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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01. 02
정부가 문재인 대통령 임기말을 맞아 국정을 다잡아 보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과 함께 개각과 청와대 개편을 동시에 추진하기 시작했다.
특히, 새해 벽두 출범하는 공수처 배경을 놓고 명암이 교차하는 가운데 이 기구가 오히려 권력 비리 수사를 막는 ‘정권 수호처’가 될 수 있다는 의구심과 관련, 정국의 초점이 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초대 공수처 처장에 판사 출신인 김진욱 헌법재판소 선임연구관을 내정했다.
공수처는 판사·검사·경찰 등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에 대한 수사권과 영장 청구권에 기소권까지 부여해 헌법기관들을 통제할 수 있도록 했고, 여기에다 검찰 등이 수사 중인 사건을 가져다 덮어버릴 수 있는 수사이첩요청권까지 가진, 가히 무소불위의 기관에 다름아니다.
그러나, 국민들이 과연 대통령의 영향력 아래 놓인 공수처장의 중립성을 믿어줄지는 의문이다. 공수처법 위헌 여부에 대한 헌법재판소 판단이 아직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여권이 처장 후보 추천을 밀어붙인 것은 국정 혼란을 감안하지 않은 인사 독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립성 보장이 관건
문 대통령은 이제 레임덕으로 이어질 엄중한 상황을 맞고 있다. '친문(親文)' 돌려막기 인사로는 결코 국정난맥을 수습하기 어렵다.
헌법에 근거가 없는 공수처가 헌법기관들을 통제하고 무력화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 공수처가 출범하면 정권의 눈 밖에 난 검사·판사 등을 수사하고 수사 이첩 요청권을 동원해 권력 비리 의혹을 덮어버릴 수 있다.
이는 엄청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들이다. 부당한 행정처분의 즉각적 교정이 불가능해져 불법적·자의적 행정처분은 남발될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 많다. 그런 현실이 닥친다면, 이것은 법이 아니다. 법의 허울을 쓴 폭력일 뿐이다.
따라서 중립성이 보장되지 않는 공수처라면, 당초 약속과 어긋나기 때문에 결자해지 차원에서 철회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선거에서 민심의 심판을 받는 것은 물론 역사의 단죄를 면치 못할 수도 있다. 우려는 그렇게 넓고 깊은 상태로 보인다.
퇴임 후 안전보장용 구태 반복 말아야
그렇지 않아도, 문재인 정권의 법치 파괴 행태는 이미 점입가경이다.
검찰 수사권 전면 박탈 의도, 검찰총장 탄핵 추진, 추미애 장관과 다름없는 ‘여당 의원’ 장관 내세우기 등을 지적치 않을 수 없다. 개혁 조치로 호도하지만, 정권 연루 범죄(犯罪) 수사를 틀어막고, 또 대놓고 자행할 길을 여는 조치들임을 이제 국민 대다수가 안다.
이런 흐름속에서 정권의 입맛에 맞는 공수처가 출범할 경우 악용되지 않는다고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살아 있는 권력에 약하고 죽은 권력에 강한 검찰의 구태를 반복하지 말아야 비로소 공수처의 존재가치가 있다. 검찰과 별반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을 듣는 공수처라면 차라리 없는 게 낫다.
문 대통령의 최종 후보 추천이 마무리됨에 따라 공수처는 이르면 1월 출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사청문회가 최대 20일 걸리는 점을 고려하면 1월 중순에는 공수처장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의혹과 우려는 짙다. 최근 정국기류로 미뤄 공수처가 내년 초 출범하면 월성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조작 의혹, 청와대의 울산시장선거 개입 의혹, 라임·옵티머스 사건 등의 수사권을 가져가 권력비리 의혹을 덮을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한 실정이다. 오죽하면 “공수처는 권력의 충견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겠는가. 만약, 여권이 문 대통령의 레임덕 차단과 퇴임 후 안전보장용으로 공수처를 추진한다면 '역사의 단죄'를 배제할 수 없다.
'검찰개혁' 고삐 여권 조급성
실제, 큰 문제는 여당이 공수처 출범에 맞춰 검찰 수사권을 없애고 기소권만 남겨두려고 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공수처에 대한 검찰의 견제가 무력화되고 월성원전 등 검찰이 진행 중인 수사도 공수처로 넘어갈 공산이 크다.
또 윤석열 검찰총장은 물론 정경심 교수 유죄 판결과 윤 총장 직무 복귀 결정을 내린 판사들도 직권남용 등 혐의로 공수처 수사 대상에 오를 수 있다. 윤 총장의 직무 복귀와 상관없이 공수처를 조속히 출범시켜 '검찰개혁'의 고삐를 쥐겠다는 여권의 조급성도 이와 연관된다.
여권이 입맛에 맞는 공수처장을 내세워 정권의 비리를 덮고 반대 세력 탄압에 나선다면 법적 논란에 휘말릴 뿐 아니라 선거에서도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최근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이 사상 최저치를 기록한 것도 이 같은 우려와 무관치 않다. 문 대통령이 추미애 법무장관을 포함해 인적 쇄신을 단행하더라도 민심은 더 악화될 것이 뻔하다.
넘어야 할 산(山)…법적 공방 예고
애초 여권이 노린 것은 공정 수사보다 편파 수사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다면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최후 보루인 야당 비토권을 여야 합의를 뒤집고 무력화했겠는가.
여당은 공수처의 견제 장치가 없다는 우려에 대해 ‘검찰이 (공수처를) 수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 놓고 이젠 검찰 수사권을 박탈하려 든다. 야당의 공수처장 비토권마저 이미 없앴다. 공수처를 무소불위 정권 충견(忠犬)으로 만들겠다는 것임을 더 분명히 한 셈이다.
초대 공수처장 후보로 지명된 김진욱 헌법재판소 선임연구관은 친여 성향의 인사로 볼 수 있다. 판사 출신인 김 연구관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법무부 인권국장에 지원한 적이 있다.
최종 후보를 확정하기까지 여야 대립도 극심했다. 여당은 최종 후보 2명을 확정하기 위해 공수처법을 시행도 하기 전에 개정하는 무리수를 뒀고, 끝내 국민의힘 동의를 얻는 데 실패했다. 두 후보 중 누가 초대 공수처장이 되든 ‘반쪽’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된 것이다.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있다. 예상외로 거센 국민의힘의 반발이 그것이다. 국민의힘의 입장은 단호하다. 이미 공수처법 개정안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한 데 이어 의결 무효소송과 가처분 및 위헌법률심사 제청 등 법적 대응도 불사할 태세다. 지리한 법적 공방을 예고한다.
여야 '법적 전쟁' 이미 시작
큰 의미에서 여야 법적 공방은 이미 시작됐다. 법원이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효력을 정지시키고 정경심 교수에게 징역 4년 형을 선고하자 여당이 부당한 행정처분에 대한 즉각적인 법적 구제의 길을 틀어막는 것은 물론 검찰을 수사권 없는 허수아비로 만들려 한다.
여권은 급기야 검찰청을 없애는 법안까지 발의했다. 대한민국 사법 체제를 일거에 전복(顚覆)하는 발상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최고위원회를 열어 당내 '권력기관 태스크포스(TF)'를 '검찰 개혁 TF'로 재편하는 한편, 자신들 입으로 ‘공수처법의 핵심’이라고 했던 야당 거부권을 무력화하는 법 개정을 일방 처리했다. 그리고 닷새 만에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야당 추천위원이 교체됐지만 자료를 검토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회의를 강행했다. 이 모든 게 20일도 걸리지 않았다. 막무가내 속도전이다.
또한, 여당이 강행 처리한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검찰은 내년 1월 1일부터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산업·대형 참사 등 6개 분야 범죄만 수사할 수 있다. 여당은 이 권한마저도 없애 검찰은 기소권만 갖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검찰의 수사권을 박탈하겠다는 것이다. 친문(親文) 세력들은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자녀 입시 비리 혐의 등에 대해 유죄판결을 내린 1심 재판부를 탄핵하자는 청와대 청원 글까지 올렸다. 여권이 법치주의와 삼권분립을 무시하고 폭주하니 그들이 외치는 ‘검찰 개혁’의 정당성이 의심받는 것은 당연하다.
여권의 그 목적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윤 검찰총장의 직무 복귀로 탄력을 받게 될 울산시장 선거 개입, 라임·옵티머스 사기, 월성원전 경제성 조작 등 권력형 비리 수사의 무산일 것이다. 윤 총장을 쫓아내지 못하게 됐으니 검찰이 아예 수사를 못 하도록 하겠다는 속셈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절차적 정당성 논란
그 속셈에 '공수처 신설 의도'가 자리한다는 진단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윤 검찰총장 징계 무산과 관련해 “국민들께 불편과 혼란을 초래하게 됐다”며 사과한 지 사흘 만에 공수처 강행으로 맞받아쳤기 때문이다.
야당의 비토권마저 무력화한 채 대통령 뜻대로 공수처장을 임명하면 정치적 중립성·독립성을 내세운 출범 취지에 어긋난다. 하지만 야당 측 추천위원 2명(이헌 변호사·한석훈 성균관대 교수)이 퇴장한 가운데 나머지 위원 5명의 전원 찬성으로 후보 추천 의결을 강행한 것은 절차적 정당성과 공수처의 중립성 논란을 부를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회의에서 야당 측 추천위원인 이헌·한석훈 위원은 공수처법 개정으로 인한 비토권 박탈을 문제 삼고 추가 후보 추천을 요구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표결에 참여하지 않고 퇴장했다. 끝내 여야가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공수처장 후보 추천이 이뤄진 것은 공수처 중립성 논란이 계속될 여지를 드러낸다. 여당이 주도한 법 개정에 대해선 국민 여론도 ‘잘못한 일’(54.2% · 리얼미터 조사)이라는 쪽이 많았다.
공수처장은 무엇보다 정치적 중립성이 중요하다. 정권은 이미 법 개정을 통해 공수처 검사·수사관의 자격 요건을 낮췄다. 법원이나 검찰 경험도 없는 민변 변호사와 시민단체 출신들이 대거 공수처 검사·수사관으로 임명될 것이다. 여당이 추천하고 대통령이 낙점한 사람이 처장을 맡고 민변 검사들이 그 밑에 포진한 강제 수사기관이 곧 출범하게 되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야당 동의 없는 공수처장 후보 추천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의결 무효 확인 소송,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 및 위헌법률심판 제청 등 모든 법적 수단을 동원해 공수처장 임명을 막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야당의 책임도 있다. 법 개정 후 추가 후보를 추천할 기회가 주어졌지만 이 역시 방기했다. 논의 과정에서는 처장 후보 추천에 반대만 하다가 이제 와서 소송을 불사하겠다니 국민의힘이 정치 공세 외엔 안중에도 없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공수처가 야당이 우려하는 권력의 도구가 되지 않도록 앞으로 있을 공수처 인적 구성에 견제를 집중하는 게 보다 현실적이지 않을까 싶다.
공수처 연원과 민주당 '극약 처방'
공수처 논의의 역사는 1996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참여연대의 부패방지법 입법 청원이 계기가 됐다. 그 후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을 견제하려면 고위 공직자의 부정부패 수사를 전담하는 독립기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작지 않았지만 반발도 커 좀처럼 진전되지 못했다.
다시금 물꼬를 튼 것은 고(故)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었다. 그는 지난 20대 국회에서 공수처 법안을 발의했고, 법안은 수정·보완 작업을 거쳐 지난해 12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됐다. 1년 전 이맘때다.
문제는 민주당이 법안 처리에 급급했던 나머지 야당에 '비토권'을 부여한 대목이다. 공수처장 후보 추천 의결정족수를 야당 2명을 포함한 추천위원 '7명 중 6명 이상 찬성'으로 규정했다. 자충수였다. 야당 위원 2명이 반대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구조인 탓이다.
애초부터 공수처를 반대해온 국민의힘은 그동안 후보 추천위원 선정 보이콧과 독자적 개정안 발의, 라임·옵티머스 특검과의 연계, 초강성 추천위원 2명 선정, 유력 후보들에 대한 반대투표 등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며 저지에 안간힘을 썼다. 급기야 민주당은 극약처방을 선택하기에 이르렀다. 여론의 비판을 감수하고 의결정족수를 5명으로 낮춰 야당의 비토권을 무력화하는 개정안을 강행 처리한 것이다.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에 나섰으나 역부족이었다.
이렇게 서두르는 이유는 짐작이 된다. 정권 불법 수사를 막기 위해서 윤석열 검찰총장을 찍어내려 했는데 법원에서 제동이 걸린 것이다. 공수처가 활동을 시작하면 가장 먼저 검찰이 수사하고 있는 정권 불법 수사를 모두 강제 이관받을 가능성이 있다. 어쩌면 윤 총장에 대한 표적 수사를 시작할지도 모른다.
'정권의 사법 장악' 오해 불식을
이와 관련, 문 대통령은 최근 법원이 윤 총장 직무 복귀 결정을 내리자 “국민들께 인사권자로서 사과한다”고 했다.
대통령이 오랜만에 사과라는 표현까지 썼으니 상식과 순리를 따르는 시늉이라도 보여줄 것이라고 짐작했던 국민들은 공수처 발진 시도와 함께 조금도 변함없는 문 정권의 독주 폭주에 어리둥절할 뿐이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문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은 취임 이후 최저치인 36.7%로 나타나는 등 30% 후반대에 머무르고 있다. 대통령 레임덕의 기준점이 35% 안팎이라는 전문가들의 진단을 감안하면 국정수행 동력이 떨어질대로 떨어졌다는 얘기다.
문 대통령이 이제 실질적으로 일할 수 있는 시간은 1년여 뿐이다. 장관이나 비서진 몇 사람 바꾼다고 국정이 완전히 일신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 스스로가 쇄신의 각오를 다져야 새해 국정 동력이 살아날 수 있을 것임을 강조한다.
문 대통령은 이제라도 막강한 권한을 가진 공수처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가능해지고, '권력 수사를 막기 위한 정권의 사법 장악'이라는 오해도 불식할 수 있는 방안에 앞장서야 한다.
이병도 주필
출처 : 시사오늘(시사ON)(http://www.sisa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