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과 우월감의 뿌리는 같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건강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정말 복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건강한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셨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후부터 인간은 병든 사람으로 전락한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인간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선물을 준다. 좋은 것 같지만 갈등을 준 것이다. 항상 두 가지 관점에서 혼돈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눈이 밝아 하나님처럼 살게 한다. 그리고 비교를 한다.
이것이 카인이 동생을 죽인 이유이다. 사단은 비교의식을 강력한 자신의 무기로 삼든다. 다른 이보다 열등하다는 의식을 심어주고, 다른 이보다 월등하다는 의식을 심어준다. 열등의식과 월등의식은 이렇게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의 뿌리에 속한다. 사단에게 속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적으로 만들어주셨고, 월등해도 하나님이 주신 것, 열등해도 하나님은 그의 생명과 존재를 존중해주신다.
하나님이 존중해주는 것을 누가 무시하겠는가? 스스로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열등의식이고 남을 열등하다고 만드는 것이 월등의식이다. 하지만 뿌리는 같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으면서 인간은 이렇게 병들어 갔다. 열등하다고 느끼든지, 남을 열등하다고 느끼게 만들든지....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적으로 만드셨고,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독특성을 주셨다. 그래서 우리는 유일무이한 하나님의 걸작품이다. 하나님의 작품은 하나님의 작품대로 살아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도 "내가 너의 하나님이 된 것이 너무 기쁘다"라고 하시면서 헵시바라는 이름을 주신다.
평생을 살아가면서 비교하면서 살아왔다. 교회사이즈도 비교하고, 남편의 능력도 비교하고, 아이들의 미모도 비교하고, 학교 성적도 비교하고, 은사도 비교하면서 살아왔다. 그렇게 사는 동안 내가 잃어버린 것은 평강과 감사이다. 비교하며 살 때에는 정말 감사가 없어진다. 항상 나보다 더 잘하고, 더 예쁘고, 더 능력있고, 더 유명하고 더 인기가 있고, 더 지혜가 있고, 더 잘 살고, 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항상 나보다 열등한 사람이 있고, 우리 교회보다 더 작은 교회가 있고, 더 암담한 가정이 있고, 더 무시당하는 사람이 항상 곁에 있다. 그래서 우월감은 그들을 무시하면서 평강과 자유를 잃어버린다. 무시하면서 하나님처럼 그들을 정죄하게 된다. 그 뿌리에 무슨 죄가 있어서 저렇게 살지 ....하면서 은근히 무시한다.
그러나 남을 무시하는 자는 그 중심에 평강을 잃어버린다. 왜냐하면 자신도 남에게 이렇게 무시당하고, 상처당했으며, 언젠가는 자신도 정죄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만드시고 보시기에 좋았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모두가 서로에 대하여 존경하고 감탄해 주고 격려해주면서 겸손해야 한다. 하나님은 그러한 겸손한 자를 찾고 있으며, 하나님은 그러한 자를 친구로 만나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들과 함께 자리를 앉을 수가 없으신 분이시다. 그 분은 낮은 곳에 내려오신 분, 낮은 자들의 친구, 죄인의 친구가 되신 분이시다. 한국인들의 가장 큰 약점이라고 한다면 체면문화이고, 곧 이것은 비교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자신이 남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않으려고 애를 쓰지 말고 위로부터 오는 인정을 받거고 마음의 평강을 누려야 한다.
오늘도 건강한 사람을 만나보았으면 한다. 건강한 사람들은 주위에 사람들에게 건강을 선사한다. 병든 사람은 주위의 사람들에게 질병, 근심, 분노,절망, 죽음을 선사한다. 내가 오늘 누군가에게 건강한 존재가 되었으면 한다. 높은 것도 아니고 낮은 것도 아니고,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면서 서로 존중해줄 수 있는 문화, 이런 문화가 교회 안에서도 찾을 수 없다면 우리 사회는 정말 어두움 자체가 될 것이다.
교회에서 우리는 건강한 문화로 인하여 마음의 안식을 누렸으면 한다. 그래서 주님은 제 7일에 자신의 품으로 들어오라고 하신 것 같다. 주님만을 바라보면서 거룩의 옷을 입고, 그 분을 닮아가도록... 그래서 모든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이웃을 존중할 수 있도록......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