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김준현이라는 의사가 전하는 노부부의 사랑이야기를 실어봅니다. 두 분 모두 연세가 많아 건강이 안 좋으신데 서로를 향한 애틋한 사랑이 감동을 줍니다. 우리도 머잖아 헤어질 시간이 다가올 텐데 끝까지 아름다운 마무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어느 노부부의 사랑이야기’
장대석 님(가명)과 김영화 님(가명)은 노부부입니다. 젊은 시절, 할머니는 조현병이 생겼습니다. 할머니를 돌보던 할아버지도 치매가 생기고, 설상가상으로 뇌경색으로 반신마비가 되고 말았습니다. 가족들은 의논 끝에 두 분을 병원에 모시기로 했습니다.
그때, 두 분 모두, 인지기능이 많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보면 웃으며 살갑게 다가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가 입원해있는 정신병원에 코로나 감염이 발생했습니다. 이 지독한 바이러스는 순식간에 퍼져버렸습니다.
그 당시 일반병원에는 치료제가 없어서 환자를 치료하려면 국가지정병원으로 옮겨야 했습니다. 그러나 병상 사정은 좋지 못했습니다. 그날 밤12시, 할머님 상태는 급격히 악화되었습니다. 열이 40.3도까지 올라가고, 온몸이 통나무처럼 뻣뻣해졌습니다.
늦은 밤이지만, 급한 마음에 재난본부로 전화를 걸어 소리쳤습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살려주세요!” 전화를 받은 담당자가 백방으로 알아봐 준 덕분에 간신히 병상을 배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구급차가 병원에 도착했고, 저는 구급대원들과 함께 할머님 후송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어두운 복도 한쪽 끝에서 바닥을 기어오는 누군가가 보였습니다. 할아버지였습니다. 한쪽이 마비된 불편한 몸으로 부인에게 필사적으로 다가가려고 하셨습니다. 할머니를 구급대원들에게 맡기고, 저는 할아버지께 다가갔습니다.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고, 입술이 파르르 떨렸습니다. 그러나 아무 말씀도 하시지 못했습니다. 말씀하지 않으셔도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지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할아버지께 말씀드렸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몹시 아프세요. 그렇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어떻게든지 최선을 다하여 할머니를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모셔오겠습니다. 그때까지 조금만 참고 기다려주실 거죠?” 할아버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눈에서는 눈물 한 방울이 떨어져 또르르 볼로 흘러내렸습니다.
그렇게 할머니를 지정병원에 모셔다드렸습니다. 돌아오는 구급차 안에서 가슴이 꽉 막힌 것 같았습니다.
할아버지께는 ‘부인을 건강하게 다시 모셔오겠다’고 큰소리쳤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안전하게 모셔다드리는 것, 그리고 그 병원 주치의에게 환자의 평소 지병에 대하여 설명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마음속으로 ‘제발, 제가 한 말이 거짓말이 되지 않도록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치매로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하지만, 그래도 ‘부인에 대한 애틋한 느낌’만은 잊지 않으셨던 분입니다. 이런 분의 마음을 한 번 더 아프게 한다면, ‘그야말로, 너무나 잔인한 일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얼마 후, ‘할머니의 치료가 잘 끝났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걷지는 못하셨습니다. 돌아오신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보시자, 다시 방긋 웃으셨습니다. 할아버지도 이번에는 환하게 웃으셨습니다. (출처; 월간에세이, 김준현 / 의사)
참으로 아름다운 노부부의 모습입니다. 다른 말이 필요 없을 듯합니다. 가능하다면, 이 노부부처럼 늙어가고 싶습니다. 진정 그렇게 되기를 소망하고, 또한 간절히 기도하면서 열심히 노력하고자 합니다. (물맷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