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민일보 이일균 기자 님께
안녕하십니까.
‘밀성대군지단’을 인터넷 네이버 검색하다가 기자님께서 2021년 11월 1일에 쓰신 "밀성대군지단 친일 잔재 기록 어딨나"를 읽고, 아래와 같이 소감을 말씀드리니 양지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먼저, 김영진 의원이 증거 자료라 하여 관련 기록으로 제시한 족보인 <밀성박씨 졸당공파 기사보>의 원문은 <幼學祥珍春舜(유학상진춘순)이 以容大(이용대)>입니다. 그런데 아래 국역은 <유학 상진과 춘금이 용대더러 사설을 기록하는 글을 쓰라 위촉하니>입니다. 졸당공파 국역에서 ‘舜’ 자를 ‘금’ 자로 오기했습니다. 인터넷에서 <밀성단비 음기>를 검색하면 금방 확인할 수 있습니다. 김영진 의원이 국역의 <춘금>만 보고 악질 친일파 <박춘금>을 연상했는가 봅니다. 한자를 읽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의심받을 수도 있습니다. 혹은 의도적으로 ‘춘금’만을 강조하여 밀양박씨를 곤경에 빠뜨리려는 음모일 수도 있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어느 경우든 경남도의회 의원의 자질과 품격에 대한 의문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니 경남도의회의 발전을 위하니 자히 걱정이 됩니다.
그리고 김영진 도의원은 지난달 21일 본회의에서 "1925년경 영남루 경내에서 뼛조각이 발견된 후 이를 중시조의 묘로 추정한 밀성 박씨 문중에서 당시 국유지였던 영남루에 조상을 모실 것인지 논쟁이 있었는데, 이때 친일파 박춘금이 이를 반대하던 박씨 문중의 인사에게 권총을 겨누고 위협해 영남루 안마당에 중시조의 단소를 세웠다"는 요지로 5분 발언을 했다고 하는데, 미확인이지만 밀성대군의 유해일 수도 있는 데도 “뼛조각‘이라고 한 것은 남의 문중 중시조를 모독하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기 성씨가 좋고 자기 조상이 귀하면 남의 성씨를 좋게 말하고 남의 조상을 존중하는 것이 인륜의 근본 도리가 아니일까요?
또한 권총 운운하는데, 100년이나 지난 아득한 옛날 일을 누구로부터 어떻게 듣고 본회의에서 공개 발언을 했는지 의아합니다. 앞의 기사를 보니 문화원장 손씨가 말했다는데, 그분도 대를 건너 들은 말이니 확인된 말이 될 수 없습니다. 설사 그러한 난폭한 행위가 사실이라 하더라도, 반대하던 사람이 다른 성씨가 아니라 같은 ’박씨 문중의 인사‘라니 문장 자체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다른 성씨 문중이 반대하기 때문에 권총으로 협박했다면 말이 되겠지요. 1925년에 30대 초인 박춘금이가 제아무리 친일부역자라고 하더라도 지방인 밀양에서 권총을 소지할 순 없었을 것입니다. 그자의 일생을 보면 1924년경에는 일본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권총 협박 사건은 이후 1924년 경성에서 날뛸 때 김성수와 송진우를 3시간 동안 협박할 때의 사건이 와전된 게 아닐까요?
권근의 양촌집 본조유사, 영남루가 법흥왕 때 건립된 영남사 터, 인근 하남읍 대사리의 ’풍류고개 세루정‘은 신라 왕이 풍류를 즐긴 곳이라고도 한다는 [디지털밀양문화대전] 등 여러 역사 기록을 보면 밀양이 밀성대군이 분봉 받은 영지이고 영남루 일대가 왕자의 궁성터였음이 사실일 것입니다.
비록 일제시대였지만 청구서대로 "밀성대군지단 터는 국유지로 1923년 3월 7일 무상대여를 신청해 현 위치 12평의 사용허락을 득하였음. 그 이후 정상적인 행정절차와 종원 간 협의로 1925년 10월 19일 준공식을 거행했다’는 관련 지료가 그대로 남아 있으니 행정적으로 문제 될 일이 아닌가 합니다.
박춘금이 밀양박씨 동족임이 참괴스럽습니다. 그러나 현재도 400만 동족이니 온갖 유형의 사람들이 다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대한민국 어느 성씨에나 공통적일 것입니다. 조선조 때 왕비를 가장 많이 배출한 외척으로 세도를 부린 파평윤씨 보세요. 그 훌륭한 윤증 선생 같은 유전자 후손들 중에서 윤석열과 같은 인간이 태어났지 않습니까.
박춘금 하나 때문에 우리 밀양박씨가 흔들리거나 상처를 입지는 않습니다. 과거에나 현재에나 미래에나 우리 한민족 전체의 평화와 발전을 위해 박씨족의 힘을 보탤 것입니다.
친일파는 후대에라도 청산되어야 하고, 박춘금과 같은 악질 친일파는 우리나라 금수강산에 뼛조각 하나라도 묻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영남루를 사랑하는 밀양사람들이 심정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밀성대군단은 천진단과 함께 영남루의 유적이 되었습니다. 옛 기록과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영남루가 밀성대군의 분봉지로 아궁이었고, 대군의 후손들이 고려와 조선조에서 나라와 겨레를 위해 많은 역할을 했습니다. 밀양에 박춘금이 같은 자가 있었지만 박세주와 같은 뜨거운 애국자도 있었습니다. 현대에도 남한에만도 400만 박씨들이 국가 발전을 위해 사회 각 분야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북한에 있는 박씨들도 속으로는 박혁거세 할아버지의 후손임을 자부하고 있을 것입니다. 밀성대군단비가 영남루와 함께 하는 것도 현재와 미래의 역사를 위해 조금이라도 득이 되지 않겠습니까.
사회의 목탁이요 시대 정신과 도리의 표현 도구인 경남도민일보가 어느 한쪽의 주장만을 강조하지 말고 객관적이고 공명정대한 논필을 사용하시길 당부드립니다.
귀사의 발전을 기원드립니다.
2025년 2월 1일 안동에서
개산팔경 박 희용 드림
밀양박씨 졸당공파 카페 운영자님께
안녕하십니까. 위의 원문은 '幼學祥珍春舜(유학상진춘순)이 以容大(이용대)로‘이나 아래의 국역은 ’유학 상진과 춘금이 용대더러 사설을 기록하는‘으로 되어 있습니다. 2021년 11. 1일자 경남도민일보를 보니 도의회 김영진 의원이 영남루 내의 밀성대군단비가 친일파 박춘금이 권력을 이용하여 강제로 세웠다는 근거로 족보인 <밀성박씨 졸당공파 기사보>를 제시하며 철거를 주장했다고 합니다. 국역 ’춘금‘ 때문입니다. 귀문이 제시한 원문과 국역이 틀립니다. 다른 파의 기록에는 '幼學祥珍春琴 유학상진춘금’인 것도 있습니다. 저는 경남도민일보에 반박하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확인하여 전화주시기 바랍니다. 전번은 010-8587-4092입니다. 안동에서 혁거세 69세손 규정공 후 충정공 14대 손 박희용 드림
밀성대군단과 박춘금은 무관합니다.
25.01.31 (금) 18:50
받는사람 양철우 <myang@gnnews.co.kr>
안녕하십니까.
'밀성대군단'을 검색하다가 귀하께서 쓰신 경남일보 2015년의 관련 기사를 읽었습니다.
제가 소장한 밀양박씨세보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습니다.
저도 양촌 권근의 '본조유사'를 읽어 보지는 않았지만, 근거가 있기 때문에 족보에 올리지 않았겠습니까.
저도 박춘금이란 자가 밀양박씨인 걸 처음 알았는데, 부끄럽고도 부끄럽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성씨나 별의별 인간상이 있지 않습니까.
파평윤씨도 조선조때 왕비를 많이 낸 문중이고, 윤증 선생은 학문사에 남는 학자인데
지금 후손 윤석열 대통령이 다 파토내고 있지 않습니까.
박춘금과 관련된 뜬 의혹을 밀성대군단과 연관 짓는 것은 지나친 억측이 아닌가 합니다.
을사년 올해에도 경남일보의 발전을 기원드립니다.
밀양박씨세보 : 景明王戊寅 分封州郡時 封密城大君 令密陽嶺南樓 卽大君宮城遺址之地 令密陽離宮臺 風流峴洗陋亭 世傳羅王遊幸之所 而事載權陽村近 記及本朝遺事 墓所配位失傳 仁廟甲戌後孫縣監暿與外裔本府使李惟達 致祭于嶺南樓自是立祠虔奉之論 世世踵發而未克有成迺者 後孫弘文館侍讀海徹首倡于宗以爲功德之祖不可不祭乂祖之論 不可不逐始事於乙丑仲冬竣功於丁卯季冬檀旣成謹上 檀號曰 景德檀
양촌 권근의 본조유사에 의하면 영남루는 밀성대군의 궁성유지로 풍류현 세류정은 신라 왕의 유행지였다고 한다. 인조 1634년부터 단을 세우려 했고, 을축년 홍수로 대군의 능이 나타나서 1925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927년에 준공했다. 박춘금은 1891년 생으로 단을 설치할 때는 30대 초로 족보 관념이 전혀 없는 무뢰배일 뿐이었다. 그러므로 밀성대군단과는 무관하다. 친일파 악질들은 마땅히 척결해야지만, 떠도는 의혹을 갖고 밀성대군단을 폄하해선 안 된다.
2025년 1월 31일
안동에서 개산팔경 박희용 드림
양철우 기자님 안녕하십니까
영남루 밀성대군 단소와 경덕단에 관한 자료를 송부합니다.
밀성대군 단소는 홍수로 드러난 묘소 때문에 고래의 말씀에 의거해서
1925년에 그 자리 영남루 근처에 비석 삼아 13도 박씨들의 감격 속에 건립 했고, 경덕단은 1928년에 밀양 지역의 유지들이 주관하여 밀성대군 언침과 아들 욱, 손자 란의 산소 삼아 무안면에 단을 건립하였습니다.
앞으로 관련 기사를 작성하실 적에 자료들을 깊이 참고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25년 2월 1일 안동에서
개산팔경 박 희 용 드림
[기사원문]
출처 : 경남도민일보(https://www.idomin.com)
"밀성대군지단 친일 잔재 기록 어딨나"
기자명 이일균 기자 iglee@idomin.com
입력 2021.11.01. 00:19 수정 2021.11.01 05:44
밀성박씨 "근거 없다"반발
김영진 도의원, 자료 제시
밀양 영남루 경내 '밀성대군지단' 논란과 관련해 밀성(밀양)박씨대종회가 "밀성대군지단이 친일잔재라는 기록이 어디에 있느냐"며 반발하고 나섰다.
박영호 대종회 총무는 "대종회가 긴급 임원회의를 열어 밀성대군지단이 친일파 박춘금이 주도해 만든 것이라는 어떠한 기록도 근거도 없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그런데 김영진 경남도의회 의원이 구술에 의존해 이를 공식화한 점에 대해 엄중 대응키로 했다"면서 "도의회에 5분발언 내용을 정정할 것을 촉구하는 청구서를 보냈다"고 지난달 29일 밝혔다.
김하용 경남도의회 의장 앞으로 보낸 청구서에는 "밀성대군지단 터는 국유지로 1923년 3월 7일 무상대여를 신청해 현 위치 12평의 사용허락을 득하였음. 그 이후 정상적인 행정절차와 종원 간 협의로 1925년 10월 19일 준공식을 거행했으며 지단 설단에 박춘금이 관여한 기록은 존재하지 않음은 명확한 사실임"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대종회는 또 "지단 형태가 일본 왕실과 신궁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는 형태라는 주장은 밀성(밀양)박씨의 숭조 정신을 크게 폄하하는 내용"이라고 덧붙였다. 이를 근거로 밀성박씨대종회는 도의회에 5분발언 내용 정정과 속기록 삭제를 청구했다.
이와 관련해 김영진 도의원은 지난달 21일 본회의에서 "1925년경 영남루 경내에서 뼛조각이 발견된 후 이를 중시조의 묘로 추정한 밀성 박씨 문중에서 당시 국유지였던 영남루에 조상을 모실 것인지 논쟁이 있었는데, 이때 친일파 박춘금이 이를 반대하던 박씨 문중의 인사에게 권총을 겨누고 위협해 영남루 안 마당에 중시조의 단소를 세웠다"는 요지로 5분 발언을 했다.
밀성박씨대종회의 5분발언 정정청구 사실에 대해 김영진 의원은 "아직 청구서를 받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관련 기록이 있다"면서 족보인 <밀성박씨 졸당공파 기사보>를 제시했다.
이 책 1권 106쪽에 "후손 시독 참봉 한묵과 주사 상호와 부령 두영과 주사 태진과 유학 상진과 춘금이 용대더러 사설을 기록하는 글을 쓰라 위촉하니"라는 부분이 있는데, 여기서 언급된 '춘금이'라는 내용이 밀성대군지단 설치 과정에 박춘금이 관련됐다는 기록이라는 것이다.
한편, 박춘금은 밀성박씨 일원으로,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명단, 2007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195인 명단에 모두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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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 성지 밀양 영남루에 일제 잔재
RE: 답장에 감사드립니다.
보낸사람 낙천 <phy6334@hanmail.net>
25.02.12 (수) 17:16
받는사람
iglee <iglee@idomin.com>
이일균 기자님께
Re: 경남도민일보 이일균 기자 님께
새창으로 읽기
보낸사람
이일균<iglee@idomin.com> 25.02.12 (수) 14:18
받는사람
낙천 <phy6334@hanmail.net>
제가 답변이 늦었습니다.
앞으로 관련 취재를 하게 된다면 선생님 말씀하신 내용 유념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RE: 답장에 감사드립니다.
보낸사람 낙천 <phy6334@hanmail.net>
25.02.12 (수) 17:16
받는사람 iglee <iglee@idomin.com>
입춘이 지나도 추위가 여전한 이때 안녕하십니까.
보내주신 친절한 답장에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저도 올봄 시제 때 밀성대군지단에 가서 비문을 확인하겠습니다.
또한 여지승람과 권근의 본조유사를 살피겠습니다.
문제가 박춘금 그자인데, 졸당공 기사 국역이 잘못입니다.
영남루 일대를 유적으로 아끼는 밀양사람들과 경남도민들의
심정이야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자료에도 상세히 나와있지만,
인구의 8%가 박씨인 밀양에서 밀성대군도 역사적 인물입니다.
설사 박춘금이란 자가 단비 건립에 관계됐다고 해도,
극히 일부분이 아니겠습니까.
그자의 악질적인 친일부역 행위가 미워서
오랜 역사적 전통과 문화가 서린 밀성대군단비까지 친일의 잔재로 몰아
배척하여 철거를 목적으로 하는 것은 지나지지 않는가 사료됩니다.
혹여 타성씨들의 어떤 음모가 있지나 않은지 괜히 우려해봅니다.
기자님의 건필과 함께 경남일보의 발전을 빕니다.
2025년 2월 12일
안동에서 박희용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