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은정님이 칠포해수욕장에 있습니다.
6.7 · 경상북도 포항 ·
외부 기관 파견도 늘고, 법무부 등 기획부서 검사 배치도 늘고,
몇몇 사건에 검찰 인력이 집중되어
일선이 업무 과부하에 허덕이는 중입니다.
적격심사 준비로 한동안 바빴던 저 역시
쌓인 일도 많고,
내부고발 책 저자로서 해야 할 일도 하느라
벗님들께 소식 전할 짬이 없었네요.
소식은 뜸하지만,
언제나처럼
일하며
일을 도모하며
기쁘고 감사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지지난달
모 신부님으로부터
‘시노달리타스(Synodalitas)’라는 주제의 글을 부탁받았습니다.
적격심사로 쫓겨날 위기에 처한 저를 위해
얼마나 기도하고 노심초사하셨는지를 잘 아는데
바쁘다거나 어려운 주제라는 등의 핑계를 감히 댈 수 없더라구요.
‘시노달리타스’가 뭔지부터 공부하다가
제가 잘 아는, 우리 사회의 공분을 사고 있는 ‘검찰 카르텔’ 이야기로 풀어나간 글인데,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에서
지난 6. 30. 발간한 <기쁨과희망>에 실렸습니다.
원고 마감일에 쫓겨 급히 써 보낸 글이라
벗님들께 소개하려니 민망합니다만,
이 글 역시 내부고발자로서
함께(syn) 길(hodos)을 걷는 이들에게
계속 함께 하겠노라는 제 다짐이기도 하고,
아직 주저하는 이들에게
함께 가자는 손 내밂이기도 하니
민망함을 무릅쓰고
벗님들께 일부를 발췌하여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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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훼께서 법률가들에게 물으셨다.
“사법정의가 어디에 있느냐?”.
그들은 “우리가 사법정의를 지키는 자들입니까?” 하고 잡아떼며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야훼께서는 “너희가 어찌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하시면서 꾸짖으셨다. “불의로 고통받은 어린 양들의 울음소리가 땅에서 나에게 울부짖고 있다”(창세 4,9-10 변용).
장면 1. 전관예우 1 - 어느 검사의 궤변
장면 2. 전관예우 2 - 먹거리가 된 검찰권, 사라진 정의
장면 3. 상명하복, 양심을 짓밟고 올라가기 1
장면 4. 상명하복, 양심을 짓밟고 올라가기 2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에도 그렇고 그런 검사들이 계속 중용되는 걸 보고 이번에도 검찰개혁이 실패할 거란 걸 직감했습니다. 검찰은 언제 우리가 네 편이었냐는 듯 안면몰수하고 홍위병이 되어 충성을 다했던 종전 권력을 겨냥한 수사로 정의의 심판자 행세를 하고 야바위꾼처럼 자체 개혁을 추진하는 체하면, 속사정을 모르는 시민들은 속기 마련이지요.
일말의 기대를 접고 제가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검찰이 얼마나 자정능력이 없는지 보여줄 수 있는 사례를 골라 감찰 요청하고 부패신고를 하고 고발장과 민사소송 소장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윤석열의 서울중앙지검에 2015년 서울남부지검 성폭력 은폐 건에 대한 고발장을 제출하고,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을 상대로 정보공개소송을 제기하고, 윤석열 검찰총장을 직권남용으로 부패신고했습니다. 윤석열 검찰총장 내정자에게,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고언 메일을 보내기도 했지요. 검찰이 국민의 신뢰를 되찾는데, 그의 역할이 너무도 막중하니 일말의 기대를 버릴 수 없었으니까요.
검찰총장 취임 때부터 조마조마하게 그 행보를 지켜본 검사로서 총장 사퇴 후 대선으로 직행하는 걸 보며, 검찰이 망하겠구나 싶어 한동안 서글펐다가 이제는 담담합니다. 검찰은 정권에 기생하며 카멜레온처럼 색깔을 바꾸어 정권 교체에도 권력을 유지해왔는데, 검찰이 정권이 되는 순간 검찰은 이제 한 몸인 정권과 함께 심판받을 수밖에 없잖아요. 막중한 권한을 부여받은 검찰이 이를 감당할 그릇이 못 되니, 이제 검찰의 시대가 저물고 검찰권이 쪼개질 일만 남았습니다.
2012년부터 검찰 내부망에 동료의 각성을 촉구하는 글을 정기적으로 썼습니다. 그때는 조금만 목청을 높이면 동료의 생각과 행동이 일어날 줄 알았거든요. 저의 은사가 요나의 축복이 아님을 깨닫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지요. 동료의 말이 돌팔매로 날아들어 숨쉬기 버겁고, 언론의 왜곡 보도에 가족들까지 힘겨워했습니다. 마음이 흔들린 세례자 요한이 제자들을 주님께 보내어 “당신이 그니이까?” 확인한 것처럼 저 역시 수시로 흔들려 주님께 묻곤 했습니다. 제가 주님 뜻대로 하고 있는게 맞습니까. 그런데 왜 이 돌팔매 속에 저를 버려두십니까.
힘겨울 때마다 수시로 예레미야 애가와 에제키엘을 묵상하곤 합니다. 같은 말이어도 상황에 따라 뜻이 달라진 지 오래. 검찰이 한결같이 외치는 ‘법과 원칙’이 자기편과 적에게 전혀 다른 의미인 줄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검찰이 쌓아 올린 죄의 바벨탑이 하늘에 닿아 서로의 말을 이제 알아듣지 못하니 심판의 시간이 임박했음을 깨닫습니다. 일몰의 검찰에서 힘겨워도 제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해야겠지요. 주어진 십자가가 들 만하고 견딜 만한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그릇이 제각각이어서 시대를 깨우는 소리도 있을 테고, 나단 선지자처럼 어리석은 권력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을 깨우는 소리도 있을 테지요. 제 능력이 부족하여 그런 소리는 못 되지만 불의한 시대에 몸을 부딪치고 깨어져 감추어진 불의를 드러내는 소리라도 되어 볼 각오입니다. 떨치고 일어나 외치는 우리들의 소리가 어우러져 합창이 될 때 주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고, 역사가 한 발 내딛게 됨을 믿습니다.
메마르고 척박한 광야와 같은 우리 사회에 여기저기서 외치는 소리가 들려오네요. 그 소리가 메아리 없는 비명이 되지 않도록 저 역시 일어나 함께(syn) 그 길(hodos)을 걸으며 계속 외치겠습니다. 제가, 우리가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게 지켜주소서. 주님. 그렇게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