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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간 우리 화요일 날 소그룹 모임하시는 우리 소그룹원들이 우리 특송을 준비했습니다. 특송 이후에 말씀 나누겠습니다. 능력으로 우리 소그룹 모임들이 더욱 풍성해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 옆에 있는 분들과 인사 나눠볼까요?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오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오.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니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인데요. 이 말씀은 우리 성도들에게만 유명한 말씀이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이 구절은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고 또 왠지 좀 좋은 것 같고 좀 알려져 있는 유명한 말씀입니다.
근데 만약에 여러분 어떤 사람이 여러분들에게 열심히 구하고 찾고 두드려 보십시오. 그러면 내가 뭐든지 드리겠습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에게 그런다면 어떻겠습니까? 설마 의심할까요? 정말 능력이 있는 어떤 분이 여러분들에게 뭐든지 말만 해봐 구해봐 두드려 봐 찾아봐 줄게라고 말을 했을 때 우리 안에는 아마 굉장히 기쁨이 있을 겁니다.
우리나라 옛날 우리 선조들은 천지신명께 정성을 다해서 뭔가를 간구하는 그런 때가 있었죠. 그래서 자신들이 소망하는 바를 늘 들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추우나 더우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딱 정안수를 떠놓고 이른 새벽에 간절히 그 소망을 빌었던 그게 어쩌면 우리 지금 한국교회의 새벽 기도회가 된 뿌리 역할이기도 한 것 같기는 합니다.
요즘에는 좀 그런 모습이 보기 힘들어졌지만 수능 시험 당일이 되면 교문에다가 엿을 큰 걸 딱 갖다 붙여놓고 기도했던 그런 모습들도 뉴스에 많이 봤었어요. 혹시 여러분들 가운데서 그런 역할을 했던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에는 아마 그거 이제 법으로 이제 그걸 금해놓은 게 아닌가 아니면 좀 다른 방법으로 하는지 모르겠는데 또 수능 기도일이 되면 우리 교회 안에서도 보면 수능 기도회라고 해가지고 아주 그냥 시간 시간마다 그 과목을 위해서 그 과목을 보는 시험 보는 시험 보는 아이들을 위해서 얼마나 목이 터져라고 간절히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물론 이제 약간 이게 잘못하면 기복적인 기도회가 될 수 있겠다고 하는 차원에서 내용들이 많이 수정되고 보완되고 있는 중에 있죠.
어쩌면 믿느냐나 믿지 않느냐나 뭔가 내가 소망하는 바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은 누군가에게 다 있습니다. 그래서 만화나 동화 같은 데에서도 그런 기대를 투영한 어떤 것들을 만들어내기도 하죠.
아라비안나이트에 보면 알라딘이 요술 램프를 딱 문지르면 지니가 나와가지고 세 가지 소원을 들어드리겠습니다. 뭐든지 그런 존재가 등장하기도 하고요. 우리나라 동화에 보면 도깨비 방망이로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 하면 뭔가 탁탁 생겨나는 그런 동화 이야기도 나옵니다.
여러분 그런 상상 혹시 해본 적 있지 않으신가요? 이 지니와 같은 램프가 나에게 있다면 도깨비 방망이가 만약에 나에게 있다면 지금 여러분들은 뭘 하고 싶으신가요? 뭐 나와라 뚝딱 상상의 나래를 한번 펼쳐보십시오.
여러분 근데 예수님이 오늘 제자들에게 구하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오 찾으라 찾아낼 것이오 두드리라 열릴 것이라고 말을 하시는데 이 말씀이 그러면 진입 또는 도깨비 방망이처럼 뭘 구하기만 해 그러면 내가 다 들어줄게 이런 의미로 하신 말씀일까? 여러분 그건 아닌 것 같죠?
도대체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다시금 기억해야 될 그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몇 가지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금 뭔가를 구하는 대상 그 대상이 누구인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뭔가를 구하는 대상, 기도의 대상이 누구인가요?
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운행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까 우리가 찬양으로 고백하였지만 능력이 많으시고 지혜가 끝이 없으시며 우리를 사랑하는 인자하심이 가득하신 분 그런데 그분이 우리의 아버지 되신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보통 사람들이 뭔가를 가지고자 할 때요. 소망하는 바가 있을 때 그 소망하는 바에 자기의 초점이 모아지게 되기 나름입니다.
근데 예수님이 지금 제자들에게 가르쳐주려고 하는 것은 니네가 소망하는 바를 뭐든지 말해봐 다 들어줄게. 이것을 지금 말씀하는 게 아니라 제자들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제자들이 하나님께 무언가를 구하고 찾고 두드릴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 바로 그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아버지 되신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아버지가 자녀에게 뭔가를 주고자 할 때 가장 좋은 곳으로 주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특별히 땅에 있는 육신의 아버지와 하늘의 아버지를 비교하시면서 이야기를 하시죠. 땅에 있는 아버지 좀 능력의 한계도 있고 때로는 자기중심적인 아버지도 있고 또 악한 아버지도 있지만 그래도 자녀가 뭔가를 구할 때 좋은 것을 주려고 하는 그 아버지 하물며 하나님 아버지일까 뭐냐 그게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아무리 약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육신의 부모님은 자녀들을 위하여 헌신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본인은 좋은 것을 먹지도 못하면서 자녀들을 위하여 아끼고 남겨주고 좋은 옷을 입지 못하고 살아가지만 자녀들은 좋은 옷을 입히려고 애쓰고 저도 이제 아버지로서의 지금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데 인생을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이 자녀들에게 내가 해줘야 될 그 사랑을 느끼면서 부모님의 사랑을 더 깊이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내가 철없이 그냥 어머니 아버지의 그 형편이나 상황 상관없이 그냥 필요하면 늘 주세요 라고 말했던 나의 연약했던 모습들.
근데 여러분 부모님은요. 아무리 내가 부족해도 자녀에게 내가 가진 걸 다 내어주면서까지도 자녀들이 뭔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고 또 그렇게 잘 성장하기를 바라는 게 부모의 마음 아닙니까?
그 이유가 뭐냐면 부모 자식이라고 하는 사랑의 관계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래요.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는 우리가 기도자로서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구할 때 소중하게 여겨야 할 것은 내가 요구하는 내가 소망하는 그 어떠한 것 어떤 상황 거기보다 더 앞서서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더욱더 소중하게 우리는 집중해 보아야 합니다. 때로는 자녀들 가운데는요. 부모님과의 관계보다 자기가 필요하는 그 무언가를 더 중요시 여기는 그러한 자녀들이 간혹 있습니다.
성경에도 보면 탕자가 나오죠.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유산을 미리 달라고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둘째 아들은 지금 아버지와의 관계가 더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어차피 나에게 유산을 남겨줄 거니까 그거는 내 거야. 그러니까 아버지 미리 주세요.
유산이 자신의 관심 대상이었습니다. 아직 돌아가시지도 않았는데 자기몫을 유산을 내어 달라고 하는 것은 아버지를 무시하는 행동입니다.
근데 여러분 탕자만 그럴까요?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은지 한번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간구하면서 하나님과 나의 관계에 대한 별로 그 개념은 중요치 않고, 하나님은 단지 마치 지니처럼 내가 열심히 문지르면 도깨비 방망이처럼 열심히 휘두르면 뭔가를 해줘야 되는 그런 대상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도구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셔서 가장 좋은 것을 주기를 원하시는 우리의 아버지 되십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욱더 성장 성숙한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지금 우리의 시선이 내가 소망하는 어떤 것, 어떤 상황 그것이 아니라 그 무엇도 공급해 주시고 그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이룰 수 있는 그 하나님, 그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자녀로 삼아주셨음을 분명히 기억하고, 그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더 소중히 여기는 하나님께 시선을 두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게 먼저 우선이죠. 그렇지 않으면 믿지 않는 사람들과 우리가 별반 다른 게 없는 거예요. 엿을 떡 붙여놓고 간절히 소망하며 기도하는 그 기도와 이 교회에 와가지고 간절하게 자기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애타는 심정으로 온갖 새벽 예배, 수요일 저녁 기도 모든 예배마다 참여하면서 열심히 기도하는 그 기도와 만약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선되지 않는다면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여러분 사람들은 각자 자기의 상황에 따라 구하는 것이 다릅니다. 우리 동역자들이 이렇게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기도 제목이 없는 분이 한 분도 없어요.
때로 이제 가끔 그런 분들이 계십니다. 목사님 기도할 사람들이 많은데 제 기도는 그냥 괜찮아요. 다른 사람 기도해 주세요. 이렇게 말하는 분들이 가끔 계신데, 그분 역시도 기도 제목들이 있어요.
근데 여러분 여러분들이 지금 기도하고 또 추구하는 그 무언가를 자세히 살펴보면 지금 내가 어떤 가치관, 어떤 걸 소중히 여기는지를 발견하게 될 수 있습니다.
2011년에 어떤 중국의 한 고등학교 학생이 최신형 아이폰을 갖고 싶어졌어요. 근데 자기의 형편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근데 이 학생이 최신형 핸드폰을 갖기 위해서 자기의 심장을 내다 팔았어요. 그리고 드디어 자기가 그렇게 소망하던 최신형 스마트폰을 구입했습니다. 얼마나 갖고 싶었으면 자기의 심장을 내놓고 했을까
근데 여러분 그 스마트폰을 얻은 기쁨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서 이상 증상이 일어났고 건장한 학생이었던 그 학생이 나중에는 병원 신세를 지고, 오히려 그 삶이 이제는 심장이 나머지도 망가져버려가지고, 그 가족들마저 그 아이의 병원비를 충당하기 위해서 모든 것들을 다 내어놓아야 할 상황이 돼버렸습니다.
여러분 내가 원하는 것을 얻었다 그러면 다 오케이인가요? 때로는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그 무언가가 얻어졌을 때 내게 유익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는 것들도 생각보다 많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기도하는 기도의 제목들을 한번 살펴보십시오. 어떤 분들은 건강을 위해 기도합니다. 근데 건강을 회복하게 하셨더니 어떤 일이 일어나나요? 주말마다 여행 다니는 거예요.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되길 원하십니다.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됐더니 이제는 딴 데 눈을 팔기 시작합니다.
사람은 무엇을 구하는가를 보면 그 사람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그 가치를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명예를 아주 중요하게 여깁니다. 가난하더라도 명예를 끝까지 붙들고 명예롭게 살아가는 것이 우선입니다.
또 어떤 이들은 권력욕에 빠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 권력을 얻기 위해서 어떻게든지 옆에 있는 사람들의 그러한 힘을 모으고 세력을 만들어 갑니다.
또 어떤 이들은 재물을 구하며 살아갑니다. 재물이 최고의 가치라고 돈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그래서 돈을 구하며 살아갑니다.
여러분 우리는 지금 무엇을 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구하라고 하고 있을까요? 먼저 성경에서는 우리에게 하나님 아버지를 구하라고 이야기합니다.
역대상 16장 11절 말씀 한번 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아멘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찾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도 신약에 보면 마태복음 6장 33절에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말씀이시죠.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어떤 뜻을 가지고 계신지, 또 하나님이 무엇을 하길 원하시는지 구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구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능력을 더하여 주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지금 추구하는 무언가가 있어서 비록 그것들을 얻는 인생이 된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없다면 우리는 허망한 인생이 되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비록 빈곤하고 연약하고 아프다 할지라도 내 삶 가운데 늘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삶을 살아간다면 그 가운데 이 세상에 줄 수 없는 풍성한 삶을 살아가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는 그걸 분명히 기억하고 믿는 성도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며 하나님께 더욱더 가까이 가는 그러한 삶을 살아가기로 결단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거예요.
주일날 이 시간에 솔직히 얼마나 더 자고 더 하고 싶은 일들이 많으십니까? 근데 여러분 주일날 왜 이렇게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나요? 하나님을 찾는 겁니다. 몸만 왔다 갔다 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들 이 시간 하나님을 진정으로 찾고 구하고 만나고 가는 우리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 늘 만나주시고 여러분들과 대화 나누길 원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잖아요. 하나님은 이러한 자들에게 기뻐하실 뿐만 아니라 상을 주시는 이시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 말씀 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아멘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는데 우리도 모르게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잃어버린 채 그냥 형태적인 그러한 만남만 가지고 있다면 이거는 지금 심각하게 우리 자신을 리셋해야 됩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미 허락하신 풍성한 삶을 발견해 가는 과정이 신앙의 여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어디서 떨어졌는지 생각하고 회개하라. 처음 행위를 가지라.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혹 여러분들 안에 지금 미지근한 신앙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들이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지금 당장 내 눈앞에 떨어져 있는 어떤 문제에 급급한 그러한 나의 모습들이 있다면, 우리의 잃어버린 사랑을 다시 한 번 회복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문제에 내 시선을 빼앗겨버리고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그 무언가에 함몰되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홀해졌다면 먼저 그 관계를 회복하는 것을 우선순위로 삼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요한계시록 3장에 나오는 예수님이 물 두드리는 그 모습이 연상되는 말씀이지요. 요한계시록 3장 20절 말씀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하나님은요 늘 우리의 마음에 노크하고 계십니다. 더욱더 우리와 친밀한 교제를 나누기를 원하십니다. 함께 먹고 마시고 더불어 가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한 주 한 주, 하루하루의 시간 시간 속에서 더욱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일에 힘쓰고 애쓰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마지막 부분에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늘 아버지께 무엇을 구해야 할지를 딱 한 가지로 요약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뭘까요?
성령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으로 너희에게 주실 것인데,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그러니까 가장 좋은 것이 뭐라고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성령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는 변화된 삶을 살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게 내 의지, 내 노력, 내 결단만으로는 도무지 우리가 이 깨어진 세상 속에서 이룰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온전히 살아가기 위해서는 내 힘과 내 능력을 벗어나 있기 때문에 우리를 도우실 분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너무 잘 아시는 하나님은 이미 그 성령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줄 믿습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서 역사하실 때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온전하게 살아갈 능력을 입습니다. 성령이 내 안에 임하시면 내가 하나님 앞에 우리의 죄를 깨닫게 되고 우리 안에 있는 죄의 문제를 회개케 하시고 다시금 거듭난 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도록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주시는 분임을 기억하길 원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부활하신 이후에 승천하실 때에도 또다시 말씀하시죠.
성령을 기다리라.
사도행전 1장 8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아멘
여러분 우리는 증인입니다. 먼저 우리가 신앙을 갖게 된 이유는 증인된 삶을 살라고 우리를 먼저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과정 속에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는 삶을 살길 원합니다. 이 땅에서 누리지 못하는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가 각자의 삶에서 누리길 원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내 옆에 있는 그것을 알지 못하고 여전히 깨어진 세상 속에 고통당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증거하는 증인이 되길 원합니다.
그런데 그것 역시도 내 힘과 내 의지, 결단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죠. 성령이 임할 때에 우리는 증인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제자들은 이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간절히 소망하며 기도했을 때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 교회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기도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기도 제목이 다양한데 보통 처음에 신앙이 어린아이와 같을 때 기도 내용들을 들어보면 대부분이 뭔가 원하는 것들을 구합니다. 이거 해 주세요. 저거 해 주세요. 그리고 조금 더 영역이 넓어지면 내 가족, 내 자녀들을 위한 기도를 해 나갑니다. 건강을 위해서 또 내 미래 진로나 또 은퇴 이후에 나의 삶을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조금 더 확장되면 가정을 지나 교회 그리고 사회 을 위해서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근데 여러분 여기에서 더 성숙하면 어떤 기도가 돼야 되냐면 바로 내가 원하는 것을 구하는 기도에서 성숙된 기도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기도입니다. 기도하는 과정 속에 하나님의 그 뜻이 우리 안에 보여지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게 되길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귀한 쓰임 받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요즘 무엇을 구하고 있습니까? 내가 원하는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한 혹 지니와 도깨비 방망이처럼 기도가 사용되고 있지 않은지 우리의 모습을 점검하길 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해 봅니다. 야고보서 4장 2절에 보면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저는 근데 이 말씀에서 이게 첫 번째다. 요즘 시대에 기도가 너무 약해지고 있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합니다.
여러분 어렸을 때부터 신앙생활하신 분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들의 부모님 세대가 얼마나 애타는 심정으로 물론 기복적인 신앙 또 여러 가지 연약한 신앙으로 기도를 했지만 그 어머니의 기도들, 아버지의 기도가 참 열정적이고 간절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기억합니다.
근데 시대가 점점 흐르면 흐를수록 기도가 희미해지고 있어요. 때로는 이런 말도 하죠. 늘 수시로 기도하는 거니까요. 그렇죠 뭐 걸으면서도 기도할 수 있고 운전하면서도 기도할 수 있고 내 삶에서 어떤 상황 속에서도 기도할 수 있어요.
근데 이게 잘못하면 그냥 합리화가 되는 겁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기도의 골방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하나님과의 만남의 시간을 확보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얻지 못함이 뭐라고요?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라고 명확하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구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뜻 가운데 구하면 찾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가 구해서 얻지 못한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안타까워 하실까요? 그리고 두 번째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우리가 구하는 모든 것을 다 주시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우리에게 가장 좋은 곳으로 주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내가 정력으로 구하는 것은 오히려 나를 망가뜨리고 내가 잘못된 길로 갈 수 있기에 해로운 것이기에 그것들을 주시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에서 저는 가장 좋은 것을 왜 성령으로 표현하셨을까 이 부분을 여러분 좀 깊이 묵상하고 이번 한 주간 이 성령이 얼마나 우리에게 필요하고 이 성령이 우리에게 정말 이건 필수적인 요소인지를 다시 한 번 기억하길 원합니다. 그냥 에너지가 아닙니다. 어떤 기운이 아닙니다. 하나님 성삼위 하나님이십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을 구하는 삶을 살아라. 하나님 한 분만이면 다 끝난 것이다.
여러분 이번 한 주간 더욱더 우리 안에 이미 내조하고 계시는 성령님을 간구하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성령님이 우리 가운데 역사하실 때 우리에게 능력을 더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며 그 뜻 가운데 쓰임 받는 귀한 삶을 살아가게 될 줄 믿습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