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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윤의 실학으로 읽는 지금 56 - 한겨레:온
“어여쁜 계집이 나오며 홍부에게 절을 하니, 홍부 놀라 묻는 말이, ‘뉘라 하시오.’ ‘내가 비오.’ ‘비라 하니 무슨 비오.’ ‘양귀비요.’ ‘그리하면 어찌 왔소. ’강남 황제가 날더러 그대의 첩이 되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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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의 ‘참(站)’156
친구 따라 강남 간 이야기
“어여쁜 계집이 나오며 홍부에게 절을 하니, 홍부 놀라 묻는 말이, ‘뉘라 하시오.’ ‘내가 비오.’ ‘비라 하니 무슨 비오.’ ‘양귀비요.’ ‘그리하면 어찌 왔소. ’강남 황제가 날더러 그대의 첩이 되라 하시기에 왔으니 귀히 보소서”
경판본 《흥부전》에서 흥부 부부가 부러진 다리 고쳐준 강남 제비가 물어온 박을 타는 대목이다. 박 속에서는 금은보화만 나온 것이 아니었다. 저 양귀비 같은 절세미인이 나왔다. 홍부에게는 세속적 복이나, 홍부 처에게는 달가울 리 없는 일이었다. “애고 저 꼴을 뉘가 볼꼬 내 언제부터 켜지 말자 하였지.”라며 진저리를 친다. 돈벼락은 환영하지만 ‘첩 벼락’은 사양하고 싶었을 흥부 아내의 마음, 복도 지나치면 근심이 되는 법이다.
첫 번째 출발하는 중
서두가 길어진 까닭은 며칠 전 가평 칼봉산에서 겪은 아찔한 체험 때문이다. 나는 지독한 고공 공포증 환자다. 군 시절 유격훈련장에서도 사다리 하나 제대로 타지 못해 내 ‘올빼미 번호’가 유독 자주 불렸다. 복창 불량, 자세 불량으로 남들은 한 번 건널 코스를 세 번씩 가고 오며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그런 내가 짚[집]라인(Zip-line)이라니. 그것도 수십 미터 상공에서 줄 하나에 몸을 맡긴 채 계곡을 가로지르는 일이라니, 내게는 마치 형벌처럼 느껴졌다.
사실 나는 짚라인이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몰랐다. 더욱이 그것을 직접 타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내가 “네가 안 타면 우리도 안 탄다”는 벗들의 진심 어린 압박에 결국 장비를 착용했다. 속된 말로 ‘친구 따라 강남 간’ 셈이다.
칼봉산 짚라인은 여섯 구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구간에서 발을 떼는 순간 심장이 급격히 요동쳤다. 시속 80킬로미터에 가까운 속도로 허공을 가르는 동안 공포는 극에 달했다. 간신히 도착한 뒤에는 100미터 높이의 출렁다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붉은 옷을 입은 여성 조교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갈수록 좋아진다”고 격려했지만, 유감스럽게도 내게만큼은 효험 없는 위로였다. 구간이 끝날수록 다리는 더 후들거리고 손바닥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나머지 4코스를 어떻게 탔는지 모른다.
저녁까지도 긴장이 가시지 않아 칼봉산 짚라인을 검색해 보았다. 그런데 놀라운 장면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린아이들이 자기 몸집만 한 헬멧을 쓰고는 거침없이 허공으로 몸을 던지고 있었다. 공포를 모르는 용기일까? 아니면 “다들 하는데 너만 안 할 수 없다”는 분위기에 떠밀린 결과일까? 아이들이 겁도 없이 몸을 던지는 모습이 대견하기보다 어쩐지 낯설게 느껴졌다.
앞에서 4번째 필자
그 순간 문득, 뉴스에서 본 ‘강남식 조기교육’의 풍경이 겹쳐보였다. 이른바 자식들 주위를 맴도는 ‘헬리콥터맘’들은 말한다. “친구들도 다 하는데 너만 안 하면 뒤쳐진다”고. 영어 유치원부터 선행학습, 학원 뺑뺑이와 스펙 경쟁까지. 강남에 유독 소아정신건강의학과가 많은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아이들은 두려움이 무엇인지 충분히 느껴보기도 전에 속도 경쟁의 레일 위에 올라선다. 마치 짚라인 출발대에 묶인 채 허공으로 떠밀려가는 모양새다. 아직 무엇이 두려운지도 배우기 전에, 경쟁의 줄 하나에 몸을 맡긴 채.
물론 교육은 필요하다. 문제는 방향과 속도다. 부모는 아이가 넘어질까 두려워하면서도, 정작 경쟁이라는 절벽에서는 누구보다 먼저 뛰어내리기를 강요한다. “남들도 다 한다.” 교육열을 정당화할 때 흔히 소환되는 말이다. 그러나 동시에 가장 위험한 강박이기도 하다. “시앗을 보면 돌부처도 돌아앉는다”고 했듯, 뜻밖의 복도 지나치면 집안을 흔드는 화근이 되곤 한다. 흥부 처 말대로 “내 언제부터 박을 켜지 말자 하였지”라는 탄식을 새겨들었어야 했다. 양귀비가 튀어나와 평온한 집안을 뒤흔들듯, 과잉된 교육열 역시 아이의 영혼을 잠식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럼에도 짚라인 체험이 전적으로 나쁜 기억만은 아니었다. 마지막 구간을 마치고 단단한 땅을 밟았을 때, 나는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공포를 극복했다는 성취감보다는 벗들과 함께 그 황당한 시간을 견뎌냈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혼자였다면 절대 하지 못했을 일을 함께했기에 끝낼 수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니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에도 두 얼굴이 있다. 남의 욕망에 떠밀려 가는 강남은 비극이다. 그러나 좋은 벗들과 웃으며 다녀오는 강남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삶이라는 험난한 유격장에서 우리를 버티게 하는 것은 결국 곁의 사람들이다. 유격장의 사다리 위에서도, 칼봉산 짚라인 위에서도, 나는 혼자가 아니었기에 끝내 내려올 수 있었다.
분명 강남 8학군식 경쟁에 떠밀려 가는 ‘강남’은 결코 가선 안 될 곳이다. 그러나 좋은 벗들과 함께 웃으며 다녀오는 ‘강남’이라면 한 번쯤 가볼 만하다. 박 속에서 양귀비가 나오든 도깨비가 나오든, 그 소란을 함께 견딜 친구들이 있다면 말이다. 벗들 덕분에, 참 요란한 강남 구경 한 번 하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