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의 숨결을 찾아서] 정병경.
ㅡ문학 기행 ㅡ
하루가 다르게 깊어가는 가을에 단풍색이 짙어지고 있다. 화백문학 詩 창작반 문우들과 함께 파주 자운서원으로 문학기행을 떠나는 날이다. 문복희 교수를 비롯해 13명의 시인과 함께 하는 일정이다.
율곡선생 유적지에는 가랑비가 내려 우산을 펼쳐야 한다. 올 가을 들어 가장 추운 날씨로 기록된다. 붉게 물든 단풍잎마다 맺힌 빗방울이 마치 수정을 매달아놓은 듯하다. 단풍길을 걸으며 율곡기념관으로 향한다.
때마침 기념관에서 서예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먹 향 짙은 정갈한 필체 속에 담긴 글귀가 시선을 멈추게 한다. 율곡 이이 선생의 숭고한 생애와 업적을 되새겨본다. 조선의 안위를 걱정하며 제시한 십만양병설을 곰곰히 되짚어본다. 성학집요와 격몽요결은 지식과 지혜의 보고이다. 후학들에게 학문의 기틀을 바로 잡아준 학자이다. 선생이 남긴 붓끝의 울림은 자운산 계곡을 타고 전해지는 듯하다.
서원의 뜰을 거닐며 율곡 선생의 삶을 반추해본다. 율곡은 스스로를 경계하며 도덕에 힘쓰고자 '자경문(自警文)'을 지으셨다. 현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여전히 질문을 던진다. 문학은 역시 끊임없는 자기 성찰의 과정이다
서원 뒤편 동산에 율곡 선생과 신사임당의 묘소가 모셔져 있다. 특이하게도 아들인 율곡 선생의 묘가 어머니 신사임당 묘소 윗편에 자리하고 있다. 조선시대 서원과 묘역의 배치 및 문중의 예법에서 비롯된 의식으로 인식된다. 자식으로서 어머니를 섬기고 학문의 높음을 추모하는 듯하다. 구봉 송익필과 우계 성혼은 시대의 학문을 논할 만큼 우정이 두터운 사이이다. 신의를 함께 나눈 학우들과의 우정은 묘역 주위 푸른 솔바람으로 다가온다.
기행의 발길은 임진강이 내려다보이는 화석정(花石亭)으로 향한다. 여덟 살에 율곡 선생이 강물과 산세를 바라보며 지은 오언한시(五言漢詩) 구절을 읊조려본다. 어린아이의 시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기승전결(起承轉結)과 평측이 완벽하다. 천재적인 기운이 서려 있어 탄성을 자아낸다.
단풍이 짙어가는 가을의 화석정에서 시 한 수 읊어본다.
차향이 그윽한 '강변살자' 찻집에서 바라본 임진강은 묵묵히 흐른다. 강물에 비친 단풍색을 보니 시상을 일으킨다. 각자 남긴 시어에 깊은 감정을 담아 구름 위로 띄운다.
우리는 과연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뒤돌아본다. 선현들이 남긴 뜻을 어떻게 이어받아야 할지 생각에 잠긴다. 촉촉이 젖은 단풍잎처럼 우리 삶과 글도 선현의 가르침 속에서 더욱 깊어지고 익어가기를 소망한다.
一자운서원에서ㅡ
가을비 내리는 날
단풍에 맺힌 구슬
기념관 정원길은
문학 향 가득하고
전시장 서예 필체에
율곡 숨결 펼쳐져
ㅡ자경문을 읽으며ㅡ
지혜의 보석상자
대대로 이어받아
자운산 계곡에는
우계와 구봉 우정
선각자 높은 성찰이
마음 거울 본보기
ㅡ 화석정에서ㅡ
정자 앞 굽이친 강
율곡이 읊은 시비
완벽한 기승전결
천재의 기운 담겨
깊어진 가을빛 속에
온고지신 가르침
2026.10.29.
첫댓글 지허 정병경 선생님,
자운서원 문학기행을 사진과 함께 잘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