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사 리정구(1564-1635)의 《유금강산기》

[海泉]

  월사 리정구(1564-1635)의 《유금강산기》

   나는 젊은 시절에 우리나라의 명산들을 많이 돌아보았지만 유독 관동지방은 가보지 못하였다. 게다가 벼슬이 높아지고 몸이 늙어감에 따라 모든 것이 자유롭지 못하여 일찍부터 계획하여 오던 일들이 뜻대로 되지 않아 늘 실망 속에 살아왔다. 마침 1603년(계사년)에 함흥부의 화릉을 중수하게 되였는데 여기에는 반드시 례조의 관원들이 가서 일을 주관하게 되였다. 이때 나는 례조판서로서 그곳에 갈 것을 강력히 주장하니 조정에서도 막지 못하였다. 그때 내가 함흥에 꼭 가야 하겠다고 한 것은 돌아오는 길에 안변으로부터 흡곡, 통천을 거치여 총석정과 삼일포를 돌아보고 이어 유점사에 이르러 내금강과 외금강을 직접 밟아보기 위해서였다.

   8월 초 하루날 임금께 작별인사를 하면서 겸직으로 맡고 있던 세자시강원 벼슬과 비변사의 벼슬에서 해임시켜 줄 것을 제기하였으나 다 허락하지 않았다. 정승들은 내가 례조의 장관으로서 멀리 떠나는 것 옳지 않다고 하면서 임금에게 가지 못하도록 할 것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나는 화릉을 중수해야 할 날자가 이미 박두하였다는 것을 구실로 삼아 기어이 떠나기로 작정하고 임금에게 작별인사를 하였다. 이때 흡곡현령으로 임명된 석봉 한경홍도 임금에게 작별인사를 하였으므로 그와 동문 밖에서 만나 같이 가기로 하였다. 나는 하인들은 떼놓고 피리부는 악공인 함무금만을 데리고 길을 떠났다. 나는 석봉을 만나 그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이번에 내가 길을 떠나게 된 것은 실로 하늘이 인연을 맺어준 것이다. 관동지방의 주인으로 된 그대를 얻게 된 것도 또한 다행 중의 다행이라 할 것이다. 더우기 간이 최립이 간성군수로 있으니 내가 간다는 소식을 들으면 반드시 찾아와 서로 만나 함께 금강산에 들어갈 것이니 어찌 천고에 드문 훌륭한 유람이 아니겠는가. 나는 이달 보름경에 맡은 일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들릴 것이니 그대는 먼저 가서 기다리게.》

   그러자 석봉이 《저는 대감 밑에서 일하던 사람으로서 이제 다행히도 대감과 함께 관동지방을 돌아보게 되고 또 금강산에서 가질 시회에도 참가할 수 있게 되였으니 이보다 더 훌륭한 유람이 옛날에는 아마 없었을 것입니다.》고 하였다.

   신안역에 이르니 한 역졸이 역앞의 왼쪽 길을 가리키면서 이 길로 가면 통구에 가닿고 그곳을 돌아가면 단발령에 이르게 되는데 겨우 100여리 밖에 안된다고 하였다. 역졸의 말을 들으니 저도 모르게 흥이 나서 날아갈 듯 하였다. 평교자를 멈추고 시 한 수를 지어읊고 악공 무금에게 한 곡조를 불게 한 후에 신안역을 통과하였다.

   회양에 이르니 부사 한수민이 술좌석을 베풀고 나를 맞아주었는데 술안주가 대단한 진미였다. 나는 이곳에 머물면서 시 한 수를 지어 벽에 써놓고 길을 떠났는데 그 시는 다른 글에 실려있다.

   16일 저녁에야 날이 개여 길을 떠나려고 하니 관찰사가 굳이 만류하면서 만세교를 구경하고 가라고 하므로 저녁 때 그와 같이 락민정에 올라갔는데 루정은 성 밖의 1리쯤 되는 곳에 있었다. 루정은 병란 때에 불에 타고 다만 집터만이 남아있었으나 자못 기분이 상쾌한 곳이였다. 만세교는 그 루정 아래의 강에 놓여 있는데 물의 깊이는 사람 한 길가량 되였다. 그리 넓지도 좁지도 않고 깊지도 얕지도 않아서 반듯한 소반과 같았으며 강물의 좌우에는 눈같이 흰 모래가 쭉 깔려있었다. 만세교의 길이는 3리쯤 되였다.

   이때 장마비가 멎고 금방 개였으므로 달빛이 낮과 같이 밝았다. 루정에서 연회를 끝마치고 걸어내려오다가 만세교우에 앉아서 무금에게 피리를 불게 하였다. 사방이 환히 트이여 마치도 이 몸이 허공 중천에 앉아있는듯 하였다. 달빛이 강물에 거꾸로 비치고 파도가 일지 않으니 정신이 상쾌해지며 술기운이 도리여 사라지였다. 다시 두어잔 마시니 문득 기분이 좋아지며 돌아갈 생각이 없어졌다. 좌중에 다른 기녀들의 음악이 없고 다만 무금의 피리소리만 청아하게 울려퍼지니 흥취가 더더욱 돋구어졌다.

   잠시 후 조그마한 배 4~5척이 붉게 단장한 악대를 태우고 멀리서부터 가까이 와서 다리밑으로 오락가락하면서 노래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춤추는 그림자가 강물에 얼른거리니 이것 역시 볼만한 것이였다. 어부들은 그물을 던져 련어, 방어를 잡고있었다. 큰 놈은 한자쯤 되고 작은 놈은 부채길이만 하였다. 펄펄 뛰는 것으로 회도 만들고 구워서도 가져왔는데 그 맛이 또한 별미여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손이 술잔으로 자주 가게 되였다. 간성군수 최립, 통천군수 안경용, 흡곡현령 한경홍 등이 매일 급히 편지를 보내여 내가 금강산으로 가는 기일을 물어왔으며 그 밖의 관동지방의 고을원들도 공문이 가는 날자를 탐지하였다. 관찰사 한면숙이 나의 금강산 유람에 대하여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음을 보고 롱담삼아 《내가 이 관할사의 벼슬을 버리고 당신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구려. 이왕 함께 가지 못하는 바에는 차라리 조정에 사람을 보내여 당신을 급히 부르게 하여 당신도 금강산 구경을 못하게 하는편이 낫겠소.》라고 하여 한바탕 웃고 헤어졌다.

   17일 관찰사와 작별하고 길을 떠나 영흥(금야)에 이르렀다. 18일 북병사의 치계(임금에게 보내는 급보)가 지나가더니 관찰사 공문도 이르렀다. 그것은 녀진족의 기병 수백기가 종성을 포위하였는데 부사 정시화가 그 속에 있어 생사를 알 수 없다는 소식이였다. 나는 놀라고 근심되여 마음을 걷잡을수 없었다.

   22일 안변에 이르니 부사 남자유가 동생 자안과 함께 계당에서 연회를 차리였다. 다음날 또 나를 붙잡고 자기 어머니의 수연잔치에 참석하라고 하였다. 하는 수 없이 이틀을 묵으면서 종성지방의 적정 여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관동지방의 각 고을 사람들도 다 북방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최립은 고성에 이르러 은계찰방에게 하인과 말을 준비시켜 흡곡에 가서 기다리게 하였으며 다른 고을원들도 각각 자기 지경안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였다. 처음에는 종성을 포위한 녀진족이 좀도적에 불과하며 오래지 않아 물러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안변에 묵으면서 귀를 기울려 기다렸는데 북방에서 급보가 날마다 달려 올라가니 민심이 뒤숭숭해졌다. 나는 이곳으로 내려올 때 비변사의 겸임직을 해임받지 못하였으므로 정부에서 북방의 대응책을 강구할 것을 생각하니 제멋대로 금강산을 유람하는 것이 마음속으로 불안한 감이 있었다. 그리하여 편지를 써서 관동의 여러 고을원들에게 보내여 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리였다.

   25일 곧바로 빠른 길을 따라 철령을 넘었다. 40년 간이나 그리도 맘먹었던 금강산 유람이 종시 실현되지 못하여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떠났다. 령마루에 올라서서 멀리 금강산을 바라보니 마음속이 무엇을 잃어버린 것과 같이 허전하였다. 저녁 때 회양부의 전천에 이르니 북방에서 적이 퇴각하였다는 급보가 왔다. 나는 안변에서 좀 늦게 떠나지 못한 것을 한탄하면서 즉시로 평교자에서 내리려고 하였으나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저녁에 회양부에 들어서니 부사는 나를 맞이하려 금강산으로 떠난지가 이미 3일째 된다고 하였다. 텅빈 객관에서 쓸쓸하게 앉아 있노라니 마음을 걷잡을 수 없었다.

   이곳에서 금강산까지의 거리가 몇 리나 되는가고 물으니 아전이 《화천길로 가면 180리이고 통구길로 가면 160리인데 산길이 매우 험하오이다.》라고 하였다. 나는 례조좌랑 리형원을 불러서 《나의 이번 걸음이 애초부터 너무 요란하였기 때문에 조물주의 시기를 받아 뜻밖의 장애물이 생겼으니 참으로 천고에 한탄할 일이다. 만약 이번에 금강산을 보지 못하고 속세로 돌아간다면 죽어서 땅속에까지 원한을 품고 가게 될 것이다. 2~3일을 소비하여 내산(내금강)이라도 구경하면 내가 처음 마음먹었던 것을 어느 정도 풀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마음이 한 번 동하면 잠을 잘수 없다. 이제 닭이 울기 전에 말을 먹여 길을 떠나 하루사이에 금강산에 가려고 하는데 너도 가겠느냐?》고 물었다. 형원은 《제가 아무리 피곤하다 하더라도 어찌 대감께 뒤떨어지기야 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나는 관리들에게 3일 식량과 하루 식사할 밥을 준비시켜 각자가 가지고 가게 하고 도중역에서 식사를 시키지 말도록 하였다. 밤 2시경에 밥을 먹고 길을 떠나 신안역에 이르렀는데 이미 40리를 왔으나 날은 아직 밝지 않았다. 여기가 바로 내려올 때 평교자를 세워놓고 금강산으로 가는 길을 묻던 곳이였다. 잠간 쉬면서 말을 먹이려고 하는데 관원 6~7명이 길 왼쪽에서 절을 하며 맞이하였다. 누구냐고 물어보니 간성, 통천, 흡곡사람들이였다. 그들은 대체로 최립, 안경용, 한경홍 등이 내가 곧바로 서울로 돌아간다는 소식을 듣고 섭섭하게 여기면서 각각 헤여지면서 편지와 술, 안주 등을 보내였는데 그들은 다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들이였다. 한경홍의 각별한 편지가 있었는데 거기에는 《고을 안의 늙은이들은 대감의 은덕을 고맙게 여기면서 대감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소를 잡고 술을 빚으면서 길을 쓸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곧바로 돌아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모든 사람들이 정성이 부족하여 그런 것이라고 하면서 모두 도중에서라도 인사드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옛날 류총에게 산음사람들이 선물을 보낸 것을 본받아 년장자 세사람에게 술과 안주를 주어 보냅니다.》라고 씌여져 있었다. 이것은 대체로 내가 경자년(1600년)에 호조판서로 있을 때 흡곡현백성들이 상소하여 공물과 부역을 경감시켜 줄 것을 요청하였으므로 나는 그들의 정상을 불쌍히 여겨 임금께 여러 번 제기하여 감면하여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흰 머리에 누런 관을 쓴 로인들이 절을 하며 나에게 술을 권하였는데 각자가 주는 술을 두어잔씩 받아 마시고 나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취하고 말았다. 세 고을원들이 보내준 술과 안주는 역졸에게 지워가지고 금강산에 들어가면서 먹기로 하였다. 평교자는 역에 맡기고 건장한 말 두필을 선택하여 서로 바꾸어가며 타고 갔다. 따라가는 사람은 피리부는 악공 함무금, 아전 장응선, 화공 표응현 등이였다.

   신안역을 떠나 아침에 30여리를 가서 통구현에 이르니 해가 겨우 서너발 떠오르고 있었다. 마을은 아늑하고 한적하며 골안은 아름다와 벌써 별세계에 온 것 같았다. 여기서부터 산이 둘러있고 큰길이 없어졌다. 나무들이 하늘을 가리우고 있었다. 나무를 찍어 길을 내면서 전진하여 3개의 큰 령과 5개의 작은 고개를 넘어 단발령에 올라서게 되였다. 갑자기 겹겹이 쌓인 백옥 같은 수많은 봉우리들이 하늘중천에 우뚝우뚝 솟아있어 볼수록 온몸이 오싹오싹 하여졌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옛날 어떤 사람이 금강산을 구경코저 이곳에 와 험산들을 바라보고는 곧 머리를 깎고 중이 되였다고 하여 령의 이름을 단발령이라고 부르게 되였다고 하였다.

   신안역에서 단발령까지는 100여리를 지나왔는데 수많은 산들이 중중첩첩하여 앞길을 막으며 금강산을 호위하듯 하였다. 이곳에 이르러 산의 한쪽 면만을 보았어도 금강산이 참으로 신령스럽고 기이하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잠간 쉬면서 말을 먹인 후 채찍으로 길을 재촉하는데 멀리서 어떤 관원이 화천길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 보이였다. 누구냐고 물으니 회양부사가 내가 곧바로 회양부로 들어간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돌아간다는 것이였다. 그 일행이 이미 멀리 갔으므로 불러올 수 없었다.

   철이고개를 넘고 넓은 벌판을 지나가니 곧 장안동이였다. 물은 더욱 맑고 돌은 더욱 희며 산은 더욱 기묘하게 생겼으니 벌써 인간 세상에서 보는 경치가 아니였다.

   시내물은 바로 만폭동 하류였다. 무릇 아홉군대를 건너서야 처음으로 장안사문어구에 이를 수 있었다.

  무금에게 말우에서 피리를 불면서 앞서가도록 했는데 늙은 중이 선당으로 맞아들이면서 어디서 오는 손님들인가고 물었다. 그에게 말하기를 《나는 본시 글공부하는 서생으로서 서울에서 왔다.》고 하였다. 이어 절에 유람객들이 있는가 없는가고 물었다. 중이 말하기를 《수 일전에 이곳을 지나간 손님이 있었습니다. 요즘 들리는 말에 의하면 례조판서가 함흥부의 화릉중수차로 내려갔다가 돌아가는길에 외산(외금강)을 경유하여 이곳에 온다고 하기 때문에 각 고을에서는 준비를 갖추고 여러 날을 기다린다고 하기도 하고 혹은 례조판서가 곧바로 서울로 향하였다고도 하는데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나는 리좌랑과 남몰래 웃으면서 가지고 온 술로 목을 적신 다음 곤하게 한잠 자고 일어나 중에게 식사를 부탁하여 먹었다. 식사가 끝난 다음에야 모든 중들은 역졸들을 통하여 내가 례조판서라는 것을 알게 되였다. 그들은 손을 모으고 사죄하면서 말하기를 《로승이 함부로 버릇없이 행동하면서 대감님을 미처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어느 골짜기로 오셨습니까?》라고 하였다.

   내가 이곳까지 온 사연을 자세히 말하니 여러 중들이 《이곳에서 회양까지는 이틀길이나 되는데 하루 동안에 오셨으니 참 신기한 일입니다.》라고 하였다.

   말을 주고 받고 하는 동안에 젊은 중이 웃절에 손님이 왔다고 알리였다. 알아보니 그들은 도사와 은계찰방이였다. 웃절이란 즉 표훈사를 말한 것인데 이곳에서 5리쯤 되는 곳에 있었다. 나는 곧 젊은 중에게 달려가서 내가 왔다는 것을 알려주도록 하였는데 이때는 초저녁이였다. 도사 윤길, 찰방 리여기, 집경전 참봉 로승 등이 흡곡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내가 곧바로 서울로 갔다는 소식을 듣고 산놀이를 조직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중에게서 내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일변 놀래며 일변 의심도 하면서 허둥지둥 내려와서 나에게 절을 하였다. 《대감께서는 하늘로부터 내려왔습니까.》 하고는 나의 소지품여부를 물었다. 나는 가지고 온 술과 안주를 내보이며 한잔 마시고 지난 이야기나 하자고 하였다. 두사람은 말하기를 《이렇게 즐기는 것도 좋지만 고을들에서 대감님을 대접하기 위하여 마련해가지고 온 것들은 아직 돌려보내지 않았습니다. 어찌 이처럼 맹숭맹숭하게 놀겠습니까.》 라고 하였다. 얼마 안되여 두 고을에서 각각 가지고 온 것을 바쳤다.

   즐거움 속에 밤은 깊어 초생달이 이미 동쪽에 떠오르고 있었다. 절반쯤 취하여 출월대로 올라가니 가을밤은 적막한데 동천이 훤히 밝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여러 봉우리들이 구슬처럼 솟아 어두운 대지를 내려누르고 있는데 북쪽에 있는 봉우리가 관음봉이고 다음의 것이 지장봉이며 그 다음의 것은 보현봉이였다. 이날 밤 동쪽 별관에서 묵었다. 중 담유는 나이 80이 넘었지만 두 눈엔 광채가 빛나고 눈섭은 희고 길게 돋았는데 절의 사적에 대하여 상세하게 말해주었다.

   다음날 날이 밝자 나는 먼저 일어나 옷을 입고 걸어서 절 후면의 조그마한 언덕으로 올라갔다. 네 면의 산빛에 반사되어 눈이 부시기에 처음에는 어제 밤 눈이 내리지 않았는가고 의심했으나 자세히 살펴보니 바위돌들이였다.

   조반을 재촉하여 먹은 후 짐을 간단히 꾸려가지고 길을 떠났는데 젊은 중이 앞서서 길을 안내하고 나는 평교자를 타고 따라갔다.

   큰 개울물을 건너 십왕백천동으로 들어가니 괴이한 돌들이 길가에 널려있는데 참대숲으로 덮이였다. 좌우쪽의 삼송들은 청청한 빛을 던져 사람을 엄습하는듯 하였고 산아래의 못에는 맑은 물이 출렁이고 있었다. 못의 동쪽에는 옛성이 있고 성북쪽에는 큰 봉우리가 하늘을 찌르는듯 솟았는데 너무도 높아 올려다 볼 수 없었다. 바로 어제 밤에 알려주던 지장봉이였다.

   골 안의 길은 서리서리 맴돌았고 봉우리들은 검과 창을 묶어서 세워놓은듯 하였다. 한 봉우리를 지나면 한 골짜기가 나지고 그 골짜기를 지나면 또 다른 골짜기가 나지였다. 골짜기마다에는 시내물이 흐르고 시내물에는 폭포가 있었다. 또 폭포가 있는 곳에는 담소가 있는데 그 형태와 모양은 서로 달라 참으로 기이하였다.

   미타암에서 잠간 쉬고 명연으로 내려갔는데 그 깊이는 헤아릴 수 없었다. 절벽을 쏟아져내리는 폭포수는 독속에서 울리는 호통소리인양 무섭게 울부짖으며 청청하늘에 눈꽃을 흩날리는듯, 뢰성벽력이 이는듯 무시무시한 광경을 펼치고있어 차마 내려다볼 수 없다. 여기서부터 길은 다 아슬아슬한 바위길이고 바위돌길이 끊어진 곳에는 사다리를 만들어놓아 길이 이어졌다. 나와 일행은 평교자를 버리고 지팽이를 짚고 벼랑턱을 의지하여 기여갔고 시내물을 건느면서는 바위돌에 발을 채워 꺼꾸러졌다가 다시 일어나 걷군하였다. 시내물은 앞을 다투어 흐르다가 담소를 이루었는데 그가운데서 팔담, 화룡담, 흑룡담, 벽하담, 응벽담 등이 특별히 큰 것들이였고 그 나머지 작은 담소들은 다 이름붙일 수 없다. 바로 여기를 만폭동이라고 하는데 골안은 마치 하나의 큰 바위가 입을 짝 벌리고있는듯 하였다.

   너무나 피곤하여 널직한 바위 우에 드러누워 있는데 아전이 술과 말린 고기를 내놓아 일행이 빙 둘러앉아 먹었다. 바위에는 옛날 양봉래가 쓴 《봉래풍악원화동천》이란 글 여덟자가 새겨져있었다. 글자획의 크기는 사슴 종아리만치 굵었다. 그 왼쪽에는 금강대가 있고 대우의 바위짬에는 학의 둥지가 있는데 둥지가 텅 비고 학은 없었다. 중의 말에 의하면 학은 때때로 날아와 울면서 바위를 돌다가는 날아간다고 하는데 털빛은 푸르고 정수리는 붉다고 하였다.

   술에 얼근히 취한 나는 악공 무금을 시켜 아무도 모르게 향로봉의 가장 높은 꼭대기에 올라가 소나무가 무성한 곳에서 피리를 한 곡조 가느다랗게 불게 하였더니 그 피리소리가 아득히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 같아서 마치도 하늘공중에서 나는 것 같았다. 자리에 앉았던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래져서 귀를 기울이고 들으면서 《대감께서도 저 소리가 들립니까?》라고 물었다. 내가 거짓말로 들리지 않는다고 하니 좌우의 사람들이 갑자기 조용해지면서 《신기한 일이로구나. 하늘에서 음악이 울리다니. 사람들의 말이 향로봉에 신선이 살고 있다더니 과연 거짓말이 아니로군.》라고 웅얼거렸다.

   피리소리는 더욱 청아하게 저 멀리 구름과 안개 속으로 울려퍼지며 바람결에 끊어졌다가는 다시 이어지군 하였다. 나는 비록 무금이의 피리 소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역시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러 사람들은 오래 지난 뒤에야 비로소 무금이가 부는 것을 깨닫고 손벽을 치며 까르르 웃었다. 이것 역시 하나의 명승지의 흥취였다. 흥겨움은 절정에 달하고 술은 잔뜩 취하였다. 해도 또한 서산으로 넘어가는지라 우리는 시내물을 따라 내려와 표훈사로 갔다.

   표훈사의 정문안에는 비석이 있었다. 1338년(고려 충숙왕 후7년)에 세운 것인데 량재가 글을 짓고 고려 정승 권한공이 글을 써서 새긴 것이였다. 이 표훈사가 가장 큰 절이였는데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여러 중들이 다시 세워놓았다고 하였다. 아직 단청은 끝내지 못하였다. 이날밤 여러 사람들과 같이 술판을 벌려 마음껏 즐겼다.

   다음날 아침 일찌기 일어나 곧바로 정양사로 올라갔다. 정양사는 봉우리의 절정에 있는데 올라가는 길이 대단히 험하여 때로는 평교자를 타고 가기도 하고 혹은 지팽이를 짚고 걷기도 하면서 한줄로 서서 올라갔다. 절 서쪽에 진헐대가 있는데 푸른 회나무 수 백 그루가 좌우측에 꽉 차있어 바람이 불면 상쾌한 기분이 뼈속으로 스며들었다. 오래동안 대우에 앉았다가 두어잔 술로 목을 추기고 절안으로 들어가니 절은 황폐하고 중은 없었다.

   서쪽 루대가 가장 깨끗하고 아름다와 청소를 시킨 후 자리를 펴고 들어가 란간에 의지하여 사위를 바라보니 여기서부터 뒤에 있는 봉우리들은 다 책상우에 놓은 물건같이 보였다. 로승의 말에 의하면 이 금강산은 바다를 끼고있기 때문에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고 습한 바람과 젖은 아지랑이로 하여 날씨가 종일 개일 때가 없다고 한다. 그러므로 유람객들이 어떤 때는 10여일을 묵고서도 산 한 쪽면도 보지 못하고 돌아간 적이 있다고 하였다.

   오늘은 약간 내리던 비가 금시 개였으므로 산빛은 알른알른하게 닦은 거울과 같았다. 1만 2천봉이 한 점의 티끌도 끼지 않고 절묘한 자태를 다투어 보여주니 그 아름다운 모습은 말로써는 다 할 수 없다. 붉은 단풍은 얊지도 깊지도 않아 마치 새로 물들여 놓은 것 같았다. 이러한 현상은 다 수 십년래에 있어보지 못한 일이니 대감은 참으로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이어 내곁에 앉아 두 손을 들어 가리키며 로승은 동북쪽에 웅장한 모습으로 도사리고 있는 것이 금강산의 주봉인 비로봉이고 혼자서 우뚝 솟아있는 것은 혈망봉이며 두개의 뾰족한 봉우리가 하늘을 찌를듯이 서 있는 것은 향로봉이고 기묘한 바위돌이 불쑥 일어나 화산을 쪼개여 놓은 것과 같이 생긴 것은 금강대라고 하였다.

   그리고 모든 령봉을 둘러싸고 향기를 쌓아두고 새지 않게 한 것은 중향성이고 기타 날아가는 봉황같고 뛰는 룡같고 웅크리고 앉은 범같고 싸우는 고래같고 달리는 것도 같고 뛰는 것도 같고 임금 앞에서 읍하고 빙 둘러서 있는 것과 같은 것들은 영랑고개, 수정봉, 사자봉, 가엽봉, 선암봉, 백운봉, 만회봉, 원적봉, 망고봉, 석응봉, 승상봉, 일출봉, 월출봉, 마하연봉으로서 금강산에서 가장 뛰여난 봉우리들이라고 하였다.

   그 밖의 봉우리들은 이름이 바르지 않거나 혹 이름을 짓지 않았지만 역시 각각 기묘하게 생겨 아름다운 자태를 나타내고 있었다. 흰 바위돌에 붉은 단풍이 뒤덮이고 그 사이사이에 소나무, 전나무들이 푸른 모습을 드러내며 섞여 있어 마치 한폭의 그림과 같아서 세상 좋은 경치도 다 이곳에 모였다고 한다.

   나는 정신을 집중하여 주의깊게 바라보는 사이에 해가 어느덧 기울어져 가는 것도 깨닫지 못하였다. 드디여 북쪽의 산등성이로 올라가 개심암에 이르렀다. 이 암자가 자리잡고 있는 곳은 정양사에 비하여 더욱 험준하고 그윽하였다.

   천덕암, 원통암을 지나 마하연에 이르니 절경은 산중의 첫자리로서 중향봉이 호위병같이 둘러있어 경내가 엄숙하고 삼엄한 기백이 떠돌았다. 좌우에는 적목, 오갈피나무, 늙은 삼송, 전나무, 측백나무, 해송들이 많이 자라고있고 잡목은 없었다.

   한 마리의 새울음도 없고 날거나 달리는 짐승도 없었다. 중의 말이 중향성에서 이 암자까지는 뱀이나 구렝이같이 구불구불하게 생긴 곳도 전혀 없다고 하였다. 중들은 낟알을 먹지 않고 있으니 인간생활을 떠나 사는 것이 사랑스러웠다.

   절문 밖에 나무가 있었는데 꽃은 해송과 같고 붉은 껍질이 계수나무와 같아서 사람들은 계수나무라고 하였다. 껍질을 벗겨 씹어보니 약간 매운감이 있고 달지는 않았다. 비록 계수나무는 아니지만 그래도 보기 좋은 나무였다.

   해가 아직 있으므로 여러 사람들이 불지암과 묘길상으로 올라가자고 하였으나 이 좋은 경치를 차마 버리고 떠나기가 아쉬워 아예 여기서 묵어갈 의향으로 뜰앞을 산보하였다. 바위구멍으로 나오는 샘물이 있는데 매우 차고 향기로운 맛이 있으며 또 달기는 사탕물과 같았다. 이날 밤 중과 같이 자는데 밤은 깊었어도 멀리 보이는 여러 암자의 불빛은 반디불을 늘여놓은 것처럼 반짝거리였으며 별들이 처마에 걸려있어 올려다보면 손으로 따낼 것만 같았다.

   다음날 아침 보덕굴을 구경하려고 중향성으로 가는데 화룡담 상류의 산 중턱으로부터는 벼랑짬으로 난 길이 공중에 달려 있었고 그것이 끝난 곳에는 나무를 건너놓아 사다리를 만들어 놓았다. 이러한 사다리를 모두 40여 개를 지나가니 석대가 있었고 석대 왼쪽에 두 간쯤 되는 암자가 있었다. 바위돌 우에 시렁을 매고 2개의 구리기둥을 세웠는데 높이가 백길이나 되였다. 구리기둥 우에는 반 칸쯤 되는 집을 짓고 그 안에는 관음소상이 있었다. 2개의 철사를 리용하여 하나는 구리기둥에 붙였고 다른 하나는 절을 둘러싸서 바위에 고착시켰다. 암자는 공중에 놓여있으므로 바람이 불면 흔들리여 떨어질 것 같지만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위태로와 오래동안 앉아있을 수 없었으므로 보덕대에 올라가 술을 가져오라고 하여 되는대로 몇 잔 마시였다. 그런데 갑자기 화룡담 우에서 한 줄기의 흰 구름이 화로에서 나는 연기와 같이 일어나더니 점점 올라와서 돗자리보다 커지더니 잠간사이에 여러 못과 골짜기에서도 구름이 솟아일어나 비단필을 펼쳐놓은 것처럼 퍼지였다. 그러다가 미친듯이 달리다가 서로 부딪치고 부딪치면 서로 엉켜 빙글빙글 도는데 여러 골짜기와 담소들이 아예 백옥색으로 변하는 것이였다. 곁을 둘러보니 부엌에서 식사를 준비하던 하인들마저 보이지 않았고 다만 그들이 서로 주고 받는 말소리와 신끄는 소리만이 들릴뿐이였다.

   얼마 후에 구름사이로 밝은 해빛이 비쳤으나 아래 골짜기에는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여 하늘땅이 하나로 엉키여 무엇이 무엇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이것 역시 장쾌한 풍경이였다.

   깊은 골안의 물과 돌을 지나 기이한 경치를 구경하느라니 다리가 몹시 저려오므로 평교자에 앉아 내려왔는데 저녁 때에야 표훈사에 돌아오게 되였다. 여러 사람들이 술판을 크게 벌려 나를 위하여 송별회를 해주었으나 나는 너무 피곤하여 두어잔만 마시고 자리에 누워버렸다.

   30일 려장을 꾸려가지고 표훈사를 떠나 장안사를 거쳐 동구로 나왔다. 로승은 강릉으로 돌아가고 도사와 찰방은 각각 자기 임지로 돌아가는데 강물도 목메여 흐르는듯 작별하는 쓸쓸한 회포를 돋구어주었다. 돌아오는 길에 깊은 골안이 나지면 앉아서 쉬군 하였는데 맥이 다 빠지였기 때문이였다.

   점심 때에 단발령에 이르니 경기감사 리광준이 나를 만나보려고 령서지방으로부터 160여리길을 달려왔다. 단발령 우에서 만나 풀을 깔고 앉아서 옛정을 나누는데 광준의 아들 민환이 역시 따라와서 가지고 온 술을 내놓으므로 두어잔 마시고 그들과 작별하였다. 저녁 때 통구촌에서 자고 다음날 서울을 향하여 길을 떠났다.

[麟靑]

금강산 유람 잘했습니다.

[바다]

말투가 북한말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