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 24:1-12
심판을 재촉하는 것들
대적들의 무고한 협의를 받고서 감옥에 갇혀있다가 끝내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버린 중세 시대 위대한 철학자인 <보에시우스>라는 사람은 처형되기 며칠 전에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 행악자는 하나님께서 그를 심판하지 않으시더라도 행악 자체가 벌써 자기를 심판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함께 읽은 본문에는 악인들에 대한 욥의 답답한 심정이 그대로 잘 드러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심판의 날을 정하지 않으신 것도 아니요, 악인들의 불의를 보지 않으신 것도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다만 그런 일들이 우리의 눈에 감추어져 있을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 점에 있어 보에시우스의 말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악행은 그 것 자체가 이미 심판을 부르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영원히 참으시지는 않는 분입니다. 본문 1절... KJV...< 전능자는 그의 정하신 시기를 다 알고 계신데 그를 아는 자는 어찌하여 그의 정하신 시기들은 모르게 되어 있는가?>
이 말은 때가 되면 하나님은 불의한 자들을 심판하신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죄가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습니다. 어물정하게 넘어가는 경우는 절대로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시기의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공정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심판을 재촉하는 것들이 나옵니다. 어떤 것들입니까?
##### 1.권력자들의 횡포가 심판을 부릅니다
본문 2,3절...< 어떤 사람은 지계표를 옮기며 양떼를 빼앗아 기르며 고아의 나귀를 몰아가며 과부의 소를 볼모잡으며....>
권력자들의 횡포는 다른 사람들의 권리를 함부로 짓밟으면서 무자비하게 탈취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좀 가졌다고 해서, 좀 배웠다고 해서, 좀 좋은 자리에 있다고 해서 얼마나 횡포가 심합니까? --김현철비리
이런 일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 2.가난한 자들의 참상이 심판을 부릅니다
본문 5-8절...< 그들은 거친 땅의 들나귀 같아서....의복이 없어 벗은 몸으로 밤을 지내며 추위에 덮을 것이 없으며 산중 소나기에 젖으며 가리울 것이 없어 바위를 안고 있느니라>
가난한 자들의 참상은 비참합니다. 물론 어느 시대나 권력자들의 부패에서 가난한 자들이 생겨나기 마련입니다만은, 이 경우에 불가불 가진 자들의 치부를 범죄의 대상으로 끌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야고보 장로는 <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안한 삯이 소리 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고 야고보서 5장 4절에서 경고하고 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가진 자들의 횡포가 곧 가난한 자들에게는 견디기 힘든 비극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가진 자들이 자행하고 있는 죄악 때문에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쓰러져 죽어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가진 자들은 <내것 가지고 내 마음대로 하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합니다. 법적으로는 하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법 이전에 도덕이 있고, 윤리가 있으며, 보이지는 않아도 양심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많이 있다고 해서 가난한 자들을 멸시해서는 안됩니다.
##### 3.불법과 불의의 난무가 심판을 부릅니다
본문 12절...< 인구 많은 성 중에서 사람들이 신음하며 상한 자가 부르짖느니라.>
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불법과 불의가 판을 치고 있는 현상은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특히 요즈음 들어 도처에서 쉴사이 없이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범죄들은 우리를 더욱 경악케 만듭니다. 살인, 강도, 절도, 강간, 폭력, 테러, 방화, 마약, 도박, 모략, 자살, 등의 살벌한 범죄들이 신문의 사회면을 가득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불법과 불의가 난무하는 이런 사회악들이 심판을 부르고 있습니다.
--예날에 기찻길 주변의 개구장이들이 별 생각없이 던지는 돌멩이로 수많은 사람들이 머리가 깨지고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들은 기차가 지나갈 때 돌멩이를 던지지 말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무조건 돌멩이를 던지지 말라고 하면 근본적인 해결이 안됩니다. 돌멩이를 던지던 손으로, 이제는 손을 흔들며 사랑을 표현할 때 참으로 아름답고 기쁨이 넘치는 인사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믿고 그릇된 일 안하는 것만 잘해서는 안됩니다.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는 것이 더욱 필요합니다. 신앙의 결단은 안하는 것만 잘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해야 할 것을 더욱 온전하게 행해야 됩니다.
교우 여러분!!
악한 자들은 남의 땅에 지계표를 옮겨서 자신의 땅을 넓히고, 약자의 양을 빼앗아 가는 악행을 서슴치 않으며, 고아와 과부의 소유를 탈취하여 빈궁한 자 곧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죄악을 범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는 슬픔을 가진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만은 하나님은 그런 자들을 위로하시지도 않고, 불의를 보시고도 아무런 반응이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의 침묵을 지켜보기가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기다림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불꽃같은 눈으로 세상의 불의를 낱낱이 살피고 계시며 각 사람의 행한 대로 반드시 갚으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를 먼저 부르셔서 믿음을 갖게 하신 것은 이 악한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게하기 위함이라는 사명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소외된 곳에서 인간성을 회복하는 일, 신음하는 이들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일, 이런 모든 일들이 우리가 맡은 사명인줄 깨달아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이루어드리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욥 24:13-25
광명을 배반하는 사람들(13)
##### 1.잠시만 보존됩니다
22절...< 하나님이 그 권능으로 강한 자들을 보존시키시니...살기를 바라지 못할 자도 일어나는구나.>
하나님께서 악인도 보존시켜 주십니다. 진정 이것은 하나님께서 악인을 보존시키실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가 죽을 자리에 이를 때에 살려내기까지 하신다는 것입니다.
악인에게 몸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요, 의식주를 주신 분도 하나님이며 그에게 가족을 주시고 건강을 주시고 사업을 주시고 그 밖의 그의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신 분도 하나님입니다. 인간들이 이 땅에 살도록 만드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악인이 그처럼 하나님의 손에 의하여 보존되는 것은 잠시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 2.악인은 잠시만 평안하다는 사실입니다
23절...<하나님이 그들을 호위하사 평안케 하시나...>
하나님은 악인에게도 평안을 주십니다. 그리고 악인을 위하여 호위하십니다. 그러나 악인들은 자기의 길에만 눈을 팔고 있어서 이와 같은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께서 비유로 들여주신 어떤 부자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부자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운 잔치를 하였습니다. 요즘 시대에 비추어 보면 그는 대단한 재벌가로서 온갖 환락과 유흥에 도취되어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얼마나 갑니까?
##### 3.악인은 잠시만 높아진다는 사실입니다
본문에 보면 악인이 높아질 수도 있다는 점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24절을 보십시오. < 그들은 높아져도 잠시간에 없어지나니 낮아져서 범인처럼 제함을 당하고 곡식 이삭같이 베임을 입느니라.> 그랬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 잠시간에 없어지나니 낮아져서....이삭같이 베임을 입느니라.>는 말을 잊지 않고 덧붙여 주었습니다. 사실 여기서 잠시간에 없어진다고 한것은 앞서 악인의 보존과 악인의 평안을 결론짓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악인이 스스로 높아지는 일을 용인하는 분이기도 합니다. 헤롯 왕이 자기를 신처럼 높였던 것처럼, (행12:21) 폭군들이 자기 시대를 주름잡았던 일들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러나 그들의 높아짐 역시 잠깐의 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생무상이란 실로 이를 가리킨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인의 어떤 지위도 절대로 선망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악인이 많은 것을 가지고, 내가 많은 것을 잃었다고 생각될 때, 우리는 갈등하고 괴로워합니다. 그러나 잃는 그 순간 나에게는 발견하지 못했던 새롭고 많은 것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 생애 최고의 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2차대전 중 헤롤드 럿셀이라는 공수부대원이 전투에 나갔다가 포탄에 맞아 두 팔을 잃어 불구자가 됩니다. 그는 참혹한 좌절에 빠집니다. "나는 이제 쓸모 없는 하나의 고깃덩어리가 되었구나"
그런 가운데 그에게 차츰 진리의 마음이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잃은 것보다 가진 것이 더 많다고 자각하게 됩니다. 의사가 그에게 의수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것으로 글을 쓰고 타이프도 치기 시작합니다.
그의 이야기는 영화화되어 직접 불구자의 모습으로 출연하게 됩니다. 그는 정성을 다해 연기를 합니다. 그 해 그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주연상을 타게 됩니다. 그 상금은 상이용사를 위해 기부합니다. 어떤 기자가 찾아와 물었습니다.
< 당신의 신체적인 조건이 당신을 절망케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그는 결연히 대답합니다.
<아닙니다. 나의 육체적인 장애는 나에게 도리어 가장 큰 축복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잃어버린 것에만 계산할 것이 아니라 남아있는 것을 생각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남은 것을 사용할 때, 일흔 것의 10배를 보상받습니다. 우리가 잃은 것에만 눈을 돌릴 때 그곳에는 오직 절망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불가능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잃은 것을 넘어, 가진 것을 세어보면 더 많은 가능성이 언제나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옥련지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