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망 野望
ㅡ글이 너무좋아서 메모는 해두었는데 누구 작품인지 모르겠다ㅡ
야망(野望),
이 말에는 언젠가는 실현되어야만 하는 꿈이 어른거린다.
야망은 저 혼자 나온 말이 아니다.
야심(野心)이란 말이 있고, 야욕(野慾)이란 말도 있다.
야생(野生)이란 말이 있고 야수(野獸)라는 말도 있다.
야비(野卑/野鄙)라는 말이 있고, 야합(野合)도 있다.
야망의 원 뜻을 풀어보면 '들판을 바라봄'이란 의미다.
들판을 바라보는 일이 왜 꿈이 되었을까?.
들판에는 아주 오래된 인간의 기억이 숨어있다.
산목야초(山木野草).
태초의 인류는 이 차이를 발견했다.
나무는 크고 풀은 작다.
인간은 어디가 더 안전할까?.
산이다. 숨기좋고 도망가기 좋다.
그래서 처음엔 산에서 살기 시작했다.
산 열매들을 채취하고
토끼나 다람쥐같은 작은 짐승들을 잡아 먹으며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들판에 내려와 보았다.
들판에는 풀이 가득하고
초식동물들이 풀을 뜯어먹고 살고 있었다.
산에 있는 나뭇잎들은 뜯어먹기는 곤란한 것들이 많지만
들에 있는 풀들은 잘 섭취되는 부드러운 것들이 많다.
들판엔 훨씬 먹을 거리가 많았다.
그러나, 거기엔 전투와 전쟁이 벌어지는 곳이었다.
들판에 내려온 인간이 처음으로 먼 데까지 바라보면서 심호흡을 하며 느꼈던 그 감정이 바로 '야망(野望)'이다.
자신이 지형에 의해 감춰지지 않는 자리.
오직 믿을 것은 자신을 잡아먹기 위해 달려온
먹이사슬 상위를 빨리 발견하고 더 빨리 도주하는 능력.
먹이는 풍부하지만,
늘 죽음을 염두에 둬야 하는 새로운 입주처.
그것이 들판이었다.
인간의 눈에 들어오는 들판을, 시야(視野)라고 한다.
이 시야에는 먹을 것과 위험이 함께 존재하고 있었다.
넓게 보고 멀리 볼수록 먹을 것이 많아지고 안전해진다.
인간의 야망은 무엇이었을까.
지금은 들판의 법칙에 지배받지만
나중엔 들판에 법칙을 새로 세우는 지배자가 되리라.
이것이 야망의 원형일 것이다.
야생(野生)은
들판에서의 삶에 대한 규정이며 인식이다.
야수(野獸)는 야생에 최적화되어 있는 상위포식자였다.
인간에게 야수는 공포이자 매력이었다.
공포였던 것은 먹히는 일의 끔찍함이었고,
매력이었던 것은 자신이 그 포식자의 포식자,
야수의 야수가 되겠다는 의욕이었다.
이것이 정상적인 대결일 필요는 없었다.
들판의 법칙은 승리가 최고임을 보증해주었다.
어떻게든 승리하는 것, 그것이 야욕(野慾)이었다.
야욕으로 결합해 승리를 쟁취하는 게 야합(野合)이었다.
속이고 뒤통수치고 자는 데를 덮치고
가차없이 죽이는 모든 선택들을 야비(野鄙)라고 했다.
이런 기질들, 이런 삶의 양상들을 야성(野性)이다.
힘의 질서이며, 빠름의 질서인 생존의 경쟁들.
야심(野心)에는 도덕이 없었고, 기준도 없었다.
오직 승리와 생존만이 정의였으며 가치였다.
그 긴장의 들판에서 멀리 넓게 바라보고 있을 때,
심장은 쿵쾅거렸다. 그것이 야망이었다.
그 바라보는 것이 하늘처럼 환할 때는 희망(希望)이었고,
한낮의 태양처럼 뜨거울 때는 열망(熱望)이었다.
들판의 끝에서 더 나아간
끝을 바라보고자 하는 마음이 전망(展望)이었다.
갑자기 앞이 가려졌을 때가 실망(失望)이었고,
앞이 캄캄해져서 더 이상의
판단이 불가능한 불안의 상태가 절망(絶望)이었다. 들판에서는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이 곧 죽음을 의미했다.
인류는 들판에서 결국 승자가 되었고,
들판의 문명을 만들어냈고, 들판을 새롭게 일궈서
인간만의 판인 '세상'이란 버전으로 업데이트를 했다.
야수들을 애완이나 반려의 존재로 순치시키거나 죽였다.
야망은 인류와 야수들 사이에만 존재했던 건 아니다.
인류가 만들어낸 문명과 국가들 사이에도,
사회 구성원이 되는 사람들 사이에도
야망은 그 이름을 달리하며 늘 우리 곁에 있었다.
6ㆍ25전쟁 이후로
한국 사회는 야망이 넘치는 사람들의 무대였다.
아니, 야망 없이는 생존하기 힘든 사회였을지도 모른다.
한강의 기적은 전쟁의 폐허 위에서 쌓아 온 금자탑이다.
들판에 처음 나왔을 때 바라보던 까마득한 시야를 가지고 야성 속에서 삶을 이루던 기질의 원형을 복원한 결과다.
들판의 공포 속에서 스러져 간 사람들도 많았지만,
이 들판에서 살아남은 승자들은
끝이 없는 의욕으로 시야를 넓혀 왔다.
야망(野望), 야인(野人)의 꿈, 들판에 선 인간,
죽음을 각오하고 삶을 질주해온 한국인들의 자화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