죽음이 다가오는지도 모르고 도살장 끌려가듯 사형장으로 불려간다. 부처님께서 고구정녕 말씀하신 법문이 3독이요, 이로 인해 받는 과보를 경전 곳곳마다 설하고 있다. 소납이 지천명(知天命)에 접어들으니, 인간의 욕심이 얼마나 초라한 삶을 초래하는지, 풍경화처럼 그림으로 그려진다.
경전이나 어록에 언급된 탐욕은 단순히 물질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욕심 가운데 명예욕이 가장 큰 화를 자초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어느 큰스님의 법문 내용에도 “사람들에게 가장 무서운 욕심은 명예욕이요, 출가자도 마찬가지다”라고 하셨다. 그 나이와 그 직분에서 누리는 명예가 아니라 욕력오중배(欲力五重倍)라고, 탐욕으로 명예를 꿰차려고 하니 몇 배의 힘이 필요한 것이다. 게다가 명예를 유지하기 위해 초라한 인간의 군상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나이 먹을수록 건강은 따라주지 않고, 현실 감각도 점점 무뎌진다. 나이 들수록 하고 있는 일이나 사람 인연을 하나씩 줄여가야 하건만, 오히려 명예욕은 풍선처럼 점점 커진다. 인간은 죽을 때가 돼서야 철드는가보다. <불유교경>에 전하는 내용을 언급하면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행자들이여, 탐욕이 많은 사람은 고통과 고뇌가 많이 발생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반면 욕심이 적은 사람은 고통과 고뇌가 덜 생긴다.
욕심이 적은 만큼 공덕을 많이 쌓을 수 있다.
욕심내지 않으니 아첨할 일이 없고, 6근의 감각적인 욕망에 끌려가지 않는다.
마음이 평온해지며, 여유가 있고, 항상 만족스럽게 생각한다.
욕심이 없어야 수행의 참 맛을 알 수 있으니, 욕심 내지 말라.”
정운스님… 서울 성심사에서 명우스님을 은사로 출가, 운문사승가대학 졸업, 동국대 선학과서 박사학위 취득. 저서 <동아시아 선의 르네상스를 찾아서> <경전숲길> 등 10여권. 현 조계종 교수아사리ㆍ동국대 선학과 강사.
[출처 : 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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