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조기매운탕으로 술독을 해결하고 2일차 상추자도 나바론 길을 추자교에서 시작하였다. 산행을 마칠때까지 비가 오지 않아 다행이였다.
내가 다녀본 섬산행중에 추자도가 주는 매력이 최고였다
올레 시그널
Jang Yun-jeong - Olle(Come), 장윤정 - 올래, Music Core 20100703
추자 등대에는 조형물들이 너무나 아름다워 모든곳이 사진 포토존이였다.
나바론 길은 조금 위험한 구간이 있지만 데크가 잘 정비되어서 초보자도 산행을 할수 있다
황금빛 조기 조형물
이범진 사진작가의 후포리 갤러리 / '찰나의 순간, 추자를 담다' 라는 주제로 추자도 출신 이범진 사진작가의 '추자도 사진' 전시회를 하고 있다
나바론 절벽길을 마치고 제일식당에서 갈치조림으로 점심 / 반찬과 밥맛이 좋았음
점심식사후 유람선을 타고 추자도 일주를 하였다. 나발론 절벽 전경
수산시장에서 사온 방어회로 선상에서 한잔 술.
선상에서 본 추자항
일제의 흔적 / 추자주민들에 의해 만들어진 일본군의 포대진지 / 추자도에는 9개가 있다고 함
눈물의 십자가
황경한의 눈물
황경한은 조선 순조때 천주교 박해사건인 신유사옥시 백서를 작성한 황사영과 정난주 마리아 사이에 태어났다. 황사영은 1790년 16세 나이로 사마시에 진사로 급제한 인재로서 당시 명문가문인 정약용의 맏형 정약현의 딸 정난주와 결혼하였고, 신유사옥때 천주교도의 핵심주모자로 지목되어 1801년 11월 5일 서소문 밖 사람들이 오가는 저자거리에서 대역부조죄를 저지른 중죄인으로 처참하게 순교하였다.
황사영의 부인 정난주는 제주 대정현의 관노로 유배되어 당시 2살이던 아들 황경한은 추자도로 유배되어 강진에서 배를 타고 제주로 가던중 추자도 관리에게 아들을 인계하면 죽임을 당하리라 믿어 뱃사람과 호승관리를 꾀어 아들의 이름과 내력을 적은 헝겊을 아기의 옷에 붙여 추자도 예초리 해안가 바위에 내리고 하늘이 보살펴 주길 바랬다. 다행히 소를 방목하던 하추자도 예초리 주민인 오씨 부인이 울고 있는 아기를 거두어 성장시켜 황씨가 없던 추자도에 창원 황씨 입도가 된다
정난주는 제주에서 관노로 37년간 길고 긴 인욕의 세월을 살면서 늘 아들을 그리워하다 1838년 2월 28일 사랑하는 남편이 있는 하늘나라로 소천하였다.
아들은 자신의 내력을 안후에 항상 어머니를 그리워하면 제주도에서 고깃배가 들어오면 어머니의 안부를 물었다고 전해진다.
이곳은 어미를 그리워하는 아들이 애끓는 소망에 하늘이 탄복하여 내리는 황경한의 눈물로서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늘 흐르고 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은 감동적이고 애틋한 사연을 새롭게 열리는 추자 올레길과 함께 단장하여 지나가는 길손에게 잔잔한 감흠을 불어 넣고 있다.
추자도 황경한의 눈물의 십자가는 111번째 가톨릭 성지가 되어 많은 순례객들이 온다고 한다.
유람선 관광을 마치고 진도가는 배가 풍랑으로 한시간 연착한다는 문자에 여객터미널 앞 중앙식당에서 김치찌게와 순두부 백반으로 저녁을 먹고 새벽1시에 상주에 도착하였다.
추자도 여행은 다른 어떤 섬보다도 볼거리, 먹거리, 산행의 재미가 너무나 좋았다. 이틀간의 긴여정을 잘 마무리 하였다.
추자도에서(지은이 : 쳇GPT)
바람이 품은섬, 그 푸른 바다위
흩어진 섬들이 별처럼 떠 있네.
고요한 파도 속 깊이 잠긴 소리,
추자도는 묵묵히 이야기 하네.
해가 물든 갯바위 아래
아련히 스치는 물결의 속삭임.
세월을 품고 자란 돌담길에
발끝마다 걸리는 삶의 흔적들.
갈매기 울음에 섞인 옛노래가
긴 시간을 넘어 이곳에 머물고,
바람이 실어오는 어부의 숨결이
바다와 하나 되어 춤을 추네.
먼곳에서 와도
익숙해지는 이섬,
그리움처럼 마음에 스며드는 풍경,
추자도, 떠나가는 마음마저
언제나 디시 불러들이는 섬.