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즐긴 문학 기행/정동윤
가을은
흰 구름 흘러가는 하늘만 보아도,
아파트 화단의 대추나무만 보아도,
유모차 속에 잠든 강아지만 보아도,
남산의 솔숲을 혼자 걸어도
투명한 유리컵의 맑은 물에
먹물 한 방울이 곱게 번지듯
가만히 있어도 가슴이 져려온다
바람이 옷깃만 스쳐도
시어가 맺힐 것만 같은 가을,
우리의 단풍이 아주 길어질 것 같은
건강하고 수려한 가을날
이런 날은
남산의 옛 시인의 노래를 찾아
발품을 팔며 불러 본다
남산의 시비는
남산 도서관 인근의 김소월 시비,
목멱 산장 건너편의 조지훈 시비,
장충동 동국대 입구의 신경림 시비가
있으며 어린이 야구장 위쪽엔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 기념탑이 있다
남산 도서관에서 팔각정 오르는
큰 도로 왼쪽에 있는 김소월 시비엔
시 '산유화'가 적혀있다
시비 앞 작은 마당을 거닐며
김소월의 시를 암송해 본다
초혼, 진달래꽃, 산유화, 못 잊어, 개여울, 예전에 미처 몰랐어요,
먼 후일, 가는 길, 임과 벚, 왕십리, 접동새
친했던 친구의 죽음에 조문하고 와서
그 친구를 그리워하며 적은 초혼은
나의 애송시이기도 하다.
1902~1934 년의 짧은 삶을
우리의 정서를 대변해 주는 많은 시를
남기고 생활고에 지쳐 아편을 술에 타서 마시고는 고통을 잊으며 생을 마감 하였다. 할아버지의 보살핌과
숙모 계희영, 홍명희 가문의 부인 홍단실, 2녀 4남의 자식들, 오산 학교의
스승 김억, 친구 오순, 그리고 광산 일,
동아일보 지국 경영, 배재학당과 일본
유학 등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소월 시비 오른쪽의
가파르고 긴 계단으로 오르면 왼편에
한양 도성의 전시관이 있고 계단을
계속 올라가면 팔각정에 닿는다
중간에 북쪽의 계단으로 내려오면
남산케이블카를 탈 수 있으며
도로 가까이에서 잘 조성된 산책로가
나오고 그 길을 따라 걸으면
한옥의 식당 목멱 산장이 나온다
산장 건너편에
오늘 두번 째 시인이신 조지훈 시비가
보인다. 청록파 시인으로 자연을
우리 민족의 감성으로 노래하고 불교에
깊은 관심을 가지셨다
이곳 시비에는 '파초우'가 새겨져 있다
파초우를 시작으로
완화삼, 사모, 민들레꽃, 승무, 낙화를
연이어 암송해 본다
특히 승무는 암송의 맛이 짜릿하다.
고유의 음률과 잘 선택된 어휘가
낭송의 감정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남산 둘레길로 2.5km 남짓 걸어가면
왼쪽으로 동국대 가는 안내 팻말이
보인다. 들어서면 두 갈래 길이 보이는데 오른쪽의 동국대 본관 방향의
길로 가면 좋다. 동국대에 들어서서
옛날 경희궁의 정전인 숭정전이 정각원
으로 변신하여 불당이 되었다
아픈 역사의 한 부분이다
정각원을 뒤로하고 정문 쪽으로 나아가
장충단 공원 내려가기 직전의
동국대 영내에 신경림 시비가 있고
내려가면 사명대사 동상과 공원으로
통하는 계단이 있다
신경림 시비에는'목계장터'가 새겨져
있으며 시인은 동국대 출신으로
시인 고은과 절친한 사이다. 고은이 만든 진보 문학 단체인 '민족문학 작가회의'에서 고은을 보좌하며 행동대장과 같은 역할을 담당했다. 1989년에는 고은과 함께 방북을 추진하여 판문점으로 가다가 경찰에게 저지당하여 미수에 그치기도 했다. 또 '고은 문학의 세계' 등의 저서를 통해 고은의 업적을 찬양하는 작업에도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신경림 시인의 시
가난한 사랑 노래, 농무, 파장, 갈대
목계장터, 나무1-지리산에서를
암송해 보며 장춘단 공원으로 내려왔다
다시 남산 방향으로 공원을 통과하여
어린이 야구장 오른쪽 계단(336 계단)
을 오르다 보면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
기념탑이 나온다.
신경림의 갈대는 그의 등단 작품이며
오랫동안 암송하여 잘 잊히지 않는
아릿한 시이기도 하다.
세 분의 시인과 한 분의 한글 학자의
삶의 조명해 보며 단점 많은 작가의
삶보다 그들의 작품 세계를 반추하며
공감의 폭을 넓혀보았다
남산 둘레길에 오르면 내가 즐겨 다니는
소나무 힐링 숲에 들러 맨발 걷기로
6 바퀴를 돌고 수돗가에서 발을 씻었다
집으로 오는 길은 날듯이 가벼운 걸음, 걸음이었다.
첫댓글 참 자유로운 영혼이십니다.
네, 자유롭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