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를 마치고 의자 빼고 일어날 때, 달달한 꿈에서 깬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든다. 나눈 이야기가 재밌을수록 걱정이 크다. 요걸 어떻게 잘 담아낸담! 한영번역가 호영과 인터뷰를 끝내고 든 첫 생각은 ‘버릴 문장이 하나도 없는데 어쩌지’였다.
호영은 웹툰 번역가이기도 하다. 웹툰 플랫폼 회사의 미주콘텐츠 부장으로 일한다.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가 시 번역가 인터뷰 산문이므로, 그의 웹툰 번역 부분을 많이 덜어냈다. 그중에 좋았던 부분. 호영은 처음엔 아르바이트 삼아 영상 번역부터 시작했는데 처우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1분 당 2천원 정도였던 거 같아요. 처음엔 곱하기 60분 하면 몇십만 원 정도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1분 정도 자막을 번역하는데 정말 한 시간이 넘게 드는 거에요. 예능은 특히 1분당 사람들이 굉장히 많은 말을 하고, 또 한국어 예능은 자막도 있고 효과음도 있죠. 자막의 특성상 공간이 제한돼서 취사 선택을 하고 생각을 굉장히 많이 해야 하는데 평가 절하되어 있어요.”
나도 예능 자막은 쉬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세상 일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남의 업무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넘겨짚지 말아야지 싶었다. 호영은 웹툰 번역이 포멀한 문서 번역과는 다르게 ‘재미를 줘야 되는 글쓰기’라서 번역가가 좀 유머 감각이 있어야 되고 글이 지루하면 안 된다고 했다.
“한 회차가 짧아서 길어봤자 한 700단어 정도인데, 핸드폰을 보다 보면 어디로든 튈 수 있는데 이 독자들을 붙잡아둬야 하니까 흐름이 끊기면 안 돼죠.”
“호영 쌤은 어떠세요? 유머가 있는 편인가요?”
“저는 제가 그렇게 재밌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서, 번역보다는 검수자 역할로 잘 맞는 것 같아요. 번역 검수자의 역할도 중요한 게, 검수자가 레퍼런스를 모른다거나 좀 고리타분한 사람이면 또 자기가 이상하게 고치거든요.”
그치그치. 창작 분야에서 고루한 사고의 상사를 만나면 개인의 불행과 조직의 비극의 시작이다. 번역 검수자로서 호영의 기준은 이렇다.
일단 ‘가독성’. 읽었을 때 개성적인 건 괜찮은데 어색해서 또는 오역이라서 튀어나오는 건 안 된다. 그리고 ‘정확성’, 오역이 없는지 작가의 의도를 잘 살렸는지 확인한다. 꼭 단어를 1:1 대응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니라 타겟 독자를 생각하면서 번역을 했는지가 중요하다. 그게 가독성이랑 정확성이 같이 겹쳐지는 부분이다. 마지막으로는 ‘창의성’. 웹툰은 문화적인 맥락이 굉장히 함축되어 있어서 번역이 어려운데, 이걸 어떻게 재치 있게 번역 했는지 확인한다.
이것은 웹툰 번역만이 아니라 논픽션 글쓰기에도 해당되는 기준이라서 나는 크게 공감했다. 그리고 ‘언어의 경제성’ 면에서 웹툰 번역과 시 번역은 맞닿아 있었다. 호영은 웹툰 번역이 자신이 하는 다른 번역에도 좋은 영향을 끼쳤다고 했다. 가령 이런 거다.
“웹툰은 매일매일 여러 개를 마감해야 되거든요. 제가 번역 검수를 담당했을 때는 하루에 적어도 최소 다섯 에피소드에서 많을 때는 20개까지도 했었어요. 진짜 양이 많잖아요. 그러면 내가 이걸 붙잡고 있으려면 몇 시간씩 할 수도 있는데, 그런 시간이 없으니까 그냥 내려놓는 걸 많이 배웠어요. 프리랜서나 문학 번역만 했다면 제가 이렇게 빨리 터득하지는 못했을 거예요. 웹툰 번역은 완벽주의자들을 끌어모으지만 동시에 그 사람들에게 더 자유로워지고 그냥 이 시간 안에서 최선을 다했으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걸 가르쳐주는 것 같아요. 그리고 붙들고 있는다고 해서 엄청 좋아지지도 않아요.(웃음)”
내말이 그말이다. ‘내려놓는 법’도 ‘붙드는 법’ 못지 않게 작가에게 필요한 능력이다. 번역가이면서 직장인이라서 일에 관한 이야기도 좋았지만, “퀴어나 인종, 페미니스트 정치에 대해 논의하고 싶어서 번역을 한다”고 한 호영의 삶과 시 이야기는 또 그 자체로 인권텍스트다. (자세한 내용은 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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