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회고록 5막29장 (1부)
1986년.
29세.
올해 9월달에는 고대하던 86아시안 게임이 개최되였다.
중국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번째로 많은 메달을 획득한 아시안게임은 모든이들에게 한국인의 자부심을 갖게한 뜻깊은 행사였다.
전두환 정권 초창기 그렇게 메아리 친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 올림픽"중 한개가 실현된 것이다.
잠실 메인스타디움의 환호소리가 우렁차게 울리고 88서울 올림픽의 마스코트인 호돌이의 등장은 전세계인의 주목을 받게 되였다.
86아시안게임을 치루며 서울은 세계가 지목하는 도시로 각인되였고, 전두환의 위상을 드높인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전국은 86아시안게임과는 상반된 시국으로 전개되였다.
재야인사들과 야당지도자.교수,종교인들이 모두 시국선언을 하며 내년에 있을 대통령선거를 직선제로치루길 발표하였다.
이에 동조하는 대학생들의 데모가 수시로 발생하였고 대학가는 매일 맵고 쾌쾌한 최류탄냄새를 맡으며 살아야 하였다.
만약 86아시안 게임이 아니였으면 어떤 시국이 전개될지 어느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바람잘날 없는 매일 매일이 지속되고 서울은 데모와 공권력의 탄압으로 혼탁한 하루하루가 이어지고 있었다.
내 생애 가장 혼란한 86~87년 민주화문결이 이어지기 시작했으니 전국은 한치도 앞을 바라볼수 없는 정쟁의 파국으로 가고 있었다.
86~87년 민주화 물결.
그때의 희생과 수많은 대학생과 시민들의 집결로 노태우의 6.29선언으로 드디어 우리나라에서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되여 민주국가의 초석을 다지게 되였다.
우리 아들은 그때 태어났고 최루탄 냄새를 맡으며 유아시절을 보내야 하였다.
우리나라는 지금 생각하여도 인도의 간디나 영국의처질, 미국의 링컨 대통령처럼 세계적인 인물은 고사하고 군인이 대통령으로 군림하는 미개한 아프리카의 국가처럼 전세계가 민주국가의 후진국으로 손가락질 당하는 시기였다.
대통령을 자기 손으로 뽑지 못하기 애초부터 민주국가라 칭하기가 부끄러운 것이었다.
우린 그곳에 갇혀 오도가도 못한채 자식을 낳고 군부의 통치아래 묵묵히 살아가야 하였다.
역사는 전두환의 백담사 참회와 사형선고를 받고
김영삼대통령의 괴이한 사면복권으로 생을 유지하다 사망하였으나.
추후 역사가들은 전두환과 노태우를 이조시대의 연산군에 버금가는 백성을 몰살시킨 수괴로 기록될것이다.
그들은 수백명의 생명을 빼앗고 반대세력을 가혹한 공권력을 남용하여 교사한 잔혹한 군인들이었으니까.
우리는 그들밑에서 살아야 하였고 군인들한테 굴복하는 법을 자신도 모르게 배우게 되였다.
그밑에 갓태어난 우리 아들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