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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새긴 언약
성경본문; 예례미야 31: 31-34
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32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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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위암말기 판정을 받고 병원에 누워 있었습니다.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에 머리는 다 빠져버리고... 그의 앞에는 퇴원통지서만 놓여있었습니다.
고향에서 편히 지내다가 세상과 작별하라는 뜻이었죠.
초라한 모습으로 고향에 돌아 온 그는 마을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부터 그 누구도 만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초췌한 모습으로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자기를 누구에게도 보이기가 싫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그의 이런 소박한 희망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그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은 고향의 친구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러더니 한 마디씩 툭툭 던지는 데, 도무지 듣기가 힘들었습니다.
‘야, 병원에서 여기까지 잘 왔냐?
어디 한 번 자세히 보자...
모자 한 번 벗어 봐...
대머리가 되었을 텐데...
모두 한 번 보자! 대머리 왔다.’
그는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수치심과 분노로 쓰고 있던 모자를 벗고 뒤돌아서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그래 봐라. 곧 죽을 내 모습을 똑똑히 봐두라고…’
그런데 이때 뒤돌아선 그는 멍하니 서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를 보러 나온 그의 친구들 모두가 머리를 밀어버린 삭발로 그를 바라보고 있던 것입니다.
‘우리는 네가 그 무섭고 악질적인 암이란 놈과 싸워 이길 때까지 이 모습으로 너와 함께 할 것이다. 힘내라 친구!’
사순절을 보내며... 이제는 우리의 사랑이 좀 작은 것이라도... 구체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이 지상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시면서 한 일은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제자들의 마음속에 깊이 간직될 만큼 구체적인 사랑의 행위였던 것이지요.
예수가 우리에게 남기신 마지막 유언은 ‘서로 사랑하라’(요한13:34)는 것이었는데...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추상적이거나 이론적인 막연한 것이 아니라,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사랑의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발을 씻어 주던지... 아니면 암에 걸린 친구를 위해서 머리를 깎든지... 어느 한 사람을 위해서 구체적인 행동으로 사랑을 드러내기를 바랍니다.
오늘이 벌써 사순절 다섯 번째 주일입니다.
사순절을 보내기가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별 생각 없이 그냥 다른 날들처럼 그렇게 산다면 모르겠지만...
십자가의 예수님을 생각합시다...
주님의 고통을 묵상하고, 주님을 본받읍시다...
이런 생각을 무려 50일 가깝게 마음에 품고 산다는 것... 그것은 쉽지는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많이 들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사순절 기간에는 아예 고기도 먹지 않는다고 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는 것인지... 고기를 먹지 말아야지... 하면 사실 마음으로는 고기가 더 먹고 싶어지는 게.. 사람의 마음인 것 같습니다.
내일부터 마지막 두 주간은 특별 새벽기도회가 있어서... 나오시는 분들이나 포기하고 잠만 주무시는 분들이나... 다 하나같이 고달픈 두 주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느 때인가부터... 사순절을 보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순절이라고 해서 늘 예수님의 고난만 생각하는 것인가?
물론 처음의 몇 주간은 예수님의 고난이 주된 생각의 주제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십자가 뒤에서 어떤 서광이 비쳐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 빛은 부활로부터 비춰오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어떤 순간부터 예수님의 고난은 단지 고난으로만 생각되는 것이 아니라 부활로 이어지는 고난이라는 깨달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사순절로부터 부활절에 이어지는 시간을 보내면서 저는 ‘십자가에서 피어나는 새 생명’이라는 주제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이전에는 사순절에는 오로지 십자가만 생각해야한다고 여겼었는데... 그 십자가가 아름답고... 그 십자가가 우리에게 은혜가 되고... 위로가 되고... 우리가 그 십자가를 날마다 바라보아야 할 것은 바로 그 십자가를 통해서 새로운 생명이 피어났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단지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지만,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만을 생각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십자가는 우리들도 다시 태어나게 합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가까이 다가가고... 십자가를 지시던 주님의 마음을 닮아갈 때에... 우리는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세상을 살게 됩니다.
예수의 삶이 십자가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진다면...
오늘 우리들도 십자가 이전과 이후의 삶으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십자가 그 자체는 항상 우리에게 무거운 부담으로 다가설 수밖에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십자가에 다가서면 설수록... 그것은 곧 죽음이고, 마지막이고, 비참한 패배처럼 생각하였는데... 십자가는 우리를 새로운 생명으로 초대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전혀 새로운 생명으로 피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생명의 빛이 이미 우리들에게 비쳐오고 있습니다.
사순절 다섯 번째 주일을 맞아하는 우리들...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십자가의 뒤편에서 비쳐오는 새 생명의 광채도 함께 바라보며 기뻐하고... 희망으로 충만한 시간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가장 참혹한 죽음의 상징인 십자가에서 피어나는 새로운 생명의 빛을 바라보는 것... 이것은 이미 예언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활동했던 여러 예언자들 중에서 예레미야만큼 참혹한 광경을 목격했던 이도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의 몰락을 지켜본 예언자였습니다.
예루살렘은 주전 597년과 587년 두 차례에 걸쳐서 강대국 바빌론에게 철저히 유린당하고 맙니다. 당시 예루살렘을 다스리던 두 왕은 바벨론에 포로로 사로잡혀가고, 많은 지식인들과 귀족들, 기술자들이 함께 바벨론에 끌려가고... 예루살렘성전은 철저히 무너져 버립니다.
이스라엘의 불행한 조짐을 짐작한 사람들은 많았지만, 아마도 이렇게 예루살렘이 무너져 내릴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자기들은 역사를 다스리시는 하나님과 특별한 언약을 맺은 백성들이라는 자부심이 그들에게는 있었고, 이것이 그들에게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남아 있었던 것이지요.
예레미야는 이런 예루살렘의 몰락을 지켜보면서... 물론 이스라엘이 망했다는 답답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바라보는 것도 힘이 들었지만... 아마도 그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으로서 또 다른 역사의 의문이 있었던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시내산에서 맺었던 언약이 아직도 유효한가... 하는 문제라고 할 것입니다.
출애굽기 19장을 보면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집트를 빠져 나온 이스라엘이 홍해 바다를 건너서 광야를 지나고 시내산에 도착하였을 때의 일입니다.
그제서야 비로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끌어 내신 이유를 털어 놓으십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특별한 언약을 맺고 싶어 하셨던 것이지요.
이스라엘은 오로지 하나님만을 믿고 그 말씀대로만 따르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 삼으셔서 마치 보석처럼 소중히 여기시고, 지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출19:5-6)
결국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시내산 기슭에서 특별한 언약을 체결하게 됩니다.
예레미야의 관심사는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어떤 사람들 사이에 계약이 체결되었지만, 만일 당사자들 중에서 한 사람이 죽으면 그 효력을 상실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제 이스라엘이 바빌론에게 멸망을 당하고 나라로서의 생명력을 다하였으니...
과연 예전에 우리 조상들이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맺었던 그 언약이 과연 지금도 유효한가...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예레미야에게는 나라가 망한 것보다 이것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이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더 이상 이스라엘을 특별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생각하지 않으신다면... 그래서 이제 우리들과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가 끝나버리고 만다면... 이스라엘은 이제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아마 예레미야는 이 문제를 가지고 아주 심각하게 고민을 한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은 바로 이런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에 대한 예레미야의 깊은 성찰의 열매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깊게 고민하던 예레미야는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아직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끝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만일 누군가 법을 잘 아는 사람들이 이스라엘이 멸망했으니 이제 그 약속은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뭐 이런 문제를 제기한다면... 하나님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렇게 대답을 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 그렇다면 다시 언약을 맺으면 되겠지... 나는 그렇게 해서라도 한 번 맺은 이스라엘과의 언약을 계속해서 유지할 거야... 비록 이스라엘이 이 세상에서 많은 나라와 민족들의 조롱거리가 되었다고 해도 내가 그들과 맺은 약속은 여전히 살아 있고 유효한 거야... 아니 나는 이제 그들과 새로운 언약을 맺겠어... 그 언약은 이전에 시내산에서 맺은 약속과는 비교가 안 되는 더 좋은 언약이 될 거야...’
이스라엘이 망했다고 해서...
마치 주변의 나라들이 그들을 향해서 등을 돌리고 마음이 변하듯...
하나님마저도 그렇게 하시면 어떻게 하나... 이렇게 가슴 졸이던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은 이런 놀라운 음성을 들려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렇게 하시는 분이 바로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잘 살고 그럴 듯해 보일 때에는 앞을 다투어서 손을 내밀기도 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합니다.
하지만... 마치 이스라엘처럼 우리가 실패한 사람이 되고...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이 되었을 때... 그 때까지 우리 곁을 지켜주면서 변함없는 우정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시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어떤 형편에 있든지... 언제나 우리 곁을 지켜 주시오,
우리를 보석처럼 소중히 여겨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항상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때가 오면,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유다 가문에 새 언약을 세우겠다...’(v.31)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예레미야의 마음속에 있던 의문과 불안함을 해소하여 주십니다.
‘이스라엘과 유다가문...’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때... 이제는 천덕꾸러기처럼 되어버린 그들이지만... 아직 하나님께 그들은 얼마나 정겹고 사랑스러운 존재인지...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자기들의 이름을 불러 주실 때... 여전히 자기들을 사랑하시고 소중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제 하나님께서 그들과 새로운 언약을 세우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조금도 변하지 않으셨다는 것...
이스라엘을 생각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그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어서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으실 때나 지금이나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그동안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얼마나 많이 실망시켜드렸는지...
하나님은 그것도 잘 알고 계십니다.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은 나의 언약을 깨뜨려 버렸다...’(v.32b)
그 옛날 맺은 언약을 너무나 쉽게 깨뜨려 버린 것은 이스라엘이었습니다.
그들은 언약을 맺는 과정에서부터 하나님과 약속에 대해서 신실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에 맺을 언약은 이전과는 달라야 한다고 하나님도 생각하고 계십니다.
‘이적은 내가 그들의 조상의 손을 붙잡고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오던 때에 세운 언약과는 다른 것이다...’(v.32a)
여기에는 우리들이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하나님과 약속을 맺고 나서도.. 언약의 제단에 뿌린 피가 채 마르기도 전에 돌아서면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우리들을 아시는 하나님의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절이 지난 뒤에,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언약을 세울 것이니...’(v.33a)
하나님께서는 이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실망시켜드리고, 섭섭하게 해 드렸던 일들은 다 지나간 시간에 있었던 일로 생각을 하십니다.
이미 그들은 유다왕국이나 이스라엘이나 이렇게 바빌론이나 앗시리아에게 시달림을 받으면서 자기들의 죄에 대하여 충분한 형벌을 받았다고 생각을 하십니다.
이제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을 대신할... 새로운 언약을 맺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과거에 이스라엘이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맺은 언약과 새 언약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의 친밀함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마치 새로운 상품을 구상하고 있는 사람이 그것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듯...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우리와 맺으려 하시는 새 언약이 어떻게 좋은지... 그것을 친절히 말씀하여 주십니다.
먼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나의 율법을 그들의 가슴 속에 넣어 주며, 그들의 마음 판에 새겨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v.33)
아마 옛 언약의 상징인 십계명이 돌판에 새겨진 것을 염두에 두고서 하시는 말씀이라고 생각됩니다. 그 때에는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거리감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해서 도저히 가까이 다가 설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하나님은 우리의 가슴에 그 언약을 새기겠다고 하십니다.
우리의 가슴에다가 ‘나는 너의 하나님이다... 너는 나의 백성이다... 너는 내 것이다...’ 이렇게 새겨놓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 대목이 제 가슴을 참 뭉클하게 하였습니다.
나의 가슴에 ‘너는 내 것이다...’ 이렇게 새겨놓으시겠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가?
과연 나의 가슴에는 이런 하나님의 언약이 새겨져 있는가?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우리들 모두에게는 ‘나는 너의 하나님이다... 너는 나의 백성이다... 너는 나의 것이다...’ 이런 하나님의 말씀이 새겨져 있습니까?
오늘 집에 가시면 자신의 가슴을 한번 잘 살펴보십시오.
그러나 아무리 살펴보아도...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에서는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십계명을 돌 판에 새겨 놓았다는 것.. 그것이 더 폼이 날 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그 돌 판을 언약궤에 담아서 광야를 지나는 동안에 항상 가지고 다녔다고 하지요.
하지만... 겉으로 보여지는 것... 눈에 그럴듯하게 보이는 것...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근사하게 새겨진 십계명의 돌 판이 있었지만... 그것이 그들의 삶을 달라지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실감을 하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기는 하였지만... 그들에게 하나님은 여전히 두려웠고... 멀리 떨어져서 도저히 가까이 다가설 수는 없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번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 여호와가 우리의 하나님이라는 것... 그것을 가슴에 새겨 넣겠다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제 우리 모두가 저마다 가슴에 문신을 하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나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이런 문구를 가슴에 새겨놓으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여기에서 우리는 히브리서의 말씀의 도움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신약의 말씀들 중에서 오늘의 말씀을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이 말씀에 비추어서 그리스도를 소개한 말씀이 바로 히브리서입니다.
히브리서의 기자는 예레미야가 전한 새 언약을 가리켜서 ‘더 좋은 언약’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 다시 말해서 이 언약이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서 실현 되도록 하신 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신 예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을 보증하시는 분이 되셨습니다.’(히브리서7:22)
마치 시내산 언약이 제물로 드려진 짐승들의 피가 뿌려지면서 그 생명력을 가지게 되었다면... 예레미야가 말씀한 새 언약...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가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써 비로소 효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바울의 경험이 우리에게 도움을 줍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사도직을 의심하며 의견이 분분하던 갈라디아 교인들의 의심어린 눈초리를 한 마디로 일축하였습니다.
‘이제부터는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나는 내 몸에 예수의 상처 자국을 지고 다닙니다.’(갈라디아서 6:17)
사람들은 이것을 그가 예수를 전하다가 얻은 상처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그러니까 겉으로도 볼 수 있는 상처자국이 그에게는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저는 이 말씀을 이렇게 읽어 보았습니다.
‘나의 몸에는 나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사랑의 흔적이 있습니다. 그 사랑의 흔적이 누가 뭐래도 나를 하나님의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 살아가게 합니다...’ 그의 몸에 새겨진 예수의 상처... 그것은 다름 아닌 그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신 예수가 십자가에서 얻은 상처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슴마다에 새겨놓으신 언약... ‘나는 너의 하나님이다. 너는 나의 백성이고 나의 것이다... 나는 너를 정말 보화처럼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한다...’ 이런 하나님의 마음이 깨달아지고 느껴지게 하는 것... 멀리계시다고만 생각하고, 그저 무섭게만 생각되던 하나님이 우리를 정말로 사랑하시는 따스한 마음을 가진 아버지와 비슷하다는 것... 그것을 알게 해주신 분... 그 분이 바로 십자가에 달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씀입니다.
언젠가부터 예수의 십자가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촉촉해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예수의 상처 자국까지는 못될지는 몰라도...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이 제 마음을 적신다고 생각해보면 그렇게 가슴이 따스하게 느껴질 수가 없습니다.
주님이 친히 모든 상처를 어루만져 주시는 듯하고... 주님이 손길이 닿는 곳마다 새살이 돋아나는 듯한 느낌이듭니다.
그러면서 마음 가운데에는 그런 확신이 생기게 됩니다.
“역시... 나는 하나님의 것이로구나... 하나님께서 이 모습 이 대로의 나를 정말로 사랑하시는 구나... 그리고 내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세상을 좀 더 당당하고 멋지게 살라고 주님이 나를 보듬어 주시는구나... 그러한 것을 느끼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볼 때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슴에 새겨놓으신 약속의 말씀이 느껴지기를 바랍니다.
‘너는 나의 것이다... 나는 정말로 너를 사랑한다...’
이렇듯..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슴에 새겨놓으신 소중한 언약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나는 너의 하나님이야... 너는 나의 것이야...’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정말 실감나게 다가 올 때... 그 때부터 우리는 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예레미야는 그것을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그 때에는 이웃이나 동포끼리 서로 너는 주님을 알아라 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은 작은 사람으로부터 큰 사람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모두 나를 알 것이기 때문이다.’(v.34)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는 것’ 그것은 하나님과 한없는 친밀함을 느끼며 산다는 것을 뜻합니다.
전통적인 교회의 말로 하자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아낌없이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그 사랑 안에서 산다는 것을 말합니다.
‘작은 사람으로부터 큰 사람에 이르기까지...’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는 세상에서의 성공이나 실패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누가 그것을 가르쳐 주지 않더라도... 일일이 그것을 말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은 알지 못해도 우리는 이미 충만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예레미야는 또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내가 그들의 허물을 용서하고, 그들의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않겠다. 나 주의 말이다.’(v.34)
생각해보면 이것보다 더 소중한 축복은 없는 것이지요.
우리에게는 얼마나 많은 부끄러움이 있는 것인지...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으면서도 그것을 지키지 못한 이스라엘과 우리가 다른 점이 무엇이 있을까요? 하지만... 이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다 용서하시고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시겠다고...
우리들 모두에게 새롭게 시작할 수 있도록 격려하여 주시고 힘을 주시겠다고...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집을 짓는 분들에게서 ‘기존의 낡은 건물을 수리하는 것이 집을 새로 짓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번 실패하고 잘못된 것은 사실은 다시 돌이킬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그런 기회를 주십니다.
‘다시 시작해 보아라... 이제까지 네가 어떻게 살아왔든지... 어떤 잘못을 했든지... 그것은 내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너는 얼마든지 잘 해낼 수 있다고 나는 믿고 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다는 것...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을 우리는 십자가의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듣게 됩니다.
이렇게 또 다시 사순절을 보내는 막바지에 우리는 지금 서 있습니다.
스치듯 지나가버리는 연례행사로 그치지 말았으면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 가슴에 새겨놓으신 소중한 언약... 그것이 다시 생각나고, 느껴지고, 그 언약이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 볼 때마다 ‘나는 너의 하나님이야... 너는 내 것이야..’ 이런 하나님의 음성이 생생하게 들려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