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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사랑은 어떻게 하는가 신 6장 How to Love God? Deuteronomy Chapter 6
샬롬! 사랑하기 좋은 계절이 옵니다. 여자는 봄에 사랑을 하고 남자는 가을에 사랑을 합니다. 첫사랑은 풋풋하고 달콤합니다. 요즘은 첫사랑도 이른 나이에 합니다. 사랑은 나이가 없습니다. 예전에 눈이 맞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같은 동네 같은 직장에서 눈이 맞으면 바로 사랑을 시작하고 사랑을 하면 결혼도 당연히 합니다. 그래서 25세 전에 대부분 결혼을 다 하고 이 나이가 넘으면 노총각 노처녀 했습니다. 그리고 사랑도 없이 부모님께서 맺어 주시면 그냥 내 의지와 별로 상관없이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결혼을 한 번 하면 죽을 때까지 그 집에서 사는 것이 관례로 관습이요 풍조였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사람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적어도 수천 년을 그렇게 한 반도에서 우리의 조상이 살았고 그분들의 후손이 우리입니다. 우리 조상은 적어도 한 반도에 들어와서 3000년은 살았습니다. 그리고 북으로 이주는 하는 사람이 철기 시대를 따라서 글자와 말을 타고 옵니다. 바다를 건너서 옵니다. 이들이 주로 지배 계층이 되고 왕이 되어 다스립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노비로 성도 이름도 없이 엄격한 신분 제도하에서 살았고 종들은 종끼리 결혼하고 성도 이름도 없었습니다. 조선 시대 통계로 약 국민의 70%가 노비였습니다. 그리고 여자가 노비면 양반의 자녀를 낳아도 서얼이라 해서 양반 취급을 해 주지 않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우리는 왕족과 귀족이 아닌 분들은 그냥 평민으로 수천 년을 이어서 조상들이 잘 살아 주었기에 우리가 지금 생명을 갖고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김 이 박으로 족보를 정리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김 씨, 박 씨, 이 씨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북녘땅에는 왕조와 같이 대를 이어서 권력을 한 김 씨가 가지고 나머지 사람은 자유도 소망도 없이 살다고 자유를 찾아서 탈북을 감행하는 데 생명을 겁니다. 같은 민족 같은 능력을 지닌 남한은 자유와 함께 경제와 함께 군사적인 대국이 되었습니다.
남쪽의 사람이 북쪽의 사람보다 우월해서 그런 것은 1%도 없습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하나님을 믿느냐 믿지 아니 하느냐의 차이입니다. 이 내용을 아시는 분은 남쪽에 사시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북한이 누리지 못하는 자유와 평안과 그리고 경제적인 풍요를 주신 분이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무엇이 우월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이 남한에 이 모든 것을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쪽에 사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을 인정하고 감사하고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도 예수님도 믿지 않아 그래서 몰라 하시는 분들이 한국민 5000만 명 중에서 약 70%에 해당이 됩니다. 이분들은 전도의 대상으로 믿는 사람들이 힘써 복음을 전해서 하나님을 알고 믿게 해야 합니다. 이들에 대한 믿는 사람의 가장 큰 사랑이 바로 이들에 대한 전도입니다.
그런데 이제 믿는 이들이 한국에 약 1500만 명이 존재합니다. 이들은 가장 먼저 하나님의 축복을 감사하고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복에 대한 감사, 그리고 평화에 대한 감사가 기본입니다. 그런데 믿는 분들이 내가 열심히 공부해서 내가 온 세상에서 경쟁력이 있어서 그렇고 이렇게 나와 같이 잘 교육을 받은 한국인이 ㄴ너무나 많기에 이는 피와 땀을 흘리 내 탓이다 하시는 분이 계시면 하나님의 이 나라에 대한 보호와 축복에 대해서 별로 감사할 일이 없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사랑을 할 충분한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대상을 사랑하느냐입니다. 어떤 이는 상대 배우자를 두고 다른 남자나 여자를 사랑한다고 정신이 나가서 행동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즉 바람이 난 경우인데 한국에 이미 너무나 많습니다. 사랑할 상대방은 두고 사랑해서는 아니 되는 사랑하면 불륜이 되는 사랑을 몰래 합니다. 대놓고 하는 경우는 별로 없음이 탄로가 나면 수치도 되고 상대방이 그냥 가만히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겨우는 가서 죽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사랑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남녀가 정상적으로 사랑을 하기도 합니다. 일생을 변치 않고 사랑도 하고 상대방이 죽거나 헤어지게 되면 삶의 의미를 잃고 곧 죽을 정도로 사랑을 하는 부부도 많습니다. 그리고 사별을 하면 정상적으로 살지 못하는 부부도 있으니 이는 정도 있겠지만 사랑해서입니다. 그리고 상대방이 병들거나 낭패를 당하면 자신의 일로 알고 곁에서 평생을 지키는 사랑도 합니다. 갓 50이 넘은 부인이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해서 식물인간이 되었습니다. 그냥 눈만 뜨고 아무 의식도 없이 호스로 죽을 매끼 먹이고 욕창이 생기지 않게 매일 남편의 몸을 잘 닦아서 관리를 합니다. 약 7년 반을 그렇게 간병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집에는 또 22세 23세 장성한 딸이 있습니다. 키도 크고 몸집도 좋습니다. 둘이서 싸우면 서로 입을 찢기도 합니다. 지능이 겨우 2-3세 정도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남편을 잘 간병하고 두 딸을 잘 돌보며 남편이 죽을 때까지 돌보았습니다. 절고 아름다운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부모는 자녀를 자신보다 더 끔찍이 여기고 사랑합니다. 모든 것을 다 주고 다 희생을 해도 부족하게 사랑합니다.
젊은 남과 여도 사랑이 시작이 되면 온 세상이 다 아름답게 보이고 눈에 보이는 것이 없이 무섭게 저돌적으로 물불을 가리지 않고 뜨겁게 사랑합니다. 그리고 저마다 취미가 있습니다. 이에 빠지면 모든 것을 이를 위해서 다 희생을 합니다. 돈도 아낌없이 씁니다. 시간도 가는 줄도 모르게 보냅니다. 어떤 이는 일생을 바람으로 시작해서 죽을 때까지 바람을 피웁니다. 미국은 너무나 흔한 일로 보편적이 되었고 한국도 따라서 갑니다.
그리고 젊은이는 약 30세가 될 때까지 먹고살아야 하니 죽도록 공부합니다. 이 경쟁에서 지면 사는 것이 너무나 어렵게 됩니다. 좋은 대학과 직장을 가진 승리한 남자가 결혼도 쉽고 여기저기에서 진 남자는 이제는 홀로 사는 길 외에 별로 길이 없으니 죽도록 약 30세까지 공부하고 또 좋은 직장에 가도 역시 배움을 쉬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이 너무나 빠르게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왜 사랑을 해야 합니까? 먼저 내가 발을 딛고 사는 세상을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나를 만드신 분이십니다. 내가 이 땅에서 활개를 치며 살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나의 근원이 되신 분을 공경하고 사랑함이 인간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그런데 사랑할 시간과 여유가 너무나 없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바쁘게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는 세상에 살기 때문입니다. 먹고사는 일이 그냥 쉽게 되는 일이 절대로 아닙니다. 모든 일을 주변과 상대방과 대부분 싸우면서 이겨야 먹고살기 때문입니다. 물론 교회에도 빠짐없이 나갑니다. 기도도 합니다. 성경도 봅니다. 헌금도 잘 합니다. 그리고 봉사도 잘 합니다. 이 모든 일이 우리가 사랑해야 되는 분에 대한 헌신이며 충성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잊고 사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우리의 구세주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믿습니다. 그래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당연히 어떤 분은 의롭게도 인정을 받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빚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대속과 구원의 빚입니다. 그래서 빚진 자라 했습니다. 빚을 갚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그래서 우리는 성경도 100독 합니다. 헌금도 여러 가지 쉬지 않고 종류별로 너무나 잘 합니다. 장로 권사 집사가 되어서 죽도록 충성합니다. 교사는 일생을 휴가가 없이 충성합니다. 휴가를 내어서 수련회를 가기 때문입니다. 주일은 절대로 어기지 않습니다. 새벽 기도 철야 기도 다 빠지지 않고 성가대로 힘이 다할 때까지 충성합니다. 몸도 시간도 돈도 다 바쳤습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이 몸이 힘이 하나님을 향해서 어떤 상태입니까? 내 아내를 사랑하듯 자식을 사랑하듯 취미 생활을 정성을 들여서 하듯이 그 마음으로 삽니까?
먼저 성경은 신명기에 6장에 쉐마로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서 사랑하고 뜻을 다해서 사랑하고 힘을 다해서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오셔서 성도들에게 그렇게 해야 된다고 가르치십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사랑한 후에 그리고 다른 대상을 사랑하는 것과 다른 세상의 모든 것 가족과 직장과 취미에 열을 다 올리고 남은 힘으로 사랑하는 것은 다를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해도 누가 뭐라 하지 않고 저렇게 해도 누가 뭐라 하지 않습니다. 우리 속 마음을 우리도 모르는데 누가 압니까?
그런데 우리가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랑과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린도 전서 13장을 통해서 사랑에 대해서 무엇인지 말씀을 하십니다. 이에 따르면 사랑은 한 가지 빛이 아니라 일곱 색의 무지개와 같습니다. 혹자는 이 사랑은 인간이 하는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는 사랑이다 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 중에서 이 말씀을 늘 묵상하면서 이 말씀대로 살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인내합니다. 그래서 겸손합니다. 그래서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예의를 잘 갖추고 자랑도 하지 않습니다. 너무나 많은 수도 없는 성도가 이 말씀을 암송하며 묵상하며 이 말씀을 발에 등불로 어둠에 빛으로 삼고 갑니다. 그리고 보혜사 성령께서는 모든 성도를 돕지만 사랑하고자 하는 성도를 한 분도 빠지지 않게 더욱더 사랑하도록 돕습니다. 힘을 주시고 격려하시고 능력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사랑하는 사람과 가장 가깝고 사랑을 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과 가장 가까이 가기에 성령께서는 이들을 모두 돕습니다.
그리고 이웃도 당연히 사랑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먼저입니다. 사랑에는 집중과 순전함이 있어야 합니다. 마음을 다한다는 의미는 잡념이 없다는 의미도 되며 마음에 사랑 외엔 다른 내용이 없어야 함을 의미하는데 그러자면 사랑하고자 할 때 내 사랑을 방해하는 요소들 즉 걱정거리 더 관심을 갖는 분야 급한 일에 대한 염려 등이 이 마음을 다하는 사랑에 접근하지 말아야 합니다.
힘을 다함에도 그렇게 뜻을 다함에도 그런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을 집중해서 사랑하면 내가 해야 할 일과 내가 사랑해야 되는 가족과 내 취미는 어떻게 하지 할 수가 있습니다. 사랑이 어려우면 왜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라고 명령을 합니까? 누구나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있으니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누구나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사랑은 계명이 잘 정해져서 계명을 잘 따르면 사랑을 잘 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일을 지키는 일, 봉사하는 일, 헌금을 하는 일, 기도를 하는 일, 성경을 읽는 일이 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잘 하는 부자 청년이나 2000년 당시 이스라엘의 지도자 즉 율법학자 제사장 등이 책망을 받았습니다. 분명하게 자신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고 사랑을 하는데 예수님께서 이를 칭찬하지 않으시고 위선자야 하면서 책망을 하십니다. 그런데 그들이 자신들이 더 옳다고 믿고 절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도리어 이렇게 하시는 예수님을 잘못되었다 심히 몰아세웁니다. 그러고는 마침내 십자가에 매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도 틀리고 신분에 대해서도 수긍이 되지 않으니 그렇게 한 것입니다.
율법은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계명이며 율법을 잘 지키는 일이 너무나 중요한 데 이를 잘 지키고 있는 사람들을 칭찬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책망을 하신 것은 왜 그렇습니까?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이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사랑하기 바라십니다. 그리고 서로 간에 자신의 몸과 같이 서로 뜨겁게 사랑하기 원하십니다. 그런데 일상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지 먼저 10 계명으로 크게 나누어서 하나님 사랑하는 법 4계명 이웃 사랑하는 법 6 계명이 있는데 이 십계명을 모든 성도가 잘 지키면 참으로 이상적인 세상이 됩니다. 그런데 사람이 많아지고 직분도 다양해지니 더욱 구체적인 조항이 필요합니다. 이를 다시 하라는 규정 248 규정, 하지 말라는 규정 365 규정으로 나누어서 사랑하게 하십니다. 물론 율법은 그 정신이 사랑과 정의와 신실함입니다. 정의에 대한 규정도 있고 신실함에 대한 규정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즉 내가 내 사랑하는 내 자녀와 가족과 같이 이웃을 사랑하면 더 나아가서 내 몸과 같이 사랑하면 모든 율법의 규정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즉 내가 가지고 있는데 물질도 있고 집도 있고 땅도 넉넉한데 내 형제가 즉 육신의 형제가 피를 나눈 형제가 어렵게 살면 내 넉넉한 것을 아낌없이 나눌 수가 있습니다. 예전에 우리나라는 대부분 이렇게 형제간에 우애가 좋았습니다. 장남과 장녀는 아버지 어미니 역할을 하면 10명에 육박하는 형제를 어릴 때는 엄마 아빠와 같이 돌보고 이들이 좋은 학교에 가도록 자신은 학업을 포기하고 동생들을 돌보았습니다. 그런 전통이 있고 지금도 형제의 우애가 좋은 가족은 서로 품고 약한 형제를 돕습니다. 형제를 돕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부모는 자식을 일생을 돕고 사랑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면 자녀들은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더 가깝게 지내고 이분들은 손자를 사랑하며 돌봅니다. 그리고 가족은 부모를 공경하고 할머니 할아버지를 더 공경하며 임종 시까지 집에서 모시며 섬겼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형제가 되면 이렇게 서로 뜨겁게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면 어차피 서로 사랑하게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율법이 그대로 잘 지켜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조문 조문 잘 몰라도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사랑하고 이웃도 네 몸처럼 즉 자신의 자녀와 같이 형제와 같이 이보다 더 사랑하면즉 네 몸과 같이 사랑을 하면 모든 율법을 다 지키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율법이 있으니 조문을 지키는 일은 열심을 내어서 하지만 사랑은 하지 않고 정의롭지도 않고 신실하지도 않고 도리어 법을 잘 아니 선생이 되어서 자신은 하지도 못하는 사랑을 해야 된다라고 하니 이를 예수님께서 보시고 너무나 사랑과 관계가 없는 삶을 사는 이들을 책망한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그래서 주일이면 일을 하지 말라고 하니 무슨 일이 있어도 사람이 죽어도 짐승이 죽어도 외면합니다. 일을 하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병원이나 약국이 주일은 반드시 쉬는 날이야 하면서 모두가 문을 닫으면 너무나 많은 환자가 죽을 것입니다. 이렇게 율법을 적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2000년 전에 율법학자, 바리새인, 제사장들이 딱 이렇게 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법을 아는 지식을 악용해서 가난하고 병들과 어려운 사람들의 등을 처먹고 자신들은 잘 먹고 잘 살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악하게 사는 자들이 하나님을 잘 믿고 사랑한다고 하니 이들의 경배를 받는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이들이 하는 것을 직접 보십니다. 그런데 너무나 자신의 가르침 즉 모세 오경을 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라 해도 정확한데 이들이 예수님도 몰라보고 너무나 자신들이 옳다고 크게 착각하고 있었기에 화를 내신 것입니다. 율법을 주신 하나님께서 오신 것을 알았다면 이들이 정신이 나가고 혼이 나가고 바들바들 떨어야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우리도 주님이 오시면 어떤 분은 절대로 하나님도 모르고 마음대로 살던 사람이 두려워합니다. 두려워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제자들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예수님을 알아보고 하나님의 아들로 섬겼습니다. 우리는 대부분의 분들이 아는 서울대 출신 치과의사 이수진 씨의 간증을 들을 때 이분께서 예전에 놀던 언어를 사용해서 웃기도 하지만 그분의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이분께서 진짜로 예수님을 잘 믿는 분이신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모습을 온 한국 전체에 보여 주셨습니다. 정말로 무슨 일을 하실지 기대가 됩니다. 신학을 하시고 그 귀한 재능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일을 하시길 기도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예수님의 본 모습을 보고 혼이 나가고 말이 막히고 눈도 멀고 3일을 식음을 전폐한 사람을 압니다. 율법학자 바울 사도입니다. 크게 놀라고 큰 일을 하십니다.
헛 사랑에 정열을 다 바치던 분이 사랑의 본체이신 예수님을 뵙고 자신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과 이웃을 너무나 사랑하신 놀라운 사도의 일을 하시는 분으로 바뀝니다. 누구나 이렇게 예수님을 만나고 새롭게 될 수가 있고 그분의 말씀을 볼 때 양심적으로 내가 사는 모습과 다르면 내가 잘못 산다 하고 그 길에서 돌이키면 역시 같습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으로서 사랑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안에 오셔서 계시면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게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어리니 처음부터 거창한 일로 할 수도 없게 만드시는 분이 절대로 아시시고 순서대로 차근차근 재미있게 쉽게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사역을 믿고 우리 안에 계심도 믿고 우리가 이해가 되지 않고 우리가 할 마음도 없는 일이라도 순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가장 많이 하시고 가장 특징적으로 하시는 일이 성령을 받은 사람이 전도하게 하십니다. 전도가 사랑 중에서 일등이기 때문입니다. 자녀에게 한국 땅을 다 준 아버지와 그런데 예수님을 전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에게 예수님을 잘 전하고 잘 가르쳐서 이제는 성령의 인도로 아무 걱정 없이 천국도 가고 하나님의 일도 열심으로 하게 하신 아버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아버지 아들에게 준 것이 별로 없습니다. 누가 더 이 자녀에게 유익이 되고 사랑을 했습니까? 인간 겨우 100년인데 우리와 같이 70이 곧 되는 사람은 지난날을 보면 절대로 길지 않고 순간에 다 갔습니다. 100년 순간입니다. 이 순간의 삶을 위해서 한국 전체를 다 준 아버지의 아들이 지옥에 갈 때 이를 갑니다. 아버지를 저주합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준 것이 없지만 성경 말씀대로 아버지로서 말씀을 어려서 잘 가르치고 올바른 신앙을 본을 보인 아버지를 따라서 그 아들이 순식간에 가는 100년 그렇지만 주와 동행하는 100년을 온갖 고난을 겪었지만 천국에 가고 면류관을 받고 아버지를 만날 때 그 두 부자의 행복은 영원합니다. 상급도 영원합니다. 짧은 인생 물질에 세상의 유혹에 빠져서 사랑도 못하고 살면 이 세상에 온 무슨 가치가 있습니까?
제40년 한국에서 가장 가난을 쉬지 않고 말씀드림은 가난이 절대로 사람을 잡고 죽이는 것이 아니라 갖고 나누지 않음이 사람을 죽이고 나도 죽입니다. 저는 집주인이 나가라고 해서 8월 말일 어제까지 짐을 싸고 이사를 가야 했습니다. 너무 더우니 한 달을 더 달라고 하니 집을 제가 나가야 팔 수가 있다고 나가라고 하니 짐을 쌓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디로 가라고 말씀을 하시지 않습니다. 주일 날에도 처남을 불러서 같이 짐을 싸고 예배를 동영상으로 잠실교회 예배를 드렸습니다. 목사님의 말씀이 놀라웠습니다. 잠실교회 8월 31일 설교를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놀라운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비가 옵니다. 겨우 9월 2일로 연장을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트럭을 내일 짐을 싣기 위해서 비워야 했습니다. 생선을 팔까 하고 아이스박스 대신에 중고 냉장고를 한 대 실었는데 도저히 그대로 짐을 다 실을 수가 없어서 내려야 하는데 한국의 넓은 땅에 어디에 내립니까? 아는 분께 부탁을 하니 바쁘다 하는데 말이 너무나 모질어 눈물이 날뻔했습니다. 그래서 아는 목사님께 전화하니 받지 않습니다. 어찌합니까? 그런데 강 에스더 목사님께서 제 힘든 사정을 아시고 어떻게 하냐 전화를 하셨습니다. 교회에 빈 창고가 있으니 우선 그곳에 옮기고 작은 방에 기거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1시에 목사님을 만나니 이곳저곳 제가 못하는 열정으로 부동산에 가서 집을 구합니다. 여기저기 가도 별로 소득이 없어서 제가 사는 아파트 맞은 편에 50만 원에 5만 원짜리가 있다 하니 보자 하고 갔더니 전기도 물도 다 끊어지고 집기를 넣으면 수백만 원이 드니 포기를 하고 이 아파트 전용 부동산에 가자고 해서 가니 마침 제가 사는 아파트와 다른 호에 비어 있으니 중개사가 가 보라고 해서 가 보니 너무나 깨끗하고 전기도 불도 들어오는데 역시 같은 보증금과 만 원을 월세로 더 내고 집을 구했습니다. 너무나 기뻐서 여자 목사님 한 번 껴안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께서 이사비로 10만 원 주셨습니다. 천 배의 축복이 절로 나옵니다. 그렇게 제가 새로 갈 집이 생겼고 내일 갑니다. 이곳도 너무나 정이 들어서 가는 것이 어렵습니다. 목사님께서 2000만 원을 빌려서 전세로 얻어 주시겠다고 하셨는데 충분하니 그냥 두라고 했습니다.
군산 강 에스더 목사님께서 에바다 교회에 계십니다. 수요일과 토요일에 목사님들께서 많이 오셔서 기도회를 10년 넘게 해 오시는데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입니다. 저도 가니 와 보시기 바랍니다. 치유와 기적이 있습니다. 남편도 따님도 목사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갈 곳도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계속 걱정 말라 하셨습니다. 8월 말에 이사를 비로 연기하고 여전히 어디를 가야 할지 모르는데 오늘 순식간에 갈 좋은 집을 주셨습니다. 강 에스더 목사님을 통해서 주셨습니다. 군산대 전북대 대학생들이 오시면 영어를 내년 이맘때 모두 다 미국인과 같이 하도록 해 주겠습니다. 남며 노소 다 모이시기 바랍니다. 아직 따님 목사님과 이야기 중인데 그렇게 되면 좋겠습니다.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받은 복이 상상을 초월하고 너무나 많고 귀해서 이렇게 가난 하나 선악과와 같이 주셨으니 저는 가난하게 살면 되고 모든 분은 제게 주신 만복을 값없이 받아 가시면 됩니다. 할렐루야!!!
에바다 교회 주소는 군산시 소룡동이고 전화번호는 063-461-4662이고 담임은 강 에스더 목사님이십니다. 영어에 관심이 많고 제가 평소에 전하는 메시지에 공감을 하시는 분은 다 오시기 바랍니다. 저는 수요일이나 토요일에 갑니다. 이집에서 이렇게 글을 쓰며 행복하게 평안하게 지냈습니다. 집주인은 사정이 있어서 그러니 축복을 잘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바빴던 지인도 역시 큰 복을 빌어 주었습니다. 새집에서 다시 만날 것입니다. 동영상도 그곳에서 꾸미고 할 것입니다.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 글을 읽어 주시는 모든 분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쉬지 않고 즐겁게 행복하게 왔습니다. 모든 분께 감사 드리고 모든 분이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이 다 잘 되시고 가정이 평안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집중적으로 잡념 없이 마음을 다해서 사랑하시는 모든 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사랑하는 것은 더 사랑을 해 보고 나중에 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갈 곳이 없는 죄인을 구원하셔서 마음에 드는 좋은 새집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새집에서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평화롭게 살기를 바랍니다. 제 집을 구해준 강 에스더 목사님과 가정에 만 배의 복을 주시고 교회가 부흥하며 따님의 목회가 풍성하길 바랍니다. 주여! 주님을 마음을 다해서 힘을 다해서 뜻을 다해서 우리 모두가 쉬지 않고 사랑하게 하시고 사랑의 열기가 한국에서 쉬지 않고 상달되어 주님의 보좌를 훈훈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