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몽대(仙夢臺)는 예천군 호명면 백송리에 있으며, 우암(遇巖) 이열도(李閱道, 1538-1591)가 그의 나이 26세 때인 1563년에 건립한 것이다 이열도는 퇴계 이황의 종손자로 선몽대 건립 후에 퇴계가 직접 편액을 써 줄 정도로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 이열도는 유년시절부터 퇴계의 조카인 원암(遠巖) 이교(李㝯)와 퇴계의 손자인 이종도(李宗道), 그리고 송암(松巖) 권호문(權好文) 등과 함께 퇴계의 문하에서 溪上書堂에서 학문을 익혔다. 이열도의 부친 이굉(李宏, 1515-1573)이 생전에 이 곳의 경치를 감상하면서 정자를 짓고자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고, 이후 이열도가 1563년에 선몽대를 건립하였다.
小亭高架鏡中虛 遠浦長天望豁如
높이 세운 작은 정자는 강물 속에 어리고 먼 포구와 드넓은 하늘은 탁 트인 듯하네
孤鶩落霞呈百態 晩風飛雨又疎疎
외론 따오기 저녁노을 온갖 자태 빚어내고 저녁 바람 날리는 비가 더욱 성글어졌네
이열도는 이후 한동안 처사적 삶을 살다가 13년 뒤인 1576년에 대과 별시에 응시하여 丙科 제 1인으로 급제하였고, 이후 승문원 부정자(副正字)에 보임되었다가 1581년 박사로 천직되었으며, 1582년 사헌부감찰에 제수되었다가 다시 예조정랑으로 옮겼고, 1583년 은계찰방에 제수되기도 했다. 이후 1587년 형조정랑,1590년 경산현령에 부임하여 교화에 힘썼는데, 마침 학봉 김성일이 일본에 통신사로 가면서 3월 늦봄 경산을 들러, 안동과 예안의 벗들이 전별을 기렸다.
章山館裏一樽酒 啼鳥數聲驚送春
경산의 객관에서 한 동이 술을 마시다가 몇 마리 새 소리에 봄이 감을 놀라네
唱盡驪駒天欲暮 滄波萬里獨歸人
이별가 부르고 나자 해가 저물려 하는데 푸른 바다 만 리 길을 나 홀로 가는구나
이에 달성군수였던 초간 권문해(1534-1591)는 아래와 같이 시를 지어 전별하였다.
乳燕鳴鳩霽景新 離亭日晩惜殘春
어미 제비 우는 비둘기 비 갠 경치 새롭고 해 저무는 정자에서 가는 봄을 아쉬워하네
秋來會合應非遠 莫歎今分去住人
가을이 되면 만날 날이 응당 멀지 않으리니 오늘 그대와 우리가 이별함을 탄식하지 마시게
하지만, 이 전별회는 세 사람의 생애 마지막 해후였고, 이열도와 건문해는 1591년 죽었고, 김성일 역시 1593년 임진왜란 중 죽었다.
이열도는 경산현령 재임시에 하루는 경상도관찰사가 만나기를 요구하 여 가보니 책 제목을 붙여 달라고 함에 큰 소리로 말하기를, "말씀하실 것은 오직 공적인 일이어야 하거늘 어찌 부질없이 책 제목 붙이는 것 으로써 번거롭게 하십니까? "라고 하고서는 곧장 벼슬을 버리고 선몽대로 돌아와 학문을 연마하고 후학들을 양성하다가 1591년 8월에 향년 54세로 병사하였다.
선몽대에는 10개의 현판이 있는데, 선몽대 편액은 퇴계 이황의 글씨이고, '仙'자가 약간 위로 치우져 있다. 나머지는 모두 한시를 적은 것인데, 건립 이후 끊임없이 시인묵객이 이 곳을 들러 퇴계의 시에 차운하여 시를 남겼다.
寄題仙夢臺
松老高臺揷翠虛 白沙靑壁畵難如
노송 아래 높은 대는 허공에 꽂혀 있고 흰 모래 푸른 절벽 그려내기 어렵구나
吾今夜夜凭仙夢 莫恨前時趁賞疎
나는 요즘 밤마다 선몽대에 기대는 꿈을 꾸니 접때 가서 못 본 것을 한탄하지 않으리라
이열도의 사위인 頤齋 曺友仁의 선몽대기(仙夢臺記)에서 선몽대 주변의 자연과 승경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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郡南十里許。有水從太白來。源委數百里。演漾平鋪。徹底淸瀉。由水南涯。有石陡起可十餘丈。上有層臺。外舅氏所築。而增飾之者爲臺。遼廓爽豁。高出半空。直矚東北。峽勢束立。水穿峽中出。洄洑臺下。渟爲深潭。自潭而西。水勢益闊。涵泳星月。浩渺瀰漫。登而望之。令人有遺世出塵之想。臺舊無號。退溪子手寫仙b012_295c夢臺三字。寄爲臺扁。仍成一絶。以敍平日夢想之意。摸寫勝槩。瞭然若所嘗目擊者。何其異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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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의 관아 남쪽 10리 즈음에 태백산에서부터 수백 리를 이어와 잔잔히 퍼져 밑바닥까지 맑은 강이 있다 강의 남쪽 기슭에 십여 장 됨직한 암석이 불쑥 솟아 있고 . 그 위에 층대가 있으니 장인께서 쌓고 꾸민 것이다 대의 모습은 넓고 시원하여 높다랗게 반공에 솟아 곧바로 동북쪽을 바라보고 있다 골짜기가 솟아 있고 강이 그 골짜기 사이를 뚫고 나와 대 아래를 휘감아 돌아 깊은 못을 만들었다 못으로부터 서쪽 하류로는 강폭이 더욱 넓어져서 별빛과 달빛을 머금은 채 아득히 넘실대니, 올라서 바라보면 세상을 멀리 벗어나 선경에 있는 듯하다 이 대는 본래 이름이 없었다 그런데 퇴계선생이 손수 선몽대 세 글자를 써서 대의 편액으로 걸도록 보내 오셨다 그리고 절구 한 수를 지어 평소 꿈꾸고 상상하신 뜻을 서술하여 승경의 경개를 묘사하였는데 마치 또렷이 직접 눈으로 보신 듯하였으니 어찌 그리도 기이한가?
이후, 1623년 수해로 피해를 입어 1671년 이열도의 현손 이지(李址)가 중건하였다. 1923, 1967년에도 중수가 이어졌다.
1780년 다산 정약용은 19세의 나이로 당시 예천군수였던 부친 정재원과 함께 선몽대를 들렀다. 이 때 마침 선몽대의 주인이, 이열도와 함께 시를 읊었던 정약용의 7대조 정호선의 절구 2수를 보여줬다고 하는데,
一水瑤臺寶鑑虛 主人襟抱淡相如
누대 앞의 물줄기는 맑은 거울 텅 비었고 주인의 마음은 담박하기가 이와 같다네
登臨兩日同仙夢 千尺紅塵念已疏
이틀 동안 대에 올라 신선처럼 노니니 세상의 온갖 잡념이 이미 사라졌네
이 때의 이야기를 선몽대기(仙夢臺記)로 남겼다.
醴泉之東十餘里。得一川焉。泓渟而演漾。紆餘而邐迆。深者深靑。淺者淨綠。
예천(醴泉)에서 동쪽으로 10여 리(里) 되는 곳에 가면 한 냇가에 닿는다. 그 시내는 넘실대며 구불구불 이어져 흐르는데, 깊은 곳은 매우 푸르고 낮은 곳은 맑은 파란색이었다.
川邊皆明沙白石。風煙妍媚。照映人目。
시냇가는 모두 깨끗한 모래와 흰 돌로 되어 있었으며, 바람에 흩어지는 노을의 아름다운 모습이 사람의 눈에 비쳐 들어온다.
沿流至數里。有峭壁削立。緣厓而上。得一榭焉。牓之曰仙夢之臺。
시냇물을 따라 몇 리쯤 되는 곳에 이르면, 높은 절벽이 깎아세운 듯이 서 있는데, 다시 그 벼랑을 따라 올라가면 한 정자를 볼 수 있으며 그 정자에는 ‘선몽대(仙夢臺)’라는 방(榜)이 붙어 있다.
臺左右皆茂林脩竹。溪光石色。隱約蔽虧。洵異境也。
선몽대의 좌우에는 우거진 수풀과 긴 대나무가 있는데, 시냇물에 비치는 햇빛과 돌의 색이 숲 그늘에 가리어 보일락 말락 하니, 참으로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蓋自太白山而南。溪山之勝。唯奈城榮川醴泉爲最。而仙夢特以奇瓌名數郡。
대개 태백산(太白山) 남쪽에서 시내와 산의 경치가 뛰어난 곳은 오로지 내성(柰城)ㆍ영천(榮川)ㆍ예천(醴泉)이 최고인데, 선몽대는 유독 그 기괴한 모양 때문에 여러 군에 이름이 났다.
一日從家大人行。旣祗謁于藥圃鄭相國之遺像。轉而至是臺。
하루는 아버지를 따라 약포(藥圃) 정 상국(鄭相國 명종(明宗) 때의 문신인 정탁(鄭琢))의 유상(遺像)을 배알(拜謁)하고, 길을 바꾸어 이 누대에 올랐다.
徘徊瞻眺。旣而見壁上諸詩。其一卽吾祖觀察公所嘗題也。
배회(徘徊)하며 바라보다가 이윽고 벽 위에 여러 시가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중의 하나는 관찰사(觀察使)를 지내신 나의 선대 할아버지께서 일찍이 지으신 것이었다.
板壞宇裂。偏旁或觖。而字句無闕。家君手拂塵煤。令余讀之。
시판(詩板)이 깨어져 글자는 갈라지고 한쪽 구석이 떨어져 나가기도 했으나, 자구(字句)는 빠진 것이 없었다. 아버지께서 손으로 먼지를 털어내고 나에게 읽으라 하고서 말씀하시기를,
曰公嘗奉使嶺南。登此臺矣。公之距今且二百有餘年。吾與若又登臨爲樂。豈不奇哉。
“공(公)이 일찍이 영남(嶺南)에 관찰사로 내려왔을 때 이 누대에 오르신 것이다. 공이 지금부터 2백여 년 전에 사셨던 분인데 나와 네가 또 이 누대에 올라와서 즐기니, 어찌 기이한 일이 아니겠느냐.”
하셨다.
命余移摸。付工翻刻。易其繪采而懸之。旣而召余而記之。
그리고는 나에게 명하여 그 시판의 시를 옮겨 본떠서 공장(工匠)에게 번각(翻刻)하고 다시 단청(丹靑)을 입혀 걸어놓게 하시고, 이윽고 나를 불러 기(記)를 쓰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 때의 감회를 시로 표현하였다.
陪家君登仙夢臺
中天樓閣枕高丘 杯酒登臨散客愁
높은 산언덕에 기대어 허공에 솟은 누각 술병 들고 올라보니 객의 시름 사라지네
山雨著花紅滴瀝 溪風入檜碧颼飅
산중 비가 붉은 꽃에 닿아 뚝뚝 떨어지고 냇가 바람이 푸른 소나무로 솔솔 불어오네
使臣冠蓋悲陳跡 丞相衣巾憶舊游
왕명을 띤 행차에 예전 자취가 서글프고 감사로서의 의관에 예전 유람이 생각나네
丹竈無煙仙夢冷 水雲今古自悠悠
단약 화로엔 연기 없어 신선의 꿈 싸늘한데 강물과 구름은 예나 지금이나 절로 한가롭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