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성제四聖諦--정토원 동영상 법문
苦集滅道
인간의 존재 법칙
보편적인 신행원리
원효의 사상을 공부하기 전에 왜 일심사상을 공부해야 되는가?
일심사상은 불교의 정수 불교의 궁극이기 때문에 초기 불교부터 정리를 해서 배우려고 합니다. 그에 대한 일환으로 먼저 부처님의 생애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부처님의 생애를 책으로 펴낸다면 천 페이지, 이천 페이지도 넘겠지만 이제는 시대가 아주 긴박하게 돌아가고 또 핵심으로 공부를 해야 합니다.
일전에도 제가 BBS 불교방송에서 부처님의 생애에 대해서 말씀드렸듯이
왜~ 태어나셨는지 인류에게 불교를 가르치는 목적은 무엇이며 사상은 무엇인지 정도는 알아
야 합니다. 불교에서 법이라는 말을 가장 많이 사용합니다.
여러 가지 뜻이 있지만 크게 두 가지로 나누면 하나는 정신적. 물리적 존재 를 말합니다.
정신적인 것은 현실적으로 작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대표적으로 생각과 상상 그리고 꺼내 보일 수는 없지만 일어나는 번뇌. 끓어오르는 불길 등을 말합니다.
두 번째는 우리 인간으로부터 어떤 규칙을 만들어 내는 근거 가 됩니다.
연필의 질은 좋은 것이다, 나쁜 것이라고 할 때 연필이 있어야 합니다. 좋고.나쁘다고 제공하는 근거가 있어야 되는 것이죠.
모든 존재의 법칙, 법칙이 있기 위해서는 존재가 우선합니다. 법칙을 생산해 내는 법칙도 법이라고 하고 법칙을 생산해 내는 근거도 법이라고 합니다
즉 하나는 모든 존재 정신적 물리적 존재를 법이라고 하고
다른 하나는 존재들을 만들어 내는 법칙을 법이라고 합니다.
법칙에 대해서는 분명히 숙지 하셔야 합니다.
우리가 인식하든 하지 못하든 존재와 법칙은 가득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존재와 법칙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 끝에서 말씀하신 일심사상을 배우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알아야 하는데 그 첫 번째 가르침이 사성제입니다.
사성제가 고집멸도인 것은 다 압니다.
30여 년 동안 불교를 공부하면서 마지막으로 정리를 합니다.
고집멸도만 불교라고 우기는 사람
팔정도만 불교라고 우기는 사람
위빠사나만 불교라고 우기는 사람
참선만 불교라고 우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통일되어야 할 것이 다양한 것은 발전을 저해합니다.
자기 것만이 전부라고 하는 사람들에게서 불교의 발전을 기대하기는 힘듭니다.
각 하나를 통해서 저 높고 깊은 곳을 향하는 길을 만들어 줘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고집멸도를 설하신 이유를 제가 아주 특별하게 설명을 하겠습니다.
제일 처음 고집멸도를 설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려고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고집멸도를 설하셨습니다.
그래서 아주 쉬운 가르침이 되어야 합니다.
종교도 없는 사람, 스승도 없는 사람들을 모아 놓고 인생은 고집멸도라고 가르치신 겁니다.
누구든지 고집멸도라는 여기에 존재해 있다고 설하십니다.
그것이 곧 인간의 존재 법칙입니다.
*苦: 사람은 괴롭다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다양한 괴로움이 존재합니다.
지구상의 인구수 만큼이나~~ 100명 정도이면 8~90명 정도는 괴롭다고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괴롭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이 또 불교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10명 중에 단 한 명만이 괴롭다고 하면 불교의 존재 가치는 떨어집니다.
최소한 과반 수는 불교의 가르침을 수긍을 할 때 생명이 이어갑니다.
이어가게 하는 그 첫 번째가 괴로움입니다.
그다음에 괴로움에는 원인이 있다고 했습니다. 50명이 모여 있으면 괴로움의 원인은 50가지 그것도 지금의 괴로움을 말합니다.
지나간 것 앞으로 다가올 것은 이야기 안 합니다.
윤회를 할까 하지 않을까에 대한 걱정 때문에 괴로움은 사람은 없고
오직 지금의 괴로움입니다.
*集.
*滅: 괴로움을 없애야 하죠.
괴로운 이유는 돈이 없어서 괴롭습니다.
돈이 없어서 괴로운 원인이 무엇이었나를 찾아서 원인을 없애야 합니다.
*道: 괴로움의 원인은 그냥 없어지는 게 아니고 道를 닦아야 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괴로움의 원인을 찾아서 道를 닦지 않으면 괴로움은 계속 유지가 되고
道를 닦아서 괴로움의 원인을 없애면 열반, 안락하다는 말입니다.
곧 인간의 존재 법칙입니다.
예외 없이 이 세상 사람들은 인간의 존재 법칙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괴로움이 많은지, 集이 많은지, 滅을 많이 했는지 道를 깊게 닦았는지에 대한 이치입니다.
苦集滅道가 뜻이 깊은데 글자 풀이로 한번 설명하겠습니다.
苦:옛날 사람들은 무엇을 가장 괴로워했을까요?
몇천 년 전에 창힐이 글자를 만들어서 후세로 오면서 물론 글자는 변형이 되지만 최초 괴로움에 대한 苦는 현실적으로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옛날 사람들은 가난한 것을 가장 괴롭게 생각했습니다. 가난하면 좋은 집은 물론이고 못 먹고 못 입고 苦자의 위의 艹자는 풀草자입니다.
아래는 옛고-古입니다, 옛날에도 부자는 기와집에 삽니다. 가난한 사람은 초가집에 삽니다.
초막으로 지은 옛집입니다.
새마을 사업을 하면서 양철지붕과 슬레이트지붕으로 바꿨습니다. 그때의 사업이 대대적으로 일어나지 않았다면 지금도 초가집을 연상케 하는 남루함이 있겠죠.
가난이 제일 서러운데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集:集자는 나무木위에 새隹가 나뭇가지를 차곡차곡 쌓아 놓은 형상입니다. 이 글자는 새집을 뜻하는데 모을집자입니다. 괴로움이 생기는 이유 중의 하나가 행위마다 생각마다 무엇이 하나 붙어 다닙니다. 누구에게나 붙어 다니는 이것을 꽉 아악~ 짜서 봤더니 초기 불교에서는 渴愛라고 합니다. 갈애는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이 무엇을 구하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항상 구하는것이 있습니다.
국회의원 출마하는 사람도~ 돈을 벌고자 작은 가게를 오픈하는 사람도, 버리고 산속으로 들어가는 사람조차도~ 구하는 이것이 있습니다.
산속으로 들어가는 사람도 자연이 되고자 들어가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서 들어갑니다.
갈애라는 대목에서 부처님께서 불교를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 말씀하셨으니 어렵지 않고 쉬워야 합니다. 지금처럼 설명해 드리면 쉽습니다. 더 깊은 것을 설명해주는 것은 곤란합니다.
갈애는 저 아래 단계입니다, 갈애보다 조금 깊이 들어가는 것이 무명입니다.
무명보다가 더 구체적인 것은 경계에 어리석은것입니다. 초기불교에서는 괴로움의 원인을 갈애라고 했는데 대승블교의 끝에 와서는 무명도 무아도 연기도 아니고 아주 차원이 높은 것을 가르칩니다. 괴로움의 근원은 경계에 어리석음이라고 합니다. 즉 경계를 잘못 봤다는 것입니다. 경계를 잘못 봐서 재물에 탐을 내고 명예에 탐을 내고 사랑에 탐내고 했다는 것입니다.
고집멸도가 인간의 존재 법칙을 보편적으로 이야기하는 걸 말한다면 초기불교와 대승불교는 설명이 달라야 한다는 걸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고집멸도는 인간의 존재 법칙입니다. 사람이 괴로운데 괴로운 데는 원인이 있고 그 원인은 道를 닦아서 끊지 않으면 괴로움은 이어진다는 말입니다. 이런 설명은 누구든지 알아듣고 이해합니다.
苦는 생로병사가 있고, 구해도 얻지 못하는 것이 있고 보고 싶은 사람 못 보고, 미운 사람 봐야 되는 괴로움이 있고 다양합니다.
오온이 번뇌로 만들어졌습니다. 머리카락,피부,생각도 번뇌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자연히 괴롭습니다. 아무것도 안 해도 번뇌가 작용을 하니까 괴롭습니다.
이것을 오취온이라고 합니다. 보살도 오온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보살은 생각도 깨끗하고 음식도 깨끗한걸 먹으니까 피부도 깨끗합니다.
중생은 깨끗하지 않으니까, 미용실에 매번 가야되고 병원 가야되고 신경도 깨끗하지 않으니까 신경과도 가야 합니다. 색. 수.상. 행.식이 깨끗하지 않다. 이것을 보고 오취온 이라고 합니다.
滅字는 창과戈 +물水+불火입니다.
물난리 나면 싹 쓸어가죠.
불 나도 싹 태워버리죠.
창으로 다 죽게 하죠.
물과 불과 창으로 없애는걸 멸이라고 합니다.
물난리, 불난리, 창(전쟁) 난리 다 무섭습니다.
道: 머리수首입니다.
辶 은 도를 닦는 사람이 용감하게 달리는 모습입니다.
走자입니다. 고개를 들고 당당히 달린다는 뜻입니다.
이제 앞으로 불교를 쉽게 가르치려고 합니다.
세상에 괴로운것이 苦이다.-아파트 못 들어가고 초가집처럼 남루한 곳에 사는 가난이 괴로움입니다 -참 현실적인 법문이십니다.-
괴로운 이유는 행위마다 늘 하나씩 붙어 다닙니다.
여러 가지 중에서 가장 진하게 붙어 다니는 것이 갈애이다. 헐떡거리며 찾는것을 말합니다.
대승불교에서는 고급스럽게 아주 깊이 말합니다.
갈애가 없는 사람도 괴로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별로 찾지 않고 구하지 않아도 미세하게 들어가면 괴로움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경계를 잘못 보기 때문입니다.
모두 空으로 보지만 나에게 특별히 깊숙이 미운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갈애도 없는데 무명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원측대사가 하신 말씀인데
그 무명은 경계에 대해 어리석음이라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으면 괴로움이 없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있습니다. 오취온으로 생겨서 그렇습니다.
道가 높아지면 자연히 깨끗해집니다.
그래서 저는 계율을 강조하지 않고 염불을 많이 하라고 권합니다. 염불을 많이 하면 자연히 오온이 깨끗해지니까.
滅-물로 쓸어 버리듯이 불로 태우듯이 창으로 없애버리듯이 못 일어나게 합니다,
살짝 밟아 놓으면 안 되고~
道 는그래서 고개를 들고 당당하게 말 타고 가는 모습처럼 이것이 道자입니다.
고집멸도는 보편적인 신행원리입니다.
보편적이라는 말은 무식박식無食薄食 누구에나 고집멸도 안에 있어서 보편적인 신행원리라고 했습니다.
불교는 근기따라 다르게 설했다고 했습니다.
-대기설법 對機說法
높고 깊은 수행에 들어갈 때마다 고집멸도를 차원을 달리해서 가르친다는 말입니다.
처음에는 팔정도 또 삼학을 가르치고 ,육바라밀, 참선, 염불도 가르칩니다.
이렇게 道가 다릅니다. 계속 팔정도만 道라고 하시면 안 됩니다.
苦에도 차원이 있습니다. 의식주 때문에 괴로운 사람이 있고. 내적으로 괴로운 사람이 있듯이 괴로움의 원인이 다릅니다.
하나로 모아서 초기 불교에서는 갈애라고 했고 대승불교에서는 무명의 원인이 연기를 모르는것 무아를 모른 것이라고 했는데 대승의 조사들은 함축적인 한 마디로 경계에 어리석은것이라고 했습니다.경계를 잘 보면 즐거운 것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인간의 존재 법칙은 누구든지 고집멸도의 범위안에 있고. 보편적인 신행원리이지만 道는 자꾸 차원이 달라집니다.
우리는 道 자리에 염불을 놓습니다.
道 자리에 참선을 놓기도 하고
道 자리에 육바라밀을 놓기도 하고
일심정토 염불수행으로 가는 우리들은 염불을 놓습니다.
참선도 道 자리에 있습니다, 고집멸도를 떠나서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으로 고집멸도의 대강 정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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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파에서 처음 공부할 때 기본교리를 공부하면서 苦에 대한 인상 깊은 스님의 법문이 생생합니다.
풀로 떼작 떼작~~
시간이 지나 더 깊고 높게 법문해 주시는 고집멸도를 배워서 본인도 누구에게나 쉽고 간결하게 설명이 된다면 배우는 자세를 갖추어가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높은 일심사상에 대한 깊은 이해도 물론 중요하지만 오념문을 시작으로 불교의 기초부터 영상 법문으로 다시 정리해 주시는 스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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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열정적인 신심을 찬탄합니다
삼악(삼학)
일심 광명 화신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보살님
계.정.혜네요. 아는 만큼 보이나(들리고)봐요. 자꾸 삼악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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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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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필경님 수고하셨습니다
일심 광명 화신 아미타 아미타 아미타불()()()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고집멸도는 인간의 존재법칙입니다.
보편적인 신행원리이지만,도는 자꾸 차원이 달라집니다.
이렇게 정리하여 옮겨 주시는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일심 광명 화신 보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우리는 도자리에 염불을 놓습니다.
멋진 구절입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
일심 광명 화신 보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_()_
필경님 감사합니다.
일체경게 본래일심
일체가 아미티불으 화신이다.
모든 인연의 은혜에 감사하고 보은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일심 광명 화신 보은
나무아미타불 아미타 ()
고집멸도에 대한 스님의 명강이었습니다, 글로 다시 한번 새겨주신 필경님 감사합니다
일체경계 본래일심
일제가 아미타불의 화신이다
모든 인연의 은혜에 감사하고 보은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일체경계 본래일심
일체가 아미타불의 화신이다.
모든 인연의 은혜에 감사하고 보은합니다.
나무아미타불 아미타파
감사합니다 필경님
일체경계 본래일심
일체가 아미타불의 화신이다
모든 인연의 은혜에 감사하고 보은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필경님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감사합니다
필경님!
" 道가 높아지면 자연히 깨끗해진다 "
이 말씀에 찬탄합니다.
[삼독 ] 은 탐 진 치
[삼학] 은 계 정 혜
아끼면서 공부하는 행복도 있습니다.
꼬임의 마음을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꾸어 주시는 필경님의 공덕을 입습니다..
아미타 아미타 아미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