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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왕생(極樂往生)이란]
♡ㅡ♡
[ 경허집(鏡虛集) (14) ]
20230306
열네 번째 이야기
수행을 처음 접하시거나 초보자분들을 위해서 한 말씀 올리자면 경허선사라는 분은 1849년에 태어나서 1912년에 돌아가신 분인데요.
쉽게 말하면 경허선사라는 분은 참선수행을 해서 깨달음으로 이르는 길을 다시 여신 분이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그동안 우리 불교가 조선이 들어서면서 무학대사를 이어 잠깐 서산대사와 사명대사를 기점으로 이후로는 거의 선지식인들의 법맥이 끊겨있다가 경허선사라는 분이 나와서 다시 그 선맥을 이으신 분이라고 보시면 되는데요.
불자들은 경허선사를 모르시는 분들이 거의 없지만 카톡으로 이 글을 받아보시는 분들 대부분은 저의 지인들인 경우가 많고 불자들이 아닌 분들이 많아서 모르시는 분들도 계실 줄 아는데요.
쉽게 말하면 경허선사라는 분은 가요계에 이미자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저의 이 글은 대부분이 초보자분들을 위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요즘 표현으로 설명하려고 노력 중인데요.
그러다 보니 때로는 설명이 길어질 때가 많답니다.^^
아무쪼록 제 바람은 많은 일반 사람들이 이 법을 깨닫고 이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인데요.
경허선사 이후로 잠깐 그의 제자들이 선풍을 일으키긴 했지만 지금은 거의 그 맥이 다시 끊기고 있는 실정이랍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이 선맥이 일반 사람들에게 널리 전파되어 좀 더 고급스럽고 새롭게 태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저의 바람인데요.
아무쪼록 이것은 여러분들이 상상하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으니 꼭 열심히 따라 해 보셔서 모두가 이 맛을 보시기 바랍니다. ♡
저 같은 농땡이도 하고 있는 이것을 여러분들이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답니다.
다른 것은 다 필요 없고요 이렇게 해보십시오.
[현재 이 순간 의식이 깨어서 생활해 보십시오.]
[또는 현재 이 순간 나를 알아차려 보세요.]
[그리고 내 마음을 자주자주 보세요.]
[그리고 들고 있는 내 마음을 알아차리고 내려놓고 버리려고 노력해 보세요.]
★ 수행이란 내가 나를 보는 거랍니다. ★
그러면 처음에는 모르고 하게 되지만 나중에는 아주 신기한 일들이 벌어진답니다.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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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이 글은 경허선사의 제자 만공스님의 부탁으로 만해 한용운 스님이 경허선사의 글들을 옮겨 적으신 건데요. 옛 분들의 표현들이라 가급적이면 띄어쓰기나 받침 등이 지금과 다른 글자가 간혹 있는데요. 그러나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글을 옮겼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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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허집 본문》
23p~
경가운데 세 무리들의 왕생하는 것이 모두 보리심(菩提心)을 발하였기 때문이니 보리심이란 무엇인가. 곧 중생들이 날마다 쓰는 신령스럽게 느끼는 성품이다. 만약 능히 이 신령스럽게 느끼는 성품을 개발하거나 혹은 능이 관상삼매(觀像三昧)를 성취하거나 혹은 능히 일심불란(一心不亂)을 성취하면은 저 왕생하는데 무엇이 어려우랴.
~2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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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안녕하세요.
[이뭣고]의 곁가지 김태현입니다.(방긋)
한 주일 잘 보내셨지요.. (방긋)
,
저는 개인적으로 경허집을 보면서 느끼고 있는 점들이 아주 많은데요.^^
그중에서도 제 경우는 경허선사의 마음을 많이 느낄 수가 있었답니다.
제가 느끼고 있는 점 두 가지만 들어보라 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는 이 분은 참으로 수행에 있어 열정이 남달랐던 분이었구나..,
하는 점 하나하고요.
두 번째는 당시나 지금이나 불교 내에서 성행(盛行) 하고 있는 잘못된 행위? 들 때문에 경허선사 마음 또한 많이 안타까워하셨구나..,
하는 마음 등인데요.
그러면서 제 경우도 경허선사와 많은 동질감(同質感)을 느끼고 있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의 [경허집]을 보면 매 순간순간마다 경허선사는 수행 이야기 아니면 당시 스님들의 잘못된 관행(慣行) 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들이 많이 느낄 수가 있었다는 점인데요.
그리고 매 순간순간 한자 한자가 힘이 넘쳐흐르는 필력이 유독 눈에 많이 들어오는데요.
여기서 이분의 기질(氣質)을 많이 느꼈답니다.
아무쪼록 한국 불교에서 이런 스승이 있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매우 경의(驚異) 로운 일이 아닐 수가 없는데요.
아무쪼록 오늘날 후배 되시는 모든 스님들도 제발 좀 이제는 정신들 좀 차리셔서 지금부터라도 엉뚱한 짓들은 그만하시고 경허선사의 큰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시어 수행에만 전념할 수 있는 절 문화가 다시 꽃 피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한데요.
더불어서 우리들도 옆에서 옛 분들이 남기신 좋은 가르침들을 배우고 익혀서 누구나 이 본성(불성) 자리를 맛보고 저세상으로 갈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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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경허스님의 말씀을 단 한 마디로 정의하면 이런 뜻이 담겨 있답니다.
[경전에서 이르기를 누구든지 깨닫고자 마음을 내는 사람들은 한마음으로 수행을 하면 신령스러운 지혜는 물론 마음이 원만한 큰 깨달음을 증득할 수가 있다]
입니다.
(그리고 아래의 어러운 한문 내용들은 오랫동안 수행을 해오신 분들의 내용이니 일반 사람들은 깊이 들어가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뒤에 이해하시기 좋게 다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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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말하는 [세 무리들의 왕생하는 것] 이란 한문으로 하면 삼심의(三心義)를 나타내는 말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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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심의(三心義) 란
① 지성심(至誠心)
운허 사전 해석 : 거짓이 없는 진실한 마음
② 심심(深心)
운허 사전 해석 : 온갖 선행 쌓기를 좋아 하는 굳은 마음.
③ 회향발원심(回向發願心)
운허 사전 해석 : 과거, 현재에서 자기가 지은 선근 공덕을 왕생 정토하는 한 가지에 회향하여 이로써 왕생하기를 원하는 마음.
이란 뜻이랍니다.
★
그리고 보리심(菩提心)이란
운허 사전 해석 : 위로는 보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하려는 마음. 이 마음의 내용은 "중생은 모두 다 제도하리라" "번뇌는 모두 다 끊으리라" "법문은 모두 다 배우리라" "불도는 모두 다 증득하리라"라는 마음,
쉽게 말해 [깨닫고 증득하고자 하는 마음] 정도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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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菩提) 뜻
운허 사전 해석 : 도(道) 지(智) 각(覺)이라 즉 불교 최고의 이상(理想)인 불타 정각의 지혜, 곧 불과(佛果) 불타 정각의 지혜를 얻기 위하여 닦는 도(道). 곧 불과에 이르는 길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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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삼매(觀像三昧) 란
관상(觀像) 뜻
운허 사전 해석 : 사물을 마음에 떠오르게 하여 관찰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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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심불란(一心不亂) 이란
네이버 사전 해석 : 오직 한 가지 일에만 마음을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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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생(往生)이란
운허 사전 해석 : 이 세계에서 저 세계에 가서 나는 일.
1. 극락왕생: 아미타불이 세계에 왕생함.
2. 도솔왕생: 미륵보살이 계시는 도솔천에 왕생함
3. 시방왕생: 시방 정토 중에서 자기의 원하는 정토에 왕생함
4. : 약사 여래의 국토인 정유리세계에, 관세음보살의 국토인 보타락가산에 또는 <화엄경>의 비로자나여래의 국토인 화장세계에 왕생하려는 신앙도 생겼으나, 일개 사상을 형성하기 까지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참고로 사전을 이용하실 때에는 -운허 용하 스님- 이 남기신 [불교 사전]을 참고하시길 권해 드립니다. 왜냐하면 네이버 등을 포함해 일반 사전들은 깨닫지 못하신 분들이 해석한 글들이라 틀린 해석들이 많답니다)
그리고 몇 해 전 대구 밥회 때 운허 용하 스님의 [불교 사전]을 선물해 주신 보살님에게 이 자리를 빌려서 늘 감사함을 느끼고 있답니다.^^
저는 이런 좋은 불교사전이 있는지조차 몰랐답니다.
몇 가지 단어만 뒤져봐도 이 사람이 깨닫고 쓴 글인지 아닌지 금방 알 수가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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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내용>
오늘 내용도 아주 중요한 내용인데요.
오늘은 왕생(往生)이란 단어가 나와서 여기에 연관된 이야기를 경허선사 말씀과 엮어서 잠깐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사실 왕생(往生) 같은 이런 이야기는 일반 사람들이 잘 믿지 않는 내용들이라 저만 알고 있는 내용이기도 한데요.
그러나 내용이 나왔으니 간단히 맛보기로 이야기해 보겠으니 그냥 재미로 보시기 바랍니다. ^^
오늘 경허선사의 말씀은 이런 거랍니다.
[왕생하는 것이 모두 보리심(菩提心)을 발하였기 때문이니]
라고 했잖아요?
이 말은 (깨닫고자 하는 마음)이 왕생 즉 (다음 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라는 뜻이랍니다.
나에게 깨닫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면 원하는 왕생은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답니다.
그 이유는 뒤에 같이 설명해 보겠습니다.
사실 왕생(往生) 그러면 달랑 두 글자 이기는 하지만 이 안에는 삼천대천세계(전우주)가 모두 포함되는 이야기라 그 범위가 너무 넓은 그런 내용인데요.
오늘은 그냥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바세계에서 오늘 내용과 연관되는 것만 해보겠습니다.
핵심만 말씀드리면 일반 사람들은 본성도 모르고 더군다나 알아차림 확립도 안 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 자궁이나 막 기어들어가기 때문에 그나마 나은 왕생이 어려운 건데요.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뒤에 같이 해보겠습니다.
[보리심이란 무엇인가. 곧 중생들이 날마다 쓰는 신령스럽게 느끼는 성품이다.]
라는 내용이 나오는데요.
이 내용도 일반 사람들이 이해하시기에는 어려울 수 있는 내용인데요.
그러나 깨달은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이 자리는 신령하다 못해 신기할 따름이랍니다.
여러분들은 아직 몰라서 그렇지 실제로 누구나 이런 자리가 있답니다.
그것을 아직 개발을 못하셔서 모르고 있을 뿐이지요. (진실)
[만약 능히 이 신령스럽게 느끼는 성품을 개발하거나]
이 말도 일반 사람들은 이해하시기 어려울 건데요?
아무튼 이 법은 내 안에 있는 본성 자리를 개발해 쓰는 거랍니다. (진실)
흔히 이런 말들을 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나는 내 눈으로 보지 않는 한 믿지를 않는다"라고요?
그런데 여러분 그거 아세요?
사람들의 눈이나 귀 등의 감각 기능들이 다른 동물들에 비해서 얼마나 뒤떨어지는지요?
사람들의 눈과 귀, 코, 입, 감촉 등이 다른 동물들 보다 나은 것이 별로 없답니다.
다만 머리의 기능이 다른 동물들 보다 조금 나을 뿐이지요?
그러나 사람들 머리 또한 얼마나 멍청할 때가 많은데요?
왜냐하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많은 기능들은 잘 속거든요.
왜냐하면 보고 듣는 것만 믿으니까요?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 세계가 훨씬 더 많은데 보이는 것만 믿는다는 게 얼마나 어리석겠어요?
성능도 별로 좋지 않은 육체의 기능들을 가지고요.
그렇지 않겠어요?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게 얼마나 된다고요?
바로 눈앞에 있는 것도 못 알아차릴 때가 얼마나 많은데요?
여러분들이 몰라서 그렇지 사람들 눈과 귀만큼 속이기 쉬운 것은 또 없답니다?
사람들이 무척 똑똑한 것 같잖아요?
전혀 아니랍니다.
아무리 고학력이면 뭐 합니까?
자기 집 등기부 등본 하나도 분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저도 사채업을 오랫동안 해오면서 잘 알고 있는 일이지만 사람들 만큼 속이기 쉬운 동물들은 또 없답니다.
왜냐하면 처음에는 누구나 경계를 하고 의심들을 하지만 몇 달, 혹은 몇 년에 거쳐서 정을 느끼게 하고 눈앞에 좋은 것들만 보여주고 좋은 말로만 구슬려 주면서 거기다가 좋은 맛까지 보여주면 누구나 다 넘어오거든요?
누구나 정에는 약한 법이니까요?
아무리 "나는 속지 않는다" 해도 다 속을 수 박에 없답니다.
가장 속이기 쉬운 것이 사람들 마음이거든요.
왜 그런 줄 아세요?
일반 사람들에게는 좋은 것만 그 마음에 비추어주면 다 끌려오거든요.
사람들은 생각으로만 모든 것들을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에 속이기 쉬운 거랍니다?
이 생각이 처음에는 경계를 하고 조심들을 하지만 지속 적으로 좋은 것만 보여주고 좋은 말만 해주면서 그리고 직접 맛까지 보여주면 누구나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게 되어있거든요.
욕심이 많은 사람들은 더 쉽게 넘어오고요.
사채업에 있어 보십시요?
빌리는 사람들이나 빌려주는 사람들이나 모두 다 더 많은 돈들을 벌기 위한 욕심 경쟁이랍니다.
우리들은 그 욕심들을 잘 부추 켜서 돈을 버는 사람들이고요.
"나는 안 그럴 것이다" 하잖아요?
이런 사람들이 더 쉽게 넘어온답니다.
왜냐하면 순진하거든요?
부끄럽지만 과거에는 저도 이런 쪽으로는 타고났었던 사람이고요?
사람들 눈과 귀를 꼬시기가 얼마나 쉬운데요.
장사나 사업도 다 이런 쪽이랍니다.
이런 감각이 없으면 뭐든지 어렵게만 느껴지는 것이고요.
정직한 장사가 어디 있고, 정직한 사업이 또 어디 있을까요?
정치나 외교는 또 어떻고요?
부부간이나 가정 안에는 또 어떻고요?
다 알게 모르게 속이고 속아주고 하는 거지요.
사바세계 차체가 그런 곳이랍니다.
이 말 또한 부처님이 알려주신 내용이고요.
가장 세상을 골치 아프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아세요?
자신만 정직하게 살아간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랍니다.
이 내용은 경전 속에도 그대로 나와있답니다.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의 마음들이 얼마나 지저분하고 더러운 곳인데요.?
자기 혼자서만 깨끗하다고요?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 하십시오?
어떻게 더러운 목욕탕 속에 같이 들어가 있는 사람들이 자기만 깨끗할 수가 있을까요?
말이 안 되지요?
그래서 오늘 내용에도 나오지만 왕생(往生)이 나오는 것이고요.
이 사바세계는 하루속히 빨리 벗어나야 할 더러운 곳이지 머물러 있어야 할 곳이 아니랍니다. (진실)
어떤 큰 스님은 이런 법문을 하시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나는 다음 생에 태어나도 스님으로 다시 태어날 거라는 거예요?
저는 이 말을 듣고 "이 분이 제정신인가?" 했답니다.
몰라도 너무 몰라요?
평생을 불법을 공부한 분들도 이런데 어쩌겠어요?
그래서 경허선사의 마음에 저도 공감을 하는 것이고요.
그렇잖아요?
"다음 생에도 나는 스님이 되겠다"라는 뜻은 [길 잃은 장자의 아들] 이야기처럼 나는 평생을 거렁뱅이로 살겠다는 얘기뿐이 더 되겠어요?
큰 스님이라는 분이 빨리 해탈을 해서 두 번 다시는 이런 스님 같은 생활은 안 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계셔야지?
다음 생에 태어나도 나는 다시 또 스님이 되고 싶다니요?
물론 무슨 뜻으로 하신 말씀인지는 잘 알겠지만 가르치는 위치에 계시는 입장에서는 철이 없어도 너무 철이 없는 소리랍니다.
그래서 오늘 내용처럼 본성을 개발해서 깨닫고 증득을 한 사람들은 좀처럼 마음을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지혜의 눈이 열려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좀체로 이런 것에는 속지를 않는답니다.
그냥 속아주는 척은 할 수 있겠지만요.
그리고 이렇게 본성 자리를 개발하는 방법이 수행인 것인데요.
그중에서도 오늘 경허 선사가 하시는 말씀은..
[관상삼매(觀像三昧)를 성취하거나 혹은 능히 일심불란(一心不亂)을 성취하면은 저 왕생하는데 무엇이 어려우랴.]
하셨는데요.
이 말이 무슨 뜻이냐 하면..
위에서도 운허 큰스님이 불교 사전에서 해석해 두셨지만
방편으로 어떠한 사물이나 상(像)을 마음에 떠오르게 하여 관찰하는 방법인데요.
예를 들면 예전에는 좌선을 하고 촛불 같은 것을 앞에 놓고 바라보는 방법도 있었고요.
요즘은 명상센터에서 눈앞에 하얀 도화지 위에 점을 하나 찍어놓고 그 점을 바라보는 방법도 있는데요.
아니면 내 마음에 어떤 사물이나 상(像)을 올려놓고 바라보는 방법도 있는데요.
간화선에서 화두 또한 이것을 응용한 수행 방법이랍니다.
화두 또한 마음에 들고 있는 하나의 상(像)이거든요.
그리고 자장율사가 했던 해골을 보면서 수행한 고골관(枯骨觀) 역시 여기에 속한답니다.
아무튼 무엇이든 내 마음이든 내 앞에 어떤 사물이나 상(像)을 놓고 그 사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경허스님 말씀대로 일심불란(一心不亂)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는데요.
이 말이 무슨 뜻이냐 하면..
한마음으로 앞에 있는 사물이나 상(像) 또는 화두를 바라보게 되면 어지러울 : 란(亂) 즉 내 마음을 어지럽히고 손상시키는 마음들을 다스릴 수가 있다는 뜻이랍니다.
그리고 이것은 어디까지나 일불승으로 가는 방편인 것이고요.
물론 처음에는 누구나 좌선을 하든, 서서 하든, 걷든 수행을 하면 수많은 번뇌 망상들이 내 마음을 괴롭히지만 계속 한마음으로 정해 놓은 사물이나 상(像) 또는 화두 등을 바라보다 보면 누구나 일심불란(一心不亂)을 즉 모든 어지러운 마음들은 없어진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일심(一心)으로 사물이나 상(像)이나 화두 등을 바라보는데 힘을 쓰면 왕생하는데 무엇이 어렵겠냐?
이런 뜻이고요.
ㅡ♡
그런데 오늘 내용에서 왕생(往生)이라는 내용이 나오잖아요?
이 내용이 또 엄청난 내용이랍니다.
위에서도 운허 큰스님이 말씀하셨지만
일반 사람들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바세계만 있는 줄 알잖아요?
전혀 아니랍니다.
이 우주가 얼마나 넓고 끝없이 펼쳐져 있는데요.?
그리고 얼마나 많은 세계가 존재하는데요?
부처님은 이에 대해 이렇게 비유를 하셨답니다.
"갠지스강의 모래알 수보다 더 많다"라고요.
그리고 역대 부처님들부터 지금 부처님까지 부처님들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는 보살들 또한 전 우주에 갠지스강의 모래알 수보다 더 많은 수의 보살들이 이 법을 전하고 있고요.
일반 사람들은 전혀 여기에 대해 서는 모르고 계시답니다.
여러분들도 직접 죽어 보세요?
죽으면 바로 몸의 기능들은 다 없어진답니다.
볼 수도 들을 수도 느낄 수도 없게 되지요.?
오직 남는 것은 본성 자리 하나뿐이랍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연꽃 한 송이]를 본성(불성)에 비유한 것이고요.
기독교에서는 이것을 [하나님]이라고 표현하고 있을 뿐이고요.
문제는 그들이 이러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이고요.
여분들이 죽으면 마치 카메라에 렌즈가 빠지면 몸체만 남듯이 그 몸체로 아무리 사물을 보려고 해도 하얀 빛 박에 안 보이듯이 그런 상태가 된답니다.
본성은 알아차림의 기능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 몸처럼 눈, 귀, 코, 입, 감촉 등이 없으면 카메라 몸체처럼 완전히 멍텅구리가 되거든요.
죽으면 누구나 깜깜함 그 자체랍니다.
생각도 없고,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그 자체로만 남아있답니다.
몸의 기능들이 다 죽었기 때문에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생각도 없고, 그야말로 카메라 본체만 있는 것처럼 허였기만 한 그 자체랍니다.
그래서 습(習)만 남아 있기 때문에 사람 자궁인지? 돼지 자궁인지? 개 자궁인지? 도 모르고 무작정 아무 자궁이나 막 찾아들어가는 것이고요.
왜냐하면 그 자궁이 그 자궁으로 느껴지거든요.?
배고프면 아무거나 막 입에 집어넣는 것과 같은 모양이랍니다.
태아도 작을 때에는 사람 태아든 동물 태아든 거의 똑같답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무량겁을 거쳐오면서 오직 육체의 기능으로만 살아왔기 때문에 육체가 없으면 완전 멍텅구리가 되는 거랍니다.
그동안 단 한 번도 알아차림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본성(마음) 자리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알 수가 없답니다.
왜냐하면 육체가 살아있거나 죽어있거나 상관없이
본성(마음) 자리는 모두 같기 때문에
원효스님 말씀대로 모든 길(道)은 본성(마음) 길(道) 하나로 통하기 때문에
본성(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살아서 나 죽어서 나 자기가 어디로 흘러들어가는지를 전혀 알 수가 없답니다.
거짓말 같지요?
이것은 괜히 겁을 주기 위해서 하는 소리가 아니랍니다.
믿던지 안 믿던지 그것도 여러분들 자유이고요.
그러나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은 그렇지가 않답니다.
너무나 선명하게 알고 있거든요. (진실)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은 위에 있는 (왕생(往生)이란) 란에 해석 내용처럼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찾아 들어갈 수가 있거든요.
원하지 않으면 어느 곳으로든 들어가지도 않고요. (부처 같은 경우)
예를 들어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은 사바세계로 찾아 들어갈 때에도 대부분 부잣집이나 큰 권력이 있는 집안 쪽으로 찾아들어가는 경우가 많은데요.
왜냐하면 본성(불성)은 그 자체가 괴롭고, 고통스럽고, 힘든 자리를 싫어하기 때문이랍니다.
본성 자리는 편하고 고요한 곳을 좋아하기 때문에 왕생을 해도 부처님처럼 귀족 같은 집으로만 들어가려고 한답니다.
그래야 그나마 조금은 편하게 지낼 수 있거든요.
그래서 본성은 가능하면 고생이 덜한 집안으로 찾아 들어가려고 한답니다.
본성 자체가 고생을 싫어하거든요.
물론 특별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답니다.
부처님만 해도 왕가에서 태어나셨고, 원효 스님이나, 의상 스님 같은 경우도 보통 귀족 집안 출신들이 아니랍니다.
그런데 문제는 찾아들어 갈 때에는 잘 찾아들어가지만 그 뒤에 그 집안이 망하는지? 흥하는지?는 들어가기 전에는 알 수가 없다는 것인데요?
왜냐하면 죽으면 의식(意識) 기능도 완전히 사라지기 때문에 그렇답니다.
마치 거울만 있을 뿐이지 그 거울을 어디로 돌릴 수가 없거든요.
의식 기능도 육체의 일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태어나신 카필라 왕국도 부처님이 생존했을 때 패망했던 것이고요.
이런 경우가 아주 허다하답니다.
제 경우만 해도 그동안 태어났던 곳들이 거의 좋은 집안에서만 태어났던 경우인데요.
이번 생에도 태어날 때에는 그래도 밥은 굶지 않겠구나 하는 곳을 선택해서 부잣집에서 잘 태어나긴 했지만 가끔은 그 부가 오래가지를 못 하고 겹질리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불법을 계속 이어나가기 좋은 곳을 선택해서 왕생(往生)을 한답니다. (진실)
참으로 이 자리는 오늘 경허선사 말씀처럼 아주 신령하고 신기한 자리랍니다.
그래서 성경 구절에서도 이런 구절이 있는 것인데요.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고전 14:1)
여기서 말하는 예언이 알아차림이거든요.
사랑은 불교에서 자비를 뜻하는 것이고요.
문제는 기독교 특히 개신교 쪽 사람들은 이러한 큰 가르침들을 전혀 이해를 못 하고 엉뚱한 곳에 정성을 쏟고 있는 것이고요.
그래서 오늘 내용은 현재 이 순간을 잘 알아차리고 바라보라는 연습을 지금부터라도 해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잘 찾아들어 갈수 있다는 뜻이고요.
왜 자꾸 제가 이런 소리를 하느냐 하면 본성(마음)은 알아차리는 기능 외에는 없기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본성은 거울과 같기 때문에 거울에 비치는 것들을 알아차리거든요.
거울 입장에서는 알아차린다고 할수 있잖아요.
거울에 무엇이 아무리 비쳐도 알아차리지 못하면 뭐하겠습니까?
알아차림이 훈련되어 있지 않으면 모두가 꽝인데요.
앞에 뭐가 지나가도 몰라요?
지금은 육체가 있어서 눈, 귀, 코, 입, 몸의 감촉, 등을 통해 마음에 비치니까 알아차릴 수 있다 하지만 이 육체가 없을 때에는 무슨 수로 알아차릴 수가 있겠어요?
아무런 연습도 안 되어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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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재미있는 내용들이 많이 있지만 자꾸 이런 이야기를 하면 뻥이라고 그러실까 봐 더는 이야기를 못하겠는데요.^^
아무쪼록 현재 이 순간 의식이 깨어서 알아차리는 것과 마음 보기 만이라도 열심히 해두시기 바랍니다.
다 써먹을 때가 있으니까요. (진실)
깨닫고 증득하는 것은 때가 되면 다음 생에라도 언제든 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다음 생에도 이법을 다시 만나야 하는 것이고요. . .^^~
<참고 동영상>
제목 : 보이면 자유로와진다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com/shorts/AZIQQjrSbKg?feature=sh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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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댓글 생각, 의식, 그리고 마음에 대해서 각각 차이점을 다시 정리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견성(깨달음)의 본성이 마음이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까?
안녕하세요. ^^
네 알겠습니다.
이번 주 내로 올려드리겠습니다. 😃🙏
@공무연기 감사합니다. ^^
@공무연기 (답변) 1
안녕하세요.
질문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
오늘 내용은 설명과 함게 본인이 직접 느끼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질문답 형식으로도 유도해 보겠습니다.
저의 질문을 잘 이해해 보시고 생각해 보셔서 직접 자신에게 답해 보십시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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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동물 포함)들은 크게 네 가지의 기능들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답니다.
[몸의 기능] [생각의 기능] [의식의 기능] [마음의 기능]등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지요..
이 네 가지의 기능들은 모두가 자동으로 돌아가다 보니까 일반 사람들은 크게 신경을 안 쓰고 살아간답니다.
그러나 수행자들은 이 네 가지의 기능들을 잘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답니다.
그래야 내가 어디에 의식이 가 있고 생각이 가 있는지 알아차릴 수가 있답니다.
그리고 이것은 조금만 신경을 써서 나를 관찰해 보시면 금방 분리해서 알아차릴 수가 있답니다.
저도 그렇게 해서 알아차린 것이고요.
그런데 잘 생각해 보시면 어렸을 때에는 누구나 혼자서 놀 때가 많았잖아요?
어렸을 때 혼자서 놀 때에 누구와 대화를 하고 놀았지요?
어렸을 때 장난감이나 흙 가지고 혼자 놀 때에 자신의 마음과 대화하며 놀지 않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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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생각해 보세요.
어린아이들은 장난감 하나만 손에 쥐여주면 자신의 마음과 대화하며 혼자서도 잘 놀잖아요.?
여러분들도 그랬을 것이고요.
어렸을 때에는 생각을 하면서 놀았는지? 아니면 본능적으로 장난감에 모든 의식과 마음을 두고 놀았는지? 잘 생각해 보세요?
어렸을 때에는 누구나 장난감 하나만 손에 쥐여주면 의식으로 삼천대천세계를 만들어 놓고 혼자서도 잘 놀았답니다.
자기가 왕이 되기도 하고, 대장이 되기도 하고, 아빠나 엄마가 되기도 하고, 정의의 사자가 되어서 혼자 자신의 마음과 조잘 조잘대면서 그 놀이에 푹 빠져있을 때 의식과 마음과 몸은 따로따로 자기 역할을 하면서 놀았을 것입니다?
그 자리에는 다른 생각들은 없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어린아이들은 생각을 할 줄 모른답니다.
오로지 의식을 안으로 돌려서 자신과 놀았을 뿐이랍니다.
그러다가 차차 친구가 생기고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러면서 점점 의식은 안에서 밖으로 돌리게 된답니다.
나중에는 모든 의식들이 밖으로만 향하게 됩니다.
이것이 지금 어른들의 상태랍니다.
이제는 습관이 되어서 어렸을때 같이 하던 소중한 자기의 마음은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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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가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 때에나 그제야 "마음이 아파" "마음이 아파" 하지요.
저도 그랬고요.^^
이렇게 생각이란 커가면서 늘어나는 것이랍니다.
그러다가 유치원에 들어가고 학교를 다니면서 생각은 극대화되는 것이고요.
학교라는 곳은 자꾸 생각을 하게 만들거든요.
특히 우리나라 교육은 생각을 이끌어 내는 교육이라 더 그렇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동안 어른이 되기까지 생각과 몸으로만 살아왔다고 보시면 된답니다.
생각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처리하지요.
그래서 고통이 따르는 것이랍니다.
생각으로 모든 것을 배우고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면서 말이지요.
생각보다도 훨씬 위대하고 엄청난 의식의 세계와 마음의 세계가 있다는 것조차도 여러분들은 모르고 살아가고 있답니다.
그러나 어렸을 때에는 누구나 의식의 세계와 마음의 세계로만 몸이 반응을 하면서 놀았답니다.
그러던 것이 생각이 끼어들면서 나머지 기능 들은 까마케 잊고 지내게 된 것이고요.
그래서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몸]과 [생각]과 [의식]과 [마음]을 구분하지 못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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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로 다시 돌아가셔서 각자가 한번 자신들을 되돌아보면서 관찰해 보십시오?
어렸을 때에는 누구나 본능적으로 생각 없이 놀랐답니다.
의식이 가는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몸이 가는 대로 말이지요.
어렸을 때에는 생각을 할 줄 모른답니다.
왜냐하면 생각도 [몸의 기능]에 속하거든요.
어린아이가 무슨 생각이 있어서 생각으로 삼천대천세계를 만들어서 놀겠습니까?
모래나 흙만 있어도 어렸을 때에는 의식과 마음으로 그곳은 전쟁터도 되고, 궁궐도 되고, 학교도 되고, 가정도 되는 것이지요.
그러다가 유치원에 들어가거나 학교에 들어가면서 생각을 하는 것을 배우게 되고 이 생각이 나의 의식과 마음을 대신하게 된 것이랍니다.
그동안 자신이 살아오면서 의식을 어디에 두고 살아야 하는지?
그동안 살아오면서 자신의 마음은 몇 번이나 들여다봤는지?
그리고 마음을 잘 관리해 보려고 노력은 해보았는지?
생각해 보시면 대부분은 거의 방치를 해두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굳이 그렇게 안 해도 생각이 모든 것들을 다 알아서 해결을 하는 것 같이 보이거든요?
그러다가 큰일을 당하면 그제야 모든 의식과 마음은 발광을 하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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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그동안 생각하고만 친하게 지내더니 왜 갑자기 우리들을 찾는 거야?"
하면서 말이지요.
지금부터라도 자신의 소중한 의식과 마음과 친해 보십시오.
지금부터라도 자신의 의식과 마음을 챙기셔야 한답니다.
나의 소중한 의식과 마음을 그렇게 방치해 두어서야 되겠습니까?
모든 것이 바로 그 자리에서 창조되는 것인데요.
어렸을 때에도 흙과 모래만 있으면 성도 만들고, 도시도 만들고, 자동차도 창조하면서 혼자서도 잘 놀지 않았던가요?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랍니다.
머리를 쓰지 마시고 마음을 꺼내서 써보세요.
모든 창조는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랍니다.
어린아이가 무슨 능력이 있어서 생각으로 창조를 하겠습니까?
어렸을 때를 한 번 잘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그때 머리로 놀고 있었는지 마음으로 놀고 있었는지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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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랍니다.
기다리던 자식이 태어났다고 가정해 보지요?
모든 의식은 그 자식에게 가 있겠지요?
여러분들은 머리로 자식을 사랑하시나요?
아님 마음으로 자식을 사랑하시나요?
이때 의식은 온통 어디로 가있지요?
사랑하는 자식에게 가있지 않던가요?
이때 다른 생각이 나던가요?
마치 어린아이와 같이 여러분들도 그 자식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서 별생각 없이 모든 의식과 마음이 사랑하는 자식에 가게 되지 않던가요?
수행도 마찬가지랍니다.
이럴 때 한번 나의 [몸]과 [생각]과 [의식]과 [마음]을 잘 관찰을 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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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다못해 그토록 가지고 싶던 어떤 물건을 손에 넣었을 때에도 그 물건에 모든 의식이 빼앗기지 않던가요?
거기서 다른 생각이 나던가요?
나의 의식과 마음은 모두 그 물건 쪽으로 가게 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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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가면 [의식]도 따라가고..
[몸]이 가면 [생각]도 따라가고..
[몸]이 가면 [마음]도 따라가고..
[생각]이 가면 [의식]도 따라가고..
[생각]이 가면 [몸]도 따라가고..
[생각]이 가면 [마음]도 따라가고..
[의식]이 가면 [몸]도 따라가고..
[의식]이 가면 [생각]도 따라가고..
[의식]이 가면 [마음]도 따라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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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어떤 것을 하려고 마음먹었을 때에도..
[마음]이 가면 [의식]도 따라가고..
[마음]이 가면 [몸]도 따라가고..
[마음]이 가면 [생각]도 따라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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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을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이 움직이면 제일 먼저 의식이 반응을 하지요?
그리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고는 "꼭 이겨야 되겠다"라는 마음도 들고,
반대로 "이번 판은 졌다" 하는 마음도 듭니다.
이때 생각이 "이겼다" "졌다"를 판단하던가요?
아님
몸이 "이겼다." "졌다."를 판단하던가요?
아님
의식이 "이겼다." "졌다."를 판단하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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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을 받아보면 많은 분들이 의식과 생각과 마음을 많이 헷갈려 하신답니다.
그 이유는 어렸을 때에는 누구나 친하게 지냈던 의식과 마음은 나 몰라라 하고 그동안 살아오면서 생각하고만 놀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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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의 기능은 어떠한 판단이나 결정의 영역이 아니랍니다.
머리의 기능은 기억하고 분석하고 저장하고 계산하고 다시 기억해 내는 역할 외에는 없답니다.
컴퓨터에 무슨 감정이 있고 감성이 있겠습니까?
어떠한 감정이나 감성이나 판단이나 결정은 모두가 마음의 영역이랍니다.
화가 났을 때 머리가 화를 내던가요? 몸이 화를 내던가요? 의식이 화를 내던가요? 아님 마음이 화를 내던가요?
뭐를 먹고 싶을 때에도 머리가 먹고 싶어 하던가요? 몸이 먹고 싶어 하던가요? 의식이 먹고 싶어 하던가요? 아님 마음이 먹고 싶어 하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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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어머니에게 이런 전화가 왔습니다?
"여기는 신촌에 있는 세브란스 병원인데요. 댁에 아드님이 교통사고를 당해서 지금 응급실에 실려왔는데 의식이 없고 아주 심각한 상태입니다. 빨리 병원으로 오셔서 수속 절차를 밟아주셔야겠습니다."
그래서 이 어머니는 설거지를 하다 말고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으로 가는 중입니다.
이때 차 안에서 병원에 가는 동안 그 어머니는 몸이 불안할까요? 머리가 불안할까요? 의식이 불안할까요? 마음이 불안할까요?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응급실로 달려갔는데 아들 머리 위에 하얀 천이 덮여 있는 거예요?
천을 젖혀보니 아들이 죽어 있는 겁니다.
이때 그 어머니는 몸이 아플까요? 머리가 아플까요? 의식이 아플까요? 마음이 아플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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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과학자가 있습니다.
그동안 수십 년 동안 연구해온 것이 있었는데 오늘에서야 바짝 하면서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이때 반짝하는 아이디어는 몸에서 왔을까요? 머리에서 왔을까요? 의식에서 왔을까요? 마음에서 왔을까요?
머리라고 답하시는 분들은 아직도 헤매고 계시는 거랍니다.
왜냐하면 머리의 기능은 기억하고 분석하고 계산하는 기능은 있어도 알아차리는 기능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발명품(창조)은 지식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지혜에서 오는 것이랍니다.
지식에서 오는 거라면 이미 있었어야 하겠지요?
지식은 이미 있는 것을 배우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개발이나 창조는 기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랍니다.
그래서 반짝하는 아이디어나 개발이나 창조 등은 생각으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것이고요.
왜냐하면 생각은 일정한 틀 안에서 하는 것이라 그렇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큰 회사에서도 개발자들이나 과학자들에게 정해진 틀 안에서 벗어나라고 자유로운 환경을 제공해 주는 것이고요.
그리고 생각으로 계산을 하거나 분석을 하거나 생산을 하는 직종들은 사무실이나 현장 안에 가두어서 일을 하게 하는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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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집중을 해야 하거든요.
집중을 하지 않으면 계산이나 분석이나 생산이 제대로 안되니까요.
그리나 개발이나 창조는 일정한 틀 안에 가두어 두면 금방 망각하게 된답니다.
왜냐하면 개발이나 창조는 생각의 영역이 아니라 마음의 영역이라 그렇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이를 두고 [창조주 하나님]이라 표현을 하는 것이고요.
그러나 현재의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진리를 그저 신들의 영역이라 착각하고 있는 것이고요.
본인이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답니다.
미안하지만 불교 쪽도 마찬가지이고요.
불성(성령)의 영역은 신의 영역이 아니라 바로 여러분들 자신의 영역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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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창조와 개발은 본성의 영역이랍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들은 지식으로는 힌트를 줄 수는 있어도 창조는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생각으로 창조를 하겠습니까?
지식은 배움에서 오는 것이지만 지혜는 경험에서 오는 것인데요.
배움이란 이미 있는 것을 배우는 것인데 이미 있는 것이 어떻게 개발로 볼 수 있고 창조라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우리들의 마음은 수십 억겁 무량겁을 통해서 저장된 경험이 있는 것이고 이것을 개발해 쓰는 것이 우리들의 목표이기도 하답니다.
몇 살도 안 된 어린아이가 배우지도 않은 글들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하는 것들을 보세요?
이 아이들이 어디서 배워서 하겠습니까?
물론 아무리 길어도 십대가 넘어가면 마음에 때가 묻어가면서 이러한 현상들은 없어지지만 이러한 현상들을 두고 알아차림이라 한답니다.
이 아이는 이미 전생부터 하던 것이라 아는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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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생각에 의식을 두면 마음도 좋아집니다.
나뿐 생각에 의식을 두면 마음도 나빠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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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구리를 누가 뒤에서 찌르면
"몸이 누구야" 하던가요?
"생각이 누구야" 하던가요?
"의식이 누구야" 하던가요?
"마음이 누구야" 하던가요?
잘 관찰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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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에 따라 잘 관찰해 보시면 이 넷은 같이 반응을 할 때도 있고, 셋이 같이 반응을 할때도 있고, 둘이 같이 반응을 할때도 있고, 혼자 반응을 할때도 있답니다.
잠을 잘 때도 꿈을 통해서 이놈들은 같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놀고 있답니다.
꿈을 꿀 때에도 의식과 마음은 쉬지를 않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답니다.
몸과 생각은 쉴 때도 있지만 의식과 마음은 24시간 쉬지도 않고 자기가 할 일을 하고 있답니다.
의식과 함게 몸과 생각은 많이 움직이면 쉽게 피곤해지지만
의식과 마음은 아무리 많이 움직여도 피곤해 하질 않습니다.
이렇게 의식은 이 셋이 가는 곳마다 따라다닌답니다.
그래서 병원에서도 숨이 끊기고 의식이 없으면 "돌아가셨습니다" 하는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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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마음은 아무리 많이 퍼서 써도 줄어들질 않는답니다.
[몸]은 기계와 같습니다.
[생각]은 컴퓨터와 같습니다.
[의식]은 레이더와 같습니다.
[마음]은 거울(운영자)과 같습니다.
거울은 알아차림의 능력이 있답니다.
거울 입장에서 보면 앞에 어떤 것이 비추던 다 알아차리지 않던가요?
이 알아차린 것들이 생각으로 가면 컴퓨터처럼 기억하고 분석하고 계산하는 것이고요.
이것이 다시 마음에 비추면 마음은 판단을 하고 결정을 해서 몸을 움직이게 합니다.
아무리 컴퓨터라 해도 운영자가 없으면 스스로 기억하고, 자료를 저장하고, 분석하고, 계산할 수 없습니다.
AI(인공지능)가 나왔다 하지만 운영자가 입력해 주지 않으면 또는 전선 하나만 끓어도 이 또한 바보가 됩니다.
그리고 의식은 몇 군데로 나눌 수도 있답니다.
예를 들면 운전을 하면 의식은 앞을 향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차 안에 있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쪽으로 의식을 보낼 수도 있고,
음악을 듣는 쪽으로 의식을 나누어서 둘 수도 있습니다.
오케스트라 지휘자는 모든 악기 소리에 의식을 나누어서 보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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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의식과 마음은 항상 세상을 레이더처럼 비추어보고 있답니다.
의식을 레이더의 빔(빛)이라 한다면
마음은 그 빔(빛)을 통해 비추어지는 모니터 화면이라 할 수 있답니다.
누가 부르면 의식은 그쪽으로 갑니다.
그리고 마음은 모니터 화면처럼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그 화면을 보고 생각은 작동을 하지요.
생각은 육체의 영역이지만 마음은 본성의 영역입니다.(※)
그리고 생각하기 이전의 마음은 이미 알아차림 상태랍니다.
그래서 옛 분들은 생각 이전의 나를 보라 하는 것이고요.
말도 마찬가지랍니다.
말도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지요.
물론 생각으로 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생각 또한 이전 자리는 마음입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라는 생각 또한 마음에서 판단을 하고 결정을 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옛 분들은 말 이전의 자리를 보라고 하는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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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무의식 속에서도 우리의 의식과 마음은 레이더처럼 여기저기를 비추어보고 있답니다.
상담을 받아보면 가장 많이 헷갈려 하는 것이 [의식]과 [생각]과 [마음] 이였는데요.
[의식]을 [생각]으로 보시는 분들도 많았고?
[의식]을 [마음]으로 보는 분들도 많았고?
[마음]을 [생각]으로 보시는 분들도 많았답니다.
이렇게 되면 부처님처럼 높은 수준의 후 공부를 해 나갈 수가 없답니다.
왜냐하면 레이더처럼 의식으로 모든 세상을 비춰야 마음으로 알아차릴 수가 이는데 의식과 마음을 모르면 이는 마치..
어렵게 운전면허증을 따고 벤츠 자동차까지 구입을 했으면 그 자동차로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공부를 해야 하는데?
집 안에서만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갔다가 하면 그것이 뭐가 되겠습니까?
지금도 보십시오? 도인이라 하는 분들이 절 안에서만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만 하지 않던가요?
마음을 모르니까? 길(道)을 모르니까? 절 밖으로 나와서 운전 하기를 꺼려 하는 것과 같답니다.
깨달아서 운전면허증을 땄으면 부처님처럼 세상 밖으로 훨훨 나가서 탁발도 직접 하러 나가고, 상담도 들어주고 하면서 세상과 우주를 비추어보면서 그 이치를 밝히기도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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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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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은 내가 나를 관찰하는 것이랍니다.
내가 어떤 기능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면 어떻게 제대로 된 수행을 할 수가 있을까요?
내가 지금 어디에 의식을 두고 살아가야 하는지?
내가 지금 의식을 두고 있는 곳이 세상인지? 아니면 화두인지? 그것도 아니면 마음인지?
하루에 몇 번 혹은 몇 % 정도를 나의 의식을 마음에 두고 살아가고 있는지?
깨닫기 전의 수행은 이것이 매우 중요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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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에서 수업을 한다고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강사가 앞에서 강의를 합니다.
나의 모든 의식은 강사의 설명에 가있을 겁니다.
칠판으로도 보내야 하고요.
교과서에도 의식을 보내야 하고 의식은 이렇게 매우 바답니다.
그런데 문제는 수업 시간에 의식이 다른 곳으로 가있으면 어떻게 되는 줄 아세요?
의식이 가는 쪽으로 생각도 갑니다.
생각이 가면 마음도 덩달아 따라갑니다.
마음이 가면 몸은 가고 싶어서 안달을 합니다.
이것이 지금 중생들의 삶이랍니다.
수행도 이렇게 하시면 힘만 들 뿐이고요.
그래서 방편으로 의식을 초보자들은 화두나 알아차림으로 두는 거랍니다.
그리고 여기서 머리에 저장되는 것들을 지식(知識)이라 하고
마음이 경험한 것들을 지혜(智慧)라 한답니다.
그리고 사람이 죽으면 머리의 기능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지만 마음에 저장된 것들은 그대로 남아서 다음 생에까지 영향을 주는 것이고요.
그래서 마음이 중요한 것이고요.
제일로 좋은 것은 마음에 것들을 모두 비워내 버리는 것이랍니다.
그러자면 먼저 내 마음을 보셔야 하는 것이고요.
데자뷰(deja vu / 처음 오는 곳인데 낯익다) 현상도 마찬가지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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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살다 보면 처음 와보는 곳인데 익숙한 길이나 물건이 있잖아요?
이때 생각이 그것을 알아차리던가요?
아니면 마음이 그것을 알아차리던가요?
정답은 마음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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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본인이 헬멧도 안 쓰고 오토바이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달리고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오토바이를 몰고 막 달리고 있는데 순간 잡티 하나가 눈으로 들어온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이때 대부분은 순간적으로 눈을 감아서 잡티를 잘 막아 냅니다.
물론 가끔은 실패를 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잘 막습니다.
이때 생각이 이것을 알아차리고 잡아냈을까요? 아니면 몸이 이것을 알아차리고 잡아냈을까요?
정답은 의식을 통해 마음이 알아차린 것이랍니다.
왜냐하면 의식과 마음은 시간과 공간에 구애를 받지 않기 때문에 마음은 이미 그 티끌을 비추어보고 있었기 때문에 알아차렸던 거랍니다.
육체 입장에서 보면 무의식적으로 마음에 비쳤던 것이지요.
그래서 가끔은 무의식적으로 초능력을 쓸 때도 있는 것이고요.
순간적으로 떨어지는 컵을 잡을 때도 많지 않던가요?
이러한 현상이 몸의 기능이 발달돼서 그런 것 같으세요?
아님 생각으로 이런 것을 알아차리고 잡아내는 것 같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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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과 마음이 정답이랍니다.
이 무의식을 의식적으로 화두나 알아차림 쪽으로 강제로 돌리는 것이 수행인 것이고요.
몸의 기능과는 상관없이 나의 의식과 마음은 여러 곳을 비추어 보고 있답니다.
이것을 내가 원하는 쪽으로 비추어보고 알아차리는 것이 수행이랍니다.
깨닫기 전에는 의식을 마음이나 화두 쪽으로 두고 알아차리는 것이고,
깨닫고 나서는 자기가 원하는 쪽으로 의식을 두고 비추어 보고 알아차리는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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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밤에 라이트를 켜고 승용차를 몰고 도로 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앞에 고라니 한 마리가 내 승용차 불빛을 보고 꼼짝을 안 하고 있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이때 고라니는 "저것이 뭐지?" 하면서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아니면 마음이 굳어 있을까요?
생각은 전혀 없을 겁니다.
마음만 굳어 있을 뿐이지요.
사람도 마음이 겁을 먹고 굳어있으면 생각이고 몸이고 다 굳어 버린답니다.
극도로 궁금하거나 집중해 있으면 아무 생각이 없고요?
여기서 극도로 궁금한 것을 응용한 것이 간화선이랍니다.
그래서 간화선을 의심(의문)을 가지고 들어가는 선(禪)이라 하는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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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니는 지금 라이트 불빛을 보고 "저것이 뭐지?" 하면서 생각이고 뭐고 온몸이 얼어붙어서 아무 생각이 없는 거랍니다.
그래서 때로는 머리로 들이박기도 하는 것이고요.
그래서 간화선은 이런 식으로 집중해서 간절히 해야 하는 거랍니다.
여러분들도 몇 번씩은 경험이 있지 않았나요?
도망가려고 달리기를 해도 공중에 붕 떠서 달릴 수가 없었던 경험이요?
아니면 꿈에서라도 있지 않았었나요?
제 경우는 어렸을 때에는 하도 말썽만 부리고 다녔던 경우라 안 맞으려고 도망 다닌 적이 많았었는데요.^^
도망갈 때에는 아무 생각도 없답니다.
오로지 무작정 잡히기 전에 튀는 게 장땡이지요.
이럴 때에는 아무리 달려도 구름 위에서 붕 떠서 달리는 기분이라 마음은 더 조급해진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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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연인이 생겼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잠자리에 들었는데 온통 그 연인 생각뿐입니다.
이때 나의 의식은 모두 그 사람 쪽으로 가 있지요.
그리고 생각을 합니다.
생각만 해도 마음은 즐겁습니다.
안 그런가요?
그리고 몸의 기능은 심장과 혈액 순환이 빨라지면서 잠을 자기는 다 틀렸습니다.
몸에 해당하는 심장은 뛰고 핏줄은 꿈틀거리지요?
마음도 덩달아 흥분을 하고 즐거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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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이 지금 큰 학교 운동장에 서 있습니다.
운동장에서 눈을 감고 한 번 걸어보세요.
그러면 모든 기능들은 앞이 안 보이기 때문에 총 비상이 걸린답니다.
이때 나의 [몸]과 [생각]과 [의식]과 [마음]을 분리해서 점검해 보세요.
눈을 감고 걸으면 이 넷은 총 비상이 걸리기 때문에 각각이 따로따로 바빠진답니다.
몸은 몸대로 오싹오싹하면서 긴장이 될 것이고요.
생각은 아예 정지가 돼 있을 겁니다.
그리고 마음은 앞을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에 묵직할 것이고요.
의식은 밖을 비추어 보려고 왔다 갔다 하면서 제일로 바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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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몸]과 [생각]과 [의식]과 [마음]은 상황에 따라서 어떤 것이 먼저 움직일 때도 있고 또 어떤 것은 나중에 움직일 때도 있답니다.
몸이 먼저 움직이면 의식과 마음과 생각이 뒤따라올 때도 있고요.
생각이 먼저 움직이면 의식과 마음과 몸이 뒤따라올 때도 있고요.
의식이 먼저 움직이면 생각과 마음과 몸이 뒤따라올 때도 있고요.
마음이 먼저 움직이면 의식과 생각과 몸이 뒤따라올 때도 있고요.
그런데 문제는 어느 것이 되었건 이 네 가지 기능 들은 동시에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구분해 내기가 어려울 수가 있다는 것인데요.
그러나 조금만 집중해서 노력해 보시면 금방 구분해 낼 수가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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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기계와 같습니다.
수시로 기름을 먹여주고 고쳐주고 조여줘야 녹슬지 않습니다.
생각은 컴퓨터와 같답니다.
기억을 저장하고 분석하고 계산하는 기능이 있지요.
의식은 레이더와 같습니다.
동서남북 어디든 다 비출 수가 있습니다.
마음은 거울과 같습니다.
마치 거울 앞에 무엇이 비치면 다 받아들이듯이 다 알아차린답니다.
그리고 의식과 마음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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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시절을 의식을 보내면 생각도 마음도 그 시절로 갑니다.
그리고 직장에서 집에 있는 주방으로도 의식을 보내면 생각도 마음도 주방으로 갑니다.
이렇게 의식과 마음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합니다.
부처님은 앉아서 의식을 통해 본성(불성/성령/마음) 자리로 삼천 대천세계를 모두 비추어보시고 알아차리셨는데요.
이렇게 알아차린 내용들을 제자들에게 들려주셨고,
이렇게 전해 들은 내용들을 기록해 놓은 것이 팔만대장경이랍니다.
태양계의 자전과 공전 등을 알아차리시고 제자들에게 설하셨고,
은하계의 자전과 공전 등을 알아차리시고 제자들에게 설하셨고,
우주 곳곳에서 살아 숨 쉬는 중생들을 알아차리시고 제자들에게 설하셨고,,
우주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수많은 보살들도 알아차리시고 제자들에게 설하셨답니다.
이 지구의 것들도 우주 속에 속하는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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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견성(깨달음)의 본성이 마음이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까.]
에 대한 답변인데요.
맞습니다.
견성이 곧 본성의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마음은 중생의 마음이 있고 불성의 마음이 있답니다.
견성이란 본성의 마음을 아는 것이고 성불이란 중생의 마음에서 불성의 마음으로 바뀌는 것을 말하는 것이랍니다.
견성은 현재 이 순간 의식이 깨어서 알아차려보십시오.
성불은 마음을 내려놓고 비우고 버리셔야 하고요.
이것을 한문으로 표현한 것이 "피안의 언덕에 도착했다"라는 뜻으로 도피안(到彼岸)이라 한답니다.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즉 중생의 마음에서 불성의 마음으로 건너간다는 것이 성불이라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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