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죽기를 기다리랴
본 문 : 열왕기하 7:3-10
일 자 : 2024. 7. 21(주일 낮 예배)
오늘 말씀에 나오는 이스라엘과 아람과의 전쟁은 기원전 845년에 일어났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왕, 여호람은 나라가 항상 안전하고 평화로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람 군대가 막강한 전력으로 쳐 들어 옵니다..
이스라엘은 싸울 군사도 없으니까 그저 성문만 굳게 닫아 걸었습니다.
그러자 아람 군대는 성을 포위하고 성안에 양식이 떨어지기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마침내 성안의 양식이 떨어지고 백성들은 굶어 죽어 가기 시작합니다.
열왕기하 6장을 보면, 사람들이 배가 너무 고프니까 ‘오늘은 네 아들을 먹고,
내일은 내 아들을 먹자’ 하며 자기 아들을 삶아 먹는 어머니까지 생겨났습니다.
왕이 그 모습을 보면서 옷을 찢으며 한탄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 누가 누구를 돕겠습니까?
성 밖으로 나가자니 아람 군대에 죽고, 성 안에서 있자니 굶어 죽고
이래 저래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절대 절명의 위기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을 베푸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람 군사들의 귀에 수많은 말들이 달리는 소리, 병거들이 몰려오는 소리,
군인들의 함성이 들리게 하신 것입니다.
그 소리를 듣고, 아람 군사들은 “이스라엘 왕이 이웃나라, 애굽왕에게 많은 돈을 주고 용병을 데리고 왔구나!”생각하고 모두가 정신없이 도망갔습니다.
말, 나귀, 군량미, 옷, 지어놓은 저녁밥까지 그대로 두고, 대장부터 보초병까지 다 도망을 갔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일은 아람군사들이 다 도망하고 그 진영에는 먹을 것이 가득한데도
이스라엘 사마리아 성안에서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여전히 백성들이 굶어 죽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도 그렇습니다.
아람 진영에 가면 군량미와 모든 것이 가득하여 배불리 먹고 마실 수 있는데,
성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굶어 죽어간 것처럼,
예수님만 믿으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 백성이 되고 죄사함을 받고
영생복락을 누리게 되는데, 그것을 알지 못하고 어제도 오늘도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죽을 수 밖에 없을 때.
하나님께서는 네 명의 나병환자들을 사용하셔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십니다.
당시 나병환자들은 성문 어귀로 쫓겨나서 사람들이 던져 주는 양식을 받아 먹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성 안에도 양식이 없어 굶어 죽어 가고 있으니 그마저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말합니다. 오늘 말씀 3-4절입니다.
“성문 어귀에 나병환자 네 사람이 있더니 그 친구에게 서로 말하되
우리가 어찌하여 여기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랴
만일 우리가 성읍으로 가자고 말한다면 성읍에는 굶주림이 있으니 우리가 거기서 죽을 것이요 만일 우리가 여기서 머무르면 역시 우리가 죽을 것이라 그런즉 우리가 가서 아람 군대에게 항복하자 그들이 우리를 살려두면 살 것이요 우리를 죽이며 죽을 것이라 하고” 아멘
“어찌 죽기를 기다리랴? 차라리 아람 진영에 가보자,
그들이 우리를 불쌍히 여겨 먹을 것을 주면 살고, 죽이면 까짓것 죽자”
그래서 며칠 굶은 그들이 비틀거리며 사느냐 죽느냐 하며 아람 진영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그들이 아람 진영에 가보니 모든 군사들이 다 도망가고 아무도 없는데.
군량미가 그대로 쌓여 있고, 부식도 있고, 온갖 좋은 것이 놓여 있습니다.
오늘 말씀 5-7절입니다.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아람 진으로 가려 하여 해 질 무렵에 일어나 아람 진영 끝에 이르러서 본즉 그곳에 한 사람도 없으니 이는 주께서 아람 군대로 결거 소리와 말 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셨으므로 아람 사람이 서로 말하기를 이스라엘 왕이 우리를 치려 하여 헷 사람의 왕들과 애굽 왕들에게 값을 주고 그들을 우리에게 오게 하였다 하고 해질 무렵에 일어나서 두망하되 그 장막과 말고 나귀를 버리고 진영을 그대로 두고 목숨을 위하여 도망하였음이라” 아멘
그래서 그들은 거기서 배불리 먹은 다음에,
장막마다 다니며 좋은 것들을 감추고, 또 감춥니다.
“8절을 보십시오”
“그 나병 환자들이 진영 끝에 이르자 한 장막에 들어가서 먹고 마시고, 거기서 은과 금과 의복을 가지고 가서 감추고, 다시 와서 다른 장막에 들어가 거기서도 가시고 가서 감추니라”
그러다가 그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9절입니다. 함께 봉독합니다.
“나병환자들이 그 친구에게 서로 말하되 우리가 이렇게 해서는 아니되겠도다
오늘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거늘 우리가 침묵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알리자 하고”
지금 우리 백성들은 굶어 죽어 가고 있는데, 우리가 배부르다고 이 소식을 전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벌을 주실 것이다. 일어나 가서 이 기쁜 이 소식을 전하자 ”
그리고 그들은 왕궁에 가서 이 기쁜 소식, 아름다운 소식을 전합니다.
10절을 보십시오
“가서 성읍 문지기를 불러 그들에게 말하되 우리가 아람 진에 이르러서 보니 거기에 한 사람도 없고 사람의 소리도 없고 오직 말과 나귀만 매여 있고 장막들이 그대로 있더이다 하는지라”
이 소식을 들은 성안의 백성들이 다 아람 진영에 들어가서
네 명의 나병환자들처럼 먹고 마시고 다 살아납니다
그리고 아람 진영에 장막에 남아 있는 좋은 것들을 다 가지고 옵니다.
우리는 오늘 이 말씀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첫째, 여호람왕과 신하들과 백성들,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전쟁이
갑자기 일어난 것처럼, 우리에게도 예측하지 못한 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전도서9장 12절을 보면 “대저 사람은 자기의 시기를 알지 못하나니”했습니다.
자기의 시기, 갑자기 오는 사건을 알 수 없습니다.
사람은 아무도 내일을 모릅니다.
그래서 잠언 27:1에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했습니다.
우리가 계획을 세우지만 우리 계획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2장에 이런 비유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 부자가 농사가 너무 잘 되니 큰 창고를 짓고 거기에 곡식을 보관하기로 계획을 세웁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내 영혼아 여러 해 먹을 양식이 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기자”
그 때 하나님께서 그 부자에게 뭐라고 하십니까?
“이 어리석은 부자야 오늘 밤 너의 영혼을 내가 부르리니
그러면 네가 쌓아 둔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사람은 내일 일을 모릅니다.
어찌 죽기를 기다릴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오늘 살 길을 준비해야 합니다.
시간 나면 하지 내일도 있고, 내년도 있고, 아닙니다. 오늘, 지금 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일 내년 미루다가 기회를 잃고 죽어 갔는데,
우리들까지 어떻게 죽기를 기다릴 수 있겠습니까? “어찌 죽기를 기다리랴?”
우리 모두 미루지 않고, 오늘 예수님을 믿고, 영원히 누리는 영생을 받고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하여,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교훈은 사방에 길이 없어도 하나님께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사노라면 캄캄한 일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아람 군대에 포위당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도 “아 ! 이제는 길이 없구나 !” 할 때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가 길이다(I am the way)"
the way 그 길이다.
예수님이 그 살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 인생의 길이 되십니다.
우리 예수님은 영생의 길입니다. 천국 가는 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찬송가 543장 가사처럼
♬어려운일 당할 때 나의 믿음 적으나 의지하는 내 주를 더욱 의지합니다”♬
더욱 예수님을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아 33장 2-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어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내가 알지 못하는 은밀한 일을 보이리라“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하십니다. 영적으로 은밀한 것까지 보여 주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일하면 우리가 일하지만,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따라하시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일하면 우리가 일하지만,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신다”
그렇습니다.
마가복음 4장을 보면 배를 타고 가던 제자들이 풍랑을 만났을 때
배에서 주무시던 예수님을 깨우면서 부르짖습니다.
“주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않으십니까?”
그때 예수님이 말씀으로 일하십니다.
“잠잠하라 고요하라”
그러자 그 즉시 거친 풍랑이 잔잔해졌습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두 가지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는 아무리 풍랑이 높아도 예수님을 모신 배는 침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풍랑이 일 때, 예수님을 의지하고 기도해서
예수님이 돌아보셔야 산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사방에서 일어나는 높은 풍랑에 직면해 있습니다.
어려운 일 당하고 있습니다.
“어려운일 당할 때 나의 믿음 적으나 의지하는 내 주를 더욱 의지합니다”
지금이 예수님을 의지할 때입니다.
주님께서 돌아보시자 제자들이 구원받았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나라, 우리 민족을 돌아 보시기를 소원합니다.
그리고 우리 가정도, 우리의 건강도, 우리의 가족도 돌아보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네 명의 나병 환자가 무슨 말을 했습니까?
“오늘은 좋은 소식이 있는 날인데, 우리가 잠잠하고 있으니 좋지 않도다 밝은 아침까지 이렇게 있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벌을 주실 것이다”
고린도전서 9:16을 보면 바울도 같은 고백을 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다”
살인하지 않고 도적질 하지 않고, 간음하지 않았다고 해서 성도의 할 일을 다 한 것이 아닙니다. 성도는 좋은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어느 수도원 원장이 신참 수도사에게 갑자기 설교를 시켰답니다.
당황한 수도사가 앞으로 나와서 “여러분 ! 오늘 제가 무슨 설교를 할지 아십니까?”했습니다.
그랬더니 모두 “모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수도사가 “저도 모릅니다”하고 내려왔습니다.
원장이 화를 내며 앞으로 이틀 계속 설교를 하라고 했습니다.
다음날 그 수도사가 앞으로 나와 또 “여러분 제가 무슨 설교를 할지 아십니까?”하니
그날은 모두 “예”하고 대답을 하자 “모두 안다는데 제가 설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하고 내려 왔습니다.
셋째날 그가 또 앞으로 나와서 “여러분 ! 제가 무슨 설교를 할지 아십니까?”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반은 “압니다”했고, 반은 “모릅니다”했습니다.
그러자 그가 “그러면 아는 사람이 모른 사람에게 전해 주십시오”하고 내려왔습니다.
그 때 원장이 앞으로 나오더니 “우리 수도원 역사상 오늘 설교가 가장 훌륭한 설교”라고 칭찬을 했답니다. 그리고 그 말이 그 수도원의 표어가 되었다고 합니다.
따라합시다
“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에게 알려주자”
여러분 ! 우리가 아는 것을 모르는 사람에게 알려 주는 것이 전도입니다.
우리가 아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만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아람 진영에는 먹을 것이 풍부한데, 성안 사람들은 그것을 몰라서 굶어 죽어갔습니다.
그러다가 그것을 아는 네 명의 나환자들이 그것을 모르는 성안 사람들에게 알려주어서
성안 사람들이 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코카콜라는 세계인이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코카골라 광고는 전 세계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기자가 회사 광고부장에게 그렇게 계속해서 광고할 필요가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 코카골라 광고부장이 한 말입니다.
“코카콜라를 아는 사람은 죽고 모르는 아이들이 자꾸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은 예수님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예수님에 대하여 아는 것을 계속 전해야 합니다.
그것이 사도바울이 고백한 대로 우리가 부득불 해야 할 일입니다.
네 명의 나환자가 성안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살렸습니다.
우리도 우리 이웃을, 이 나라를 이 민족을 살릴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돌아보시면 됩니다.
“어찌 죽기를 기다리랴 ? ”
우리 모두 예수님께서 돌아보시고 살리시도록 제자들처럼 부르짖어
직면한 삶의 모든 풍랑도 잔잔해지고
우리도 살고, 많은 사람들도 살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을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