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제: 말씀. 성공. 성취
소 주 제: 하나님의 말씀은 성취입니다.
날자 및 분류: 06.03.19. 설교 창 조 의 말 씀
성 구: 출32:30-35
저 자: 정 헌정 목사 http://cafe.daum.net/changcho
(출 32:30-35)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큰 죄를 범하였도다 내가 이제 여호와께로 올라가노니 혹 너희의 죄를 속할까 하노라 하고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내 사자가 네 앞서 가리라 그러나 내가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 여호와께서 백성을 치시니 이는 그들이 아론의 만든 바 그 송아지를 만들었음이더라』
양피지가 의미하는 것
아프리카 오지의 황폐한 시골을 세 사람이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들은 마차를 타고 길을 가다 땅에 떨어져 있는 이상한 양피지를 발견했습니다. 호기심에 가득한 그들은 마차에서 내려 그 양피지를 주워들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은 양피지 생산에 사용되는 복잡한 일련의 화학약품을 분석하는 화학자이었습니다. 그는 그 양피지 앞뒤를 찬찬히 살피면서 원시인들의 그 정교한 솜씨에 감탄해 마지않았습니다.
두 번째 사람은 예술가이었습니다. 그는 원시인들이 갖고 있는 주목할만한 심미적인 감수성과 색채와 명암 등이 신비하게 사용되었다는 점에 대해 크게 놀라워했습니다. 그 얼마나 아름답게 색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탄성을 연발하고 있었습니다.
세 번째 사람은 고고학을 전공하는 학자이었습니다. 원시인들의 언어를 알고 글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양피지에 그림으로 그려진 글자들을 읽어나갔습니다. 그 양피지로 된 문서에는 그들의 땅을 침범하는 침입자에게 죽음의 형벌을 가하겠다는 경고가 적혀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놀란 세 번째 사람은 달아나야 된다고 나머지 두 사람에게 고함을 지르면서 줄다름질 했지만 양피지의 정교한 솜씨에 감탄한 화학자와 아름다운 예술작품이라 놀라워하는 예술가는 제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그곳의 원시인들에게 잡혀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죽은 두 사람이 감탄하고 놀라워 할만했다는 사실은 조금도 잘못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천만 뜻밖이었습니다. 그들은 양피지가 보여주는 의미를 다른 각도에서 파악하려했기 때문에 이러한 불행을 맞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사회현상들이 보여주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어느 각도에서 파악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과학기술이 만들어 내고 있는 놀라운 진보와 발전, 오늘의 경제가 이룩하고 있는 놀라운 풍요를 감탄만 하다 험한 꼴을 보지나 않을까 우리는 걱정합니다.
그 화학자와 그 예술가는 자기 분야에 최선을 다 하여 헌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헌신만큼 양피지가 담고 있는 경고의 메시지를 등한시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인생에 관하여 필요한 모든 것들을 가르치시고 예를 들어 보여 주시고 계십니다. 성경의 겉모습만을 보고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은 성경에 대하여 참으로 놀라운 말씀이라는 것만 알고 계시는 것이지 성경 안에서 말씀하시는 내용은 별로 관심을 두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주일이니까 교회에 나아가는 것이고 수요일이니까 시간도 있고 목사님께서도 말씀하시니 그것을 듣는 것이며 금요일은 사람들과 친교를 위해서 나아가는 사람들에게 성경은 어떠한 말씀도 하시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성경은 말씀하시지 않고 침묵해 버리십니다. 때문에 사람들의 삶의 실패를 가져 올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삶의 지침서입니다. 그 지침서를 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나침반 없이 망망 대해를 항해하는 배와 같습니다. 몇 날을 항해해도 보이는 것은 푸른 바다와 파란 하늘만이 눈에 들어올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런 곳에 나침반이 없는 배라면 갈 곳을 잃어버리고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서 빙빙 그 자리에 도는 신세를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나침반인 성경은 누구를 위해서 누구 때문에 봐야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 나의 삶의 방향을 위해서 읽어야 합니다.
또한 성경은 우리들이 나아가야 하는 방향을 가르쳐 주실 뿐만 아니라 삶의 경고의 메시지도 그 안에서 말씀하십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경고는 들으셔야 하고 만약 성경의 경고를 무시하는 것은 화학자나 예술가처럼 죽음의 신세를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16:2-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 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시다
하나님께서 한 번 말씀하시는 것은 반드시 이루어지시고 그 말씀은 우리들 앞에 완성 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곧 열매를 말씀하시는 것이고 완성을 의미합니다. (창 1:3)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빛이 있으라 하셨더니 말씀대로 빛이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어떤 시간적 흐름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즉시 빛이 존재해서 세상을 밝혔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곧 열매요 성취요 완성으로 존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라는 말씀을 잘 분석해 보시면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어떤 시간의 제약도 없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없으신 분이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이라는 것은 없으신 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우리가 볼 때는 말씀이 열매가 되기까지 또는 말씀의 완성이 되기까지 시간의 흐름에 있어서 의심하거나 좌절하지만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는 언약의 말씀이 바로 완성 즉 성취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의심하지 말라고 하셨고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시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보신다면 이해가 빠를 수 있습니다.
(벧후 3: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우리들이 볼 때 천년이며 하루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하루나 천년이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영원이라는 시간 속에 하루라는 시간이나 천년이라는 시간의 개념은 아무의미가 없습니다. 예를 든다면 하루에서 천년이라는 한 덩어리가 있다고 가정한다면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과거나 현재나 미래를 한 덩어리로 보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한 덩어리를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쪼개어보면서 말합니다 결국은 하나이지 둘이나 셋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는데 가장 좋은 것은 다시 성경의 말씀으로 돌아오면 됩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기를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 안에는 시간과 환경에 의해서 구한 것이 변하지 않고 하나님께 한 번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언약의 개념을 잘 설명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막 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오늘의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언약은 어떤 상황이나 환경의 변화에도 빛이 발하여 변하지 않고 완성되어간다는 사실을 말씀으로 보여주시고 계십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들이 나약하여 죄를 짓고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반드시 완성으로 나타나셨고 나타나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신약의 성경에서 예를 들어보면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완전히 가리웠던 모습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셔서 갈릴리로 제자들을 보려고 오셨을 때 주시라는 말을 듣고 베드로 가장 먼저 배에서 강으로 뛰어 내려 주님께 달려갔습니다. 뿐만 아니라 베드로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을 때 3000명씩이나 회개시키는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의 모습에서 3000명을 회개시킨 사건을 거의 동시로 묶어 놓는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됩니다. 이러한 방법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의 시각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오늘의 본문에 모세가 시내 산에 올라가서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쓰신 십계명을 받고 있을 때 시내 산밑에서 모세를 기다리던 이스라엘백성들은 자신들을 이끌어왔던 모세가 보이지 않게 되자 불안과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보이던 것이 보이지 않으면 불안과 초조해지기 시작합니다. 불안과 초조해 지면 근심에 쌓이게 되어서 자신을 위해서 보이는 무엇인가를 만들어 의지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도 고별설교에서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할 수 없더라도 너희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하셨고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보이는 모세만을 의지하고 있었던 이스라엘백성들이 갑자기 자신들의 눈에 모세가 보이지 않게 되자 불안과 근심에 쌓인 이스라엘백성들은 모세의 형인 아론에게 보이는 신을 요구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줏대가 없었던 아론은 이스라엘백성들의 말을 듣고 금가락지와 금목걸이와 이외의 금붙이를 거두어서 이스라엘백성 자신들을 위해서 금송아지 신을 만들었고 자기들의 만족을 위해서 육체적 향연을 베풀었습니다. 이런 모습은 불안과 근심에 쌓인 이스라엘백성들 자신들이 보이지 않는 모세로 인한 공백을 채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이와 같이 이스라엘백성들이 행한 일 가운데 어느 것 하나 하나님과 대치되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광경을 보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이렇게 한탄하셨습니다.
(출 32:9)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곧은 백성이로다』
이렇게 범죄 한 이스라엘백성들을 변호하면서 모세는 가능하다면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청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이스라엘백성을 용서할 수 없거든 자신의 이름을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지워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모세는 이스라엘백성의 영도자로서 하나님께 대한 간절함이었지만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결단에 영향을 끼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하신 언약은 반드시 완성하심에 대하여 분명하신 어조로 표현하셨습니다.
(출 32: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一. 하나님의 언약은 어떤 조건이나 변화에도 영향 받지 않는다.(출 32: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하나님께서는 한 번 하신 언약에 대해서는 어떠한 조건이나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고 이루어 가십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우상숭배로 인한 범죄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웠으며 하나님께서는 그것으로 인하여 이스라엘백성을 멸하시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지도자로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을 멸하시려면 자신의 이름을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지워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보면 모세가 이스라엘백성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을 하나님 편에서 보았을 때는 전혀 다른 면의 이야기가 됩니다. 모세에 이 발언은 하나님께서 일하심에 대한 거침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지도자로서 이스라엘백성들을 사랑했기 때문에 용서해 줄 수 없다면 자신의 이름을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이름을 지워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현재 이곳까지 이끌어 오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경배하기보다 자기 자신들을 위해서 우상을 만들고 그 우상에 위해 제사를 하고 인간의 향락만을 즐겼던 이스라엘백성들을 결코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간절한 간구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으셨고 당신께서 하신 말씀을 성취해 나아가실 것을 강도 깊게 표현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한 번 말씀하신 것은 어떤 환경이나 변화에도 가감하시거나 양보하시는 분은 아니시고 그 말씀을 완성으로 이루어 가신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신약의 사건으로 풀어보면 가롯 유다가 예수님을 은 30냥에 팔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마지막의 피 한 방울까지 흘리시고 죽으셔서 우리들의 죄를 사하신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가롯 유다가 예수님을 파는 일을 단행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사역이 이루진 것이 결코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가롯 유다가 예수님을 팔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의 죄의 해결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롯 유다가 예수님을 팔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어떤 방법으로든지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을 것이고 따라서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은 반드시 완성하셨을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가롯 유다에게 자신은 이미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 언약을 이루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께서 하신 언약은 어떤 주위의 환경이나 타협에도 굴하지 않고 반드시 이루어졌고 또한 성취해 나아갈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 26:24)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요셉에게 꿈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 꿈의 성취를 위한 과정에 대해서는 말씀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장차 요셉이 어떻게 될 것이라는 먼저 보여주셨습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로 등극하기까지의 과정은 여러 가지로 나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정이야 여러 가지의 길로 나아갈 수 있지만 결과는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꿈으로 보여주셨던 언약을 이루셔서 요셉을 총리로 되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요셉이 총리가 되는 과정은 요셉이 볼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아픔과 괴로움과 슬픔의 길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한 번 하신 언약은 반드시 이루셨습니다. 할렐루야!
하지만 요셉에게는 애굽의 총리가 되기까지의 길은 실로 엄청난 역경이었습니다.
그 아픔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시련과 고통이었습니다. 성경은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기까지의 아픔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시 105:18) 『그 발이 착고에 상하며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으니』
이 말씀을 좀 풀어놓으면 요셉의 발에는 쇠사슬로 매여 있었고 그 몸에는 쇠사슬이 매였다고 표현 하셨는데 여기에 몸이 쇠사슬에 매였다는 말씀을 다른 번역에서는 몸이라는 단어를 영혼으로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영혼이 쇠사슬에 매여있는 시련과 고통을 당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그 어떠한 변화에도 한 번 하신 언약은 그것이 꿈이든지 말씀이든지 상관없이 변하지 않고 온전히 이루어 완성이라는 작품으로 탄생시키셨습니다.
(사 45:23)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기를 나의 입에서 의로운 말이 나갔은즉 돌아오지 아니하나니 내게 모든 무릎이 꿇겠고 모든 혀가 맹약하리라 하였노라』
二. 한 번하신 언약은 반드시 이루신다. (출 32:34) 『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내 사자가 네 앞서 가리라 그러나 내가 보응 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을 약속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들이 자신들을 위해서 우상을 만들고 우상을 섬기는 일을 단행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의지대로 이스라엘백성들을 가리키며 모세에게 "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께 범한 죄는 그들의 생명을 마땅히 멸할 수밖에 없는 죄였지만 이스라엘백성들을 멸하지 않으시고 모세에게 한 번하신 약속을 반드시 이루기 위해서 인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죄에 대하여 사랑을 베푸시는 일은 전혀 없습니다. 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대항하시고 사람들에게 대해서는 사랑을 베풀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대하여 쉽게 말씀드리자면 우리들의 손과 같습니다. 손에는 손등이 있고 손바닥이 있습니다. 손등과 손바닥을 함께 가리켜서 손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손등과 같이 냉정합니다. 죄에 대해서 타협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손등으로 내려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손바닥 같은 사랑으로 감싸줍니다.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든지 손바닥은 사랑으로 감싸줍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에 대하여는 냉정하게 공의로 심판의 말씀을 하고 계시지만 사람에 대하해서는 하나님께서는 사랑으로 감싸주십니다.
때문에 자기 자신을 위해서 우상을 만들고 우상을 섬겼던 죄는 죽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잠시의 앞도 볼 줄 모르는 나약한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도 또한 당연한 일입니다. 이것이 참으로 풀기 어려운 숙제입니다.
옛날 어느 곳에 노름으로 망해 가는 작은 나라가 하나있었습니다. 그래서 왕은 노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두 눈을 빼버리겠노라고 엄한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 나라에서는 점점 노름이 없어지고 평화로운 나라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궁궐 안에서는 노름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왕의 외아들인 왕자였습니다. 왕자가 노름을 하기 때문에 대신들 중 누구하나도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차기 왕으로 부상되고 있는데 감히 누가 그 말을 왕에게 건네겠습니까? 그러던 어느 날 왕이 암행을 하던 중 한 백성에게서 왕자가 노름을 하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그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그것을 본 왕은 노발대발하면서 대신들을 책망했고 끝내는 왕자를 옥에 가두는 일까지 이루어졌습니다.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외아들이며 이 나라의 왕자이고 더 나아가서는 이 나라의 주인인 왕이 될 몸인데 어떻게 왕자의 두 눈을 뺄 수 있겠느냐고 말입니다. 그러나 형 집행 날과 시간은 다가오고 사람들은 말을 하지 못하고 형집행 장소만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왕자가 끌려 나아오고 형틀에 묶여 서 있었고 그 자리에 왕도 함께 서 있었습니다. 왕은 말했습니다. 나라의 법을 지키지 않은 왕자의 두 눈을 빼어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입니다. 그러나 대신들도 백성들도 눈망울만 이리저리 굴릴 뿐 아무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 때 왕은 직접 자신이 왕자의 눈을 빼겠노라고 말하면서 왕자의 한 눈을 빼냈습니다. 그리고는 왕은 자신의 눈도 하나 빼어서 두 개의 눈을 백성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왕은 분명히 두 눈을 빼어서 국법을 지켰고 또한 자신의 눈을 하나 빼 내어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을 사랑한다는 표현을 분명하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베풀어주신 공의와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와 사랑의 표시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우리들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게 함으로서 공의를 실행시키셨고 사람들의 생명을 감싸주시는 사랑을 발휘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한 번하신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서 죄 없는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어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신 언약을 성취하셨습니다.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사람들이 죽을죄를 범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제 가서 내가 네게 이미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것이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베풀어주시는 사랑의지이며 확증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한 번 하신 약속은 철저하게 우리들에게 지켜 주십니다. 할렐루야!
(사 55:10-11)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三. 언약을 위해 언제나 앞서 가시는 하나님. (출 32:34) 『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내 사자가 네 앞서 가리라 그러나 내가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실 때 모세에게 애굽의 바로 왕에게 가도록 명령하시고 하나님께서는 그곳에 머물러 서 계시거나 멀리서 바라보시고 계시지 않았습니다. 모세에게 애굽의 바로 왕에게 가라고 명령하시면서 먼저 하나님께서는 손수 앞서 움직이실 것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출 3:8)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
이 말씀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바로 왕에게 가라고 말씀하시면서 "내가 내려와서"라는 표현으로 하나님 자신이 먼저 가실 것을 가리키고 계십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는 모세보다 앞장서서 그들을 애굽의 손에게 건져내고 그들을 애굽의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겠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놀라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위해서 언약하시고는 그 언약의 완성을 위해서 언제나 앞서 나아가신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내 미래를 위해서도 하나님께서는 언약하시고 그 언약하신 것에 대해서 앞장서서 그 언약을 이루어 가십니다. 요셉에게 하나님께서 꿈을 통해서 비전을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이루어 가도록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동행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요셉보다 앞서 행하셨다는 말입니다.
요셉이 보디발 장군 집에서 노예로 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앞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보디발의 집에 축복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요셉이 보디발의 부인의 모함으로 인하여 옥에 갇혀 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앞서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떡 맡은 관원장과 술 맡은 관원장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꿈의 해몽으로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도 하나님께서는 함께 하셨습니다. 언제든지 하나님께서는 앞서서 요셉의 인생의 길목을 터 놓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칠 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가믐으로 인해서 여러 나라들이 흉년으로 먹고 살 것이 없게 되자 애굽으로 원조를 청했습니다. 그 때 가나안 땅에 사는 야곱의 가족들도 예외는 될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요셉의 형들은 애굽으로 내려가 식량 구했습니다.
여기에서 요셉은 두려워 떠는 형들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히면서 언제나 앞서 예비해 나아가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하여 증거 했습니다.
(창 45:5)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믿음의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들 앞서 행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을 애굽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때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지도를 주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하신 것도 아니고 너희 마음대로 갈 길을 정하여 목적지에 만 나아오라고 말씀하고 목적지인 가나안 땅에 홀로 계신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루하루 다시 말해서 매일 매일을 이스라엘백성들과 함께 하셨으며 더 나아가서는 이스라엘백성들 앞에 서서 그들을 따르도록 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앞서서 낮에는 뜨거운 태양을 감추기 위해서 구름기둥으로 이스라엘백성들을 인도하며 보호하셨고 밤에는 광야가 추웠기 때문에 불기둥으로 앞서서 인도하며 보호하셨습니다.
(출 13:21)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
그러므로 창조의 가족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언약하신 것은 반드시 완성으로 이루시고 또한 우리들 앞서 모든 것을 행하시며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를 소원합니다. 언약하신 것이 더디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들의 생각입니다. 하나님에게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없으신 분이시니 하나님의 언약은 이미 이루어진 것입니다. 다만 그 언약의 완성이 우리들에게 다가오는 시간이 더디게 느껴지는 것뿐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앞서 나아가시는 하나님을 따르면서 항상 내 자신에 대하여 경각심을 늦추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들에게 내가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들의 믿음의 눈을 하나님 아닌 다른 곳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 오늘의 구역공과 *
1. 예화를 통해서 내게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시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2.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고 하신 말씀이 이해가 되십니까?
3. 하나님께서 하신 언약은 곧 완성이라고 했는데 그 의미가 이해가 됩니까?
4. 이스라엘백성들이 모세가 보이지 않게 되자 금송아지를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요?
5. 모세가 자신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달라는 간청은 무엇 때문입니까?
6. 하나님의 언약은 조건과 환경에 영향을 받습니까? 왜?
7.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설명해 보신다면?
8. 하나님께서는 언약에 대하여 언제나 앞서서 행하고 계신다고 생각하십니까?
9. 오늘의 말씀을 읽고 느낀 점을 간단하게 한마디로 하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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